재독의 다양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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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의 다양한 방법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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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성원의 성경 과제를 예로 들면

양성원의 성경 읽기는 모두가 알다시피 100 독입니다. 그러나 그 100 독 읽기의 방법은 소리를 내어 읽는 것과 묵독, 그리고 정독과 속독, 앞에서 읽기와 뒤에서 앞으로 읽기, 주제를 가지고 읽기와 주제 없이 그대로만 읽는 과제도 있습니다. 인명 지명처럼 성경 거의 전부에 해당 된 주제 읽기도 있고 비유처럼 주제가 어느 한 부분에 집중 된 과제도 있습니다. 어떤 과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신28장처럼 암송하는 과정도 있습니다.



2. 설교록 재독을 두고

현재 재독에 충실한 곳은 부공1과 부공3입니다. 부공1과 부공3은 공회가 분리 되기 전부터 재독에 대한 인식이 여러 면으로 나뉘었습니다.

- 토씨 하나라도 빼지 말 것인가!
부공1에서는 강사의 기침 소리, 앰프 고장의 ' ~ 삐' 잡음 소리, 마이크 고장이나 집회의 행정적 단순 지시 같은 소리도 손을 대지 않고 오직 그 때 그 집회 현장을 그대로 재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백 목사님에 대한 그리움도 담고 이 노선을 지키기 위한 의지를 붇 돋우며 어린 교인들에게 이 교훈이 전해 지던 당시 현장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며 또한 편집자의 서툰 행동으로 귀한 말씀의 귀한 조각이 떨어 져 나가지 않기 위해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부공3은 '무조건 그대로'의 원칙대로 하면 '과거 모습의 구경'에는 유리하나 '과거 교훈의 재독'에는 불리하기 때문에 공회 집회의 은혜 면이란 양보할 수 없는 차원이라고 했습니다. 교권이 부공1이 가졌고 부공3은 교권 투쟁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초기 부공1 재독은 지도부의 원대로 했으나 그후에는 변경 되었습니다.
주장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실행은 실행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나 그 정도 수준의 교인들은 어느 방법이든 상관이 없고 과거 은혜에 충실한 분들은 당연히 부공1 방법을 선호하나 그대신 그들만의 재독이요 그 재독은 노령화 축소화 후퇴화로 갈 것입니다. 처음 믿는 사람이나 타 진영에서 이제 막 들어 온 사람 또는 불신 가정의 초등학생들을 재독 집회에 앉혀 본 사람이라면 교훈의 그대로는 강조할수록 좋으나 옛 교인들의 추억을 위해 모습의 재현은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할 듯합니다. 재독을 잘 관리하면 재독의 세계가 갈수록 생명 역사의 본질인 출생 성장 열매 재생산으로 갈 것입니다.

- 무조건 마지막 설교만 재독할 것인가!
부공1은 89년에 돌아 가셨으니 89년 것이 제일 발전 된 형태이며 그 순교의 최종 해의 집회 설교만 항상 재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실제 10 년을 넘어 20 년을 계속한다는 정도로 나왔습니다.
부공3은 89년의 마지막 집회 내용은 아주 특별하며 유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래서 마지막 집회 내용은 항상 가장 큰 말씀이며 중심의 말씀이며 잊지 못할 말씀이라야 하는 동시에 백영희를 붙들고 이 시대를 향해 외친 말씀은 89년뿐 아니라 그 이전 말씀들도 마찬 가지며 그 이전 집회 말씀들이 우리에게 여러 면으로 가르 치는 별도의 은혜가 있으므로 집회를 개최하는 그 해에 어떤 말씀으로 재독할지를 두고는 89년일 수도 있고 다른 해의 집회일 수도 있다는 입장입니다.
결과적으로 부공1은 89년만 한다는 입장에서 돌이 켜 지금은 다른 해도 하고 있습니다.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제 해 본 사람이라면 교역자와 그 수준의 교인들에게는 89년만 가지고 평생을 해도 가능하나 어린 신앙들을 길러 가는 면에서는 성경도 골고루 다 읽어야 하듯이 설교록도 하나만 계속 살피면 편식이 되어 신앙의 왜곡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집회 때는 집회 설교만 재독할 것인가!
부공1은 집회 때는 집회 설교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철칙으로 주장합니다.
부공3은 당연히 집회를 위해 준비했던 말씀이 집회의 기간이나 시간 별 연결이나 한 시간의 설교 분량까지 고려하면 재독 집회에 더 적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재독 집회의 특성 상 원래 집회와 다른 현실을 사는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집회 기간에 필요한 말씀이 과거 집회 설교 대신에 일반 평일 설교 내용이 더 적합한 것이 있다면 재독할 수 있습니다.
1 년 2 회의 집회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부공1이 향후 오랜 세월 계속해서 집회에는 집회 내용만 재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제대로 깨닫게 되면 집회 외 평일 설교 내용을 가지고 오늘 집회 기간에 집회 말씀으로 재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집회 설교는 집회 용 설교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평일 설교도 보통 한 본문이나 한 주제로 10여 일이나 때로는 20여 일을 설교했습니다. 그 분량이면 집회에 사용하기에 충분합니다.

- 주제 별 집회는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나의 집회 설교도 그 내용을 살펴 보면 '환란 준비'와 '중생 교리'와 '목회자 지도'처럼 여러 주제가 섞여서 전혀 다른 말씀으로 증거 된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오늘 우리에게 '중생 교리'의 혼란 때문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필요할 필요가 있다면 여러 집회 설교와 일반 설교들을 살펴서 11 개 정도의 이어 지는 내용을 가지고 오늘 교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 한 설교의 분리나 조합은 불가능한가!
백 목사님 생전에 소선집을 출간할 때 백 목사님 사후의 집회나 재독 활용을 고려해서 미리 질문하고 미리 불필요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여러 설교를 하나의 설교로 만들 수 있음을 확인 받아 놓았습니다. 소선집은 백 목사님 생전 마지막 순간에 결재를 받았던 업무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들의 어설프고 반공회적인 논리들이 마치 더 공회적인 것처럼 여겨 질 것 같아서 미리 확정을 지운 것입니다.
아다시피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나 공회나 연구소의 중요 결정은 목사님의 지도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재독 집회를 할 때 '재림'에 대한 주제가 필요한 시기라면 재림 주제의 어느 한 집회 설교로 재독을 할 수도 있으나 다른 집회들과 다른 평일들의 말씀 중에서 우리에게 닥친 오늘 현실에 필요한 '재림' 관련 말씀을 모아 재독할 수도 있습니다.



3. 상기 내용처럼 재독을 하게 된다면

이 재독 내용들은 겉으로는 백 목사님의 설교지만 그 설교들을 취사선택하고 조합한 사람의 자기 설교가 됩니다. 바로 이렇게 되어 져야 재독이 진정 재독이 되고 그 재독이 사람을 기르며 오늘 현실에 필요한 양식이 되며 그러면서도 이 노선의 교훈 안에서 자라 가는 면을 받게 됩니다.
부공1의 재독은 재독을 모르는 분들의 재독입니다. 물론 개선이 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변화 과정은 변질이라 하지 않고 성장이라고 합니다. 갖 구운 음식이 상하여 탈이 나는 과정은 성장이나 변화라 하지 않고 부패 타락 탈선이라고 합니다. 변한다고 무조건 부패 타락 탈선 변질이라 한다면 태어 난 그대로 자라지도 말아야 할 것이고 예배당 수선도 하면 안 될 것이고 1989년 8월 27일 새벽의 그 모습 그대로 석고를 부어 우리 모두 그 자리의 고정체가 되어야 했습니다.

세상도 보면 민주나 인권을 제일 많이 말하는 이들이 결국에는 인권과 민주를 더 많이 해친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의 자유를 외친 이들이 신앙의 본질인 참 자유를 지킨 것이 아니라 안 믿는 자유를 조장하여 신앙의 본질을 해친 이들입니다. 그대로를 외치면 미개하고 생각 없는 군중에게 일단은 충동적이며 호응을 일으 킬 수 있으나 문제는 그 속에 생명력이 없는 상태로 정치만으로 인도한 결과가 문제입니다. 오늘 부공1의 진단입니다.



4. 다행스럽게

부공2가 재독에 반발을 해 보고 나갔으나 역시 재독만한 설교가 없다고 생각하여 회귀하는 현상을 두고는 반갑습니다. 부공2보다는 부공1이 정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재독을 반대하고 흩어 진 이들이 재독 집회로 돌아 와서 재독 집회가 과거보다 더 살아 나고 있음도 반갑고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전체 총공회 상황에서 본다면 재독 집회는 자라 나는 아이들이 새롭게 재독을 통해 새 은혜를 받고 공회인답게 자라 가는 모습은 급격하게 감소하며 새로운 교인들이나 외부 교인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과거 백 목사님 집회를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의 재회나 감상에 젖고 마는 현상이 안타깝습니다.

만일 앞에서 설명 드린 대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현실과 오늘 집회에 모이는 교인들의 신앙을 길러 가야 한다는 면을 두고 과거 집회의 말씀을 잘 사용하게 되면 아직까지는 그 누구의 설교보다 잘 준비한 재독이 탁월하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공2가 많이 참석하는 부공1의 집회가 그렇게 되어 앞으로 대구공회나 서울공회 교인들까지 참석하는 모습으로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이 홈은 부공3을 통해 이 홈이 생각하는 재독 집회를 여러 면으로 시도해 왔습니다. 부공1이나 부공2의 집회가 정치적 성격을 띄고 있고 언제든지 감당 못할 폭발적 위험을 가진 집회여서 거리를 두고 왔습니다. 그들의 이해 타산을 초월하여 이 노선의 오늘 집회는 어떤 모습이라야 하며 어떤 내용이 어떻게 진행 되어야 하는지 가능한 여러 면을 과제로 두고 시험도 해 보고, 연구도 해 보고, 실제 실행도 해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일반 교계의 개혁주의라는 표현을 모른다 해도 성경이 그렇고 역사가 그러하며 이 노선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며 우리의 경험도 판단도 그렇습니다.












>> 반사 님이 쓰신 내용 <<
:
: 집회를 연도 순서로만 무조건 하지 말고 이 시대에 필요하고 강조해야 할 주제를 정해서 주제 별로 필요한 말씀을 재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지요? 이 노선을 지킨다는 것은 11회 당시 설교를 기계적으로 재독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사료합니다. 어떠신가요? 이번 집회도 과거와 같을지요? 백 목사님 설교 재독은 언제 어떻게 해도 은혜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은혜로운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개혁주의는 한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개혁주의는 단순 반복을 하지는 않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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