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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백�d화 0 14



전재수 목사님에 관한 추억

전재수 목사님은 70년대 초, 중반에 청량리교회 주교 부장으로서 교회 앞에서 '전농시장'에서 옷장사를 하셨는데 양심적으로 상행위를 하여 빛이 되었으며, 주교 부장은 당시 신용인 목사님, 장렬 목사님이 담임 교역자일 때 였다고 기억된다. 당시 청량리 교회는 허름한 지붕(갓바를 씌운 스레트 집)이었고 주일학교는 최대의 전성기로 주교 학생수가 서부 교회에 거의 다음의 정도를 유지하여 천명 가량 되었다고 기억된다. 예로 김영채 목사님(당시 반사. 현 창천 교회 담임목사님)의 반은 수백명이었고 담임한 중간반 학생수만해도 많았다. 당시 김 목사님은 주일, 수요, 금요 예배가 끝나면 학생들을 지도하는 장소를 주로 길거리 골목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김 목사님은 수 백명의 주교생을 거느리고 이를 양육하기 위해 심방을 천변 빈민 가옥 들을 뛰어다녀 거기에 단련된 신체로 경희대학교 전교 총마라톤에서 일등을 한 적도 있었고 리더십의 장점이 있어 대학 과대표를 맡았다.

전재수 목사님은 옷장사를 하다가 포양교회 등으로 목회를 나가셨고 즉 청량리 교회에서 목회 출발을 하였다. 당시 청량리 교회는 서울에서 사직동교회, 청량리교회, 동문교회, 상남 교회 중에서 가장 노선도가 굳고 철저했다. 상남 교회는 공회색이 가장 옅은 교회였다.

전성수 목사님은 아는 대로 요절하셨고 홍순철 목사님과 전성수 목사님은 쌍벽으로 가히 성인 반열에 올릴수 있는 분들로 평가가 되는 것으로 주지되고 있다. 전성수 목사님의 별세후(형님인 성수 목사님이 동생인 재수 목사님 보다 먼저 별세 하심) 그 따님이 잠실동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세월은 유수 같이 흘러 전성수, 전재수 형제 목사님들도 천국에서 편히 쉬실 것이다. 그 후손들에게 축복된 삶이 영원토록 있으시길 축원한다.

황사가 심한 오늘,
한강변 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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