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부분도 일부 있으나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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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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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0:00
인정할 부분은 인정합니다.
개명교회인들이 외부로 나가면 변질될 확률이 더 높은게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서부교회가 그렇습니다.
서부교회가 20년 전이나 같은 설교라고 하시는데 그것밖에 못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부교회는 많이 변했습니다.
서목사님의 설교는 변했으며, 그 설교를 듣고 있는 서부교회2층이 변했기에 변한것을 모르고 같은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변했습니다.
사람이 변했고 행정이 변했는데 설교가 같기를 바라겠습니까? 그것이이야 말로 도둑의 심보겠지요.
변한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같다고 말하는것을 탓할 뿐입니다.
나는 변했는데 변한줄 모르고 변했다고 하는 사람을 탓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입니다.
개명교회 출신은 분명 변했습니다.
저는 개명교회를 지키는 지금의 선배님들과 그분들의 신앙을 말합니다.
개명교회가 어떻게 이어왔는지를 지켜 보지 않은 분들은 함부로 말 합니다.
세벽예배 마치면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적을 덥어 쓰고 날이 훤이 밝아 올때까지 뒷산에서 기도하시든 늙은 종들의 기도 소리와 모습들을...
그 기도의 결실이 지금의 개명교회가 건제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정감용 권사님이 가장 아끼든 목사님이 있습니다.
믿음의 동반자요 자녀라 인정하고 친자녀 이상으로 늘 기도하고 계신분입니다.
정권사님이 소천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셨으며,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도 몰라보든 기억력이 그 목사님이 찾아 뵛을때 눈물을 흘리며 감사 감사..또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기도 하신분입니다.
그른 기도의 은혜로 누구보다 목회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개명교회 출신들이 외지에서는 어쩌면 말씀처럼 다 변했습니다.
대구공회에서 또는 부산2에서 목회하는 젊은 목사들 조차 그때의 모습을 잃어 버린것을 보면 마음이 늘 불편합니다.
나만 잘하면 되지 하지만 같은 시대에 신앙을 같이한 동녁자로 섭섭하지 않다면 거짖말이겠요.
서부교회에서 가장 멀리간 사람들이 개명교회 출신들입니다.
비원교회에서도 그러했습니다. 달산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딘들 없는교회가 없을만큼 가장 많이 변한 사람들이 개명교회 출신 맞습니다.
그렇지만은 지금 개명교회를 지키시는 분들은 공회의 전체를 뚜둘겨 뭉쳐놔도 어림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만의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어쩌든 그분들에게는 110년라는 개명교회의 역사가 있습니다.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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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는 개명교인들의 신앙 때문이 아니라 그 곳에 걸려 있는 이름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개명교인들은 어느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도 대동소이한 언행을 보입니다. 그것은 서부교인들도 그렇습니다. 청량리 동성로 남천 창동교회 역시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강산이 아름답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카나다나 북미를 가본 사람은 두번 입에 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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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회에 가장 신앙있는 분들도 서부교회 앉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집니다. 자신들끼리만 자부심을 가집니다. 강단에서 개명교회 시절을 자꾸 예를 드니까 그럽니다. 그 개명교회는 현 개교회가 아닙니다. 하여튼 서부교회나 개명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습니다. 개명교회만 특별할까요? 서부교회가 서 목사님 체제에서 20년을 지내고도 교인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내나 옛날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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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인들은 신앙이 넓습니다. 개명에 계신분들은 시골에 계신 공회교인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보수쪽입니다. 신천교회처럼 위산교회처럼. 봉산교회는 교인들이 일찍 창동교회로 다 옮겼으므로 의미가 없습니다. 공회의 시골교인들은 보수적입니다. 시골사람들이 원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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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은 고향을 떠나 남 모르는 곳에 살면 다 드러납니다. 개명교인들은 넓습니다. 서울공회 대구공회에 깔렸습니다. 정작 개명교인들이 부산공회를 지키는 것은 시골이고 백 목사님에 대한 향수와 영향이 컸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나오면 다 넓어집니다. 개명교회에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은 백영희 목사님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이 서부교회로 오셨고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서부교회는 개명교회와 비교할 수 없이 신앙수준이 높은 곳입니다. 이제 백 목사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당시 신앙의 실상입니다. 개명교인들은 신앙이 넓습니다. 백 목사님께 붙들려 다른 교회 교인들보다 보수신앙인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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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 계실 때는 순교신앙의 교인들이 목사님 떠난뒤에는 세상으로 돌아가신 불신자로 계신분들도 많고 넓디넓은 신앙으로 돌아선 분들이 허다하고 고향을 떠나지 못한 시골에만 살 수밖에 없는 분들은 신앙을 떠나 세상적으로 성향이 보수적인분들입니다. 그래서 보수가 지켜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언제 이 글에서 애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애양원기념관을 방문하면서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과연 그분들은 오늘의 서부교인들과 같습니다. 통합측 교인들인데 개명교인들과 비교도 못할만큼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환자여서그곳에만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섭리 역사는 그곳에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라는 교훈을 많이 들었습니다. 개명교회에 대해 할말이 너무 많습니다. 내부에서 신앙고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부교회처럼 개명교회는 공회적으로 공교회입니다. 자기 역사는 공회역사입니다. 최대한 공개를 해서 역사공유를 해야 합니다. 아니라면 노트를 혼자 들고 숨어서 보는 김목사님 심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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