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수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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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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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0:00
답변자가 아는 개명 출신들 중에 유일하게 흐트러 짐이 없었던 분은 전성수 목사님입니다. 창동교회 재임 시절 매월 첫 주일 지난 월요일의 교역자 회의에 제일 앞 자리를 앉기 위해 노력해도 월요일 아침의 첫 차 출발 시간 때문에 홍순철 목사님께 자리를 뺏기게 되자 주일 저녁에 80리 길 고령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고, 고령의 아는 교인 집에서 주무시고 월요일 새벽 고령에서 대구 가는 첫 차를 통해 부산에 도착하여 앞 자리를 앉았던 분입니다.
지금 이 홈을 운영하는 답변자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 분께 '이 노선의 가치와 이 노선을 걷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1976년 거창에서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올라 가게 되자 오늘 세계의 예루살렘은 그 분이 계시는 부산이라고 한 말씀을 하셔서 다음 해에 부산으로 편입을 하게 만드셨고, 서울로 올라 가는 시골 지교회 출신의 고교 졸업생에게 방학 때 고향을 내려 오게 되거든 바로 오지 말고 부산을 들러 백 목사님께 '방학이어서 내려 가는 길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황당하고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지도 한 마디를 통해 답변자는 정말 그 정도의 인물인지 아니면 자기 스승을 아끼는 제자의 충성인지 끝을 파 헤쳐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전 목사님 때문에 백영희 신앙노선의 밑바닥 끝을 다 파 헤쳐 보게 되었고 답변자는 개명 출신들이 전부 그러하다고 생각했는데 답변자 알기로는 전 목사님 한 분만 그러했고 다른 분들은 너무 길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답변자는 혼자 속으로 지금까지 개명교회의 정통성은 전성수 목사님을 통해 답변자가 잇고 있다는 착각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착각이 착각이었음이 밝혀 져서 그렇지 않음이 드러 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소원 때문에 이 노선에 누가 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 그리고 고귀한 신앙의 희생을 하신 1세대 선배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개명교회를 탄핵해 봅니다.
왜 이 노선에 개명교회는 찾아 볼 수가 없는가?
서부교회가 백 목사님 설교록 출간을 포기했다면 당연히 개명교회가 연고권 우선권을 주장하며 치고 나와야 하지 않은가? 개명교회에서 기도만 하는 종들이 옛날처럼 기도만 하기 때문에 묵상 중에 계신다면 개명교회 청년들과 학생들도 그런 신앙인가? 예수님은 대속을 위해 순순히 잡혀 갔지만 제자들은 검을 가지고 잡으러 온 체포조의 오른 귀를 베어 버려야 하지 않을까?
>> 교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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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는 개명교인들의 신앙 때문이 아니라 그 곳에 걸려 있는 이름 때문으로 생각합니다. 개명교인들은 어느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도 대동소이한 언행을 보입니다. 그것은 서부교인들도 그렇습니다. 청량리 동성로 남천 창동교회 역시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강산이 아름답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카나다나 북미를 가본 사람은 두번 입에 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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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회에 가장 신앙있는 분들도 서부교회 앉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아집니다. 자신들끼리만 자부심을 가집니다. 강단에서 개명교회 시절을 자꾸 예를 드니까 그럽니다. 그 개명교회는 현 개교회가 아닙니다. 하여튼 서부교회나 개명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습니다. 개명교회만 특별할까요? 서부교회가 서 목사님 체제에서 20년을 지내고도 교인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내나 옛날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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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명교인들은 신앙이 넓습니다. 개명에 계신분들은 시골에 계신 공회교인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보수쪽입니다. 신천교회처럼 위산교회처럼. 봉산교회는 교인들이 일찍 창동교회로 다 옮겼으므로 의미가 없습니다. 공회의 시골교인들은 보수적입니다. 시골사람들이 원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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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은 고향을 떠나 남 모르는 곳에 살면 다 드러납니다. 개명교인들은 넓습니다. 서울공회 대구공회에 깔렸습니다. 정작 개명교인들이 부산공회를 지키는 것은 시골이고 백 목사님에 대한 향수와 영향이 컸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나오면 다 넓어집니다. 개명교회에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은 백영희 목사님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이 서부교회로 오셨고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서부교회는 개명교회와 비교할 수 없이 신앙수준이 높은 곳입니다. 이제 백 목사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당시 신앙의 실상입니다. 개명교인들은 신앙이 넓습니다. 백 목사님께 붙들려 다른 교회 교인들보다 보수신앙인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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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목사님 계실 때는 순교신앙의 교인들이 목사님 떠난뒤에는 세상으로 돌아가신 불신자로 계신분들도 많고 넓디넓은 신앙으로 돌아선 분들이 허다하고 고향을 떠나지 못한 시골에만 살 수밖에 없는 분들은 신앙을 떠나 세상적으로 성향이 보수적인분들입니다. 그래서 보수가 지켜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언제 이 글에서 애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애양원기념관을 방문하면서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과연 그분들은 오늘의 서부교인들과 같습니다. 통합측 교인들인데 개명교인들과 비교도 못할만큼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환자여서그곳에만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섭리 역사는 그곳에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라는 교훈을 많이 들었습니다. 개명교회에 대해 할말이 너무 많습니다. 내부에서 신앙고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부교회처럼 개명교회는 공회적으로 공교회입니다. 자기 역사는 공회역사입니다. 최대한 공개를 해서 역사공유를 해야 합니다. 아니라면 노트를 혼자 들고 숨어서 보는 김목사님 심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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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회인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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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알아도 될듯합니다.
: : 한참 공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심각하고 돌아갈때 부산이냐 대구냐로 나뉠때였습니다.
: : 개명교회의 가장 핵심 맵버였든 박집사님과 이권사님이 계셨습니다.
: : 이분들은 이름만 대면 공회의 전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알수 있는 분이며, 두분이 숙모와 조카 사의였으며, 이 권사님은 돌아가신 두형제 목사님의 어머니십니다.
: : 개명교회의 성향은 지금도 그렇지만 보수 성향의 중심이므로 절때 대구공회로 속할 수 없는 사항이었으나 두분은 성향이 같으므로 대구공회를 찬성하고 부산을 배척하기에 이러렀으며, 가장 강경한 분이 박집사님이었습니다.
: : 개명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의 섭리름 많이 봤든 터라 놀라지도 않았겠지만 윗마을에는 다수가 불신자들로 불신자들까지 알게된 일이 있었습니다.
: : 공회가 갈라지면서 개명교회는 폭풍의 핵으로 떠오르게 되고 개명교회가 갈라지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문제가 많은 두분은 한날에 데려 가셨습니다.
: : 생각지도 않게 한날에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데려 가셨습니다.
: : 숙모와 조카가 한날에 세상 장막을 벗게 만드셨고 교회는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 : 두분은 그동안에도 부임하든 교역자들을 배척하든 대명사였으며, 공회가 갈라지면서 돌아가신 아들 목사님의 성향을 쫓아 대구공회로 속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보시지 않아 두분을 한날에 데려감으로 교회를 잠잠하게 만드셨습니다.
: : 두분이 한날에 돌아 가시므로 장례를 같이 치를 수 없어 하루터울로 치렀든 것으로 기억합니다.
: : 이뿐 아니라 개명교회의 예기들은 알려지지 않은 간증들이 많으나 예나 지금이나 기도와 헌신으로 자기들이 해야할 신앙으로 묵묵히 기도하고만 있습니다.
: : 공회교회들이 개명교회가 죽었느니 예전의 명성이 어떠니 해도 서부교회가 전부 달려 들어도 개명교회를 이길 수 없을만큼 개명교회의 기도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 엄밀히 따지면 개명교회는 부산공회1도 아니요 부산공회2도 아니요 부산공회3도 아닙니다.
: : 단지 예수교장로회한국 총공회일 뿐입니다.
: : 다 같은 한국 총공회라고 생각하고 나누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 : 교인들은 나누질 않지만 목회자들끼리 나누어 가졌습니다.
: : 그러나 여기에는 대구공회나 서울공회는 절때 끼일 수도 없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 : 개명교회에서는 대구공회나 서울공회와는 아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 : 이것이 살아 역사하시는 주권자의 힘이며 능력 아래 있는 기도 역사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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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성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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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백목사님을 비판한 분들의 뒷얘기를 살펴보면 모두 처참했습니다. 고신의 그 기라성같은 유명한 분들 다 비참해졌지요. 우리가 아는 분들도 다 그렇습니다. 비판이야 자유지만 거짓말이나 복음을 방해하면 값은 받습니다. 종이 위대하면 그 값도 너무 큽니다. 복을 빌어 복을 받는 길이 우리의 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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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yilee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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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부모: 달산교회 김달종 명예 안수집사, 달산교회 류순자 명예 권사님
: : : : 고향: 의성군 금성면 탄리
: : : : 신앙: 달산교회 초기 가정으로 부친은 교회를 다녔으나 신앙은 교회 출석 정도, 택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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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2세로 사망
: : : : 달산교회 출신으로 서부교회로 와서 주교 반사를 거쳐
: : : : 1978년 중간반 초기 부부로
: : : : 1981.6.30. 전남 여수 묘창교회 부임으로 목회 시작하여
: : : : 이후 개명교회 수천교회 밀양남교회 서성교회 덕진동교회 밀양남교회로 다시 돌아 왔다가
: : : : 최근 1 년 이상 뤼게릭 병으로 고생했고 부인은 오화순 중간반사 출신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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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백 목사님 사후
: : : : 처음에는 부공1에 소속하여 충성하다가 개명교회를 떠나 대구로 가면서 부공2 성향에 섰고 후에는 부공2 핵심으로 활동하면서 부공2의 보호를 받으며 백 목사님 비판에 극단적 길을 걷다가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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