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원 목사님과 1970년대 녹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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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30 00:00
1. 관련 자료 일체는 /pkist.net/활용자료/검토본/'오동원'/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2. 오동원 목사님의 자녀 오석주 목사님께 자료 수령한 과정은
2009년 12월 22일 40권 노트 수령, 울주
2009년 12월 24일 40권 노트 반납, 63권 노트 수령, 울주
2009년 12월 29일 53권 노트 반납, 92권 노트 수령, 울주
2010년 01월 07일102권 노트 반납, 울주
2010년 01월 12일195권 노트 스캔 자료 일체 전달, 울주
3. 자료 입수 과정에서
오동원 목사님은 1972년까지 여수 신풍교회 바로 옆의 통합측 교단 성암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는데 이 교회는 애양원 선교부가 애양원의 퇴원 교인들을 위해 애양원 앞에 세운 교회여서 실제로는 또 하나의 애양원교회였습니다.
성암교회에 부임하는 도중 서천석 목사님의 누님이신 서귀덕 집사님(애양원의 차종석 총무과장님의 부인)에게 백 목사님 소식을 듣고 집회와 교역자회를 방청하며 은혜를 받게 되자 맡고 있던 교회의 애양원교회 출신 장로님들에게 총공회로 소속을 바꾸자고 했다가 강단에서 멱살까지 잡히는 등의 수모를 겪었고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본인은 빈 손 털고 부산으로 가서 백 목사님께 배우고 개척하겠다고 했고 자기를 따르던 주요 교인 30여 명에게 바로 옆에 있는 신풍교회로 가서 구원을 잘 이루도록 안내를 하여 그 분들이 현재까지 신풍교회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오동원 목사님은 1972년 부활절 주일에 교인들을 신풍교회로 보내고 본인은 부산의 동삼동으로 와서 동생 가정의 마루에서 예배를 드리고 동부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공회 전체적으로 가장 빠른 기간에 발전을 이룬 교회가 되었으며 얼마 전에 돌아 가신 그 종신교회는 현재 1천 명의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모가 철저하여 초기부터 녹음을 하고 사모님이 정필을 하면 목사님은 설교를 위해 다시 정리하는 생활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200 권의 대학 노트를 두고 가셨는데 대부분 빡빡하게 적은 80 - 100 페이지 대용량이고 70년대 초반이 집중 기록 되었으므로 공회로서는 녹음 이전 필기 시대를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자세히 요약 된 최고의 기록입니다.
4. 공회 이탈
오동원 목사님은 초기에 말씀 하나로 단번에 부흥하게 되었으나 약간의 정체가 보여 목사님은 이동을 통해 실력을 더 쌓도록 지시를 했는데 개척 교회를 수백 명의 교회로 길러 놓은 애착과 개척을 다시 하기에는 여러 모로 어려운 개인 사정 때문에 이동을 받아 들일 수가 없어 공회를 탈퇴하게 됩니다. 이동 지시 때문에 나간 것일 뿐 모든 면에서는 예전 그대로였으므로 집회를 참석하는 등 말씀을 계속 배우고 있었는데 예전만큼 말씀 접촉하기가 어려워지게 되자 아들에게 녹음을 시킵니다.
아들 목사님은 동아대학교 상대를 다니면서 동래에서 학교를 오가는 길목이 서부교회였으므로 서부교회를 참석해서 녹음하고 부친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부친 그 자신부터 70년대 초반부터 녹음을 통해 꼼꼼하게 말씀을 기록하신 분입니다.
5. 기록 공개 과정
오동원 목사님은 백 목사님과 애양원교회의 관계, 신풍교회의 역사 등에 중요 인물이어서 신풍교회 담임 목사로서 공회에서 떠난 과정과 백 목사님을 알게 된 과정 등을 면담하려고 사모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녹음 기록을 알게 되었고
그 기록 노트 40여 권을 가진 옛 동부교회 출신 교인으로 현재 공회에서 목회하는 분의 이름을 알게 되어 그 분이 보유하고 있던 기록 전부와 오동원 목사님의 자녀가 직접 가지고 있는 자료 전부를 이 홈에서 제공 받아 일체 '활용자료'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자료 공개 과정에서 부공2 소속으로 이말출 노트를 절대 공개해서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진 김 목사님들의 승인 거부가 있어 몇 달을 갈등했고 오동원 목사님의 아들 목사님이 복음은 물론 상식 차원에서 그리고 자녀로서 중대 결심을 할 수 있다는 등의 입장을 전달하게 되어 일체 공개가 결정 되었습니다.
공개 되던 당시 그 이전의 공개 거부 과정은 밝히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구체적 실명이나 짐작할 수 있는 기타 내용도 이 홈이 먼저 안내할 수는 없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은 글 자체를 삭제할 수 있음을 양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6. 대구공회 집회 기간의 강사 초빙
오늘 이 시점에 우리 내부 공회인들에게 던지는 과제가 큰 분입니다. 대구공회에서 이 번 8월 집회 기간에 아들 목사님을 저녁 청소년 수련회 강사로 초빙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 목사님 자료를 70년대 초반부터 녹음하고 정서하며 그 말씀에 철저하게 목회하여 크게 성공한 오동원 목사님의 부산 동부교회 사례와 그 심부름을 맡은 아들 목사님의 사례를 대구공회 청소년들이 듣게 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부공3이나 개별 교회적으로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공회는 간증이나 외부 강사의 내부 초빙은 금지사항 정도입니다만 과거 하종택 목사님이나 이인재 목사님 등 이 노선에 몸을 담았거나 지지했던 특별한 분들의 경우 한 번씩 강단에 모신 적이 있었습니다. 신중할 일이나 금지사항은 아닙니다.
>> 교역자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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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공회 교역자회에서 들었습니다. 백 목사님 설교는 이병준 목사님이 녹음을 시작한 것이 70년대 말이고 이때로부터 녹음이 시작되었다고 들었는데 70년 초반부터 녹음하신 통합교단 목회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도 그 자료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 집회에서는 이번에 그가족 목사님을 모시고 간증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