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만 올려주시면 좋겠는데

공회내부 문답      

동영상만 올려주시면 좋겠는데

설명
서부 0 16


80% 교인이 싫어해서 쫓겨난 목회자가 쫓겨나기 전날까지 자기 교회 교인 전부가 은혜받는다고 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60% 교인이 싫어해서 쫓겨난 목회자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어느 목회자는 식모 몇 사람이 은혜 받는다고 수천명 교인이 은혜받는다고 생각하다가 쫓겨났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요즘은 기계가 편리하니까 10분짜리라도 찍어서 여기 공개해 주면 참고하겠습니다. 말 가지고는 어렵고 보여주면 됩니다. 좋으면 저희 교회에도 올려놓겠습니다. 좋으면 배운다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 산곡의 백합화 님이 쓰신 내용 <<
:
:
: 나는 90년대 종반에 청량리교회의 중간반 부장을 상당기간 한 적이 있다. 그 때 중간반 반사는 정형인(현, 목회), 박종수(현, 장로), 양희선(현, 목사), 장기장(현, 명성교회) 등이다. 당시 부장인지라 내가 설교를 담당했다. 당시 주간설교록- 백 목사님의 생전시에 매주 큰글자로 수 면 분량으로 발행하여 각 교회에 배포하였음- 을 가지고 윗 글에서 제안한 방식대로 설교전 에 수회 읽고 강단에 올라 그대로 낭독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
: 당시는 지금보다 믿음이 못해 말씀을 많이 깨닫지 못하고 앵무새 흉내내는 식으로 또 어설프게 읽었어도 설교가 은혜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어린 학생들 보다 오히려 반사들이 더 은혜를 받는 것 같았다. 교회 출석 시기가 얼마 되지 않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 연령이 많은데도 한의대 입시 준비를 늦게서야 하고 있는 분- 그 분은 장년 예배 시간(10시 반) 보다 일찍이 교회에 미리 와서 4층 중간반 예배(9시 시작)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중간반 반사도 아닌데 중간반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본즉 10시 반 주일오전 예배 보다 내 설교가 더 은혜가 되어 학생들은 안 가르치지만 중간반 예배에 참석한다고 하였다.
:
: 이로써 당시, 나는 백 목사님의 설교록을 그대로 읽는 방식- 토씨 하나도, 교역자 비판 하는 내용 같은 것들 까지 그대로 따라 읽으라는 것은 아니고 또 자신의 지식으로 인정 못 하는 것은 생략해도 좋다 - 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증함으로써 이런 설교 방식이 우리 공회에서는 이상적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설교를 하면 은혜를 받게 되는 가를 연구해 보았지만 결론은 백 목사님의 설교에는 내재적 영감이 있어서 누구든지 원문 그대로 설교할 때에 그 내재된 영감이 발동한다고 하는데에 그 원인을 찾는 것 외에는 달리 다른데에 귀착됨을 발견할 수 없었다.
:
: 이런 식으로 중간반 설교를 하다가 청량리 교회가 교역자의 이동 문제로 분란에 휩싸이면서 부장을 사임하였더니 그 한의대 입시 준비생이 나에게 왜 그렇게 은혜있게 설교를 하면서 또 내 설교를 들으려고- 당시 그분은 10시반 대예배 보다 중간반 설교가 더 은혜가 있다고 평했는데- 미리 와서 중간반 예배에 참석했는데 너무 서운하다고 하면서 내개 말을 한 적이 있다.
:
: 이는 앵커 방식의 설교가 효능이 탁월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중한 한 예에 속한다. 당시 주일 오전이나 오후 대예배 설교자는 지금의 서 목사님이 하는 방식대로, 실은 서 목사님 보다 더 완화해서 우리 공회의 고유의 설교를 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립적 설교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중간반 설교가 더 인기를 끌었다고 나는 평가 했다.
:
: 요컨대, 우리 진영에서는 바람직한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독립적 설교가 아니라 백 목사님이 설교에 대한 종속적 설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은혜받고 잘 하는 설교인가? 이는 궁극적 물음이다. 이에 대한 답은, 원칙은 설교자의 깨달음 대로, 어디에도 종속되지 아니하고 자유롭고 하는 설교이다. 그러나 자신의 깨달음보다 더 나은 지식이 있을 경우라면 보다 못한 자신의 지식을 버리고 더 나은 깨달음을 차용하고 또 거기에 종속되고자 하는 것이 양심적 일 것이고, 정평 정가의 행위일 것이다.
:
: 무조건 맹종주의는 아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보다 자신의 설교를 할 때에 은혜를 더 받는 다면 자신의 것을 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독립적이 되지 말고 종속적이 되라는 말이다. 세상 학문도 제자가 스승보다 못할 때는 스승의 것에 종속되다가 스승의 것을 능가할 때는 종속을 버리고 독립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 순리이다. 현 시대에 백 목사님의 설교 보다 더 낫게 하는 설교가 없다고 보는 전제에 기초한다면 종속적이 되어야 함이 필연적이자 양심적 자세일 것이다.
:
: 우리 공회와 일반교회의 설교를 비교 해 보자. 일반 교회의 설교는 은혜 분위기 조성을 위주로 해서 즉흥적 감동을 발흥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쉽게 어필하는 설교이자, 많은 노력으로 가공하고 인조성이 많이 개입하고 한 편의 작품을 시현하는 것 처럼 연출적이며, 청중 부합 일변도이며 인본적인 흐름으로 되어 있는 것이 거의 대개 이다. 어쨌든지 감동적 설교 위주로 설교 잘 한다는 소문으로 장안에서 소문나서 큰 교회가 되려는 소망에 사로 잡혀서 하는 설교가 한국만이 아니라 기독교 본고장에서도 이런 설교가 인기를 끌고 있고, 이런 류가 대세이다.
:
: 우리 공회에서 설교를 백 목사님의 설교에 충실히 종속되지 아니하고 독립적 설교를 할 경우에는 차라리 일반 교회의 설교는 감동이라도 있고 졸음도 안 오고 분위기라도 은혜스런 분위기가 되니 일반 교회의 설교가 더 경쟁력이 있게 된다. 즉, 우리 공회의 설교의 고유성이 희석화 될 때에는 오히려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일반 교계의 설교가 너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약한 체질에 목마름에 갈증을 해소하고 만족감을 주는 것은 우선 달콤하고 시원한 탄산음료가 제격이겠지만 이는 허약 체질을 근원적으로 해결 못하고 곰국이 보다 허약성의 해결에는 제격일 것이다.
:
: 한편, 종속적이 되어도 부족한 것이 있다. 소리가 일단 큰 것이 좋다. 우리 공회의 설교 음성량의 수준은 개별적 경우를 제외 한다면 일반 교회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일반 교계의 음향 시설은 우수하다. 우리 공회 교회들은 볼륨을 크게 할 수 있는데도 약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소리가 크면 설교 집중력도 비례해서 커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음향 볼륨도 낮게 해 놓고 일반 대화 하듯이 설교하는 행태를 보면 답답하다. 일반 교계와 비교 할 때 나는 이런 답답한 경험을 종종한다. 웅변조의 설교가 안 좋은 것이 아니다, 백 목사님도 웅변조의 설교를 상시 하셨다. 너무 얌전히, 고요한 음성으로 조용조용히 하는 설교는 우리 공회 내에서 좋은 것이 아니다. 일반 교회의 설교 방식을 그 외형 까지 추종 못할 것은 아니다. 외형이라고 무시해서 외형 에서도 비교 열위에 놓이면 안 된다.
:
: 서 목사님의 설교를 나는 서부교회 훔에 들어가 종종 듣는다. 누가 이견을 제기해도 우리 공회 설교의 오리지널은 아니다. 차라리 일반교계의 감동성도 없다. 웅변조도 아니다. 물에 물탄듯 하다. 내가 앞으로 기회가 주어 진다면 앵커 방식의 설교를 질문자의 요청대로 시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 이런 낭독 방식의 설교가 내가 처음으로 제안 한 것도 아니고 이미 우리 공회에서는 이런 방식의 설교를 백 목사님의 생전에는 늘상 해 왔다. 요즈음은 이런 공회 전통적 설교 방식을 많이 탈피 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이런 앵커 식의 설교를 아집적 견해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전에는 우리 공회의 설교 패턴이 모두 이런 방식- 즉, 재독 방식(:앵커 방식이라는 표현은 실은 좋은 표현은 아님)이었는데 오늘날은 이런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견해 처럼 들린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
:
:













쓰기 공회내부 문답 초기목록
어린 신앙에 혼란을 주는 글은 '공회 회의장'을 이용해 주십시오.
내용이 애매하거나 글의 진행이 적절치 않으면 관리자가 이동하겠습니다.
(1) 게시판 검색
분류별
자료보기
상담 비판 노선 갈등 인물 교회 서부 기타
부산공회 (부산공회1, 부산공회2, 부산공회3, 부산공회4) 대구공회 서울공회
번호제목이름파일날짜
  • 2530
    진짜 서부인
    2011-09-16
  • 2529
    소자
    2011-09-16
  • 2528
    교역자
    2011-09-17
  • 2527
    비서부교인
    2011-09-19
  • 2526
    산곡의 백합
    2011-09-18
  • 2525
    서부
    2011-09-18
  • 2524
    산곡의 백합
    2011-09-18
  • 열람중
    서부
    2011-09-18
  • 2522
    산곡의 백합
    2011-09-19
  • 2521
    사회인
    2011-09-20
  • 2520
    신학생
    2011-09-20
  • 2519
    산곡의 백합
    2011-09-18
  • 2518
    교역자
    2011-09-18
  • 2517
    산곡의 백합
    2011-09-18
  • 2516
    yilee
    2011-09-19
  • 2515
    양성
    2011-09-17
  • 2514
    산곡의 백합
    2011-09-18
  • 2513
    양성
    2011-09-18
  • 2512
    산곡의 백합
    2011-09-11
  • 2511
    공회인
    201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