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 양낙흥 교수와 공회의 서영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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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9 00:00
양낙흥교수는 고신에 몸을 담고 있는데 고신의 잘못된 과거와 현재 잘못 가고 있는 것을 양심적으로 비판한다고 논문을 통해 고신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다음 소개하는 글은 고신의 내부인이 정통적 고신 시각으로 양 교수를 비판하면서 양심도 없다 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 되지 않도록 구조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은 좀 부드러워 보이나 내용은 강경일변도입니다.
공회의 서영호 교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사님 생전에 20년 그리고 목사님 사후에 20년을 공회 내부에 몸을 담았습니다. 이 홈의 자료를 가지고 연구해 보면 30년 세월 정도는 공회를 비판했고 10년 정도는 보통 모습으로 산 것 같습니다.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고신은 이 홈이 주장하신 바와 같이 법과 제도가 있어서 구조를 바꾸면 양 교수와 같은 분이 실제 옳든지 그르든지 상관없이 고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고신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회는 법과 제도가 없다 했습니다.
질문입니다.
서영호 교수와 같은 인물을 제재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서 교수의 언행과 신앙이 실제 양 교수의 고신과 같은 상황입니까?
마지막 질문으로 백 목사님이 두고 가셨다 했으니 비록 틀렸을지라도 붙들고 가야 하나요?
다음 글은 고신의 양낙흥 교수에 대한 고신 주류의 정통 시각을 담은 글입니다. 참고해 주시고 비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네거티브 정치 관습은 후대에 거짓선생으로 평가될 위험성이 있다.
저자: 김영수 장로∣고신대 前사무처장
필자는 취미 생활로 오랜 세월 동안 아마추어 사진을 찍었다. 해마다 초봄에는 석대마을 꽃집을 찾아 접사렌즈에 꽃을 담아 셔터를 누른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인간의 모습 천태만상이다. 포커스 중심으로 희로애락을 담아 보면 역시 인간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작품 소재라는 것을 느낀다. 매년 10월 마다 열리는 부산광안리 바닷가 불꽃놀이 축제 때는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릴리즈를 이용하여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실재의 현상 피사체를 다시재생해서 나중에 또 볼 수 있다는 것은 광학이라는 엄청난 과학의 힘이다.
Ⅰ. 서언∣사진작가의 네거티브 작업 기법을 정치에 도용하지 말라.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의 사고나 작가의 일상은 명암을 이용하여 가끔 세상을 거꾸로 뒤 바꾸어 보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 작업 방법을 네거티브 화상 추구라고 말한다.
Negative 란∣ 사진을 찍을 때 물체의 밝은 부분은 어둡게, 어두운 부분은 밝게 뒤바뀌어 재생된 화상(畵像)을 의미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Positive는 필름이나 인화지에 원도와 같이 피사체의 명암이나 색체가 변하지 않고 제대로 재현된 상태나 결과를 추구하는 작업 방법이다.
정치인의 신뢰성∣ 비록 정치적으로는 반대 입장에 있는 자라고 할 찌라도 흩뜨리러짐이 없이 일관된 주장을 하면 나중에는 이념이나 정체성이 합일됨으로써 하나가 되든지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평범한 사람의 사고나 주장, 의견이 원리라는 대 전제를 거슬려 네거티브적인 발상이 지속된다고 하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사진작가는 세상 조명을 바꿔가면서 물체를 거꾸로 뒤 짚기도 하고, 옆으로 눕히기도 한다. 그런 반동을 통해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면서 미래를 디자인 해보고자 하는 실험적 모험 작품을 내놓으면 이를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제 각각의 상상력을 추구하면서 예술은 더욱 발전하는 경향을 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나 정치인이 펴는 정책이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면 백성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요즘 교계의 정치 상황을 보면 마치 자기가 사진작가라도 된 것처럼 ‘현상’이라는 피사체를 자기 방식으로 뒤바꾸어 보려고 시도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아 심히 염려스럽다.
Ⅱ. 양낙흥 교수의 역사관과 고려파 정체성의 상반되는 점
1. 신학교의 교수 임용 과정은 철저한 신학검정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 신학교 교수 임용은 새로운 원칙을 세워야한다. ∣ 우리 신학교의 교수 임용에는 소정의 목회 경험과 신학사상 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학교의 교원은 건학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한다는 특수한 목적에 따라 고용하고 임명한 자다. 그럼에도 교회의 기대를 거슬려 다른 교리를 주장하면 개인의 관점은 우리 교회가 용납할 수가 없게 됨으로 그에 따른 상당한 책임도 수반된다고 보아야 한다. 누구라도 교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국가법이 정한 신분보장은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는 것이 교회법의 우선 적용 원칙이다.
신학사상 검정은 ①학부 ②M. Div. ③Th. M. 또는 석사 ④Th. D. 과정에서 수학한 논문 및 출신학교의 신학사상이 우리교회의 신학과 동일한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위 네 가지 중에서 단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신학교 교수 임용은 불가하다.
단 일반대학 출신자라도 M. Div. 를 우리 신대원에서 수학하고 나머지 Th. M., Th. D. 학위를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대학에서 수학하고 논문을 썼다면 이를 면밀히 점검한 후 그것도 교수정원의 1/3 정도 범위 내에서만 임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엄격한 내부 규정을 세워야 한다. 이런 원칙이 없으면 그 폐해는 신학이 혼란하고 난무해진다.
우리 신대원을 졸업한 신학도들이 외국 유학을 하면서 가장 고민하는 점은 지도교수의 신학을 따르자니 변질된 자로 낙인찍힐 것이 두렵고, 학위를 포기하자니 그럴 수도 없고 하여 엄청난 고민에 빠지다가 결국 신학이 다른 교수가 원하는 대로 논문을 쓰고 일단 학위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후에는 양심의 가책도 무디어져 결국 자기 논문의 당위성을 내세우면서 개혁주의 신학노선으로 직진하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총회는 신학교 교수 임용에 대한 어떤 지침을 마련하여 산하기관에 속히 하달해야 한다. 따라서 교수 임용에 필요한 석. 박사 논문 심사는 국내외의 저명한 학자들에게도 50%(1/2) 이상 심사를 위촉함으로써 처음부터 엄격하게 신학사상을 점검하는 제도적인 기준과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신규교수 임용에 따른 인사는 이사회가 신학사상 평가서를 별도로 제출받아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현재의 교수들도 이런 방식으로 일단 신학사상 검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교수는 총회 신학부 같은데서 특수 관리를 해야한다. 신학교 교수들의 교육철학이 분명하지 못하면 우리교회와 고려파가 무너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전주곡이 천안에서 들려오지 않도록 교회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감시해야 한다.
21세기 우리 고신의 신학은 고신대학과 신대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이 저술한 책과 논문이 고신신학을 대변하게 되며 역사에도 그렇게 남는다. 지금 밖에서 우리 교회의 신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는 가를 들어보면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신학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혈통주의 보존 방법∣ 한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이 아니면 순 혈통 보존이 어렵다. M. Div. 과정만 거치면 다 내 자식인양 착각하고 외국에서 돌아온 제자가 옛 스승을 고리타분하다고 힐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제반 문제는 교단의 신학정책을 수립하는 총회의 책임과 권한 하에 이뤄져야 가능하다.
좋은 종자를 좋은 토양에 심어 뿌리를 잘 내리도록 해야 한다. 뒤늦게 접붙이면 열매가 보기는 좋은데 외래 잡종으로 신토불이만큼 건강에 유익하지 못하다. 자연법칙을 잘 관찰하면서 신학사상을 분석, 연구하고 점검하면서 보존을 위해 신경을 좀 써야 한다.
2. 의식화는 정체성과 대립 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니체 식의 사고는 ‘자신의 철학을 가지지 말라.’는 것으로 굳어진 태도와 의견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을 획일화하기 때문에, 때때로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생활의 본질을 명료하게 하라는 것인데, 요즘 이런 의식화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변화하는 일상생활의 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나 한 민족이 갖는 역사관이나 정체성까지도 니체 식의 사고로 접근하게 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무너진다.
니힐리즘은 ‘절대가치나 진리 따위는 없다.’ 는 사상인데, 이를 접목, 변형하게 되면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다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어떤 사고를 가졌다 해도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비약될 수 있다.
지금 미주나 구라파에서 밀려오는 자유주의 신학 물결이 우리 신학교에까지 들어온 것 같지는 아니하나, 교수들의 학술 전반을 항상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는 우려스런 분위기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어떤 형식이든 천안은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침묵을 깨고 교수들의 정립된 분명한 역사관을 천명해야 우리교회가 안심할 수 있다.
신학교 강단에서 ‘여러분은 개혁주의 교회 건설의 역군입니다.’라는 외침이 왜 사라졌는가? ∣ 1946년 발표된 고려신학교 설립 취지문에는 분명히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위해 고려신학교를 설립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예전에는 신학교 강단에서 ‘개혁주의 라든가, 고려파의 정체성과 신앙의 순결’ 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 이념과 정체성이 약화된 교육현장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원래 우리교회의 신학과 목회 사역은 인간구원을 목표로 했는데, 이제 사회구원을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경북지방 모 노회에 제출된 목사고시 논문 내용이 인간의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회개혁과 사회구원론에 맞춰 작성한 논문이 대부분이었다 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따지지 아니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우리는 2,3세대들의 사고가 다반사로 변화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양낙흥 교수 구제를 위한 제안∣ 양낙흥 교수는 지금 다시 총회 앞으로 새로 작성된 회신을 보내야 한다.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장로교 전래 史⌋ 저서로 말미암아 심려를 끼친 점에 깊은 유감을 표하면서 논문을 다시 수정정리하겠다는 정도로만 한다면 고신 인으로써 함께 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양낙흥 교수 본인은 해명서에서 ‘본인이 진정으로 고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는데, 정말 그렇다면 변화된 새로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3. 양 교수의 저서 평가 방법과 인사처리 문제
① 내용을 분석하고 오류를 지적하는 방법
저술 평가 방법에 대한 소견∣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신대학이나 신대원 교수 및 고려신학교 출신자 중 외부 역사신학 교수에게 저서를 분석하도록 위촉하는 방안을 채택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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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은 총회장 앞으로 보낸 공개 해명서에서 진심으로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발간하였으며, 조금도 수정할 의향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총회를 맞서 조치사항을 단호히 거부했다.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고집을 부렸다.
관련 저서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면 각 부분마다 발췌해서 조목조목 반론을 하고, 노골적인 거친 어투 나 비아냥거리는 용어들이나 가설 등을 진실 인 냥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새로운 기술 내용을 내놓았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아마 총회는 개전 의사가 없음을 인지하고 폐기를 선택한 것 같다.
인문학에서는 가설(假說)이나 저자 개인의 생각과 판단으로 내린 결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신사참배 강요라는 엄청난 시련에 부딪쳤지만 제1계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이를 극복한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든 반면,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는 일제의 유혹에 타협하고 넘어갔다.
양 교수의⌈한국장로교 전래 史⌋저서는 신사참배를 수용한 절대 다수와 그 후손들이 새로 써 가는 민경배 등의 조작된 역사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우리 눈에 보였다는 점이다.
② 양 교수 처리 문제를 두고 동조자들과도 협의했어야 한다는 주장
혹 양낙흥 교수의 측근들이나 일부 동조자들은 양 교수 처리 방법 문제를 심도 있게 협의를 하면서 저자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돌이키기 위해 조력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했어야 한다고 주장 하지만, 그를 아끼는 가까이 있는 분들이 올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도 상당히 있다고 봐야 한다.
양 교수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모 원로 목사가 언론에 제기한 말씀은 이원론적 이중 잣대로서 이율배반적인 논리였다. 따라서 주변에 있는 분들의 언행이 오늘과 같은 상황이 오게끔 유도하고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교회의 이번 결정은 이제 더 이상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단호한 판단인 것 같다. 아마 우리 총회는 정체성을 존중하고 선진들이 남긴 우리 역사관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총회운영위 결정을 그대로 받았다.
이 문제는 교회 지도자의 언행이나 학자의 입놀림은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신학을 강의하는 교수라는 점에서 총회가 결단을 내린 것 같다.
대학의 고민∣ 장기적으로 양 교수의 신분은 신대원에서 대학 소속 교원으로 인사 발령이 곧 날 것으로 보인다. 아마 고신 정체성을 지키고 사수하는데 있어서 철두철미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대학 교수들이 양 교수의 학부 강의 배정을 두고 상당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갓 시작하는 신학도들의 사고를 혼잡스럽게 만드는 이단(heresy,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고립되어 있는 사람)자의 ‘왜곡된 학설’을 옥토에 뿌리려고 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가 주목된다.
③ 장로교 분열은 신사참배가 주원인데 우리는 그 피해자다.
대부분 교파들은 한국교회사에서 한국교회의 분열 원인을 첫째. 출옥 성도와 신사참배자들 사이의 갈등. 둘째. 1946년 9월 20일 고려신학교 개교. 셋째. 1950년 고려파 장로교회 설립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2010년 서성복 이규탁 공저, 목사고시 문제집)
소명 의식을 가지고 교수 사역을 잘 감당했어야 하는데 ∣ 만일 양 교수 자신이 우리 선진들의 순교신앙을 이어가고자하는 학자였다면, 출옥성도들과 신사참배자들 사이에서 발생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는 점을 정확히 기술하고 부각시켰을 것이다. 또한 고려신학교가 설립된 배경을 중점적으로 다뤄 긍정적으로 기술하면서 고려신학교에서 교수로 사역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신사참배를 수용한 교권 중심의 총회에서 쫓겨난 한상동 주남선 목사 등이 1950년 고려파 장로교회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소상히 밝히고 이를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다.
양 교수는 교단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중차대한 신학교의 교수에게 부여한 시대적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영적 부모를 실망시키고 많은 형제들의 마음을 쓸어내리는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잘 판단하고 우리 교회와 함께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면 한다.
Ⅱ. 헌법은 우리교회를 유지, 관리하는 규범임을 재확인한 총회였다.
이번 총회는 헌법은 우리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그동안 많은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총회유지재단 가입 여부와 결부시켜 불이익을 주던 부작용을 일단락 지었다.
다행히도 금번 총회는 지난번 결의는 위헌이라는 점에 유념하고, 전국 교회의 열화와 같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헌법이 성경 다음 최상위의 법임을 공표하는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이 안건을 또 본회의에서 처리하지 않고 위원회에 맡겼다면 1년 연구하자는 안을 통과시켜 또 유보하거나 미루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자매 교단인 화란 개혁파 제31조파 교회 헌법이 말해 주듯 ‘다수회가 결의한 것은 헌법이나 하나님 말씀에 위배 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는 로마 가톨릭의 교권에 맞서 종교개혁을 단행한 개혁자들의 기본 정신을 따랐다는 점에서 자랑스럽다.
거짓 선생의 오명을 벗자 ∣ 우리 개신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구주되심을 부정하거나, 참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도록 가르치면 거짓선생(false teacher)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헌법과 같은 규범의 원리 규명에 있어서도 엉뚱한 주장을 펴면 거짓선생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어느 철학자가 ‘정치인의 최종 목표는 자기중심 的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false teacher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박윤선의 참 제자∣ 고려신학교 교장 박윤선 박사의 주석을 읽어보면 딱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인본주의 배격과 신본주의 지향이 그것이다. 원리를 올바로 규명하지 아니하고 이권이나 사사로움에 얽매여 계속 원리를 바꿔가면서 꿍꿍이 정치를 하게 되면 오랜 관습에 젖어 계속 인본주의적인 발상을 하게마련이다. 그런 분은 후대에 정치 술이 뛰어난 사람으로 분류된다. 박윤선 박사의 제자들이 생존하고 있는 지금, 하나가 되는 모종의 결실을 거두었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Ⅲ. 한기총과 같은 연합체는 필요하지만 점진적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 같다.
필자는 코닷 기사를 통해 우리 총회에서 한기총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가를 소상히 알게 되었다. 언론의 가감 없는 기사를 통해 듣고 보니 한편 참 생각할 점이 많고 여러모로 느끼는 바도 있었다. 듣기로는 한기총에는 은퇴하신 분들이 자리를 잡고 직책을 놓지 않으려고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한기총의 역할과 이미지를 쇠신 하려면 혁신된 운영 방법을 도입해야 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제61회 총회에서 논의되는 이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내심으로는 안쓰러워했다. 우리 총회는 한기총 문제를 심도 있고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단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냥 끝내버린 것 같아보였다.
질문자가 먼저 ‘각종 루머를 듣고 금품 수수가 의심되니, 양심 고백을 해 달라.’ 고 요청하셨다. 이때 한분의 답변자는 울먹이면서 ‘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한 푼도 안 받았음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애석해 보였다. 흥분된 항의 식 답변은 공감대 형상에 오히려 실패했다고 보여 진다.
답변자는 침착하게 정중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우리는 총회에서 일어난 내용들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합당한 답변인가를 두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그런 답변은 의혹을 해소하기보단 일종의 쇼로 보인다는 견해도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심정을 이해해 줘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여하튼 책망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야고보서 5:12)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고 한 말씀에 근거해서 정중히 그리고 간단하게 한마디만 답변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했다면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더욱 많은 신뢰와 공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인데 그것이 아쉬웠다. 한기총이 정상화된 이후 몇 일전 1차 회의에서 새 집행부 구성을 논의했으나 감투 배정 문제로 실패로 끝났다. 그때도 누가 5인 위원으로 어떤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지 교계는 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교계 언론은 전임 이모 한기총 회장이 시무하는 교회당에서 ‘양심고백’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어서 여러 명의 관계자들이 괴로워하면서 양심고백을 했다. 그리고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더니, 관련 교단 서울 어느 노회는 교단총회 불참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후 주물 럭 정치력이 발휘되어 사건의 전말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감투싸움에서 벌어진 조그만 부작용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관중들은 재미있는 한편의 드라마를 잘 감상했다는 분위기다.
근간 모 중앙언론이 특정 교회의 진상을 파 해치고 기독교 탄압 차원으로까지 비쳐지는 상황에서 한기총 문제는 이제 접어두고 변화된 점진적 개선을 도모하자는 쪽으로 여론이 집약되는 것 같기도 하다.
끝맺음
총회 발언록 발간∣ 우리 총회가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총회 발언 기록물을 별도로 남겨야 한다. 이제 앞으로는 총회에서 일어나는 논쟁이나 발언자들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담아 수록하는 별도 부록을 녹취록에 근거하여 발간하도록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총회는 더욱 진지해 지고, 총대들은 역사성을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발언함으로써 소위 ‘정치 발언’이 꾸준히 증가될 공산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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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김영수
[2011-10-07]
다음 글을 읽어보면 양낙흥 교수의 역사관과 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양 교수는 총회의 통지문을 받고서 자성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면 기회가 있었는데 참 아쉽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회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일이 있을 때마다 두 번씩이나 도피성 해외 연구(미국, 호주) 를 보낸 신대원 당국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1. 환원문제
환원에 대한 양 교수의 준거 논리는 사료적 가치가 없는 일개 정치꾼의 비난성 발언에 근거하였다.
당시 합동측 정치꾼 정규오 목사가 한상동 목사님을 비난하기 위해 지어낸 말 ‘한상동 목사의 조카 교수임용 탈락 때문에 환원했다.’는 고의적인 비난을 근거로 ⌈한국장로교 전래 史⌋를 서술함으로써 양 교수는 역사를 왜곡했다. 그런 것을 사료적 가치 기준으로 삼고 우리 선진들을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어느 도단이다.
2. 양 교수는 전에도 ‘한상동은 분리주의자인가?’라는 소논문을 발표했다.
양낙흥은 2011년 9월 6일자 해명서에서 ‘나는 분리주의자라고 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5~6년 전에도 신대원 교수회에서 ‘한상동은 분리주의자 인가?.’ 라는 소논문을 배부했다가 당시 부산노회 등 전국적으로 이를 공박하는 분위기가 벌떼같이 일어나자 아직 완성품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그의 ‘치고 빠지는 전략 구사’는 이미 전문가 급이다.
3. WCC에 대한 양 교수 입장은 ‘일단 들어가서 개혁하자.’는 논리다.
나는 언론 보도를 통해 양 교수가 외부에서 WCC 관련 강의를 하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이 소문을 듣고 전년도 윤현주 총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총회장님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고 항의를 했더니, 그 때 총회장님은 교인들과 식사하는 중이라고 하셔서 전화를 끊었다.
1) WCC에 대한 양 교수 입장은 우리 교회와는 정 반대 입장이다.
WCC의 비성경적 활동이 고귀한 역사적 기독교신앙을 파괴하고 있는데, 양 교수는 ‘일단 가입해서 개혁 합시다’라고 주장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2) WCC의 정체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종교다원주의, 인종차별 투쟁사업, 여성안수 등을 주장하며 동성애 교회들이 주를 이룬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타락한 기독교 단체임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1954년 WCC 에반스톤 총회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참석을 금했다.
3) 현재 WCC에 가입한 교회들은
WCC 회원교회는 동방정교회, 성공회, 동양정교회, 루터교회세계연맹, 개혁교회세계연맹, 감리교회, 침례교회, 연합교회(독립 교회들의 연합)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통합, 기장, 기감, 순복음(기하성)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오순절성결교회, 기성, 예성 등이 현재 가입되어 있다. 근간에는 로마가톨릭과도 교회연합과 일치 문제를 서로 논의하고 있다.
4. 학자의 양심의 산물로서의 연구 결과라는 주장은 허구다.
왜 양 교수는 저서의 주제(책 이름)를 그냥 [한국 장로교회사]라고 하지 않고 부제를 달아 [한국장로교회사 : 형성과 분열과정, 화해와 일치의 모색]이라고 했을까?
아마 좀 색다르게 주장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를 직감할 수 있다. 이번에는 마음먹고 고신의 정체성에 손을 좀 보고, 분열의 중심이라고 규정하고 싶어 하는 삐뚤어진 저자의 저술 의도가 처음부터 분명히 있었다.
부제를 보면 미리 그물을 쳐 놓고 몰아넣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짜깁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양 교수의 저서를 근거로 '왜곡된 가라지 학설'도 일단 인용하게 됨으로 ‘새로운 학설 창시자’ 격으로 일약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