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는 오늘, 갑절의 영감은 소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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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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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1 00:00
1. 직무와 영감
이 노선에 초보라도 안다면 당연히 직무가 아니라 믿음을, 일의 계대가 아니라 영감에 붙들려 나가는 순종의 매 현실이 우리의 전부며 이 노선이 추구하는 바라고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 아는 것은 상식입니다. 발간사는 설교록의 깊이와 가치를 아는 분들을 상대로 적었기 때문에 우리가 상식적으로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소리가 되고 중언부언이 될 것 같아서 접어 두고 간단히 핵심만 설명했습니다.
설교록 내용은 이 시대를 향해 반드시 전해 져야 할 내용이라는 것이 답변자에게 임했던 영감입니다. 지금도 이 영감은 변치 않습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 생전에 그 분의 뜻이 그러했고 그 분의 지시로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전체가 도울 때와 비교하면 1997년 상황은 영감의 갑절이 아니라 열곱은 받아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영감'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기 두려워 대외 설명을 할 때는 실무적으로만 표현하는 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표현은 하늘에서 내려 온 특수 언어가 아니라 당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생활 언어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려 온 특수 언어라 할 수 있는 영감은 그 보편적 표현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이 것이 공회 노선입니다. 설교록 표현도 신학자의 특수 표현보다는 일상 생활에 평범하게 사용하는 어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무'라고 한 것은 외부 표현입니다. 그 내용은 '영감에 붙들려'라는 뜻입니다.
2. 주님의 일은 감화적
주님의 일을 감화적으로 한다는 것은 총론적 소망적 목표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채찍을 든 것은 장사꾼들에게는 폭력 강압이었으나 그 주님이 채찍을 들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 감화적입니다. 많지는 않으나 가끔 '감화적'인 행동은 사연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폭력 강압 투쟁적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성전에서 그 당시 주님이 감화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채찍이 아니라 바로 유황 불구덩이를 만들어야 했을 상황입니다. 그러나 감화적 원칙 때문에 유황 불구덩이에 비하면 '채찍'이라는 엄청 난 감화적 조처로 대신한 것입니다.
이 홈의 지난 30 년, 가깝게는 지난 14 년을 되 돌아 본다면 성전의 채찍과 같이 험하게 보이는 시기는 정말 잠깐이었습니다. 그 것도 이 홈은 채찍조차 들 수가 없어 상대가 치는 채찍을 그대로 다 맞고만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7 마디를 감화가 떠난 인간적 직무의 거친 숨소리였다고 해 버린다면 너무 가혹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신앙의 이론에만 살 때가 은혜스러웠습니다.
신앙의 현장에만 구원의 건설이 있습니다.
신앙 현장을 떠난 신앙의 이론, 그들이 공회를 오늘 이 모양으로 만든 후원자들입니다.
영감에 붙들리기를 진정 소원했고 그 영감에 진정 붙들리게 되면 그 영감에 붙들려 실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주변 때문에 한 번씩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발간사를 읽고도 반대로 말씀하시는 것을 봐서 당시를 잘 모르시거나 당시에 이 홈의 반대 쪽의 입장만 충분히 들었던 분이라고 생각 됩니다. 이 홈을 최근 방문하는 분들이 오해할까 봐서 몇 말씀을 더 올렸습니다. 일단 지적하신 내용은 답변자 양심 깊은 곳에 보내어 자책할 것이 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자책이 전부는 아니나 그래도 어렵게 글을 적어 주셨으므로 이 홈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 일꾼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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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무라는 말이 맞겠지요.
: 백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지요.
: 유리하면 세상 것을 붙이지요.
: 주님의 일은 감화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 일 계대 보다 순교의 종에게 임하신 영감의 갑절 계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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