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과 주관, 단체와 개인, 공론과 사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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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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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00:00
1. 역사적으로
거창 지방 교인들은 해방 때부터 백태영 백영익 목사님은 부산 목사님과 신앙의 내면도 노선도 안팎도 아주 다르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서면서 서부교회 핵심 직원들도 잠실동은 공회가 아니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동생 목사님들을 데리고 출발할 때 모르는 이들은 외로우니 형제라도 챙겨서 시작한다고 봤고, 내부 핵심들은 목사님을 향해 결국은 나뉠 것인데 먼저 내 보내지 않고 끝까지 사람을 만들어 보려 하시나 결국 헛수고 하실 것으로 보았습니다.
본질과 향방 그리고 상황을 깊이 보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고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무리 속에 들어 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만사를 그 겉을 보면서 그 속을 함께 읽고 매사를 대할 때 그 속에 본질과 향방을 세세히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2. 서울공회 집회
북한산 임마누엘 기도원 집회가 개최 된 것은 부산 목사님의 거창과 대구 집회를 대신 맡으려 하다가 실패하자 서울지방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인기몰이를 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백 목사님은 참으로 탄식을 했었고 측근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장에 몰려 가서 흠씬 두들겨 놓아야 한다고 발을 굴렸으나 그 분의 그릇과 시야는 넓었고 측근들은 철 없이 의분만 있었습니다.
잠실동의 성공은 백 목사님과 총공회 이름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잠실동에서는 서부교회는 지교회 교인으로 성공했고 잠실동은 강남 벌판에서 맨 손으로 성공했다는 소리를 흘리는 정도였습니다. 부산의 측근들은 패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교역자들과 지교회 교인들은 백태영 목사님을 거의 부산 목사님 측근으로 후계자로 공회의 2인자로 보고 따랐습니다. 이 인식이 백 목사님 사후 백태영 목사님의 공회 장악 과정에서 대규모 충돌로 드러 납니다. 태영 목사님은 자기 말 한 마디면 전국의 교역자와 교인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봤고 서부교회 젊은 조사들은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백태영, 그 이름은 그들에게 발에 먼지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일화가 있으나 그 동안 세월을 보냈고 곧 당시 기록들이 /일지요약/ 게시판에 제공 될 것 같습니다.
잠실동 개척의 자신감 때문에 잠실동은 독자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고 서울지방에서 집회를 하면 수도권 몰이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부산 목사님께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사석에서 탄식을 하면서도 '해 봐야 알지 말로만 하면 튀니까'라고 하시면서 허락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해 봤자 될 리가 없다 단정을 했습니다. 우리는 옆에서 들었고, 그래서 서울공회 집회 소식을 챙겼습니다. 그 집회는 저절로 없어 졌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것과 사람에게로 난 것의 차이였습니다.
3. 오해 대신 이해를 요청합니다.
이 홈은 기초 사실이 바뀌기 전에는 어떤 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최소한 24년 동안 바뀐 입장이 없습니다. 부공1조차 몇 번을 바뀌었는지 그 분들 스스로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하물며 다른 공회들이겠습니까? 이 홈은 판단이 잘못 되었음을 알면, 초기화면에 대문짝만하게 공개 사과를 하고 상대방이 민망할 이상으로 조처를 하는 편입니다.
백 목사님 돌아 가신 직후 6 개 월만에 잠실동으로부터 조사직과 양성원교수직을 바로 제명 당했습니다. 잠실동의 길과 이 곳의 길은 백 목사님 생전부터, 그 때 교역자회에서도 사사건건 맞섰습니다. 1980년 이래로 단 한 번도 잠실동을 인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회개를 하면 몰라도.
여기까지가 이 홈의 주관이며 사견이며 개인적인 입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객관과 단체와 공론이라는 것도 함께 주셨습니다.
서영호 목사님이 무엇을 아느냐! 그 분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것이 이 홈이며 총공회 본류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타 교단에서는 그 반대이고 공회 내에서도 부공2나 대구공회의 입장은 역시 타 교단과 같은 입장입니다. 이 홈은 곳곳에서 총공회 내부의 입장과 주장을 한정 없이 쏟아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식' 게시판 한 곳에서는 총공회의 과거든 총공회의 현재든 어떤 면으로든지 총공회에 관련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소식이 일반이 알 만큼 공론화 되었다면 그 소식을 그대로 전하는 곳입니다.
4. 전체 공회 소식이 객관적으로 필요한 이유
1989년 9월, 백 목사님 사후 첫 교역자회의를 좀 어지럽게 만들고 나니까 그제서야 백태영 목사님 측에서 쉽게 끝날 일이 아니라고 느껴 대화를 일시 제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3 갈래로 대화가 진행 되었으나 내용은 동일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과 그 쪽이 개선을 하자는 것이 현재 정반대인데, 백 목사님 생전에는 불리하니까 엎드러 숨어 있다가 이제 와서 전면적으로 다 고치자는 것은 비겁하고 비이성적인데 현재 모든 면에서 교세를 가졌다고 생각하여 몰아 붙이는데 훗날 돌아 보면 후회할 일밖에 남지 않을 것이고, 교세로 누르면 눌리는 이들도 있으나 눌리지 않는 쪽도 있으니 그렇게 하지 말고
바꾸고 싶은 곳은 원도 한도 없이 바꾸시고, 바꾸기 싫은 쪽은 과거를 철저히 지켜 가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쪽이 바로 되고 잘 되며 어느 쪽이 착각이며 문제인지 알 수 있고
서로 싸우지 않고 각자 가는 길을 가다 보면 서로가 좋은 쪽으로 옮기고 배끼기 좋을 것인데
지금 교권으로 몰아 치면 성공도 할 수가 없고 훗날 좋은 쪽으로 가고 싶어도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참으로 누누히 설명했습니다.
이 홈의 소식 게시판에
잠실동이 교계가 환호하는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데 이 소식을 이 홈의 운영자의 의견을 조금도 더하고 뺄 것 없이 그대로 전하는 이유는, 그 소식을 보면서 잠실동의 실체가 부러운 교회들은 그렇게 가야 할 것이고 그 소식을 보며 슬픈 사람들은 슬플 것입니다. 설명 없이 화려하게 보이는 그 소식에 부러운 마음으로 영향을 받는 분들은 잠실동에 가야 할 교인들입니다. 그 분들에게 잠실동을 앙모하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 홈의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잠실동 체질인 사람을 그 반대 쪽에 붙들어 놓고 잠실동의 성공을 숨겨 놓아 봐야 어느 날 알게 되면 가게 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많은 상처가 남습니다. 동시에 그런 소식들을 자꾸 접하면서 그렇게까지 탈선할 줄 몰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반대 쪽에 계실지라도 알고 계셔야 제대로 계시지 그렇지 않고 그런 소식을 몰라서 그 반대 쪽에 있게 되면 어느 날 영향을 받게 되면 피차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잠실동의 성공이 신앙의 성공인 줄 알면, 원하는 그 곳을 소개하여 다 몰려 가도록 하는 것이 이 홈의 운영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 것이 잠실동이 망해도 일찍 망해야 돌아 올 사람이라도 일찍 경험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또 잠실동이 승승장구하고 그 반대 쪽은 잠실동의 성공을 본 받아 가야 한다고 깨달아 진다면 그 반대 쪽이 회개를 해도 빨리 해야 서로 좋을 것입니다.
설교록에 다 있는 내용이고, 평소 백 목사님의 교회와 공회 운영의 기본 성향이 그렇습니다. 백합화께서 어떤 심정인지는 잘 압니다만 이제 설명 드린 이런 내용을 한 번 더 감안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북한산 집회는 서울에 계신 공회인이 정말 공회인이며 백 목사님의 5월과 8월의 집회를 제대로 참석하고 배웠다면 가지 말았어야 할 장소였습니다. 지금 이 곳에서 잠실동의 교계 활동을 소개하는 이 소식이 잠실동의 노선에 극단적인 혐오감을 심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고, 잠실동과 화해를 하려고 잠실동에 신호를 주는 것으로 보실 분도 계실 것이나 이 홈은 두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희 내심은 너희는 변질이 되었고 소돔 고모라로 달려 가고 있으니 회개해라 이런 입장이고
저희 표현은 이 홈은 그 품이 얼마나 넉넉한지 이 홈의 극단적 반대측 소식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굳이 답변자로 하여금 공개를 하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나 한 사람의 의혹을 씻기 위해 수 없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해도 이렇게 공석에서 질문하면 큰 손해를 봐도 또 설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서영호 목사님에 대한 극찬 몇 마디가 들어서 1990년 11월 시무투표 이후 후임 청빙 때 김효순 구역의 구호가 되었습니다. '설교록에 봐라, 미국 10 년 유학에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오늘도 그분들이 그 말을 하시련가? 백 목사님은 서 목사님을 공회의 눈썹이라 했습니다. 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시킬 일도 하나도 없는데 눈썹이 없으면 용모가 남 보기에 나환자처럼 보인다, 서 목사님의 학위가 공회의 눈썹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눈썹에 보게 하고 듣게 하고 지시를 하게 하고 공회와 서부교회와 청량리 교회의 지도자를 삼아 놓았으니 이는 눈이 고장 난 소경이 아니라 애당초 눈이 없었던 눈썹이 눈 노릇을 하니 공회와 서부교회의 오늘이 이 모양입니다.
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이 소신 있게 발언하는 이 홈을 향해 소신 있게 발언을 하게 하는 것은 최소화 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할 듯합니다. 어떤 때는 부공2 교인이 이 홈을 이용하여 부공1을 치도록 자극을 한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하고라도 할 말은 하고 있습니다. 백합화께서는 그런 의도는 없고 순수하신 분이어서 이 발언의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입장을 전합니다. 양해를 구할 뿐입니다.
>> 산곡백합화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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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광진 목사님이 교계의 무슨 장(長)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은 좀 올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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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동 교회의 대지와 웅장한 고딕식 건물은 누가 출연하여 지어졌던가. 지금의 잠실동 교회의 모습은 어디서 왔는가. 가정해 본다. 공회 교인들이 잠실동교회를 다닐 적에 내었던 연보를 지금 모두 환수하는 일이 생긴다면 지금의 잠실동 교회의 터와 예배당 건물은 지금대로 존립할 수 있겠는가. 아마 상가 건물의 한 칸인 20여평의 임차건물로 쪼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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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동교회는 사직동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와서 당시 사직동 교회로부터 나온 교인들의 연보와 전국에서 상경하여 잠실동 교회를 다닌 공회 교인들의 연보로 이루어진 교회인 것이 그 발원의 역사이다. 예전에는 잠실동교회는 서울 지역의 대표적 공회 교회이라서 전국에서 상경한 공회인들이 모두 모여서 이룬 교회로서 이 들의 연보로 당시 주택 몇 채만 덩그렇게 있던 공지에 웅장한 예배당을 세우고, 헌당예배는 백영희 목사님이 상경하여 설교하여 서울 지방 공회 교회들의 교인들과 전국에서 올라온 공회교인들의 참석속에 성황리에 거행되었다. 이 것이 오늘날 잠실동 교회가 존재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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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잠실동 교회는 이런 교회 창립의 역사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일반 교계 같으면 소속 교단을 배반하고 탈퇴하여 독립할 경우에나 소속 노선을 이탈할 경우에는 상부 공회는 담임 교역자를 해당 교단으로부터 배제하거나 독자적 노선을 취하려고 할 때에는 상부 공회에서 그간 소속 교인들이 출연한 재산을 강제로라도 환수하고 어떤 조치를 취하는 율법이나 규제가 대개는 있다. 우리 교단은 이렇지 못하고 개교회주의를 지향하다보니 공회 노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담임 교역자가 맘대로 소속 노선을 배반하여 행동을 취해도 간섭하지 아니하고 담임 교역자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 이것이 바로 교역자가 마음 하나 먹으면 그 마음 가는 대로 교회 하나 쯤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현실이 우리 공회의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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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백영희 목사님의 행정을 독재라고 했던가? 큰 오해이다. 악성을 죽이는데에 강한 어조의 설교나 책망을 두고서 피상적으로 보고서 나온 말이지, 총공회 행정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 우리 공회일 것이다. 내수동교회도 우리 공회가 설립하였으면서도 내어 주었고, 사직동 교회도 송용조 목사님이 달라고 할 때에 반 이상을 뚝 떼어주어서 지금의 양의문 교회를 세우도록 한 것을 보면 우리 공회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행정이다. 비록 불의의 자유일지라도 예배당 건물에 관한 한 그 자유를 행사하도록 지원해주는 관용의 덕을 가진 공회가 바로 우리 공회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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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잠실동 교회를 있게 한 원천이 되었던 재정과 또 잠실동 교회를 떠났던 수 많은 공회 성도들이 수십년간 봉사한 수고들을 되찾으리라는 사정의 발생은 만무하고 또 타당치도 아니하다. 지금의 예배당 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을 때 연보한 재산을 되찾지는 절대로 아니할 것이다.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나의 처가 처녀 시절에 사직동 교회에서 잠실동 교회의 창립에 따라 잠실동 교회로 따라온 이래 수십년간 출연한 돈이 십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등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을 환수할 수는 없다. 대신에 잠실동교회가 우리 총공회를 버리니 그저 잠실동 교회를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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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은 여류하다. 북한산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백 태영 목사님이 까만 넥타이를 매고 서울지방 사경회에서 설교할 시절이 이 밤에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당시, 나는 태영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 북한산 바위를 보면서 각오를 다짐하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그 때의 북한산 구름처럼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얼마 전에 이 홈상에서 잠실동 교회 30주년 기념 예배에서 태영 목사님의 넥타이가 새빨간 색으로 바뀐 것을 보았는데 과연 세월은 여류하다. 그 때는 이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다. 유수 같이 흐르는 세월을 누가 원망하랴, 그저 바라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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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 소식란에서 백광진 목사님의 무슨 교계의 장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이 듣고 싶지 않다. 이런 소식은 이 홈에서 더 이상 올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런 소식은 혹시 이 홈의 정체성에 의심을 불러 일으킬수 있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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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게시판
: 1840번, [외부] 제1회 전국목회자성령컨퍼런스 - 백광진 강사 2012-05-25
: 1842번, 듣고 싶지 않은 소식 산곡백합화 2012-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