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목사님의 시작은 늘 작았습니다.

공회내부 문답      

백 목사님의 시작은 늘 작았습니다.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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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집회는 1957년에 시작 되었고 초기 수 년 동안은 전체 참석 인원이 50여 명이 전부였습니다. 지금 총공회 전체 집회 장소로 마련 된 곳은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장생골입니다. 도평은 백 목사님의 출생지며 고향입니다. 그런데 1957년에 처음 집회를 시작할 때는 도평에서 10마일 북쪽에 있는 삼봉산이라는 곳에서 시작했는데 이 삼봉산이 봉산교회 뒷 산입니다.

참석 교인은 봉산교회 교인과 개명교회 교인이 주를 이루었고 좀 넓혀 말하면 거창지방 중심의 집회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서부교회에서 참석하는 분은 1 명의 동행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 집회가 훗날 총공회의 중심이 되고 한국교회의 기록적 집회가 되며 이 노선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첫 출발을 모두 화려하거 거대하게 시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흐지부지 됩니다. 백 목사님은 그냥 주어 진 환경에서 한 걸음씩 나아 갑니다. 그래서 세미한 음성과 같이 시시하고 허무하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중심과 향방이 하나님께 붙들리고 향하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확연하게 하나님의 인도임이 표시 됩니다.

총공회 집회는 1957년에 몇십 명이 봉산교회 뒷산 속에서 허무하게 출발했으나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몇백 명 정도 되고 1970년대가 되면 몇천 명이 모이고 1980년대가 되면서 1만여 명을 넘기며 1989년 돌아 가시던 시기는 15,000여 명으로 집계가 됩니다. 확실하게 자세한 통계는 별도 자료에 있고 확인에 시간이 걸려서 기억 나는 대로 적었습니다. 전체 설명은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 독자 님이 쓰신 내용 <<
:
: 이 홈의 '백영희 생애'에서
: '75번-집회 모습'에는 '전국 집회는 처음 4-5여명 참석으로 시작했으나'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틀린듯 합니다. '0'이라는 숫자가 한 개 빠진 것이 아닐까요? 적어도 몇백 명은 넘었을 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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