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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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3 00:00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서 백년같이 누리리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세상시를 적어서 죄송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세상지식도 이용해야겠기에 올립니다.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칡을 캐기 위해 산에 가서 땅을 파 보면 칡 줄기가 끝이 없습니다. 땅 밑이 전부 칡 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온갖 나무의 뿌리를 휘감고 있기 때문에 칡의 전체를 다 파내기는 불가능하여 중도에 포기하고 필요한 부분만 캐서 오곤 했습니다. 지상에서 보면 덩굴식물에 불과하지만 그 뿌리에 들어가 보면 칡은 혼자만의 뿌리를 내리지 않고 뒤엉켜 살면서 자신의 영역을 한 없이 넓히고 있습니다.
주교학생때부터 총공회 교회를 다녔습니다. 자라면서 친구따라 일반 교단의 교회도 궁금해서 가 보곤 했습니다. 우연히 출석한 일반교회의 현란한 악기 연주, 화려한 교회 외관, 교회가 떠날 것 같은 통성 기도 소리, 하나님의 말씀인지 세상 말 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교인의 단세포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설교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총공회 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일반 교회의 이런 예배가 제가 배운 교훈에도 맞지 않았고 경건하다기 보다는 산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릴때는 그냥 교회를 다녔다고 할 수 있으며, 청년이 되어서도 목사님의 교훈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어느날부터 서서히 이해가 되면서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철이 없든 때라 교훈의 깊이도 가치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철이 조금 든 지금은 목자의 귀중함도 목자를 읽은 양의 슬픔과 불행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20대 중반이었기에 장례식때 제 옆에서 한 없이 흐느끼는 젊은조사님의 눈물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훌륭한 목사님이 하면 되지 저렇게 울 필요가 있을까?’하는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었습니다. 설교 말씀이 달랐습니다. 가르치는 교훈이 달랐습니다.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양이 배가 부르지 않으면 목자에게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듯이 그렇게 부르 짓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없습니다. 한 없이 추락하는 신앙을 보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하고 복된 날이 주일이고 생명의 옴 싹을 받아야하는 주일인데 배운 교훈과 다른 말씀을 들어면서 고뇌와 번민으로 설교 말씀을 들어야하는 심정은 은혜가 아닌 고통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보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고 또 하나님의 종을 위해 기도해야하는게 교인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제 자신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 동안은 예배시 계속 필기를 했습니다. 지금도 예배시 필요할 경우에는 필기를합니다. 은혜 받지 못 하는 제 자신이 문제가 더 많다고 생각하면서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교회 이동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홈을 통해 재독을 합니다. 하루에 꼭 한 편 이상은 재독을 하면서 성경을 많이 보기위해 노력을 합니다. 재독을 통해서 오는 은혜가 다시 신앙에 소생의 기미를 보이게 하고 생기를 불어넣고 있음을 느낍니다.
신앙에 힘이 조금 있으니까 소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제 주위분의 접한 문제가 저의 문제이기도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소망은 있으나 길이 없으므로 갈 길을 문의해 본 것입니다.
타 교단의 신학교나 신대원에 입학한다고 길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인거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에는 문제가 참으로 심각해집니다. 자기가 안수 받은 교단이나 사역하는 교회를 위해 소속을 이동해야할 경우가 생깁니다. 총공회에서 호적도 파 가고 뿌리도 뽑아가야 합니다.
다 같은 주님의 교회이고 주님의 일인 데 맡은 사명이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배우지를 안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멀어졌지만‘구원론’‘삼분론’을 총공회처럼 가르치는 교회는 없습니다. 간단하게 교훈적으로도‘사랑’에 대해서‘신본과인본‘에 대해서 ’선과악‘에 대해서 악은 인류중심, 민족중심, 국가중심이라도 피조물중심이면 악이라고 가르치는 교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교훈이 있습니다.
이런 고도의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그 보다 낮은 교훈을 배울수도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이건 제 신앙양심입니다. 물론 눈 한 번 딱 감고 양심을 죽이고 고개한 번 돌리면 될 문제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위에 언급한 칡넝굴 처럼 이렇게 얽히고 저렇게 섥히고 사는 것을 ‘잡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총공회 목사님이 이 교훈을 배운분이 외부신학교에서 제일 먼저 이 교훈을 알려야할텐 데 이 교훈을 가르치지 않고 다른 교훈을 가르치로 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이 어려서 신앙 높은분(?)을 이해 못한 좁은 소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룩에 대해서 수 없이 배운 우리들입니다. 구별하고 따져서 옳은 길을 가라고 하나인 참 된 길을 가라고 귀가 닳도록 배운 우리가 구별하지 않고 갈 수 는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뜻이라면 가야하지 않겠는가?
신앙인이 주님의 뜻이라면 사자굴이든 풀무불이든 땅끝 오지든 가야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고난과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도는 주와 복음을 위해 죽음과 고난과 역경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양심을 죽이면서 가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상숭배는 자기중심, 자기위주, 자기욕심이 우상이고 주님 보다 자기 마음에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고 자기를 끌고 가는 것이 있으면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했습니다. 백목사님도 주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목사님도 자기는 힘없고 나이든 사람이고 손 만 대면 쓰러진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손끝도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에게 붙들려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주님이 내치시면 인간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저는 그 분을 통해 교훈을 주신 주님에게, 이 교훈을 알게 해주신 주님에게 한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또 교훈을 가르치고 교훈대로 살다간 ‘은혜의 기관’으로서 목사님을 존경하지 우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답변자 목사님의 글을 읽고 바로 답변을 드려야하는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렵게 방문해서 선의로 충고해주신 공회교역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이 글에 대한 답변 글은 필요 없지 싶습니다.
세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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