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 교회의 분립 - 그 형편과 사정, 그리고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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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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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30 00:00
1. 공회의 특성과 공회 내 분리 개척
- 공회의 집중력과 폐쇄성
공회 교회는 신앙의 성향과 집중력이 너무 특이하여 한 번 붙들리면 소속을 잘 바꾸지 않는 것이 장점인데 이 면이 공회를 향해 들어 오는 외부인들에게는 공회가 폐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바른 신앙을 지키는 노력은 좋은 것이니 뇌와 심장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은 손발처럼 외부 접촉을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폐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인체의 최소 최후 방어 조처입니다.
공회의 주력 교인들은 교회를 그냥 다니는 것이 아니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는 체질이 되다 보니 공회 교회는 전국적으로 타 교단 교회와 비교할 때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도 마치 사생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면이 강합니다. 신앙의 강함 때문에 의외로 너무 쉽게 부서 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생존 투쟁이란 함부로 벌이는 것이 아닌데 신앙의 생존 투쟁을 너무 쉽게 벌이는 것이 공회의 장점에 붙어 다니는 단점입니다.
- 공회의 개척
다른 교단의 교회는 그 교회에서 분리를 할 때 따로 교회를 개척할 만한 숫자가 되면 분립이 추진 되지만 숫자가 너무 적으면 주변 다른 교회로 분산이 됩니다. 그러나 공회 교회 내에는 문제가 생기면 단 몇 명이라도 바로 분립 개척이 추진 됩니다. 공회의 특성입니다. 공회의 신앙 노선이 특별하기 때문에 교회들의 숫자가 적고, 교회 내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교회의 존폐를 걸어야 할 문제라고 확대를 시켜 버리며, 다른 교단으로 가는 것은 어려운 대신에 또 하나의 교회를 주변에 만들게 됩니다.
공회 교회의 개척은 타 교단이 생각할 수 없는 적은 숫자에서도 시도 되며, 타 교단 교회들은 유지할 수 없는 적은 무리라 해도 공회인들은 외롭거나 적게 먹는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 성향이 있어 개척도 쉽고 그 개척이 쉽게 중단 되지 않고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 부근의 개척
모두가 제일 잘 아는 서부교회를 예로 들겠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 년의 세월이 두 번 지나 가고 이제 세 번째를 맞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뉠 때는 모두가 할 말이 많았고 단호했으나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열매가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사과 나무인지 감 나무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서부교회 2층과 4층, 남정교회 성광교회 서정교회로 5 분립 교회들이 모두 걸어서 생활 거리 안에 있습니다.
서부교회의 2층과 4층의 분리를 두고 과연 나눌 일이었습니까? 한 예배당 안에서 20 년 이상을 분리하고 대치할 일이었습니까? 2층도 집회를 갑니다. 재독을 합니다. 4층도 오케스트라를 합니다. 2층도 시무투표를 거부하지만 4층 역시 20 년 넘도록 실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는 있어도 교리나 신앙의 노선은 왜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답변자는 개인적으로 철저히 4층을 존경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2층과 4층의 분리 문제를 두고는 정치 투쟁이지 신앙 노선의 차이에 따른 분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남정교회가 서부교회와 재독 때문에 분리할 때는 남정교인 전부가 분기탱천했으나 지금 다시 답변자와 이 곳에서 당시의 글을 적고 대화하게 된다면 나눌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서정과 남정의 분리, 성광과 남정의 분리도 당시 제일 중심에 서셨던 분들로부터 충분히 내부 입장을 장시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부에서 대화할 문제였지 이혼할 문제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시 주력 교인들은 자녀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기 자녀들이 서부교회와 남정교회, 남정교회와 성광교회, 남정교회와 서정교회의 분리처럼 그런 사유가 있을 때 이혼하겠다고 나선다면 조금 참도록 지도할 것으로 생각하지 바로 두부 자르듯 나뉘라고 화끈하게 밀어 주지 않을 듯합니다.
나뉘는 모든 교회들이 나뉘기는 나뉘지만 나뉘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해서 '신앙의 노선으로 나눌 문제는 아니나 현실적으로 각자의 신앙의 역량이 부족하여 나뉜다'고 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그렇게 생각 했다면 분립을 해도 생활 거리 정도 이상으로 띄울 수 있는 여지가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죽어도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옆에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교회는 항상 내부적으로 두 가지 흐름이 있고 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인체가 살아 있는 이상 병원균과의 투쟁은 그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공회 교회는 신앙의 생명성 문제를 최우선 주력으로 삼기 때문에 이 면으로 늘 민감한 편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사소한 감정 문제이나 어디서나 겪는 생활의 사소한 차이만 생겨도 이런 일을 신앙 노선과 혼동하며 교회를 쉽게 분리하는 경우를 흔하게 봅니다. 나뉘어 따라 모여야 할 문제와 한 자리에서 숙제를 해결하며 나갈 문제를 구별하는 데 있어 공회 교회는 너무 쉽게 오판을 해 왔습니다.
- 공회의 교회 출발은
우리가 다 아다시피 고신에서 쫓아 냈을 때 더 이상 거기에 있을 수가 없어 우리는 공회 이름으로 새로 시작했습니다. 소속 교회가 잘못 되었을 때 새로운 교회가 출발하는 경우는 크게 다음 3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교회 내에 문제가 있을 때 옳은 것을 주장하다가 쫓겨 나면 나올 수 있으나 자기 발로 나오는 것은 안 됩니다. 옳은 것을 주장하다가 쫓겨서 나오는 것이 실제 그렇게 되었다면 쫓아 낸 쪽은 잘못이고 쫓겨 나온 사람의 책임은 없습니다.
*2
만일 자기 발로 나오지 않으면 자기 신앙이 감당할 수 없이 파탄 날 때는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나와서 안 되는데 자기 신앙이 어려서 나오는 것이니 상대방도 잘못이나 견디지 못하고 나온 나도 잘못한 것입니다.
*3
내가 나오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더 큰 문제가 생길까 봐서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으로 피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 이렇게 된 경우라면 1번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대단히 조심할 문제는
그야 말로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또는 나와 봐야 내나 그런 문제를 또 만날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격과 판단의 잘못으로 나오는 경우는 죄 중에서도 보통 큰 죄가 아닙니다. 설교자가 은혜 되지 않아서 나오는 경우는 집에서 자기 부모가 시원찮으면 가출을 해야 하고, 남편이 제 구실을 못하면 이혼을 해야 하는데 과연 자기 자식에게 그렇게 가르칠 부모가 있겠습니까? 가정보다 더 조심해야 할 교회를 두고 모두가 너무 쉽게 쪼개고 나누고 나가고 끝을 내 버린 것이 공회의 분립 역사입니다.
2. 꼭 개척을 해야 한다면
1) 생활 거리 이상을 띄울 때의 장점
- 성경으로 볼 때
최소한 생활 거리 정도는 띄우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성경으로 예를 찾는다면 당연히 아브라함과 롯의 분리와 그 거리를 고려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여건을 다 포기하고도 가나안으로 간 것이 우리가 배운 성경이고 우리가 읽는 성경입니다.
한 예배당 안에서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을 통해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정치거나 오기거나 아니면 하나님 무시일 것입니다. 예배당을 차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개척을 해 봤거나 연보를 크게 해 봤거나 교회의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이익입니다. 그래서 능력도 없고 신앙도 없는 사람으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어 달래도 보고 밀어도 보고 타협도 해 볼 수 있으나 그렇게 하는 세월이 만일 지속 된다면 그 때는 정치거나 오기거나 하나님 무시 중 하나입니다.
- 복음 운동으로 볼 때
같은 공회의 교회라면 서로가 달라서 나뉜다 해도 주변의 타 교단 교회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로가 주변에 전해야 할 책임을 고려한다면 생활 거리를 띄운다는 것은 귀한 복음을 더 멀리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데 유리하고, 또 자기 교회로 데려 올 수 없는 식구가 생활 거리 저 편에 있을 때는 때 저 쪽 교회에 붙여 줄 수가 있습니다. 생활 거리가 떨어 질 때 서로에게 전도의 역할과 책임을 분담할 수도 있습니다.
- 서로를 돌아 볼 때
가까운 생활 거리가 되면, 처음 나뉠 때의 아픔이 평소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계속 되어 필요 이상이거나 예상 범위를 넘어 서게 됩니다. 서로를 냉정하게 돌아 보고 비교하며 고치며 돌아 서거나 반성하거나 서로에게서 배우는 것은 없어 지고, 견제 경쟁으로 상처가 계속 됩니다.
2) 생활 거리 안이 될 때 단점
- 옛 것을 포기해야 하는 손실
문제는 현재 장소를 두고 떠나는 쪽에서는 교회와 생활의 이동으로 인해 많은 불편이 따릅니다. 정든 것도 포기해야 하고, 지난 세월에 연보하여 쌓아 놓은 기존 건물과 모든 것을 다 놓아야 합니다. 그 주변에 뿌려 놓은 전도의 씨앗들과 곧 추수할 분위기에 젖은 많은 알곡들이 손을 떠납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한 번 자리를 잡은 것에서 위치를 옮겨 줘야 생존력과 투쟁력이 자라고 발전력까지 갖추게 되는데 무사안일과 태평스런 환경에서 정작 자기 자신의 밑바닥이 썩고 곪아 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한 번 옮겨 주면 내게 나쁜 것이 끼어 들어 뿌리를 뻗고 있던 것이 일소 됩니다. 우리가 공연히 잘 있는 집을 뜯어 새로 지을 수는 없으나 이왕 이사를 하게 되었다면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 새로운 터를 닦는 고통
전혀 새로운 곳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려면 모든 것이 이중으로 낭비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야곱의 품은 그 품에서 배울 것이 따로 있고 홀로 애굽으로 들어 간 상황은 훗날 요셉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새로운 세계를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간 상황을 두고 '형제에게 처참하게 유배를 당했다'고 해도 되지만 '국비 유학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됩니다.
새로운 현실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되 그 모든 것은 지난 날의 잘못에 전혀 붙들리지 않고 마음 놓고 회개하고 바로 잘 세워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위한 투자며 파종이며 건설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을 듯합니다.
3. 이왕 교회를 새로 시작하려면
과거와 싸움을 통해 과거의 식구 하나를 살려 내는 것도 필요하나 이미 교회가 출발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그런 효과는 이미 넘칠 것입니다. 과거와 싸우면 자신의 내면이 바로 되고 강해 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건물로 말하면 기초도 필요한 만큼 쌓아야지 기초만 쌓다가 건설을 잃어 버리면 이 손해 역시 적지 않습니다.
공회 교회끼리 아주 부근에서 개척하면 기존 교회에 가슴 아픈 분쟁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노선 문제가 될 만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서부교회의 분리 개척에서 노선 문제는 없었습니다. 멀쩡한 초대형 교회 하나만 다섯 조각을 내어 앉은뱅이로 주저 앉혔습니다. 수십 명 교회 하나를 만드는 것도 우리가 다 해 봐서 알지만 하늘의 별 따기라 할 만한데 세계 10대 교회라던 초대형 교회를 지방의 중소 규모 교회로 내려 앉힌 책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일일이 계산해야 합니다.
>> 양성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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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니던 교인들이 다른 곳은 갈 수 없는 것이니 근방 개척을 추진합니다. 오늘 올라온 여수수정교회는 지도로 보니까 5백미터군요. 같은 대구공회인데 동료끼리 너무 한다 싶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개척과 거리를 설명해 주십시오. 고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