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형편을 두루 살펴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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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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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1 00:00
누구나 다 그렇게 느꼈을 듯합니다. 교인들의 말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살핀 것이 시무투표 제도라면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문제를 공회가 고려했을 것으로 믿어 주셨다고 생각하고 설명 드립니다.
1. 공회 시무투표는 민주주의 제도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신봉자들이나 좌파 신앙인들은 공회의 시무투표를 보고 재벌식 타 교단과 비교할 때 공회는 서민이나 약자를 위해 배려 하는 요즘 좌파식의 민주주의 제도로 착각하는 경우를 더러 봅니다. 외부에서 그런 인사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천부당만부당입니다. 공회는 약자를 돕지만 강자도 돕고, 좌파로부터 배울 점도 찾지만 우파로부터도 배울 점을 찾습니다. 공회는 신앙만을 고려합니다. 시무투표는 세상의 투표제도와는 그 모습이 유사해 보이고, 심지어 세상의 가장 양심적 정치가들조차도 생각하지 못할 극단적 민주제도 등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그 내용은 천리만리 먼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눈은 남을 잘 보고 자기를 잘 보지 못하게 되어 있어 공회는 남을 통해 나를 바로 살피기 원하고,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교역자는 교인의 눈을 통해 자기를 살피고 싶었던 것입니다. 강단 한 쪽이나 양 쪽에 기표소를 만들어 투표를 시킨다면 비밀보장까지 되어 더욱 민주적일 것으로 생각했다면 대단한 착각입니다.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을 바꾸셔야 할 문제입니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개인의 의사를 철저히 감추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다 해도 예배당 안을 그렇게까지 운영하고 싶지는 않고 교회는 교회답고 싶어 기표소 제도는 일부러 채택하지 않습니다. 기표소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라면 시무투표를 할 것이 아니라 교회를 해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2. 자유로운 양심 선택은 어떻게 반영하는가?
- 남의 눈치 때문에 못할 정도면 반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교인에게는 반대 표시 1 장이지만 가정과 직업과 인생을 걸고 나온 목회자를 출로가 없고 퇴로도 없는 절벽 아래로 밀어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몰인정하고 잔학한 일이지만 주님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제단 위에 올려 진 양을 잡는 행위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남의 눈치 때문에 반대를 하지 못할 정도의 반대라면 하지 않아야 양심일 것입니다. 인정과 사정을 봐서는 절대로 반대할 수 없으나 인정과 사정 위에 계신 주님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할 수 없이 반대라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 사람의 눈치 때문에 표시하는 것이 주저 된다면 그 사람의 반대는 무성의하며 장난 삼아 하는 것이며, 자기의 반대가 벌써 인정과 사정에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어제까지는 교인이었습니다. 교인 중에 한 사람에게 목회를 부탁했습니다. 자기들은 자기 가정과 인정과 사정에 매여 목회를 나서지 못한 상태인데 자기와 같은 교인이 자기보다 더 어렵게 목회 길을 나선 상황인데 그 사람에게 목회자가 되는 순간에 갑자기 천사로 돌변하라는 것은 건설구원과 자라 가는 신앙과 우리에게 주어 진 평생이라는 기회를 무시하고 누구 한 사람을 잡아 족침으로 만족을 얻으려는 타락의 악성 악습의 발로입니다. 목회자도 교인 중에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교인에게 퇴로와 출로를 막고 낭떠러지에 떠 밀지 않고는 안 되도록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목회자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 전부가 스스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어야 하고 늘 그렇게 하는 생활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나약한 목회자에게 십자가를 지도록 요구하면서 자신은 남들의 시선에까지 숨어 반대를 하면서도 반대했다는 표시까지 내지 않고 싶어 한다면 사실은 투표할 자격도 없다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적 원칙입니다. 당위의 세계가 있듯이 현실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여러 면을 교인들에 앞 서서 더 고려했습니다.
- 반대 표시 1 장은 2 배로 곱하여 계산하고 있습니다.
공회는 성탄 행사조차도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강단 위에서 강연을 하고 군무를 펼치고 건강 강좌를 열고 뜀뛰기를 하는 그런 일은 최대한 피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최대한 조심하는 순간이므로 예배 시간에 시무투표를 하는 것은 예배의 한 부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의 의자 구조가 찬반 표시를 할 때 옆 사람을 의식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반대 표시를 하는 것이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4 분의 1의 반대를 2 분의 1의 반대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개인으로서는 소신 있게 반대를 해야 하나, 실제 그렇게 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신 있는 사람 1 명의 반대는 반대하지 못하고 표시하지 않은 사람 1 명을 더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표소 설치는 예배당 안을 은혜스럽지 못하게 보이게 하고 인격적으로 봐도 비겁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아직 신앙이 어려서 그런 정도에 머무는 사람은 기표소가 아니고는 반대 표시를 아니 할 수가 있는데 그 숫자를 고려해서 반대 1 표는 반대 2 표로 계산합니다.
- 사실 반대를 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시무투표는 찬성보다는 반대를 보장하고 권유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찬성은 어렵고 반대는 쉽게 했습니다. 투표지를 받아 반으로 2 회를 접은 뒤 가운데 부분을 찢으면 찬성이 되고, 2 회를 접은 뒤 찢지 않고 내면 반대가 됩니다. 주변에 시선이 부담스러우면 접은 뒤에 찢는 흉내를 내되 천천히 찢는 듯이 손 짓을 하면 다른 사람이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눈치와 행동은 투표권을 가진 중학교 1학년 이상이면 모를 리가 없고 못할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반대를 하는 것이 괜히 자기 마음에 떨리고 또 남이 그렇게 보지 않는데도 혼자 그런 자의식을 강하게 느껴서 생기는 일이니 마치 서툰 도둑이 꼭 붙들리는 것처럼 목회자 반대라는 것이 여간 마음 편치 않는 일이어서 제기 된 질문으로 생각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런 분들까지 고려해서 반대표는 2 배의 가중치로 배려하고 있습니다.
기권의 경우도 투표지를 2 회 접은 다음 찬반을 표시하는데 그 찬반 표시에서 한두 번을 더 접은 다음에 용지는 다른 손에 잡고 빈 손만 용지 거두는 분의 수거함에 넣고 빼든지 아니면 볼펜으로 투표 용지에 기권이라고 적은 다음에 그냥 내면 기권이 될 것입니다.
- 더하여, 반공개는 찬성에만 유리하지 않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나 선뜻 나서는 것이 일반인으로서는 어렵습니다. 시무투표의 반대 표시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반대가 되도록 하고 싶고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고 싶지 않은 것이 일반 심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분위기 또는 주변의 분위기가 찬성으로 가게 되면 자기는 반대가 어렵지만 반대로 반대 분위기가 돌고 자기 주변에 앉은 이들이 반대하는 사람이 되면 자기는 찬성하기가 어려워 집니다. 교회 전체적으로 반대 분위기가 돌 때, 기표소가 아닌 현 투표 모습은 반대 분위기를 반대의 기표로 확실히 못을 박는 효과도 있습니다. 물론 찬성하는 주변 때문에 반대를 못하게 하는 분위기도 있으나 앞에서 반복한 것처럼 반대는 2 배로 계산을 하여 이런 면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3. 투표 방법의 개선 과제
- 인쇄에 표시만 하는 방법
원래 종이를 접어서 중앙을 찢게 한 것은 교회 내에 글 모르는 분들과 필기구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분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아다시피 공회는 글을 적는 분들은 모두가 필기구와 연필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공회 교인 구성은 원래 무식하고 못 난 사람들이 많아서 항상 의미 있는 숫자는 투표용지에 표시를 하게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알고 소신 있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천박해 보일지라도 종이를 접어 찢는 무식한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주변에는 거의 모든 분들이 글을 알고 또 필기구도 흔한 세상이 되어 얼마든지 투표용지에 이름과 찬반을 적은 다음 체크만 하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들이 있는 교회는 투표를 하려면 시간이 여간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한 장에 인쇄를 하고 체크만 하게 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데 한 번 시행한 것은 여간해서 바꾸지 않아야 하는 신앙의 견집성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 영국의 국회 모습의 경우
우리는 성문법 대신에 영국식의 불문 관습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꼭 고쳐야 할 것이 아니면 백 년이든 천 년이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앙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투표 제도도 공회의 귀한 보배지만 투표 용지를 찢어 찬반을 표시하는 이 고대 미개 사회의 투표 모습도 우리 공회의 소중한 보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바꿀 수는 있지만 꼭 바꾸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찬반을 찢는 것으로 하고, 장로 권사님들이 여럿이어서 시간이나 절차에 복잡하다면 인쇄 용지에 일괄 체크하는 것도 겸하여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초신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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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공회 시무투표를 참석했습니다. 다 좋았는데 찬반의 방법이 반공개적이어서 불편했습니다. 한 의자에 3-4명씩 붙어 앉은 상태에서 투표지를 찢어서 찬성을 하거나 찢지 않고 그냥 내어 반대를 표시하려니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기권을 하고 싶어도 표를 거두는 분에게 눈치가 보입니다. 이왕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이니 투표 방법도 좀 연구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