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답변을 기다립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요... 더 기다려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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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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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4 00:00
yilee wrote:
>1.먼저 글을 올려 답변을 도와 주신 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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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면을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글을 잘 읽었습니다. 더러는 목회자 된 입장에서 읽으며 부끄러운 부분도 있고, 더러는 교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될 내용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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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신 분의 글을 읽으며 혹 그쪽으로 쏠려 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는 내용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중간에 서서 정확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건너 불구경으로 보지 않으시고 나의 일로 보시고 내 형편으로 말씀하신 면이 특히 은혜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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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앞에서 설명한 분의 내용에 덧붙여 몇 가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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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질문1. '배척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노후준비를 위해 개척교회를 시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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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백목사님께서 목회자를 어린아이를 기르듯 기르던 시절에는 목회자로 나오는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명령 일하에 움직이지 않으면 아예 등용도 하지 않았고 중간에 목회자로 견디지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줄 알기 때문에 딴 마음을 먹는 사람은 목회로 발을 들여놓을 여지가 없어 깨끗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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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제 공회 전체가 20대 청년기로 접어들자, 머리 큰 자식을 부모가 매로 해결할 수 없고 꼭 나가겠다면 재산을 나눠주고 알아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방법으로 지도할 때였기 때문에, 자기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하듯이 목회를 해도 별 제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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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와 1980년대의 차이를 두고 어떤 분들은 백목사님의 속화 타락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신법이 구법에 우선하는 법이니 목회자가 자기 재산을 가지고 사업하듯 해도 허용하는 것이 총공회 신앙노선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발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후자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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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자라가는 수준에 따라 지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원칙은 앞에 것이 맞고, 뒤에 것은 손을 댈 수 없으니 놔 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백목사님의 다른 계산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짓는 것보다 차라리 사업하듯 해도 목회를 하는 것은 세상 사업보다는 어려운 것이니 큰 죄 지을 사람이 조금 작은 죄 짓겠다는 정도로 나아졌다면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목사님이 가장 크게 믿는 것은, 목회를 나올 때는 재주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꾀를 가지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오지만, 일단 어떤 목회든 목회는 막상 시작하고 나면, 그 교회 교인들이 그 목사를 사람이 되도록 애를 먹이든 어쨌든 하나님께서 목회를 통해 그 사람을 만들게 되니까, 결국 조금씩 나아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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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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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분명히 나쁜 의도로 개척을 했다 해도, 80세 된 백목사님이 낳아서 길렀던 제 자식 같고 손주같은 20-30대 목회자들도 노년에는 마음대로 못했는데, 교회 교인들이 나이 많아서 고집만 남은 목회자를 그제서야 버릇을 고치겠습니까, 말리겠습니까? 이론적으로는 1960년대 목회자 행동원칙이 맞는 것이므로 질문하신 첫번째 내용이 만일 사실이라면 공회 목회원칙에는 어긋난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제 너희 멋대로 해 봐라는 식에서 본다면 지켜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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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배척을 받는데 나이도 있고 하니까 개척하겠다고 나서면, 교인들로서는 그를 위해 그동안 공을 들인 것도 있고, 또 교인들로서는 불평은 해도 그 목회자가 교회를 자기를 고쳐가며 지켜야 할 때도 있고, 또 그 교회에서 이동은 해야 하지만 개척을 해서 앞으로 더 이상 배척받지 않도록 내 사업체를 차리겠다는 뜻으로 노후보장용 개척을 한다면, 그 개척은 거의 기존 교회 부근에다 개척하여 그 교회내의 지지교인을 빼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리 되면 기존 교회에 타격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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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목회자는 배척한 교인과 교회를 향해 멋있게 복수를 하면서 자기를 지지하는 알짜배기만 데려나가면 노후에 활동을 크게 하기도 그렇고 꼭 자기 노후 활동용으로 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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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백목사님의 1980년대 시각으로 교인들이 그 목회자를 지켜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목적이 나쁘다 해도 행동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발언에 조심하는 편이 늘 좋습니다. 오랜 세월 뒤에 오해가 되었다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그런 분이 많은 추세지만, 여전히 이전 원칙에 충실하고, 많은 교인들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두려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면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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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반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것은 질문자께서 좀 달리 생각하셔야 합니다. 다른 교회로 이동이라는 것은 그 목회자의 단독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청빙제가 원칙이므로 다시 부임할 교회의 교인들이 그를 원치 않으면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벌써 연로한 분이 다른 교회로 움직이려면, 그분을 모시려는 교회가 대개 싫어합니다. 연세가 많으니 교회를 위한 활동은 적고, 교인들 위에 목회자 이름에다 연세까지 어른이 되면 시집에 시집이 되기 때문인데, 이런 눈치를 알기 때문에 차라리 개척을 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진해서 고려장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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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런 분의 앞날이 원래 기준에서 본다면 비판하고 정죄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잘못되었으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없는 시대는 교인들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그 목회자의 뒷날을 계속 간섭하실 것이니 교인들로서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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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교인은 목회자가 도망가서 숨는 마지막 노인당까지 따라와서 출입문을 두드리게 되면 목회자인들 견뎌낼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들도 뒤로 챙기는 돈이 좀 있고 또 그들도 도망가서 숨을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그렇게까지 몰아대면, 아무도 목회에 나오려고 출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는 백목사님 생존 초창기의 엄한 법으로 따지고, 교인들 자신들의 현재 모습은 과연 교인으로서 최소한의 자리와 의무는 하고 있는지 자문 자답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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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답변자는 목회자이므로 교인들이 목회자를 어떻게 욕을 해도 될 수 있으면 함께 목회자의 잘못을 드러내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너무 목회자의 내심까지를 두고 그 의도까지 샅샅이 뒤지게 되면, 사실확인도 어렵지만, 그렇게까지 목회자에게 최고의 법칙을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교인 역시, 교인이 걷고 교인이 해야 하고 교인이 감당할 자리를 지키되, 최소한 총공회 교인으로서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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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어느 정도 총공회 내의 주요 교인이나 앞선 분들이나 잘 믿는 분들을 다른 목회자들에 비하여는 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목회자도 교인들이 볼 때 목회자다운 목회자가 하나도 없는 시대이지만, 교인도 교인다운 교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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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 대하여 이번 질문처럼 예리하게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 글을 적었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 목회자들이 딴 마음을 먹으려 해도 질문자와 같은 교인들의 눈총 때문에 많이 주저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 목회자에게 좋은 채찍질을 해 주셨으니 목회자라면 교인을 탓하기 전에 이런 충고를 고맙고 감사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인 된 질문자나 이곳을 방문하는 일반 교인된 분들도 비록 자기 교회 목회자가 교인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말씀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삼가 이전 총공회 원래 신앙을 생각하며 자제와 충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해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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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질문2. '교인을 목회자로 길러내지 않고 목회하는 교회의 부흥에만 노력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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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이 짧게 표현되어 있어 답변 방향을 바로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목회자가 교인을 목회자로 길러내는 문제는 자기 목회의 범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구별됩니다.
>
>99.999999.....% 에 해당하는 목회자는 자기가 맡은 교회의 부흥에 관심과 노력을 첫째로 기울입니다. 하나님보다 신앙노선보다 소속교단보다 그 어떤 중요한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실 자식 낳고 기르는 부모 중에 정상적인 부모치고 자기 자식이 우상되어 있지 않은 사람을 보셨는지요? 사업가치고 자기 사업의 번창을 만사 중에 제일로 두지 않은 사람을 보셨는지요? 우리 공회의 신앙노선은 하나님보다 분명히 자식이나 자기 사업을 앞세우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이 본능을 우상이라고 단죄를 하고 있습니다.
>
>아마 공회 소속 교인 된 분으로 자식과 사업을 우상으로 상대하여 하나님 진노를 자초하지 말라는 설교를 듣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설교를 들을 때 대개 자기는 빼놓고 자기 주변 누구누구를 마음 속에 생각하며 저 사람에게 해당되는데 저 사람이 이 설교의 뜻을 알아듣는지 모르겠다고 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
>목회자를 향해 만약 어느 교인이, 목회자들은 제 교회 부흥이 우상이라고 강단을 뚜드리며 설교를 한다면 아마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1년 이상만 목회를 한 사람이라면 그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그런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너무 많은 사안을 두고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줏어담거나 덮어가루지를 못할 것입니다.
>
>
>2번 질문에 대하여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교인 위치에 계신 질문자께 양해를 구하는 것은, 2번 질문도 답변은 해드리겠지만 2번 질문으로 꾸중을 듣지 않을 수 있는 목회자는 현 우리 공회 내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현 목회자가 교인을 목회자로 기르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 교회 안에만 가두어두고 자기 목회지 여건만 좋게 만드는 것은 '악'한 행동이지만, 그렇지 않은 목회자가 없으니 그렇지 않은 목회자를 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아셨으면 합니다.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는 문제는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목회자가 교인을 기를 때, 목회자로 길러내는 일에는 이런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소위 대형교회로 분류되는 교인 1천명 교회를 목회한다 해도, 막상 손발처럼 완전히 써먹을 수 있는 핵심 교인은 3-4명 되기가 어렵습니다. 바람 한번 잘못 불면 언제 어떻게 변동될지 모르는 것이 교인인데, 그 중에 어린 교인이 목회자에게 은혜받고 잘 자라서 교회의 핵심 교인이 된다면 이는 목회자가 자기 교회를 목회하는 일에 1명 교인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수십명 또는 심지어 1백 여명의 손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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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심방도 가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도 가지지 않는 목회자가, 1천여 명 교인 중에 제일 말석에 앉은 교인 하나라도 만일 옆 교회로 움직이면 그때는 이단이니 양도적이니 하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습니다. 이런 심리는 일종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또 다른 교회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럴 수도 있고, 혹 다른 교인들도 그런 경향 때문에 줄줄이 따라가는 문제가 생길까 봐서 같은 유형의 교인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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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진정 교인 한 명을 순수하게 상대한다면, 그냥 낙심해서 교호를 다니지 않는 것보다는 옆교회로 가서 그곳에서라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원해야 하는데, 내가 먹지 못하는 대신 남이 먹지 못한다면 차선으로 생각하고 만일 옆교회로 간다면 이를 최악의 경우로 생각하는 그 언행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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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심리선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자기 교회 교인 중 목회자로 기를 수 있는 교인을 목회자로 기르지 않고 자기 교회 내에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내 일꾼으로 묶어두는 경향입니다. 하나님께서 길러주시면 어디까지 자라 나가도 목회자는 열심히 밀어만 주면 되는데, 목회자를 위협하여 목회자보다 앞설 수 있는 교인이 되는 것을 두고보지 못하고, 혹 자기보다는 늘 밑에 있다 해도 자기 밑에서 좋은 교인으로 충성해야지 자기 교회를 벗어나게 되면 그때는 차마 표시는 내지 못해도 속으로는 큰 타격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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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깊은 내면을 살핀다면, 자기 사업체의 핵심 인력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평범한 사업가적 본능입니다. 딸은 딸이라서 결혼을 시켜도 데리고 살고 싶고, 아들은 아들이라서 결혼을 시켜도 데리고 살고 싶은 평범한 부모들 생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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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교인들을 목회자로 길러 개척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이런 경우는 유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을 아무리 붙들어 두려고 해도 그 속에서 일어나는 불길이 너무 강해서 잡아 둘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자기 경험상 붙들어 둘 수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마치 자기는 목회자를 잘 길러내는 사람처럼 행동을 하는데, 내면을 살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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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교회는 그 교회 교인 숫자나 여러 형편을 생각해 볼 때 도저히 교인을 목회자로 내보내서 안되는데 목회를 나가지 않으려는 교인까지 반 강제로 목회를 내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공회 내에 자기 계열 목회자를 다수 확보하고 있어야 교역자회 발언이나 공회적 사안을 결정할 때 자기의 세력이 되는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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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회의 경우는 1990년대 10여년이 그런 세월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명감이라고 생각하고 목회를 위해 자기와 가정을 완전히 포기하고 목회를 나온 분들을 대할 때마다 그분의 목회출발을 누가 권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고 그 주변 상황을 살펴보면, 영토확장의 개념이라는 것은 너무 쉽게 알 수 있는 정도입니다. 어쨌든 일단 목회를 나온 분들은 출발한 이상 자기를 목회를 출발시킨 사람과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면 늘 하나님 소속 목회자가 아니고 목회를 권한 바로 그 목회자에게 소속된 가병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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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10여년 간 바로 이런 방법으로 사업적 투자를 해서 톡톡히 재미를 본 업체도 있습니다만, 목회설교록에서 한번씩 경고한 대로, 그물을 너무 넓게 쳐놓으면 그 속에 물고기는 제가 어떤 용도로 어떻게 양육되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는 양심자유를 지키고 사는 줄로 평생 착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신앙양심으로 판단하기 전에 자기에게 지시하면 자기가 따라야 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노가다로 말하면 오야지일 것이고, 아이들로 말하면 골목대장일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형성하여 총공회를 지금까지 어지럽혔던 사례와 계열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명백하게 신앙양심보다는 보스의 눈치를 따라 움직였다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만을 중심으로 공개하지 않으면 답변자의 화풀이라 할 분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자료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는 시간이 없어 당분간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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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교인을 목회자로 잘 기른다 싶은 분들은 자기 야욕을 크게 넓히기 위해서 그런 경우인데, 만일 질문자 말씀대로 진정 자기 몸담고 있는 교회 하나만을 위해서 붙들었다면 차라리 양호한 편입니다. 가장 괘씸한 경우는 자기가 목회하던 당시는 목회로 나갈 기회가 있는데도 붙들어 두었다가 나중에 자기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다른 목회자가 부임하니까 그때서야 그 청년을 목회나가도록 배려(?)하는 정말 나쁜 경우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옮겨간 교회가 이전 교회와 비교도 안되는 큰 교회이고 그 교회에는 목회 나가고 싶은 교인들이 참으로 많은데 그들에게는 줄기차게 목회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경우입니다.
>
>
>이번 '2번 질문' 문제로 우리 내부 문제를 살펴보더라도 탄식만 하고 있어야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만, 먼저 말씀드렸듯이 목회를 해 본 사람이면 이런 심리는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이므로, 교인 된 입장에서는 그런 줄 알기나 하시고 그 이상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되지도 않을 일을 두고 괜히 문제만 일으키는 것이고, 또 이 문제에 관하여는 교인이 목회자를 고치려고 고칠 수 없는 그런 내면이라는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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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 목회자들이 질문자와 같은 교인들에게 주를 위해 집을 팔아 넣어라고 한다면 들을 교인들이 있겠습니까? 만일 교인들이 목회자 당신이 모세처럼 바로 행동한다면 집이라도 팔아 넣겠지만, 당신은 외식쟁이 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목회자니까 우리 교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 목회자들이 다 알고 있는 논리가 또 있습니다. 비록 바리새인 서기관 같이 외식을 해도 모세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세워두었으니 교인들은 일단 순종하라고 마태복음 23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
>해결 방법은, 목회를 하고 싶은 교인이 있다면, 그 소원과 그 근거가 주님으로 인한 것인지를 스스로 따져 본 다음 자기 속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길을 찾으면 됩니다. 자기 교회 목회자라는 존재에게 일단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 생각이, 내나 위에서 비판한 목회자들의 잘못된 바로 그 사고방식과 동일한 성질입니다.
>
>사실 이번 질문의 마무리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목회자는 교인 욕심 때문에 어던 형태로든지 자기 교인 하나 손해보는 것은 두고 보지 않습니다. 만일 즐거운 마음으로 교인 손해를 보는 분이 계신다면, 영역 확대이거나 아니면 교회야 죽든 말든 나 알 일이 아니라는 못된 관료식 목회자든가 아니면 붙들어 두지를 못하니까 마치 자기가 밀어주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연극하는 경우입니다. 적어도 백목사님 사후는 이런 공식을 우리 공회에 대입하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목회자가 다 이렇게 나쁜 사람들인데, 그러면 그 밑에 있는 우리 총공회의 모든 교인들은 다 진실되고 다 하나님 중심인가요? 과거 공회 내분을 겪으면서 참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노선을 바로 지킨 분의 숫자가 과연 존재할런지요? 피차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 기질로 목회자들의 흔하고 흔한 그 짓을 하고, 교인은 교인 기질이라는 것이 있어 목회자들에게 알아서 기든지, 아니면 할 말도 못하고 뒤로 돌아 앉아 욕이나 하고 평생을 살든지, 아니면 신앙노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바람 따라 유행 따라 무조건 따라만 가든지, 그렇습니다.
>
>혹시 '2번' 문제를 두고, 이제 답변자가 비판한 이런 비판에 정말 해당되지 않는 순수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일 그런 분이 우리 공회 200여명 목회자 중에 10명이 있다 해도, 그 10명은 200분의 10 비율로 귀한 것이 아니고, 0.0000000...... % 확률로 귀한 분입니다. 교인도 교인 된 사람들이 탈피하기 어려운 그런 단점을 탈피한 교인이 계신다면 비록 그런 교인이 10명 중에 1명 비율로 계신다고 해도 그런 교인을 상대할 때는 0.000000 ......... % 확률로 희귀한 보배요 정금 같은 교인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
>답변자가 이 홈을 '백영희신앙연구' 전문 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만나보게 되었겠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이런 확률로 표현해야 할 귀한 신앙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분들이 이 홈을 알게 되고 또 답변자에게 직접 연락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홈운영 때문에 그런 분들을 접하게 되고, 그런 분들의 말 한 마디가 공회 소속 목회자로서 몸 둘 바를 모르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인들은 교인으로서 그렇게 어려운 여건 가운데 이런 신앙을 견지하는 숫자가 의외로 많은데, 그렇다면 이 노선에 있는 우리 목회자들은 비율로 볼 때 어떻겠느냐고 생각을 해보고 아는 대로 몇 분을 손 꼽아가며 계산해 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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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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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질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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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행정면에서 습성적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준비하는 기도와 계획과 명백한 공고가 있어서 준비하고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준비하는 자들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여 진행함에 있어서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교회행정에 목회자에 의해서 그것도 자꾸 번복이 되어 오히려 그때 가봐야 안다는 잘못된 타성에 젖게 하고 그것이 목회자의 사적 판단으로 또한 귀가 엹어서 이리저리 측근에게 치우쳐 판단을 못하고 무슨 일을 순간순간 번복을 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보고 은혜 받는데 지장이 없을까요 ?
>
>
>④질문4.
>
>혈기를 부리면서도 자꾸 교인에게 핑계를 대고 자기의 잘못은 시인하지 않고 다른 부분에서 문제를 찾으려 하는 목회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
>
>
>⑤질문5.
>
>일반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가 없고 좀더 약한 자를 말씀으로 성경공부를 하게끔 하시는 그러한 성경공부에 대한 제도가 없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
>
>
>⑥질문6.
>
>강단에서 말하는 것이 사적생각이 있으면 그것이 꿍하고 있다가 말씀을 증거하면서 지나쳐 그 속에 든것이 나온다고 하면 그것도 성령의 영감역사로 보아야 합니까 ?
>
>
>⑦질문7.
>
>예배시간에 과연 몇몇 사람을 지칭하여 그 단점이 하나의 예를 지나쳐서 질책과 힐문을 한다면 더더구나 그것이 합당치 않은 내용인 경우에는 공개석상 강단에서 그러한 것이 합당할까요 ?
>백목사님 경우는 힐문을 받는 것이 오히려 영광인데 이와는 반대로 자기 개인 사적감정을 강단에서 드러낸다면 그것이 합당한 일인가요 ?
>또한 예를 들면서 자기의 공치사를자주 예화를 드는 것이 한두번은 은혜로 받아 들일수 있지만 자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개인신앙에는 유익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
>
>
>⑧질문8.
>
>말씀에 은혜가 없으니 먼저 내가 그 은혜를 받지 못하여 죄송하고 준비를 못한 것 같아 회개를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증거하는 말씀이 횡설수설이 되고 많은 사람이 존다고 하면 그것이 꼭 내게만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 ?
>은혜를 주일날 흡족히 받지 못하여 그냥 한 주간이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
>⑨질문9.
>
>주위 측근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이 이모양 저모양 다 속속들이 다 보고해서 그것이 객관인 말만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좋은 것보다는 잘못된 것 그러한 것을 듣고 마치 자기가 다 아는양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는 목회자라고 한다면 어덯게 해야 합니까 ?
>
>이상은 사랑의 주의 종께서 많은 부분에서는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그래서 더욱 영육간의 강건을 원하옵고 위의 몇가지는 제가 은혜 받는데 많은 장애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이러한 면을 온전하게 말씀으로 판단을 받고자 문의 드립니다.
>
>답변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