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사님 장례예배 때 강목사님 기도 중에서 '영의 아버지'라고 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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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사님 장례예배 때 강목사님 기도 중에서 '영의 아버지'라고 한 내용?

설명
장례때 0 2


백목사님 순교 때 서부교회 2층에서 발인예배가 있었고 그때 기도 중에 강행수목사님이 '우리들의 영의 아버지'라고 백목사님을 표현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회 내 어느 분께서 그때를 알고 썼는지 모르지만 '영의 아버지'에 대한 글이 있었습니다. 평가해주시면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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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영(靈)의 아버지인가?




제목부터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영(靈)의 아버지냐는 것인데 인간은 육과 영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육은 육신의 아버지를 말하고 영(靈)은 육과는 다른 차원의 아버지를 말하는데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영적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롬 8:14-17).

우리 육의 조상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하나님이 창조주로서의 우리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저자는 주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에 요셉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라"하였다(눅 3:23-38). 이는 영, 육을 따질 것 없이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들의 영의 아버지와 육의 아버지도 되시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세계서 육과 영을 분리해서 생각할 때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말하고 육은 흙에 속한 것으로 분류를 할 때는 사람을 영(靈)의 아버지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육을 가진 인간과는 차이를 두었으니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영(靈)에 속한 분으로 보고 예배하는 자는 육신(肉身)에 속한 사람으로 볼 때 목사를 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많은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먼저 영의(靈)의 "의"는 체언에 붙은 관현격 조사인데 아래의 체언이 위에 체언에 소속, 소유됨을 나타냄 즉 나의 책 또는 위의 체언이 애래 체언의 특성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아들 회사의 제품 등등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목사를 영의 아버지라는 단어는 육신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그를 영의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억지로 말을 한다면 믿음의 아버지나 믿음의 조상 영적(靈的)인 아버지라고 할 수는 있지 않겠나 생각이 된다.

영(靈)의와 영적(靈的)은 차이가 있다. 영적(靈的)은 적(的)은 한자(漢字)아래 붙여 그러한 성질, 경향,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인데 예를 들어 세계적(世界的) 문학적(文學的), 학구적(學究的)등등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목사가 영(靈)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성질적(性質的)으로는 빗대어 말할 수 있으나 영의 아버지는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예를 든다면 바울이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하였다(고전 4:15 몬 1:10).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이는 바울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하게 된 많은 이방인들에게 영적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해산하는 수고로 낳은 자녀라는 말과 같다(갈 4:19). 이것은 단순히 고린도 교회 설립자인 자신의 위치와 권리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사랑을 발휘하는 아버지의 속성(屬性)을 나타내려 하였다. 즉 그들에 대한 자신의 책망 및 권면이 진실 된 것이며 책망의 동기 또한 부성애적(父性愛的) 사랑에서 기인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다른 복음 지도자들보다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보다 친숙한 관계로 묘사하는 문학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바울은 자신이 그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라는 강조점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아비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으로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계속해서 그들을 젖과 밥으로 양육하는 영적(靈的)아버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복음으로 낳은 영적 자녀들을 양육한 영적인 아버지라는 것이지 영(靈)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를 문학적인 표현으로 영적(靈的)아버지라고 표현을 할 수 있어도 영(靈)의 아버지라고는 할 수 없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하였다(마 23:9). 진정한 아버지는 오직 하나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직 종교상의 아버지로 하나님 한 분만을 인정하였다(고전 8:6).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 교회의 아버지로, 디모데의 아버지로 스스럼없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고전 4:15 딤전 1:2).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디모데가 바울의 영적 아들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종속적 원리에서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생각하지만(Calvin)" 여기서는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로 봄이 타당하다. 즉 사부관계(師父關係) 왜냐하면 "당시에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낼 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Guthrie)".

그러므로 목사를 영(靈)의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고 복음으로 낳은 성질상 영적(靈的)인 아버지라고 문학적으로는 표현적으로는 표현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왜 복음으로 낳아서 말씀의 젖을 먹이고 책망하고 훈계함으로 양육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성질상이지 실제는 영(靈)의 아버지라고는 절대로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육의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의 아버지는 오직 생사화복을 주관하지는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이다.


(부언)
****** 이는 어디까지나 나도 알고 싶어서 문제를 제기하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 절대적이라고는 고집하지 않는다. 잘못이 있으면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반드시 겸손한 마음으로 시정할 것이다.******

{사모 신문에서 퍼옴}



은성 아버지처럼 사랑한다는 의미라고 본다....요즘 목사님들이 거들먹 거리면서 자기가 자기 교회의 아버지인듯 하는 행세는 가관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돼지게 혼날것이라고 본다. 아버지학교에서하나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라는 캐치 플레이가 잇다.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이 거기가서 얼마나 후회하고 얼마나 회개를 하던가,,,우리나라 목사님들도 거기에 가서 자칭 교회의 아버지로서 한번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잇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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