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이므로 그만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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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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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8 00:00
1.목회설교록 출간을 막은 첫 활동은 1990년 경, 대구공회 목회자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구공회'는 2004년 현재 대구공회가 아니고 1989년 당시 대구공회를 말합니다. 오늘의 서울공회와 대구공회가 함께 있던 시절이며, 일부 부산공회 교회들도 포함되었던 시절입니다.
①백목사님 사후 부산공회의 주력을 봉쇄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에서 설교록과 찬송가 구입 금지 운동이 있었습니다. 설교록과 찬송가는 그 이름이 갖는 느낌 때문에 공회적 결의를 피하는 대신 현장 목회자들이 동역자와 일반 교인들을 상대로 전면적으로 구입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외부로 내세운 이유는 대구공회가 총공회를 주도해야 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핵심 세력이 서부교회와 부산공회를 주도하고 있는 목회연구소 직원들의 자금을 차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소의 직원들이 대구공회 노선을 반대하는 중심에 있었고 그들은 설교록과 찬송가 출간 수입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을 손댈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부산공회 입장은 주로 목회연구소 직원들에 의하여 견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구공회를 좋아하고 따르는 교인들에게는 이런 이유가 아주 효과적이었고 당시 감정이 격한 상태였기 때문에 소속 교인들의 결집 등 여러 면에서 좋은 전략이었습니다.
②더 중요한 문제는, 설교록 내용이 대구공회 노선의 최대 장애물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 대구공회는 헌법을 제정해야 하고 다수결로 공회를 운영해야 하며 운영위원회의 재구성과 삼두체제의 신도입이 필요하다는 등 너무 짧은 기간에 너무도 많은 공회 개혁안을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하루밤 자고 나면 공회 노선을 통째로 뒤바꿀 계획이 발표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부산공회가 노선 자체를 탈선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라며 반론을 하고 나서자 양측은 치열한 논쟁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구공회는 앞으로 잘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선전이 중심이었고 부산공회는 총공회의 근본 신앙노선 성격을 설명하며 대구공회 노선은 탈선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게 됩니다. 양측의 논쟁에서 대구공회는 논리적으로 다 막히고 있었으나 총공회 임원들과 지지 목회자의 숫자에서 절대 다수였기 때문에 발언권을 장악하고 힘으로 부산공회를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총공회 신앙노선의 소개서라고 할 수 있는 목회설교록이 대구공회에게는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반대측의 발언은 발언권을 주지 않으면 되고 또 여론을 조성하여 매도하는 식으로 덮을 수가 있는데 자신들 소속 목회자와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설교록에서 공회의 과거와 신앙의 원 노선을 너무 또렷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록을 묻어버리지 않고는 부산공회와 신앙노선 문제를 두고 토론이나 논쟁을 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 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토론에서 대구공회가 일방적으로 밀리게 되자 대구공회는 목회설교록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몇 가지 중요한 예를 든다면
지나간 과거의 책을 보는 것은 현재 영감을 중시하는 공회 노선에 잘못이다.
목회설교록을 강조하는 것은 백목사님을 우상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백목사님은 필기노트까지 다 불사르라고 했다.
목회설교록은 부산공회 주도 목회자들이 대구공회 비판을 위해 내용을 조작한다.
백태영목사님을 칭찬한 내용은 출판 때 빼버리고 야단 맞는 내용은 넣고 있다.
그 설교록 판매대금을 가지고 대구공회와 싸우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새시대가 되었으므로 새우물을 파야 한다.
③목회설교록 판매금지를 외치는 일에 찬송가 문제는 덤으로 들어갔습니다.
대구공회 목회자들은 교인 전도에 불리하고 젊은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여 공회찬송가 대신 일반 통일찬송가를 좋아했던 분들입니다. 찬송가 문제는 이미 총공회신앙노선에서 확정이 되었으므로 양심이 있다면 재론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백목사님이 없어진 상태이므로 설교록를 구입하지 말자는 운동에 찬송가까지 함께 보태버렸습니다.
목회연구소에 돈이 들어가면 대구공회의 반대측에게 연보를 해서 그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이라는 설명이 제일 효과적이었습니다. 내면으로는 설교록을 읽을수록 과거 배운 것이 기억나게 되고 그리 되면 대구공회의 주장이 전부 거짓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왕 설교록을 막으면서 찬송가 문제까지 같이 포함시켜 백목사님 생전부터 바꾸고 싶었던 찬송가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2.목회설교록 출간을 막은 두번 째 운동은, 부산공회(1) 지도부였습니다.
①외부에서 막는다 해도 내부에서 출간하면 그만입니다.
판매부수가 줄어든다 해서 설교록 출간 자체가 금지될 일은 아닙니다. 설교록의 중요성을 알고 힘대로 노력하면 설교록 출간은 1995년까지 완간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구공회의 설교록 구입 금지 운동이 벌어지게 되면서 부산공회 내부에서는 설교록 완간을 위해 더욱 노력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고 서부교회 장로님 한분이 경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출간을 완료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을 하게 됩니다.
당시 연구소 직원은 약 20여 명이었고 연구부 직원만 12명 정도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경비만 지원 된다면 백목사님 생전에 한 달에 1권을 제대로 출판하기 어려웠던 속도를 2-3배 빨리 하여 매월 2-3권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경비를 지원하는 장로님 때문에 연구부 전직원들은 1년에 20-30권, 불과 3-4년이면 미출간 100여권 설교록을 완간할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고 전력을 다하게 됩니다.
대구공회의 판매반대 운동 때문에 백목사님 생전에도 생각할 수 없는 지원과 직원들의 각오로 목회연구소의 출간은 활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때가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감사했고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바로 사용되면 구원운동에 지극히 요긴하고 없어서는 안 될 보배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던 때였습니다.
②설교록 출간이 급속도로 진척되자, 연구소 내부에 예상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설교록 출간은 백목사님 사후 약 10여 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계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월 몇 권씩 설교록이 쏟아지고 연구소가 가속도로 돌아가게 되자 목회연구소의 최종 결재권을 가지고 있는 위원회에서 갑자기 급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당시 답변자와 이곳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는 직원들은 설교록 편집과 인쇄와 판매만을 책임졌고 연구소 내부의 경제와 설교록 출간의 최종 결정권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연구소 밖에서 대구공회가 구입 거부를 하여 설교록 출간을 막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연구소 직원들이 목사님 사후 총공회 노선투쟁에서 발언을 하고 행동을 했을 때는 대구공회 측이 연구소 운영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렇게 해도 상관없이 맡은 일은 그대로 나갈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결재권을 가진 분들이 막고 나서는 일에 대하여는 전혀 예측을 하지 못했습니다. 답변자와 이곳 연구회 직원들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원래 대구공회의 설교록 구입 거부 운동에 맞서 목회설교록 전체 출간을 지원하겠다며 나서게 된 장로님은 연구소 결재권을 가진 분의 요청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일입니다. 따라서 결재권을 가진 분이 지원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지원할 명분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안내하게 되면 설교록 지원을 차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일 때문에 답변자와 실무진들은 연구소 내부에서 소리를 높히게 됩니다.
③설교록 출간이 조기 완료되면, 총공회를 향한 영향력이 없어질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라고 하지만 총공회 내부의 설교록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절대적이었습니다. 대구공회가 설교록 출간을 막고 나선 이유도 설교록의 영향력이 대구공회 내에서도 얼마나 지대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됩니다. 부산공회의 경우, 총공회는 설교록으로 존재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1990년 3월에 대구공회와 이미 분리되었고 이제 부산공회와 목회연구소 관계자들에게는 부산공회만이 총공회였습니다. 대구공회가 부산공회로부터 분리되면서 초기에는 총공회 전체 재산권을 독점했으나 불과 1년이 지나면서 대구공회는 내부적으로 재분열을 하게 되면서 부산공회가 총공회 전체 재산을 독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남정교회가 분리되면서 서부교회라는 총공회 최대 최고의 이권이 부산공회 내에 남아 있게 됩니다.
이런 총공회 내부 상황을 지켜보던 연구소 지도부에서는, 부산공회가 가지고 있는 총공회 전체 재산과 서부교회 교권과 백목사님 생전부터 공회 노선에 충실했던 교역자들과 교인들 전체를 결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최대의 힘은 바로 목회설교록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목회연구소는 설교록을 연구하고 출간하는 순수한 연구단체로 공회 문제에 대하여는 개인적으로만 활동하게 되어 있지 연구소 자체는 전혀 상관하지 않도록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연구소 최종 결재권을 가진 지도부가 설교록 출간의 속도 조절을 통해 공회 내부를 주도하겠다고 출간 자체를 무기 연기를 해버린 것입니다.
④이후 5년간 목회연구소 내부는 '설교록 출간 여부'를 둔 대치가 계속됩니다.
목회설교록 출간을 서두르자는 연구부장과 연구부 전직원이 있었고, 연구소 결제권과 인사권과 설교록 출판 결정권을 가진 지도부가 있었습니다. 지도부가 할 수 있는 말은 항상 같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가 전부였습니다. 설교록 출간을 주장하는 직원들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직원들은 '꼭 반대하면 지도부의 결정에 상관없이 직원들이 직접 설교록을 재출간하겠다.'고 했습니다.
백목사님 생전 백목사님이 직접 임명한 직원들은 설교록 출간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 직원을 뽑아야 할 때는 지도부를 지지할 직원으로 충원하게 되며 외형적으로는 찬성과 반대 직원이 거의 반반 정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도 연구부 전 직원과 출간과 판매 책임자 등 핵심 직원들은 처음 입장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습니다.
3.설교록 출간을 막은 세 번째 책임은, 이곳 연구회 직원 자신이었습니다.
①대구공회가 막아도 연구소가 출간하면 되고, 지도부가 막으면 직원이 출간할 일입니다.
외부에서 아무리 출간을 막는다 해도 현 우리 사회 체제 하에서는 돌을 던질 수는 없고 불을 지를 수는 없습니다. 남이 뭐라하든 외부에서 어떻게 구입 거부를 하든 출간하면 되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설교록 출간의 제일 외형 책임은 대구공회에 있는 듯 하지만 실은 연구소 내부 문제였고 내부의 의지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소 지도부가 결정권을 가지고 아무리 막는다 해도 연구부 직원들은 출간에 필요한 자료가 있기 때문에 집을 팔든 노동을 해서 벌든 아니면 신장을 하나 팔아서라도 출간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출간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설교록이 백목사님 사후 바로 출간이 재개되고 벌써 완간이 되었을 일인데도 오늘까지 늦어지게 된 것은 이 홈을 운영하고 있는 답변자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습니다. 당시 목회연구소의 연구부장이었고 밑으로는 생사를 함께 하며 연구부장의 결정에 따라 모든 희생을 각오하고 따를 수 있는 연구부 전직원들이 있었으며 인쇄 출간 판매를 책임진 타 부서 직원도 뜻을 같이 하고있었으며 이들에게는 목회하는 교회와 총공회 내 전국 여러 곳에서 필요하다면 연보를 하겠다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설교록 출간은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구부장과 이하 직원들은 대구공회의 구입 거부 운동을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모일 때마다 연구소 내부의 지도부가 총공회 교권 장악에 이용하기 위해 설교록 출간을 미루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자신들이 단독으로 출간할 수 있는 일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최종 책임은 자신들이었고 자신들의 결정이었지 연구소 지도부의 책임도 타 공회의 책임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연구부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연구소 지도부는 설교록 출간에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출간결정권'과 '경비'만으로는 출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백목사님의 생존 당시 조처한 모든 사항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모든 면을 기도로 결정했고 하나님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각자 자기의 게을과 불충으로 어려우면 어려웠다는 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②설교록 출간 재개 문제를 두고, 5년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교록 출간 금지 지시가 내려 왔을 때부터 직원들 단독으로 언제든지 설교록 재간을 시작할 수 있음을 지도부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지도부는 만일 허락없이 출간하면 바로 제명 등 필요조처를 하겠다고 막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언제라도 출간하면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답변자가 결심을 미룬 것은, 단독으로 출간을 하는 순간 연구부 전직원은 제명될 것이고 목회연구소는 문을 닫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연구소 지도부는 회복하지 못할 타격을 받고 이후 교권은 잡을지 몰라도 신앙적으로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록 출간을 감행한 직원들은 다시는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 신앙노선을 연구하고 무엇이든 출간할 수 있는 자유의 때가 오는 대신 목회연구소 지도부는 신앙과 세상 면으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 너무 뻔하게 보이기 때문에 사실은 출간을 지지하는 직원들이 몸조심을 해서가 아니라 백목사님이 직접 설립한 목회연구소만은 최대한 그대로 살리면서 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연구소 내면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이유는 지도부는 설교록 출간과 연구와 기타 연구 작업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오로지 경제와 인사권과 결정권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연구부 직원들은 그 반대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로 보면 지도부에게 붙잡혀 꼼짝하지 못하는 직원들로 보였고 내면으로는 지도부가 전혀 필요가 없는 직원들이었는데, 직원들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면 우선은 홀가분하겠지만 훗날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더 참고 더 기다렸다면 그래도 좋게 해결될 수도 있었지 않느냐는 자기 후회를 할까 해서 기다렸습니다.
③1997년, '백영희주교목회 연구' 책자 출간을 기회로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설교록 출간이 수 년간 늦어지면서 설교록 출간 준비와 함께 남는 시간을 가지고 설교록 안에서 정리해야 할 여러 작업들을 했고 그중에서 백목사님의 주교목회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3권의 책을 요약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계적으로 백목사님의 주일학교 관련 관심과 질문이 많았고 더 이상 책 출간을 미룰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더 중요한 것은 설교록 재출간 문제였습니다. 어느 것이든지 출간은 다 금지된 상태였고 어느 것 하나라도 출간을 하게 되면 바로 갈라서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당시 5년을 기다린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어떤 결과가 닥치더라도 설교록 출간과 백영희신앙연구의 재개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뜻을 연구소 지도부에 통고하게 됩니다. 지도부 중에 이곳과 연락 창구를 맡고 있는 분은 전혀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빠지겠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분조차 출간 문제는 바로 제명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초에 그동안 기다렸던 출간을 재개하여 주교목회 3권 중 1권을 출간했고 이어 설교록 출간도 시작하게 됩니다. 설교록 '88호'가 그 설교록 재출간 작업으로서는 첫 설교록이었습니다.
결재 없이 출간이 시작되자 연구소 지도부는 바로 제명조처를 합니다. 제명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부산공회(1)과 부산공회(2)로 나뉘어 있던 몇몇 위원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서부교회 교권을 두고 5년간 싸우던 양측은 연구회 직원들을 제명하는 일에는 일단 초당적으로 협력하여 문서를 완비하게 됩니다. 제명과 함께 검찰과 경찰에 10여건 범죄혐의로 직원들을 고소 고발 하게 되는데, 설교록 내용을 뽑아서 주교목회 책자를 출판한 것은 지적재산권 침해이며 연구소 업무방해가 된다는 등으로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검찰에서 전혀 혐의와 상관없다며 오히려 고소한 측을 무고죄로 묻겠다는 입장이 통고되면서 고소 고발은 취소가 되고, 이후 오늘까지 당시 출간 직원들은 '목회연구회' 이름으로 이 홈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홈의 주체를 '백영희목회연구회'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백목사님 원래 설립한 연구소는 '백영희목회연구소'인데 우리는 그 연구소에서 근무를 할 수 없게 된 죄인이지만 '백영희목회연구회'라는 이름의 자발적 모임을 만들어 원래 연구소가 해야 할 중에 늦어지거나 미비되거나 연구소가 손을 댈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런 일을 맡고 나서서 연구소가 할 일을 외부에서라도 하겠다는 뜻입니다. 연구소와 맞서기 보다는 아직도 연구소의 일원이며 연구소를 사랑하며 그 연구소를 설립한 백목사님의 원 취지가 어떤 형태로라도 계속되기를 소원하는 중심입니다.
따라서 이곳 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모든 것은 부산서부교회 옆에 있는 '백영희목회연구소'의 일부며 내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백목사님께 배운 것이고 이곳이 모든 현실 문제를 두고 이 신앙노선이 지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4.이제 출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이 홈이 그 일을 주력하지 않는 것은
①1998년부터 이곳은 설교록 출간을 위해 모든 힘을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1997년은 쫓겨나는 일에 시달려 1년이 거의 다 가고 있었고 1998년 초에 모든 문제가 마무리 되자 이곳 직원들은 설교록 출간에 전념하게 됩니다. 백목사님 출간 작업을 위해서는 백목사님 자녀 분 중에 한 분이라도 협조를 해야 추후 법적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일시 크게 도움을 받게 되고, 이후 이 홈을 통해 이제 과거 서적 출간으로만 이 노선과 설교를 전할 수 있는 시대를 접고 새로운 방향으로 원래 연구소 직원들이 해야할 바를 찾게 됩니다.
②1999년부터 지금까지 이 홈을 통해 설교록으로 출간할 모든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책으로 보관하고 사용해야 할 사람들도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할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나 1999년에 이르러서는 인터넷과 컴퓨터의 활용이 완전 정상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그동안 준비된 모든 설교록 출간 자료를 CD로 담아 이 복음에 관심있는 전국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일시에 배부를 하게 됩니다. 현재 한국교회에 거의 퍼져 있는 자료는 이 당시 자료가 원본이 되어 있고, 자료 중 초기 몇년치 미비되거나 부족한 자료들은 그후 여러 사람들의 수고로 보충되어 현재는 1979년에서 1989년 모든 자료는 거의 완비되어 있는 정도입니다.
③설교록 출간의 형태가 현재 인터넷으로 급격하게 옮겨지고 있습니다.
해서 이 홈을 통해 활동하던 초기에는 서적으로 출간하던 것을 이제 홈을 통해 또 CD를 통해 무제한으로 전할 수 있게 되자 과거 서적으로 설교록을 찾던 분들의 수는 거의 없어지고 모두들 데이타화 된 자료를 사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곳은 이 홈에 올리는 자료를 보다 정확하고 활용에 용이하도록 작업하는 일에 계속 노력해 왔습니다.
④금번 매진 된 설교록의 재출간은 서적으로 완비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필요한 사람들만 확인해서 필요한 권수만 인쇄하고 신청한 사람에게 비용만 분담할 것입니다. 혹 대량 판매를 통해 수입금이 조금 남게 되면 그 다음 출간을 위해 전액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발행은 소량이 될 것이므로 실제 인쇄 비용을 그대로 적용하여 권수별로 나눈 것입니다. 출간 전체 분량이 많을수록 비용은 적게 들고, 주문이 적을수록 권당 가격은 높아질 것입니다. 원래 실경비로 출간한다 해도 이번보다는 조금더 비용이 많아지지만 설교록을 구입하려는 분들이 대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을 것이므로 출간의 간접비용은 연구회에서 전부 부담하게 됩니다.
5.백목사님 생전 마지막 우려 중에 하나가 설교록 출간을 막고 나설 사람들이었습니다.
백목사님 사후가 되면 마음 속에 있는 대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되는 날 설교록을 백목사님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얼마든지 구입하고 읽고 보급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설교록이 읽혀지고 설교록이 많이 발생되고 설교록이 많이 보급되면 치명적으로 손해를 입게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백목사님과 그 설교와 그 가르침이 빨리 잊어져야 자기 자리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그래야만 자기 이름을 올려세울 수 있다는 직책, 차마 공식적으로 남 앞에서는 그렇게 막고 나설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설교록이 막아지고 없어지고 출간이 늦어지고 읽는 사람들이 없어지기를 은근히 힘쓰는 사람들, 그들이 누구며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분들이 모인 곳이 어딘가?
보는 눈이 있으면 살 것이고
보는 눈이 없으면 죽을 것입니다.
보고 깨달아 살아나는 사람도 자기 신앙건설일 것이고
보지 못하여 죽어가는 사람도 자기 결정이며 자기 선택이니 자기 자유입니다.
담임목사님 때문에 오해를 했다는 분
선배들이 보지 말라고 해서 멋모르고 그렇게 설교록을 처분했다는 교인
목회연구회는 도둑놈들이라고 대구공회 목사님들이 소개를 해서 그런 줄 알았다는 분들
목회연구회가 서부교회를 빼앗으러 온다 해서 이 홈에서 발행하는 것을 사지 않았다는 부산공회(2)
별별 종류의 분들이 많지만, 소경으로 남을 인도한 사람도 책임이 있지만 소경이 되어 소경의 인도를 받은 그 소경도 핑계치 못하게 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곳은 칼빈주석과 기독교강요 이후 최고의 신앙서적으로 평가받게 될 '백영희목회설교록'을 출간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재림이 좀더 남아있다면 이곳의 이런 출간활동은 다 세계기독교사에 남을 역사적 현장이라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그리고 확신과 감사와 기쁨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나 겨우 감당할 사람이 이 모든 일에 앞서 걸어가게 되었다는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세계기독교총재로 당선된 것보다 무한히 더 감사하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이 조금이라도 통하는 분들은 구입할 것이고 이런 발언을 두고 배를 잡고 웃거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직도 잠꼬대가 계속된다며 안타까워 할 것 같습니다.
선지자를 선지자로 직시했던 시대는 유사 이래로 없었다는 말씀을 알고
이 말씀을 통해 알게 된 성경과 성령과 능력을 직접 알기 때문에
이 홈은, 그냥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변치않고
처음 감격에 늘 사로잡혀
자아도취에 넘쳐 오늘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함께 미쳐보시기를 기도하며
04.9.18.
yilee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