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회집 성격과 모습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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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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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3 00:00
1. 공회는 분리나 분쟁이 불가능합니다.
두부나 무우는 유리는 손바닥으로 쳐도 깨집니다. 두부나 무우는 너무 약해서 그렇고 유리는 강하기는 너무 강하지만 두께가 얇아서 버틸 여력이 없어 그렇습니다. 나무는 손바닥으로 깨트릴 수 없지만 예리한 칼이나 도끼로 치면 깨집니다. 두부나 무우보다 훨씬 강하고 둔탁함을 가졌으나 더 큰 힘이 가하면 깨지는 것입니다. 고무판은 탄력까지 있어 칼과 도끼로 쳐 봐야 흠이나 나지 그렇게 잘 깨지지 않습니다. 그대신 불을 붙이면 알아서 끈질기게 끝까지 다 타 버립니다. 한 번 붙은 불은 쉽게 끌 수도 없습니다.
두부나 무우는 장로교 작은 교회나 교단으로 보시면 되고, 나무는 대형 교회나 교단이라고 보시면 맞을 것입니다. 고무판은 침례교나 미국 교회 또는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더러 수준 높은 교인들이 모인 교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성과 양보와 배려를 몸에 익힌 교양 있는 교인들이 많으며 고무판처럼 그 조직이 부드러운 탄성도 있고 또한 조직을 유지하는 역량도 있습니다.
공회는 무엇으로 비유할까요? 공회는 물과 같고 공기와 같습니다. 손바닥으로 치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나 돌아 모두 모여 있습니다. 칼로 물을 배고 허공을 휘둘러 봐야 밸 대상도 없고 배어 지지도 않습니다. 도끼는 물론 불을 붙여 봐야 탈 수도 없습니다. 원래 백영희 목사님이 앞 장 서서 모인 총공회라는 단체와 그 소속의 각 교회는 이런 성격과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 왠 일입니까? 공회에는 공회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회가 마치 유리잔처럼 두부처럼 나무토막처럼 부러 지고 깨트려 지고 흩어 지고 배어 나갔습니다.
2. 백 목사님 사후 첫 순간
백태영 목사님은 총공회장님이 갑자기 돌아 가셨으니 후임을 뽑는 일이 가장 급하다고 길길이 뛰었습니다. 그 분은 총공회와 총공회장에 대한 단어조차 몰랐습니다. 일본의 총리가 없으면 단순간도 나라가 운영 될 수 없으나 한국의 총리는 하루에 백 명이 죽어 나가도 나랏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내 나라와 남의 나라,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조차 모르며 그 분은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의 1인자인 줄 알았고 거의 모든 공회 목회자와 교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 이 노선의 불행과 아쉬움은 훗날의 분규와 분리와 침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총공회의 '총'과 '공'과 '회'와 '총공회장'의 '장'을 몰랐던 사실에 있었습니다.
기록 없는 공회임에도 불구하고 제1회록을 적었고 그 후에도 회록을 적었으며 공회 형성기의 초기 회록들의 내용은 '공회'가 무엇이며 '총공회'가 무엇이며 '총공회장'이 무엇인지를 그 어떤 논란도 없도록 질문조차 필요 없도록 핵심 내용을 적었고 명백하게 적었거늘 어찌하여 총공회 출발의 첫 순간부터 백 목사님을 모셨다며 공회를 밑뿌리부터 안다는 백태영 목사님과 그 분의 모든 동년배와 공회의 모든 이들은 한 목소리였을까!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의 모든 아쉬움은 바로 그렇게 시작했던 것입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 과거 신앙 노선을 바꾸자는 수정 노선이 주장 되었고 그 분들은 자신들만이 총공회 정통이라 했으나 답변자는 '대구공회'라는 이름을 붙여 오늘까지 내려 온 것은 그 분들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은 총공회를 몰랐고 답변자는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대구공회도 총공회의 기본 개념을 잘 아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는 듯하나 이미 산산조각이 난 유리창을 원 위치로 모을 수 있을까? 공회라는 이름만 바로 알면 지금도 바로 산산조각 난 유리창이 즉각 원형 복구가 됩니다.
백영희! 그 이름에서 백영희라는 인간은 사실 별 것이 없습니다. 흔하지는 않으나 어디든지 찾으면 찾을 만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백영희라는 그 이름을 붙들고 오늘까지 우리가 깨닫고 겪어 본 교훈의 세계와 이 글에서 말하는 공회라는 교회 행정 체계라는 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지 인간 백영희는 아닙니다. 그는 심부름만 했을 뿐입니다.
세계 교회사에 일찌기 이런 조직은 아주 가끔 있었으나 이렇게 조직 체계를 성경으로 설명하고 확립 시켜 언제라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형제교단 그 어떤 종류의 교회 체계도 타 교단의 단점을 보완하는 자신들의 장점은 가졌으나 그들의 장점 뒤에는 그들의 단점이 함께 있습니다. 공회는 잡탕도 아니고 타협안이나 절충안도 아닌 확고한 독자안인데 공회 체계에는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형제교단 등 역사에 나타 난 모든 교단들이 지향했던 장점들이 다 모여 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것이 단순한 조합이나 종합이나 통합의 개념으로 모아 놓은 오합지졸이나 돌 무더기가 아니라 생명을 가진 유기적인 단일체입니다. 놀랍지요! 누가 학위 논문을 쓰려면 이런 것을 주제로 잡고 나가면 쉽고도 단번에 역사에 남을 논문이 될 것인데 잘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공회에 대한 근본 이해도에 문제가 생겨서 보면서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백태영 목사님과 그를 따른 분들의 문제점이었습니다.
3. 공회는
백 목사님처럼 배우고 따라 가 보면 감탄이 되어 져서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는 그런 지도자가 있으면 감리교처럼 마치 천주교처럼 일사분란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가 없고 전체 교회에게 모범이 되거나 사회를 잘 볼 수 있는 유력한 지도자가 있는 정도라면 그 때는 공회가 모범적인 장로교나 침례교처럼 됩니다. 만일 지금처럼 공회에 여러 종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해도 과거 실수나 아픈 경험 때문에 서로 섣부르게 다가 서기 어렵거나 아니면 좋은 관계라 해도 모두에게 인정 받을 만한 지도자가 없으면 형제회 교단처럼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져야 합니다.
물은 온도가 상승하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속에 숨어 버리고, 온도가 내려 오면 안개처럼 또는 물 방울이 되어 드러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더 내려 가면 강철처럼 강한 얼음이 되어 탱크가 그 위로 지나 갑니다. 이 것이 공회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사후가 되자
회니까 모여야 한다. 이유가 없다!
회니까 모이면 회장이 있어야 한다! 모임에는 머리가 없을 수 없다.
모일 이유가 없으면 회장 선출이 안건이다. 실은 이 안건이 제일 중요하다!
요런 소리가 나오는 즉시 공회는 이미 없어 졌습니다. 공회가 없어 진 것이 아니라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분들의 머리와 그들의 걸음에는 공회라는 것이 보일 리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출애굽 40 년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나가다가 무슨 일만 생기면 갑자기 애굽의 노예로 돌변을 하여 주인에게 돌아 가야 한다거나 고기 가마 이야기를 했고 그 때마다 모세는 자신들을 유인 납치한 나쁜 놈으로 봤습니다. 제자들은 성만찬 끝 난 그 순간에도 예수님을 유력한 대선 당선자로만 본 것처럼 그렇게 배운 것과 자기 속에 실제 들어 앉아 있는 세계는 달랐습니다.
공회는 성경만이 법입니다. 공회는 그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모이고 이유 없이 모이고 정기적으로 모이기 때문에 모여야 하는 성경 외의 교단법을 가지고 그 법을 따라 가는 타 교회와 다릅니다. 함께 모여야 할 이유가 있으면 모이고 함께 모일 이유가 없으면 모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공회입니다. 그런데 매월 첫 주일 지난 월요일에 부산 서부교회에서 모이기만 하면 총공회라 해서 모일 이유도 없는데 모였고 모여서 회의를 하다가 결론을 낼 수가 없으면 과제로만 두고 해결이 될 때까지 연구하면 될 터인데 손을 뚝딱 들어서 과반수 결의로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공회의 파괴 일호 행위였습니다.
부공1에는 공회를 아는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태엽이 풀릴 때까지 위에서 잡아 준 방향을 향해 무조건 걸어 가는 로봇입니다. 부공2는 초기에 이런 이치를 몰랐으나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부교회 교권과 전체 공회의 주도권에 유리하며 그리고 현재 공회의 주요 교회들을 잡고 있고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냥 눌러 앉아서 버티는 것입니다. 잘하려 하다가 본전 생각이 날까 하는 정도입니다. 대구공회는 백 목사님 사후에 말하고 행동하고 그 동안 걸어 왔던 세월이 오늘을 원래 위치에 돌아 설 수 없도록 발목을 붙들고 있습니다. 원래 위치로 오면 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이제는 시간도 비용도 그리고 젊은 이들을 설득하기에도 힘이 없습니다. 서울공회는 대구공회보다 한 걸음 더 멀리 갔습니다.
부공3은 백 목사님 생전이나 사후나 이후 오늘까지 힘은 부족하고 수는 적다 해도 최소한 아는 것과 방향만은 한 번도 바뀌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싸울 때는 가장 힘 있게 싸웠고 주요 결정권도 행사했고, 이후에 더 힘 있게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교권과 돈과 교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이 노선에서 할 수 없을 때는 즉시 모든 것을 털었습니다.
오늘 부공3은 백 목사님 사후 바로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늘 그렇게 걸었는데 몇 안 되는 핵심 목회자들조차 이런 기본 문제를 이해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답변자 혼자 걷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는 분교까지 10여 개 교회만 부공3인 줄 알고 있으나 답변자에게 '공회'는 이 홈의 주소록에 올려 놓은 5 개 공회의 200여 교회 전부가 답변자의 공회입니다. 다만 답변자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교회들에게는 그 분들의 자유성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가 뵙지 못할 뿐이고, 오늘이라도 답변자 얼굴을 보거나 간단한 대화 정도가 가능하다 하시는 교인이나 교회나 공회가 있다면 답변자의 불가피한 일정이 아닌 한 최대한 바로 가서 뵙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최근 몇 년간 한국에 나와 계셨던 목사님도 답변자 개인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모든 것이 틀리고 맞지 않는 분이나 그 분이 죄 되는 것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답변자로서 마치 전체 공회들이 볼 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가서 뵙고 최선을 다해 원하는 것을 해 드렸습니다. 마찬 가지로 부공3이라고 표시한 교회라 해도 답변자가 알아서 피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먼저 멀리서 지켜 보지 그 근방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답변자 전화 한 통화나 얼굴 한 번 보는 것으로 상대의 인생과 방향이 바뀔 정도라 해도 상대가 원치 않는데 또는 공회의 모임 성격에 맞지 않는데 무슨 목적을 위해서 접근하거나 또는 모였으니 무조건 모인다는 그런 행동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3. 부공3
일반적으로 부공3은 덩치가 작지만 내실과 내부 단결력은 철통 같다고 알려 져 있습니다. 잘못 알았습니다.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살아 온 것은 사실이나 부공3 목회자들은 설교록 출간에 필수적인 연락이나 교회 일에 연락하지 않으면 안 될 사항이 아니면 처음부터 몇 달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몇 년에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습니다.
공회의 모임 원리는 '유사 회집'입니다. 일이 있을 때 모입니다. 일이 없지만 목회자들이 보고 싶고 궁금하니까 일단 모여 보자는 식이나 아니면 장로교의 법적 요건 때문에 모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마음 속 깊이 배울 것이 있어 따라 온다거나 이견 없이 모두 순종하겠다면 지도자 위치에도 서고 사회도 보고 하지만 하나의 이견을 두고 아직 확정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 마음 속에 그 부분이 깨끗하게 해결 될 때까지는 주님 오실 때까지라도 일 없이 만나는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부공3은 필요할 때는 가장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이고, 일이 없거나 약간의 이견이라도 있으면 몇 달이 아니라 보통 몇 년이라도 아무 연락 없이 각 교회 단위로만 존재합니다.
백 목사님 사후에 백태영 목사님께 공회는 이런 것이라고 설명을 많이 드렸습니다. 대구공회 핵심 지도부들께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일도 없는데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모여야 한다면 이미 썩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께 붙들려 옆 돌아 볼 시간이 없어야 목회자입니다. 물론 교인들은 신앙이 어리니 이런 세계를 모를 수 있고 그런 교인들은 전도 차원에서 또는 심방 차원에서 주일학생 상대하듯 하지만 어느 정도 신앙을 아는 교인이라면 그리고 목회자라면 이 노선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천하 만사를 의논하고 결론을 짓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때는 만사를 제쳐 놓고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깨닫는 것이 다르면 그 자리에서 일단 중단하고 각자 다시 상대의 생각을 놓고 하나님 앞에 어느 것이 옳은지를 살펴 결론이 날 때까지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단체를 공회라 하고 이런 공회를 교회라 하고 이런 교회만 교회고 이런 교회가 아닌 교회들은 지방교회의 표현을 빌자면 교파 교회니 실은 교회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지방교회는 그런 표현을 하다가 오해를 많이 받은 듯 하고 공회는 그런 표현은 객관성에 문제가 있어 외부적으로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4. 최근의 부공3
어떤 분은 자기 근신을 위해 오랜 세월 함께 하지 못하겠다고 하신 분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결석 3회면 주의를 준다는 그런 식의 규정을 가지고 있으나 공회는 아예 그런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부족을 깨달아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 본다면 그 분이 돌아 가실 때까지 그렇게 해도 신령한 것이고 그 중심을 공회적 신앙이라 보지 우리 회를 우습게 알았다는 식으로 그리 보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공회가 전도 부흥을 위해 너무 교인들의 철 없는 요구를 많이 받아 주고 있는 것은 탈선이 아니냐는 입장을 가진 경우도 있는데 이런 자세는 교회를 교회답게 붙들어 주는 공회의 선지자로 보지 공회를 반대하는 좌파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비판이라는 것은 무조건 옳은가? 피해망상증이 있는 분들에게서는 그런 언행을 볼 수 있으나 공회는 그런 것을 초월한 세계이니 어떤 종류의 비판이라도 나를 고치고 살피고 조심 시키는 선지라고 일단 보되 다만 성경과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라도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판이 있는 경우 그 비판이 과연 사실이며 옳은지 또는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면밀히 살피는 편입니다. 아직까지는 사람으로 잠깐 실수를 하는 정도는 있다 해도 부공3은 이권을 위해 노선이나 교훈을 떠나거나 양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모일 필요도 없는데 너무 자주 모이지 않는가? 라는 이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답변자가 사회를 서고 잠깐이라도 한 달의 전체 교회 형편을 살피는 일을 두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교회 상황은 원하는 대로 공유할 수 있으며 답변자는 이 곳에서 보다시피 백 목사님의 설교 자료가 많아서 파악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안내하는 정도이니 모여서 배우고 그럴 정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절대 가치, 이상의 실현, 완전의 목표
이런 개념은 백 목사님께 배우기 전에는 말로만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실제 지난 25 년을 걸어 오며 그 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비록 부족한 면은 많으나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 노선은 성경이 말하고 신학이 추구한 절대 이상의 완전 세계를 가질 수 있음을 체험하여 늘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전체 공회 교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입니다.
>> 양성생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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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부공2와 대구공회는 일사분란하게 잘 모인다고 합니다. 서울공회는 수 년 동안 거의 모임이 없다고 합니다. 총회 한 번만 모이는 정도라 합니다. 부공3은 가장 이상적으로 잘 모이고 있다가 최근에는 몇 달간 모임이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 모임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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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는 매년 3월의 총공회와 매월 첫주의 교역자회가 정체성을 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공회는 '총공회'를 '총회'라고 명칭까지 변경하며 공식화까지 했기 때문에 다른 장로교 교단들의 연1회 총회 모임을 모델로 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부공3은 총공회의 공회성을 가장 강조하고 견지하는 모임인데 총공회로 모인 것은 한 번도 없었던 것같고 최근에는 교역자 모임도 장기적으로 갖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