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표 기도 2. 예배 전반의 성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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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3 00:00
1. 지도자의 대표기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소와 마음을 모두어 하나님 앞에 대표로 기도한 경우는 민11:2, 21,7 등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사무엘의 미스바 기도도 삼상7:5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왕상8장에서는 솔로몬이 전체 이스라엘 앞에서 대표 기도한 내용이 자세합니다. 특히 스8장과 느8장에 나타 나는 모습은 공회가 1975년 5월 집회 이후로 특별하게 주목해 온 구약의 에스라를 통한 회개 모습인데 이 문답에서는 그 에스라의 모습 중에 이스라엘 전체 앞에 대표로 예배를 인도하는 모습이 있고 하나님 앞에 대표 기도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에스라의 기도도 있고 백성의 대표 기도도 있습니다. 오늘까지 이어 져 내려 오는 예배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2. 질문에서 '예배의 근거와 모습'도 소개합니다.
느8장 4절 이하에서 때에
- 예배 인도자: '학사 에스라가'
- 강단 설교자: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 대표 교인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 성경과 봉독: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 성경적 설교: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다 깨닫게 하매'
구약은 제사 제도의 형식을 엄하게 지켜 예배를 드릴 때인데도 신약 우리에게 미리 구약의 제도 속에 담아 주신 은혜의 말씀 생활과 이를 위한 신약적 예배 모습을 보였으니
- 모두 한 자리에 모임이 있고
- 예배 인도자가 있을 수 있고
- 모든 가르침은 성경이 근거고
- 성경을 해석하여 가르칠 수 있고
- 그로 인해 교인들이 깨닫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참고할 것은 성경에 있는 것은 그대로 하라는 것도 있으니 성경 말씀을 근거로 중심으로 그 것만 가르치는 것은 무조건 따라 해야 할 일이고, 성경에 있으나 그대로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것도 있으니 성경을 외우는 설교자가 성경책을 펴지 않고 외우고 설교한다면 잘못인가? 이 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성경을 펴고 낭독하는 것은 그 모습을 달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창조와 같은 것은 성경에 기록해 주셨다 해서 오늘도 우리 현실을 우리가 창조하는 것은 망발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조를 할 수는 없는데도 그 창조를 읽으며 오늘 우리가 알고 깨달을 것을 찾아야 합니다.
대표 기도와 예배의 여러 모습을 성경에서 잠깐 살폈습니다. 어떤 것은 그대로 해야 하고 어떤 것은 그렇게 하면 좋고, 어떤 것은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 면을 모르고 성경에 있는 기록만 빼다가 자기 주관만 관철하려 하면 문제가 참으로 많아 집니다.
3. 공회의 경우
에스라의 경우는 구약은 물론 신약의 사도들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 되는데 구약으로 갈수록 형식과 모양이 조금 강조 되고 신약으로 올수록 점점 형식과 순서는 간단해 지고 내용 중심으로 전환 됩니다. 바울을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의 예배에서도 사도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해석하고 설명하며 모인 무리들이 듣고 이치를 깨닫고 그런 가운데 성령이 각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각자 자기가 회개하고 각오할 바를 알게 하시고 그 과정에서 감화와 감동의 결과 뜨거움이 용출 되는 것이 보입니다.
공회 예배는 이런 전반적 모습을 근거로 삼아 형식과 절차는 최소화 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임' '인도' '말씀' '깨달음' '은혜'로 이어 가는 내용에 주목하여 오늘에 이르는 공회의 예배 모습을 갖게 되었으며 이런 모습은 초대교회나 오늘이나 언제나 성경과 성령에 붙들려 바로 나가는 교회들에게서는 쉽게 발견 됩니다.
- 모임
그 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힘쓰라 하신 말씀과 신앙의 본능상 교회라는 것은 저절로 교인들의 모임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모든 가정과 사회 생활의 한 중심에는 교인의 모임인 교회와 예배를 둡니다. 각 교회가 신앙에 필요하다고 정한 예배 시간들은 대개 1 주일에 11 회 정도이며 타 교회들과 공회 예배를 비교한다면 이미 타 교회들은 예배 모임 자체가 동호인 모임 정도가 되어 바쁘면 빠지게 일 없으면 모여 함께 하는 정도이고 공회 교회의 예배는 예배를 위해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입니다.
- 인도
장로교는 의사처럼 설교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강도사라야 강단에 세우고 지방교회를 비롯한 형제 교단들은 누구나 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다가 신앙의 지도자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할 정도에 이르고 있으나 공회는 주일학생이라도 실제 그 강단에 세워 말씀을 증거할 상황이면 당연히 그렇게 한다는 점에서는 형제 교단과 지방교회보다 더 강하게 성령의 인도를 찾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주관과 발언하고 싶은 성향이 어지럽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은 늘 조심하면서 그 교회에 주로 세운 지도 위치의 교인이 있는지 살펴 교회를 책임 진 인도자를 세우려는 노력 역시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회는 대체적으로 인도자를 세우나 그렇다고 인도자로 세운 그 자체가 마치 대통령이나 공무원 임명처럼 고정 권익으로 주어 지는 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잘못 되었거나 더 나은 사람이 있으면 교체합니다. 다만 만사를 조심하기 때문에 겉 모습은 장로교 일반 목회자 원리처럼 운영 되지만 내용적으로는 지방교회처럼 또는 형제단처럼 그런 성령 인도의 현실적 수종이 들어 있습니다.
- 말씀
공회는 성경에서 시작하여 성경으로 전부를 삼고 성경으로 끝 내는 곳이며 이런 면은 너무 철저하여 아직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신학 원어 참고 서적 타인의 주장을 소개하는 경우를 일체 배제하고 성경 하나를 들고 그 시간 주님의 인도를 찾을 뿐입니다. 이 면은 너무 특별하고 평소 잘 아는 바이며 실제 다른 곳과 따지려 든다면 따질 것도 입증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여 이 정도에서 생략하겠습니다.
- 깨달음
성경을 찾아 우리가 배우고 깨닫고 고치고 새로 각오할 것을 하나씩 심어 주는 설교를 우리는 설교라고 하기 때문에 공회 설교는 사경입니다. 또한 증거하는 이가 말씀으로 살아 본 경험으로 전하기 때문에 증거라 하기도 합니다. 말씀에서 떠나지 않기를 심지어 신학까지 원어까지 세상 어려운 전문 분야를 다 배제하고 누구든지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생활과 자연 속에 쉬운 것을 자연계시로 받고 그리고 오직 말씀 하나만 들고 자기 속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구할 뿐입니다.
- 은혜
이 모든 과정에서 세상이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의 것을 배우고 깨닫고 받게 되는 것을 '은혜'라고 하니 주일과 예배와 말씀 속에 은혜를 받았다면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지고 지선의 완전한 것을 받은 것이고 이제 그 것으로 자기의 다음 현실을 또 살아 가는 것이며 이렇게 살게 된다면 믿는 사람은 예배가 바로 되는 순간 이미 자기 세상은 천국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일 것입니다.
>> 높은다리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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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회의 대표기도에 대한 형식과 성경적 근거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