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한 소개를 드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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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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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00:00
1.김영환목사님
남해 북림교회 출신의 49세 목사님입니다.
북림교회에서 학생시절부터 신앙과 충성이 특별했다는 당시 목회자 평가가 있습니다.
우리 진영에는 남해 출신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한결같이 뜨겁고 강한 신앙이 특징입니다.
학교 성적도 우수했고 운동에도 특별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0년대 주일학교 반사 중에서 늘 목회자 후보로 손꼽히던 김정부집사님
그리고 동시대에 서부교회 최고의 주일학교 반사로 유명한 5반 반사가 형님부부였습니다.
집회 때나 서부교회 예배시간에 모든 이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던 기도의 사람
안효일집사님이 김목사님을 아껴 기른 선생님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부교회로 1976년 경 오게 되었고 김효순권사님 구역의 일등 청년이 됩니다. 이후 군생활 3년을 마치고 다시 서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83년 경 목회연구소 전신이었던 서부교회 편집실 직원으로 들어와서 1988년까지 설교록 출간 교정작업을 맡게 됩니다. 1985년경 서부교회 제일의 장로님이신 김기수장로님(/남단에서2/90번/에서 소개)의 둘째 딸과 결혼했으며 부부가 함께 연구실 직원이었습니다. 서부교회 감천분교를 맡아 크게 부흥을 일으켰고 서부교회 주일학교 대표적인 반사와 연구소 직원을 거쳐 1988년 안양교회 김응도목사님 후임으로 목회 출발을 했습니다.
1989년 백목사님 사후 공회의 노선 분립 때 보수노선인 부산공회에 확고하게 섰으나 당시 시무하던 안양교회는 대구공회의 핵심이어서 교회 내 갈등은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연구소 출신의 목회자와 대구공회 핵심 교인들 사이에서 치열한 공회 신앙노선에 대한 토론이 발생되었으며 그 해 겨울 안양교회는 공회 신앙보수를 주장하는 부산공회와 수정노선을 요구하는 대구공회 교인들이 서로 양측 공회 대표를 안양교회로 모시고 토론을 하자고 합의가 되어 목사님 사후 양측 노선이 최초로 공개 토론회를 갖게 됩니다. 일방적으로 김영환목사님의 노선이 옳았다고 증명이 되었으나 이미 서로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한 교회에서 양측이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안양교회는 교회의 개척 당시 수고한 분들과 당시까지 교인의 주력이 대구공회 노선을 주장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김목사님은 소수의 지지 교인들과 함께 '동안양교회'로 개척을 나오게 됩니다. 신앙노선은 옳았지만 교회의 여러 여건과 형편을 고려하여 담임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개척하여 나온 것은 공회 분립과정에서 크게 모범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안양교회를 개척한 후 1990년 시무투표가 있었고 당시 공회 전체 인사이동에 맞추어 부산공회 교학실 직원으로 오게 됩니다. 당시 교학실장은 송종관목사님이지만 그분은 직책만 가지고 있었던 정도이고 모든 사무 처리의 실무는 김목사님이 맡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서부교회는 이재순목사님 후임으로 서영호목사님이 부임하게 되고 서목사님과 김목사님은 서부교회 내에서 같은 김효순권사님 구역 출신이므로 한 분은 서부교회 담임목회자로서 한분은 공회 내 최고 중요한 교학실 직원으로서 오늘의 부산공회(2)를 세우는 중요한 관계와 역할을 갖게 됩니다. 물론 서영호목사님은 부산공회(2)의 존립 이유이고 김목사님은 부산공회(2)가 존립될 수 있도록 가장 헌신한 분입니다. 아마 지금도 부산공회(2)에서 김목사님은 김영채목사님과 함께 가장 중요한 비중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공회 교학실 직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대구공회가 공회 전체 재산에 대하여 소송을 시작하였고 당시 부산공회에서는 이재순목사님이 외형적 대표로, 송종섭목사님이 소송 책임자로, 그리고 김목사님이 당시 조사님으로서 공회의 서류 등 실무자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되고 결국 대구공회를 상대로 많은 소송을 진행하여 전부 승리하게 된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후 전포동교회 이병준목사님 후임으로 이동한 것으로 기억하며 2000년 경에 목사 안수를 받고 지금까지 전포동교회를 맡아 담임목회를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자세한 서류를 봐야 정확한 일시 등을 제시하겠는데 대충의 소개를 원한다고 생각하여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 현재 신앙노선은 부산공회(2)의 최고 핵심부이며 부산공회(2)의 출발시작부터 오늘까지 가장 수고한 분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하겠습니다.
2.서윤호목사님
현 서부교회 담임목회자인 서영호목사님의 동생이며 /초기화면/총공회/자료/인물별자료/8번, 서영호/ 편에서 가족 소개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설명했습니다. 1945년 생이며 부민초등학교 경남중 부산남고 출신으로 한양대 사학과를 1971년에 졸업했습니다. 1975-78년 기간에 합동측의 서울 사당동 총신대 대학원 과정을 거쳤고 1979년 합동측 서평양노회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고 1981년에는 동노회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게 됩니다.
1983.8.26. 서부교회에서 대한신학교를 졸업한 한희숙사모님과 결혼하고 1984.4. 현 봉천교회에 부임하여 22년째 계속 담임하고 계십니다. 1991년 서윤호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사모님은 하와이 국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되어 서윤호목사님에 이어 공회 내에서 형제 목회자 가정에 신학박사학위를 갖게 된 경우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회 신앙에 철저했으나 외부 교단과 연결은 필요한 정도로 가지고 있으며 시력이 극도로 나빠서 거의 장애인 수준이지만 그대신 성경을 거의 다 외우고 있습니다. 아마 현재 공회 내에서 성경을 가장 많이 외우고 있는 분으로서는 김응도목사님과 함께 서윤호목사님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1991년 1월, 서영호목사님이 서부교회에 부임하기 전까지는 공회 전체 목회자들 중에서 답변자와 가장 가깝게 지낸 분이었고 이 홈에서 제공하는 설교록 자료를 성구 별로 표시하는 일로 업무 협조 등이 많았으나 서영호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 문제를 두고 답변자와 서윤호목사님은 입장을 정반대로 가지게 된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기억력이 탁월하여 서부교회 초기 10년 정도의 역사는 현재까지 거의 서윤호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이 홈에서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현재 신앙노선으로 본다면 부산공회(2)의 핵심 이론제공자라는 표현으로 대신했으면 합니다. 아마 부산공회(2) 내에서 신앙과 상황 판단 등 모든 면에서 그분의 발언은 숨은 실력자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