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서부교회 출신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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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서부교회 출신 목회자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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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표적인 서부교회 출신

1960년생으로 기억되며
어릴 때부터 서부교회 안에서만 자라서 목회자가 된 가장 전형적인 분입니다.
모친이 김현찬권사님 구역의 중심 인물인 김옥자집사님이며
부친은 경남고를 거쳐 부산시립도서관장을 지낸 부산의 교육계 원로이며
가족들의 신앙생활을 적극 이해하고 아낌없이 지원한 분으로 고마운 분입니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당시 서부교회 신앙있는 학생들이 밟았던 것처럼
보조반사를 잠깐 거쳐 반사로 활동했고
1970년 1,000명 주일학생이 불과 10년 안에 8,000명대로 수직 상승하던 부흥기의
가장 핵심 반사였습니다.

본인 자신이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충실한 학생으로 성장했고
중학교 진학 후부터 서부교회 제일의 최고 반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서부교회 중심 청년이었습니다.

교회 교인으로 모든 기본에 가장 출실했고 충성했으며
말씀의 은혜를 깊이 받아 묵직한 인격 깊은 곳에 가득 담았던 분이며
집안이 서부교회 내에서 최 상류증이었으나 빈민 반사들과 조금도 이색짐이 없었고
1980년대 초반 부친 차량으로 주일학교 미아찾기 등 업무용에 사용했는데
교회 차량이 한 대도 없던 시절이어서 이 차량이 주일학교 유일의 업무차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신앙성향

600명 반사와 400명 보조반사로 이루어진 1천명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걸쳐 구역제도에 이어 서부교회의 중요한 활동 조직인데
이 조직은 1970년대 배종일총무님이 주도하고 1980년대는 장영목총무님이 잇습니다.
1천명 주일학교를 8천명까지 올려 세울 때는 배총무님이
8천명 주일학교를 백목사님 생존 끝까지 유지시킬 때는 장총무님이 주도했는데
배총무님은 반사 전체를 조직적으로 장악했고 그 조직의 핵심에는
서부교회 출신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배총무님은 1978년 백목사님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고
주변이 이 청년들이 이에 동조하게 되면서 교회 내에 소리없는 문제집단이 발생합니다.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 내부 분위기 때문에 일반 교회의 그런 경우와 비할 것은 없으나
서부교회 내에서 이런 기미가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 놀랄 일이었습니다.
당시 관련된 모든 분들이 현재 수정노선을 택하여 대구공회 서울공회 또는 타 교단으로 이탈했으나
유목사님만 유일하게 현 노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 유목사님은 이 불만 세력의 중앙에 있는 인물로 알려졌으나
그분은 스스로 어느 집단에나 어느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항상 받은 말씀 그대로 살되 현실에 충실한 것이 전부입니다.
적극적으로 대외 의견 표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내온 사람들이 볼 때는 그들과 한편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그분의 깊은 신앙내막을 아는 분들은 유목사님의 하나님 중심 이 노선에 충실한 면을 남다르게 평가했습니다. 이 교훈이 가르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 항상 신중하며 한번 걷는 길은 세월 속에 변치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현재도 부공1에 속하고 있으나 부공1에서 별도의 신앙세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3.목회 준비

대학과 군대를 끝낸 다음 대학교수로 진로를 잡을 수 있는 분이었는데
1985년경 목회를 준비하기 위해 양성원에 입학을 하는데
당시 서영준목사님의 광남교회 개척을 지켜보며 목회길에 늘 마음 속 흠모가 있게 됩니다.
양성원에서 잠시 공부하던 중
앞서 유학을 갔던 서부교회 이진석선생님의 소개를 받아
1986년 당시 미국 세인트루이스교회에서 카브난트 신학과정을 밟고 있던
서부교회 2명의 반사를 이어 신학과정에 합류하게 됩니다.

당시 백목사님은 1970년대 서영호 송용조목사님 등이 공회의 신학자가 되어
양성원 강의와 함께 공회 노선의 외부 방패가 되기를 기대했으나
1980년대 초반 각각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입국한 이후 그런 기대를 버리고
서부교회 젊은 반사 3명에게 다시 이 노선의 신학 분야를 부탁하게 됩니다.

유정현목사님에게는 무엇을 맡겼는지 기억이 없어 일지를 찾아봐야겠고
유목사님의 어릴 때 친구였던 또 한분의 반사인 이진석선생님에게는 성경신학
그리고 이 곳에는 조직신학을 맡겼습니다.

1986년 세인트루이스로 온 유목사님은 주일학교 반사와 신학공부를 동시에 했고
1988년 11월 세인트루이스 교회 이종옥목사님이 시무투표에서 거부되자
교회를 맡아 신학공부와 목회를 함께 하게 됩니다.
원래 1989년 5월에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세인트루이스 담임목회 때문에 1991년까지 약 6년 정도 미국생활을 하게 됩니다.


4.세인트루이스 목회

정식으로 목회자가 된 것은 1988년 시무투표 이후지만
1986년 세인트루이스에 갈 때부터 사실상 교인들에게 그분은 목회자와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노선에 충실하고 인품과 모든 생활 하나까지 빈틈이 없었으며 증거하는 말씀에 은혜가 넘쳤기 때문에 세인트루이스교회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로 칭송받았고 흠이없다는 평가를 받은 분입니다.

오랜 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항상 주일 저녁에 산기도를 지킨 경건
귀국 후에 다른 분들의 귀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지켜진 순수함
그분의 장점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1989년 여름 집회 때문에 일시 귀국했을 때 백목사님이 직접 중매를 서서
창동교회 장중권장로님 오숙자권사님 맏딸 장원정사모님과 결혼하게 되며
목사님께서 당시 곧 세상을 떠날 채비에 바쁠 때이므로 결혼의 일정도 아주
특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원정사모님의 동생은 백목사님 사후 목사님 첫딸의 큰 아들인 최창근(Paul Choi)과
결혼하게 되는데 세인트루이스교회 목회를 통해 인정받은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5.귀국과 개척

1991년 서영호목사님의 서부교회 부임 직후 귀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목사님은 즉시 유목사님을 교회 직원으로 임명했는데
당시 서부교회는 김효순권사님이 총괄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목사님의 모구역인 김현찬권사님의 도움이 절실했으며 유목사님은 서부교회 모든 분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 반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목사님과 대치 중인 4층 중간반과 당시 4층이 속했던 부공1에서는
유목사님이 서목사님에 의하여 교회 직원으로 임명되면 장차 반대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서부교회 밖으로 개척을 하도록 적극 권유하게 됩니다.
부공1에서 보면 반대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제거했다고 좋아했고
본인은 원래 서부교회 내부 직원과 같은 편한 목회보다는
서영준목사님과 같은 개척의 험난한 길을 사모하였기 때문에 개척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답변자는 유목사님과 목회연구소에서 이 일 때문에 따로 만나서 유목사님의 신앙노선 때문에 한번 대화할 자리를 갖게 됩니다. 답변자는, 유목사님이 서부교회 직원 임명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과 영도에 영남교회로 개척하게 된 일을 두고 유목사님의 중심은 깨끗했으나 결과적으로 노선 변경이라는 문제가 생겼고 향후 이런 일이 번복되면 그때는 본인이 이번처럼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 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공회 내 노선 문제를 두고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겠다고 발언을 했습니다.


6.학장교회 부임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되는 시무투표 때문에 학장교회 후임문제가 생겼고
부공1과 부공2는 학장교회 쟁탈전을 치열하게 벌이게 됩니다.
부공2에서는 김영채목사님 등이 중심이 되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부공1에서는 이재순목사님과 구장로님 등이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당시 복잡했던 내부 상황은 별 건이므로 여기서 소개할 내용은 없고
결과적으로 유정현목사님으로 후임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양측이 서목사님 불신임 문제로 끝을 볼 자세로 대치하고 있었고
유목사님은 향후 지금까지 부공1의 중심 목회자로 곳곳에서 활동했고
양측의 극단적인 투쟁 현장에서도 늘 그분이 발견된다는 소식을 듣고 있으며
그럴 때마다 그분의 신앙과 내적 중심을 알고 동시에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그분의 과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양측의 싸움에 동원된 다른 목회자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아직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2004년 11월의 인천 인산교회 시무투표 문제가 크게 터졌을 때
부공1에서 이재순목사님을 비판하고 공회 노선에 충실한 길을 가자는 운동이 있었다고 들었고
당시 유목사님도 이목사님의 노선을 분명히 비판하고 반대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이번 05년 8월 27일, 부공1의 추도예배에 '학장교회'차량이 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분의 노선이 아직 어떤 길을 잡고 있다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7.이 홈의 평가

공회 노선 전체 목회자들 중에서 너무 아깝고 아쉬운 분들이 약 3분의 1에 이를 만큼 공회 내에는 좋은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내심 서부교회 앞날의 후임 제일순위로 추천하고 싶은 분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한 사람의 순간을 평가할 때 그가 가진 경건과 실행이 점수로 나타나겠지만, 그 사람의 걸어가는 노선을 볼 때 소속을 알 수 있고, 소속이라는 것은 자신의 걸어가는 방향 전체를 나타내는 가장 간단한 지표입니다.

질문자가 보신 대로 부공1 다른 교역자들과 항상 함께 있어도 항상 다른 세계를 가진 경건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부공1 내부에 있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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