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은 송목사님과 탈퇴노선을 함께 했고, 4층 노선은 당시부터 투쟁한 노선
| 설명 |
|---|
yilee
0
2
2005.09.02 00:00
1.사과열매를 보고도 복숭이라고 우기는 분들
2층 서부교회와 4층 서부교회를 두고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더 점잖은지는 이 글에서 살펴보지 않겠습니다.
어느 쪽이 민족통일을 위해 반미운동에 더 나서는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번 글을 두고
2층 서부교회와 4층 서부교회는
그들이 각자 걸어왔던 과거 오랜 세월이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나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는 열매라는 단어로 쉽게 파악합니다.
2.이미 20여 년을 자라나온 나무들
현 2층 서부교회의 20여 년
1987년 송목사님의 노선 비판과 탈퇴 당시
2층의 머리가 되는 김권사님은 송목사님 지지측의 서부교회 내부 내응세력이었고
서목사님은 송목사님보다 앞서 탈퇴할 것으로 보았으나 송목사님과 결단의 시기를 달리하여
오늘에 서부교회 담임목회직까지 오른 분입니다.
이 두 분을 2층 교회의 주인과 경영인으로 삼고 있으므로
2층측 서부교회는 백목사님 생전 의미로 말하면 '서부교회'가 아닙니다.
가만히 들어온 서부교회이니 곧 서부교회 탈퇴측입니다.
현 4층 서부교회의 20여 년
1987년 송목사님의 노선 비판과 탈퇴 당시
현 4층측 서부교회의 지도자인 백부장선생님은
서울 현장에서 송목사님의 노선 탈퇴를 맞서 최선의 투쟁을 했던 분입니다.
당시 서부교회 내부의 내응세력이 김권사님 중심으로 퍼져가던 것도 막았으니
현 서부교회 2층측 지도부가 볼 때 송목사님의 노선 탈퇴문제에 관한 한
4층측에 대한 원한은 적지 않습니다.
4층의 실수와 흠점이 얼마나 되는지는 2층측이 더 잘 알겠지만
뿌리로 이어지는 종자구별을 한다면 4층이 백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입니다.
3.오늘 세상상황을 자연계시로 보며
100백만 중공군을 풀어 이 강토를 피로 물들인 중국이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금쪽같은 자기 자식들을 수만 명 죽게 한 미국보다
더 가까운 나라라고 세상 통계가 발표되는 오늘
흑이 백이 되고, 백이 흑이 되며
매국이 애국이 되고, 애국이 매국이 되는 오늘 세상 사회를 보며
하나님께서 이 노선 신앙인들에게 무엇을 알리시는 것일까?
송용조라는 공회 노선 배역의 이름이
서부교회 내부 행사에 축도를 맡아 서부교회 신앙인들의 축복을 맡았으니
중공과 미국이 뒤집어지는 것은 돈에 따라 그럴 수 있고
매국과 애국이 뒤집어지는 것도 늘상 세상이 그런 것이지만
신앙까지도, 그것도 공회 신앙노선까지도 그렇게 된다면 이는 천지를 뒤집는 것이니
최근 세상 그런 모든 기괴한 일들이 바로 서부교회와 공회 노선 내부를
표시하고 있는 자연계시였습니다.
4.신사참배를 주도한 죄와 동참한 죄
오늘 서부교인들과 공회목회자들이
그런 줄을 몰랐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책임을 묘하게 벗어나고 있으며
이제 몇 번 계속 그렇게 하더니 습관이 되어서 아주 예사로 써먹고 있습니다.
재독을 정죄하던 총공회에서 자기가 무엇 때문에 손을 든 줄 몰랐다는 분
엉겹결에 누가 고함을 질러서 그냥 그랬다는 분
공회 지도부의 협박 때문에 어쩌다 보니 그랬다는 분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야단하던 군중 속에 들어 있을 사람이며
바울을 치려고 모인 군중들이 왜 모였는지 모르고 돌아갔으나 죄인의 회중에 들게 된 사람입니다.
아무나 축도를 하면 아무나 고개를 숙이는 줄로만 아는
서부교인들과 부공2 목회자들의 수준과 자세는
오늘까지 공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매 사건에 늘 깊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저질고는 훗날 그 일을 검토하자 하면 극구 피하기만 합니다.
신사참배 사건 때 주도한 사람은 몇이지만 그 나머지가 일을 냈습니다.
이 노선이 고신에서 배제될 때 주도한 사람은 몇이지만 입을 닫은 사람들도 훗날 고신의 이름에 매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5.송목사님의 부공1 내부 위치를 질문했습니다.
부공1의 중심인 2층 서부교회 강단의 원래 주인이 될 분이었습니다.
과거 양성원에서 송박사님과 서박사님이 함께 강의할 때
신앙과 인격과 실력과 감화 등 모든 면으로 송목사님이 월등했습니다.
서목사님은 단순히 성적표기란의 점수가 좀더 나은 정도였습니다.
송목사님은 판세를 재빨리 읽고 먼저 조처했다가 지금 양의문 교회 신세이고
서목사님은 송목사님만큼 실력이 미치지 못해서 그대로 있다가 출세한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둘은 같은 노선이며 같은 종자라는 것이
그동안 모든 20년 걸어온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6.서목사님 시무투표를 그냥 시무투표로 본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김권사님 구역은 그 구역끼리 모이고, 4층측 교인들은 그들대로 모여
선호도에 따라 목회자를 투표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미 백목사님 생전부터 2층과 4층은 신앙의 종자가 달랐습니다.
과거 1988년 사직동 탈퇴를 두고 극단적으로 투쟁했던 사이입니다.
그리고 시무투표를 통해 필연적으로 지도부의 의사가 반영된 것입니다.
시무투표에서 현장의 말 하나 행동 하나를 두고 싸운 이들은
양쪽 지도부가 가고 있는 방향이 공산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 모르고
눈에 보는 것만 가지고 악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시무투표는 바로 오늘의 이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양 지도부의 노선투쟁이 시무투표라는 기회를 통해 분출되고 있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