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이 평생 살며 가장 주관의 어두움에 빠졌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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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평생 살며 가장 주관의 어두움에 빠졌던 시기

설명
yilee 0 37


1.맛디아를 선출하는 행1장의 시점

①사도들의 신앙 암흑 절정기였습니다.

행1장의 사도들은 원래 신앙이 없던 그들로서 최종 최고의 신앙암흑기를 약 10일간 맞고 있었습니다. 죽어도 살아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것이 약 40일 전이었으니 행1:3의 기록이 그것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승천까지를 직접 본 것이 바로 행1:11까지였습니다. 가장 신앙이 깨어있고 확신에 차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다락방에 120여명이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던 예수님까지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보았고 약속의 성령은 미래의 것이었으며 현재 예루살렘에는 그들을 죽이려는 무리들로 득실거렸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도 신앙이 없었던 그들인데 이제는 예수님이 완전히 없어진 상황이며 그들에게 볼 수 없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고차원의 신앙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②오순절 성령을 받기 전입니다.

약속한 성령은 행2:1부터였습니다. 행2:1의 성령 역사는 특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나타났습니다. 서서히 밝아지는 성령의 역사도 있지만 행2장의 성령역사는 그 당시 그렇게 갑작스럽게 닥쳤고 또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기록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어 그렇게 역사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고 나서는 제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함을 가지게 되고 성령의 충만으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도 제자들이 잠깐씩 실수할 수도 있고 주저할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행2장 이후의 제자들과 행2장 이전의 제자들의 성령은혜와 동행역사는 극과 극을 이룹니다.


2.맛디아를 선출한 것은

①성령의 인도가 아니라 제자들의 어두운 주관이었습니다.

사도는 성경을 기록하는 권세를 가지는데 사도 중에 성경을 제일 많이 기록한 분은 바울입니다. 11명의 숫자에 하나가 더해져야 하는 숫자는 맛디아가 아니라 바울이 정답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착각이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의 신앙도 어렸고 성령 대신 주관에서 살았으며 또한 결과적으로도 성령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②아직도 제자들은 인간운동에 붙들려 있음을 보이는 사례였습니다.

성령이 깨닫게 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눈으로 부활과 승천을 보고도 여전히 땅에 속했고 육에 속한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있는 것이 영원히 이어지는 볼 수 없는 세계는 그들에게 없었고 12명으로 정원이 차야할 조직에 1명이 결원된 것만 생각하고 이것을 채워야 마음이 든든한 그런 수준의 세상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서부교회를 두고 떠나야 할 시점이 이르렀을 때 백태영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누구를 세워도 세워야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건의하며 불안해 했고 목사님은 하나님이 세울 사람을 주면 세우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공중분해가 되든 어떻게 되든 자신이 할 일은 세우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눈뜨고 죽어도 살 길을 주지 않으면 죽는 것이 신앙이며 눈뜨고 교회가 깨어지는 것을 봐도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면 목자를 세우지 않고 흩어지든 또 다른 길을 주시든 그냥 지켜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백목사님의 신앙은 그런 수준이었지만 오순절 직전이며 부활승천 직후의 제자들은 성령의 가르쳐 주시는 것은 어두워 보지 못하고 그들의 인간 생각에서 조직원을 충당하는 세상조직운영원리로 인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계모임이 아니고 교회 인선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행1:16에서 성령을 거론하기도 했고 또 성구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21절 이하에서는 사도후보 자격으로 초대교회의 역사와 전통과 인간체험과 경력까지 두루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성령은 행9장에서 바울을 사도로 지목하고 계셨고 그를 11명의 수에 가입시키되 행1:21에서 제자들이 내세운 조건과는 정반대되는 부자격자 무자격자를 불러 사도로 세웠습니다.


3.윗글 반론에서 '사도의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다'는 성구 인용은

윗글 반론하신 김목사님께서 유다가 불택자라는 마지막 성구 인용을 하시면서
행1:25-26 말씀에서 표현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하신 말씀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 교리에서는 불택자로 분류하는 기준이지만 우리 노선은 이 표현 때문에 오히려 건설구원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각으로 살피게 됩니다.

홍포입은 부자와 열처녀 비유를 일반 교리와 전혀 반대로 해석하며 설명할 때마다 우리는 기본구원의 여부를 나누는 기준이 바로 인간의 행위가 개입되는 사안이냐 아니냐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윗글 반론 목사님께서 가롯유다는 사도의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하셨는데 가룟유다가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건설구원 문제로 먼저 살펴보는 것이 공회의 교리 자세입니다. 즉 윗글 목사님의 행1:25-26 인용은 유다의 불택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유다가 택함받은 것이 아니냐는 쪽을 주장하는 분들이 그들의 주장을 옳다고 제시할 때 사용할 성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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