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 교회

공회내부 문답      

세인트루이스 교회

설명
yilee 0 7


1.세인트루이스 교회

①담임목회자

1978-79년, 백태영목사님
1980-83년, 송종관목사님
1983-84년, 담임목사님 공석 (외부 목사님 초빙 설교)
1984-88년, 이종옥목사님
1988-93년, 류정현조사님
1993-93년, 이병철목사님
1993-현재, 담임목사님 공석 (외부 목사님 초빙 설교)


②이병철목사님

전임 류정현조사님이 1986년 신학공부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에 왔다가 1988년 이종옥목사님의 불신임 이동으로 담임목회를 하고 있었으며 1992년 자신의 신앙 유익을 위해 귀국을 결심하자 후임이 거론되었고 그해 9월에 류조사님은 김영환 이은수 이병철 등 3명의 목회자를 후임으로 추천하고 교회는 이병철목사님을 청빙했습니다.

기억으로는
1993년 3월경 비자가 나오고
4월에 세인트루이스 부임한 뒤 3개월 시무했으며
7월에 귀국했습니다.

귀국 후 12월에 김영채목사님을 청빙하는 청량리교회에 김목사님이 이병철목사님을 추천하고 교회와 본인이 이 목사님 부임을 결정했으나 공회 내부 당시 여러 요인들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 그후 2001년 4월에 사직동교회로 부임했고 2004년 2월에 현 청량리교회로 이동했습니다.

이병철목사님의 석사와 박사학위 과정은 부산공회2 홈에서 제공하고 있는 논문의 내용에 나온 정도밖에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박사학위의 기간 등에 대하여서는 '신학'계의 학위 과정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느 한 기준을 가지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석사과정을 하면서 미리 박사과정의 논문과정 이외의 과정을 동시에 공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세인트루이스교회

①미주공회와 최재현

총공회 미주개척 역사는 '최재현'목사님으로 시작됩니다.
원래 경남 합천 사람으로 모친이 일제 때부터 굉장한 신앙가였는데 해방 후 백목사님 집회설교에 은혜를 받고 개명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최목사님은 개명교회 제일 충성된 청년 중 한 사람이 되고 목회자로 기르기 위해 백목사님은 자주 설교를 시켰고 초기 개명박해 역사와 신앙역사를 다 겪게 됩니다.

1947년 고신 출발을 준비하던 진해 첫 강좌에 고신 전체에서 63명이 등록하게 되는데 이 중 3명이 개명청년들이었습니다. 최목사님은 그 중 한 사람이었고 이후 고려신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다가 1950년대 말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때 백목사님은 고신에서 제명되기 전이었습니다.


②목사님 자녀들의 교회 개척

백목사님이 1959년 고신에서 제명되고 서부교회가 독립의 길을 걷게 되는 초기에 이말출 김효순 김현찬 나인숙 등 4명이 주축이 되어 백목사님 배척운동이 서부교회 내에 발생하고 사택 사례 지출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심지어 자녀들의 결혼까지 방해하여 당시 나이로 30세가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백목사님은 자신의 가정 가족일이므로 이 문제를 두고는 달리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미국에 있는 최재현에게 큰딸을 시집보내게 됩니다. 이후 큰딸의 초청으로 둘째딸과 둘째 셋째 아들이 차례로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현재 서부교회와 공회 교인들은 백목사님의 자녀들이 대부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을 두고 그 자녀들이 신앙이 없어 미국으로 갔다고만 알고 있지만, 이 일을 두고는 서부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문책을 받게 될 사안입니다.

원래 공부를 마치면 귀국하려 했던 최목사님은 사모님의 반대로 현지에서 사업을 하게 됩니다. 무역, 여행사, 식료품사업 등으로 큰 돈을 벌었고 이 돈은 집회연보나 서부교회 연보 등으로 크게 사용되었습니다. 1970년대까지 세인트루이스에서 타진영 교회를 다니고 있던 목사님 자녀들은 공회교회 개척을 하게 됩니다.


③세인트루이스교회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의 중부에 위치하며 미국 장로교 보수측의 성경신학에 유력한 카브난트신학교가 있어 이곳에 교회가 개척되면 여러 면으로 편리한 점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백태영목사님을 미국으로 파송하던 당시 백목사님은 세인트루이스교회를 공회 목회자들의 미국 목회경험과 신학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했고 미국에 가도 신앙을 안심할 수 있을 정도의 목회자들은 전부 한번씩 해외경험을 갖게 하려 했습니다.

백목사님은 목회없이 신학공부만 하는 것을 아주 비판하고 있었는데 하물며 미국처럼 먼곳에 떨어져 혼자 있게 되면 신학공부라는 경험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완전히 버리게 된다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세인트루이스교회는 그 교인들이 이 노선에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신학과 목회를 동시에 하면서 공회 목회자들이 경험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였습니다.

홍순철 전성수목사님은 도미절차를 밟는 도중 돌아가셨고, 송종섭 장렬목사님은 오랫동안 추진하다가 비자거부 등으로 뜻을 접었고, 김응도 신용인목사님 등도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이분들의 영어실력은 일반 교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수준급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요즘 동남아인들이 우리나라에 불법체류를 하듯 미국에 불법체류하는 사례가 폭증하면서 서울의 미대사관은 '교회' '목사' '신학'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무조건 비자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교회는 백태영목사님에 이어 송종관목사님 그리고 이종옥목사님까지 연이어 초청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교단 목회자들은 미국에서 불법체류로 눌러앉은 경우가 없고 모두 다 귀국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④이민목회와 신학생

초기 세인트루이스교회는 공회에게 신학공부나 해외경험 차 잠깐 왔다가는 목회자들을 위해 좋은 여건이 되었으나 교회 자체적으로 본다면 가족없이 임시 거쳐가는 목회자들이 계속되니까 크게 부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3년 송종관목사님 후임부터는 가족까지 함께 이주할 수 있는 목회자를 추진했고 신학공부를 시킬 사람은 목회와 별도로 파송하게 됩니다.

1984년 5월에, 이종옥목사님은 이주 목회자로 파송되었고 이보다 한주간 앞에는 신학목적으로 답변자가 먼저 가게 되었습니다. 이종옥목사님의 이주가 성사되지 않으면 목회를 겸직하게 되지만 정식 비자가 나오게 되어 답변자는 공회 교회에서 유학하는 방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에는, 이진석선생님이 생물학 전공으로 펜실베니아대학으로 유학을 갔다가 1985년 1월 카브난트로 전공을 바꾸어 신학공부차 오게 되었고, 1986년에는 유정현선생님까지 합류하게 됩니다.

당시 백목사님은 3명의 학생에게 '조직신학' '성경신학' '주경신학'을 각각 맡겨 20세 이상 차이가 나는 송용조 송종관 서영호목사님 등을 대체할 준비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세인트루이스 강단은 한국에서 직접 이주해 온 공회 정통 담임목사님과 서부교회 주력 반사로 있던 3명을 주일학교 반사로 갖게 되어 비록 서부교회 교인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서부교회식 대화와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답변자의 경우, 당시 경험은 한국의 수십 년 후 변화될 환경에서 서부교회주일학교는 어떤 상황을 맞게 될 것이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류정현목사님은 1988년 불신임으로 공석이 된 교회 담임을 하게 되고, 설교와 기도와 생활 등 모든 면에서 미주사회에 주류로 자리잡은 수준높은 그 교회 교인 전체에게 절대적 존경을 받게 되며 미국에서도 국내 총공회 목회자의 정상적인 목회를 잘 보여준 가장 훌륭한 목회자가 됩니다.


⑤현재 세인트루이스

현재 세인트루이스교회는 주일오전은 타진영 목회자를 주일설교자로 초빙하고 있고 그 외 시간은 재독으로 예배를 보며 목회는 교회의 주력 교인들이 함께 담당하고 있습니다. 담임목회자가 공석이 된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주일오전 예배를 타진영 목회자로 설교를 하게 되면, 이는 공회 노선이 아닙니다. 어느 과도기 잠깐 그럴 경우는 각 개교회별 상황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만,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은 공회 노선 이탈입니다.

물론 교회로서는 공회의 내분과 목회자들의 이합집산 등을 보며 차라리 교회 교인들끼리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를 공석으로 두는 것은 노선과 상관이 없으나 주일강단을 계속해서 타 진영 목회자가 서게 된다면 그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공회의 근본 노선이 금하는 일입니다.


3.공회 내부인의 외부 신학과정

과거 목회연구소장이 했던 말 중에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랬든지 저랬든지 해외 유학을 갔다온 목회자들은 실력에 상관없이 결국 큰 교회를 맡게 되고 교인들이 알아주게 되며 공회 내에서 갖가지 중요 위치는 다 차지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송용조목사님의 경우는 신학실력 외에도 목회자로서 아주 실력있고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영호 송종관목사님은 부임했던 목회지마다 늘 목회 실력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회 전체 사역에서 양성원 교수직을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어 큰 교회들을 맡게 했습니다. 현재 답변자가 맡고 있는 교회도 주소는 비록 시골이지만 교세나 교회 내용은 공회 내에서 손꼽던 좋은 곳입니다.

누가 실력으로 큰 교회를 맡고 있는지 누가 신학경력 때문에 단물만 빨아먹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면 큰 논란이 될 것이고 끝없이 이어질 변론만 나올 것이어서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해외 유학 경험을 가진 이들은 '양성원 교수'로 또는 '좋은 교회'를 맡아 목회자로서 명예와 돈과 여러 가지 좋은 여건들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백목사님 생전에도 백목사님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해외 경력을 쌓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던 이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백목사님의 대인지도는, 본인들이 일을 저질러 놓으면 더이상 막지 않고 그렇게 된 결과를 또 하나의 새로운 현실로 상대하고 지난 과거는 그 사람 스스로 안고 가게 하고 목사님으로서는 앞날을 보며 지도합니다. 이런 면을 간파한 사람들은 일단 일을 저질러서 꿩먹고 알먹는 처세로 공회내에서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공회 내에 이제 백목사님처럼 공회 노선을 가르치는 사람도 없고 그런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공회 최고직에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다른 신학교로 이중국적을 가지고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회 내부 교인이 외부 신학교를 가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는 문답은 오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부교회 중진집사님이라고 했으니, 신앙이 중진이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고, 다만 서부교회 역사를 어느 정도 아시는 위치라는 표현으로 읽었습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서부교회를 처음 나온 사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서부교회의 이 노선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서부교인들은 자신들이 좋아서 이 노선을 막고 나선 과거가 많은 교단에 교수직을 가진 목회자를 담임목회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 서부교인들은 그런 목사님의 교인됨을 스스로 원하고 자처했으므로 공회 내부인의 외부 신학강의나 학위 취득 문제에 대하여서는 잘한다고 격찬을 하고 외부에 자랑을 해야 할 위치를 가진 것입니다.

과거 기생했던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가 지금도 자기 여자를 술집에 내보내서 몸을 팔러 다니게 하고 있으면서 자기 조카들이 연애하면 죄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우려를 한다면 이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남자라면 연애는 좋은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또 연애를 하되 시시하게 하지 말고 아주 난잡하게 하라고 해야 양심일 것입니다.


이 홈은
이 노선에 투철하여 어떤 세계신학에도 조금도 영향받지 않을 사람이 꼭 이 노선을 증거할 때 일반신학의 상식이 필요하거나 그 경력이 필요해서 신학을 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이 홈이 알기로는 외부 신학을 거치는 분들 중에서 답변자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그런 자세를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신학을 하기 전부터 일반 신학에 물이 들어 헛소리를 하는 분들이 많았고 신학을 하기 전에 명예욕 때문에 학위를 한다며 시작을 한다고 표시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혹시 저런 분이면 어떤 신학에 담아두어도 끄덕하지 않겠다 싶은 분들도 더러 있었으나 그런 이들은 외부 신학을 거쳐 보라 하면 그 들은 귀를 흐르는 시냇물에 씻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비웃어버리니 해도 좋을 사람은 안 하고, 해서 곤란한 사람은 앞뒤 다투어 하고 있다는 것이 거의 모든 공회 내의 현실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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