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정확한 내용이 먼저 필요
| 설명 |
|---|
yilee
0
8
2006.05.19 00:00
1.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분야입니다.
총공회 노선 차원의 소식과 자료는
이 홈에서 최대한 노력하여 듣고 보관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 교회나 개별 공회 내부의 단순 사건에 그치는 자료는
이 홈에서 들리면 듣고 들린다 해도 공회 전체 노선에 참고될 사항이 아니면 크게 상관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만 듣고 있습니다.
사직동교회가
부산공회1과 2의 교권투쟁 과정에서 중립에 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그렇게 된 내부 진행 과정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른 들어봐도 그것은 사직동교회의 내부 고민에 지나지 않았고
사직동교인들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시작과 진행과 결말이 너무 뻔한 일이어서
물건너 불구경한 정도로 오래 전에 듣고 지나갔습니다.
한 교회 내의 교인 상처를 적게 생각해서가 아니고
이 홈의 주요 사명이 이 노선 전체의 방향 연구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비록 개별 교회의 개별 사안이라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 질문하시면 공회 노선에서 안내할 수 있는 내용은 최선을 다해 답변을 적고 있습니다.
사직동교회 당시 사건을 아시는 정도에서 먼저 구체적으로 적어주시면 보다 자세하게 안내할 수 있겠습니다.
2.참고로
사직동교회는
백영익 신도범 백태영 장렬 송용조목사님으로 이어지는 탈퇴 또는 가슴 아픈 분리의 과거가 특별하여 공회 전체적으로 사직동교회의 아픔은 일반 공회 목회자나 교인들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답변자는
1974년 11월부터 1976년 1월까지 사직동교회 교인으로 있었고, 열거한 5명 목회자들과 개인적 또는 공회 행정처리 과정에서 그 배경과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여러 개인적 또는 특별한 관계나 기억을 별도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직동교회 문제는 굳이 따로 알려 하지 않아도 멀리서 분위기만 보고도 파악할 수 있는 교회 중 하나입니다.
사직동교회 목사님은
답변자 개인적으로 백목사님 사후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2-3분 중 한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분께 감사할 말을 하려면 한이 없을 만큼 많습니다. 지금도 그분의 경건 절약 충심 등에 대하여서는 답변자가 아는 한 최고의 목회자입니다. 그러나 총공회 노선의 근본과 백영희신앙의 근본 성격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향에 있어서는 항상 대화를 해도 답변자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공과 사를 구별하여 안내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직동교회 내부적으로 되돌아보고 교인들의 당시 주관으로 기억한다면 해야 할 말이 한없이 많겠지만, 사직동교회를 조금 넓게 관찰한다면 질문자가 특별하게 언급하는 그 시기의 사직동교회 결정은 솥 안에 삶기고 있는 콩알의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아시는 범위에서 소개해 주신다면
이 노선 입장에서 보다 자세히 소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