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 노선 분립과 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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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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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8 00:00
1.백목사님 사후 직후의 노선 분립시
①보수와 수정의 2개 노선 분립
전체 총공회 중에서
과거 신앙노선 보수를 주장하던 부산공회는 약 3분의 1 정도였고
수정 노선을 지향하는 대구공회는 약 3분의 2 정도였습니다.
②당시 중립교회
당시 끝까지 중립으로 남았던 교회는
창천교회 김영채목사님과 전주전은교회 이종득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천교회 김목사님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서영호목사님이 서부교회로 부임하게 되자
부산공회 가입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하여 바로 부산공회로 가입했고
전은교회 이목사님은
조금 더 세월이 지나서 잠실동교회 백태영목사님 노선이 맞다고 하여
정식 가입을 하게 됩니다.
부산서광교회 이동근목사님의 경우는
양 노선이 나뉘던 시점에 부산공회와 대구공회 양측이 소속을 거부하여
일시 양측에 속한 것처럼 보인 경우가 있었으나 원치 않은 사유로 현재까지 중립 상태입니다.
③따라서 실제 중립은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현재 부산공회나 대구공회 내에서 다시 공회가 나뉠 때는 중립이 있으나
최초 나뉠 때 중립은 상기 3개 교회의 경우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중립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2.보수와 수정 노선의 내부 중립
①보수측 부산공회
보수 노선은
원래 교권을 유지하던 이재순목사님 측인 부공1과
이에 반발한 서영호목사님 측의 부공2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공1과 부공2가 부산공회 내부 교권 장악을 위해 무한 투쟁에 들어갈 때
이 홈 위주의 목회자들은 백목사님 사후 노선 분립과 달리 부공 내의 투쟁은
순수한 교권투쟁이었으므로 어느 쪽에도 전혀 상관치 않고 원래 노선을 지켰으므로
싸우던 양측에서 보면 '중립'이었고
부공3 입장에서 본다면
양측의 최초 교권투쟁에서는 중립이었으나
양측이 곧 바로 어떤 때는 상호간 소송까지 불사하고 어떤 때는 양측이 합동하여 대구공회와 소송하며
원래 총공회 노선과 그를 잇는 부산공회 노선 자체를 벗어나고 있었으므로
최초 중립을 지키던 입장에서 더 나아가
부산공회 내 양측 전부를 부산공회 이탈 교회들로 규정하게 되었고
그들과 같은 부산공회 내에 있으면서도 노선 자체를 뚜렷히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부공3 이라는 이름을 갖고 그 2곳 공회들과 별도의 공회임을 밝히는 동시에
실제로는 부공3의 교회들이 부산공회 정식 노선을 잇는 유일한 공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부공3으로 분류하는 교회들 외에도
부산공회 내에는 부공1과 2의 교권투쟁에서 중립을 지키는 분들이 있는데
복잡한 과정을 통해 현재는 여수대전교회 정도만 어느 정도 중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 외 교회들은 각자 양 노선을 오가며 기회를 엿보는 과정에서 필요하여 일시 중립적 자세를 갖는 경우라고 여겨지므로 실제 중립은 없다고 보며 대전교회의 경우도 안수를 받거나 집회 등 기타 주요한 행사나 활동에 있어 중립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②수정측 대구공회
대구공회는
내부적으로 대구공회와 서울공회로 나뉘어 내분을 겪고 이후 거창공회라는 중립노선이 태동하다가 다시 합류를 하는 등, 현재 대구공회 내부 핵심들조차 자신들의 이혼과 재혼이 몇 번인지 그래서 어떤 족보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전 과정에서 순수 중립을 유지한 측은 없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만일 있다면 어느 한 시점에 봤을 때 일시적인 중립일 뿐이며
대구공회 내에서라도 진정한 중립은 없습니다.
3.노선과 중립
비록 판단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진정한 중립도 있고
비록 중립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관망의 노련한 취리주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좀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으며
대충 이 정도의 파악이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