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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2 00:00
1.침묵하는 이유는
김목사님은
이 노선 교훈에서 받은 은혜를 가지고 새김질하고 대화하면 많은 은혜를 받지만
세계신학에 대한 소개나 논단 실력은 서목사님 초대교회사 수강할 학생 수준입니다.
이 노선이 어리다며 더 발전된 길을 가르친다 할 때는 그냥 숨이 멎습니다.
김목사님이 귀한 것은
중국 현지를 발 닿는 데까지 다니며 이 노선과 이 교훈 자료를 소개하기 때문이지
그 분의 교리나 노선에 대한 입장은 아직 이 노선 내에서도 어린 편에 속합니다.
이 노선을 안 것도 불과 얼마되지 않았고 이 노선 교리도 아직은 배울 시기입니다.
김목사님 발언에 침묵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말씀드릴 만큼 드렸고 홈에서도 공개적으로도 할 수 있는 힘까지는 했습니다.
최근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제 말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목사님의 현 주소는
이 노선의 나아갈 부분을 성경으로 지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노선에 앞서간 2천 년 또는 천 수백 년 전의 초기 교리 시대로 퇴화하고 있습니다.
마치 백태영목사님이 1980년대 총공회를 1990년대에 더욱 발전시킨다 했지만
그분의 모든 조처는 공회 이전 고신으로 타락했고 고신에서 더 탈선하고 있습니다.
침묵의 또 한 이유 중 하나는
김목사님은 부산공회2에 속한 목회자입니다.
그곳이 가르치고 바로 잡아야 할 분입니다. 또 그분은 그분이 부공2를 지도할 분입니다.
이곳은 부공2 노선 자체를 두고 돌아올 때를 기다릴 정도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김목사님의 발언은
부공2가 책임을 지고 충분히 고치고 바로 가르칠 수 있는데
홈에서 그 문제를 가지고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헛되다고 생각했습니다.
2.아깝지만 이제 돌아올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김목사님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첫째, 공회 노선의 선교 분야가 부족한데 이 분야를 주력하기 때문이고
둘째, 일반 선교가 아니라 이 노선의 교훈 전달에 주력하는 선교이며
셋째, 김목사님의 인내심과 노선 충성심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이 홈 초기의 중국선교공회는
이 노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선교 그 자체만 주력하겠다고 초교파 입장을 밝혔고
공회로부터 오랫동안 떠나 있어 그러한지 공회 노선을 이웃집처럼 대했고
공회 관련 발언에서 이 노선의 집중과 애착이 별로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김목사님이 자신을 선교사라고 또박또박 밝혔기 때문에 그냥 조심해서 대했을 뿐입니다.
다만 과거 이 노선에 속했으므로 더 반가웠고 또 돌아설 날을 내심 기대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이 홈을 통해 노선과 교훈에 대한 파악이 빨랐고 복원력이 놀라왔습니다.
그대로 계속 진행하면 이 홈을 지도할 수 있는 좋은 분이 되겠다고 기대했습니다.
이 노선과 교훈에 대한 가치를 크게 깨달아 과거 초교파적 자세를 청산하고
이 노선과 교훈에 대한 소개를 주 내용으로 하는 방향으로 선교의 내용을 바꾸었고
그때부터 이 홈은 외부인이 아니고 공회 내부인이며 이 홈의 동지로 대했습니다.
성급함 지나침 생각없는 질주
단 시간 내에 노선과 교훈을 배워가며 남달리 실력을 가속하던 김목사님은
비록 발전은 빨랐지만 이 노선과 교훈의 세계를 좀더 배워야 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노선과 교훈 파악이 다 끝난 듯 이 노선과 교훈을 벗어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설교록에 없는 말을 하고 설교록에 틀린 말만 하면 다 발전이며 새 영감인가?
설교록의 가치와 차원이 예사가 아니므로 설교록을 좀더 신중히 존중하고 참고할 시기인데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새교리로 새진리로 새노선으로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서부교회의 과거 한 시기 주일학생 장내 질서 유지 요령을 교리라고 발표한다든지
세례와 침례라는 한글 단어의 한계를 무시하고 마치 원어나 되듯 뜻 풀이에 나서고
정경론 사도관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처럼 세계교회와 이 노선의 출발 뿌리되는 교리를
그 기초 사실조차 알지 못하면서 통째로 뒤흔들어
만일 발언만 가지고 비판한다면 여지없이 이단이 될 발언을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김목사님의 많은 장점을 알고 있지만
퍼뜩 생각이 나면 바로 입에서 뱉어놓고 보는 성급함을 보며 간곡히 절제를 요청했고
여러 면을 잘 연구하며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이 시대 우리들의 신앙현황을 무시하고
그냥 입에서 줄줄 내놓으면 그 말마디가 전부 교리가 된다고 취한 정도여서
따로 제재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할 힘도 없지만 그렇게 한다고 들을 분도 아니며
현 상태로는 마치 감아놓은 태엽이 다 풀리도록 힘있는 대로는 발언을 해놓고 보실 분이므로
이 홈에서 더 이상 상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소고'라 '연구'라는 말을 붙였으니
자기가 발언한 것은 수정 보완이 있을지 모르는 글이라면서
초기처럼 무조건 강하게 발언하지 않고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고라고 했던 대고찰로 글을 붙였던 연구라고 했던 단정이라고 했던
그동안 발언한 내용을 보면 교리로 단정한 것이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런 면도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발언한 것이 아닌 글들에 대하여서는 이렇게 한 마디로 슬쩍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실수를 할까 해서 사전에 어떤 면으로 조심을 하는지?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돌아서는지에 따라 우리 보통 신앙인들의 걸음은
계속 자라갈 것인지 아니면 심각하게 이탈 될 것인지 중대 기로에 서게 됩니다.
어디로든지 가기만 하지 생각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답변자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발언을 그 성급하고 지나치고 도무지 생각이 없이 그냥 질주하는 발언에 대하여
가지고 그 이상 한도 없이 소설을 쓰고 뻗어나가고
일반신학을 무조건 매도하다가
일반신학을
설교록은 성경 안내에 가장 존중하며 참고하는 자료일 뿐이지만
설교록을 우리가 마치 성경 위치에 놓은 듯 설교록에 근거한 충고를 무시했고
입에서 거침없이 내놓는 이단 발언 틀린 발언을
이 홈이 참고하되 존중하는 정도이며 성경
이 노선은 부연할 것 없이 성경 위주인데
이 노선을 모함까지 해 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입에서 나오는 대로 글을 무조건 적어내고 있었습니다.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조금 신중히 살피고 연구하는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표현을
1980년대 초반 서부교회와 중간반을 떠날 때도
입장을 존중해서 다른 직분보다 더 조심한 정도였지
상대할 때 공회 출신 선교사라는 사실에 반가운 정도였고
김목사님 스스로 선교사라고 또박또박 밝혔기 때문에 전도 현장을 고려 조심했을 뿐입니다.
이 노선 출신으로 타 교단이나 해외에 나가 있는 분의 수는 아주 많습니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김목사님은
이 노선 교훈에서 받은 은혜를 가지고 새김질 하며 대화하면 많은 은혜를 받지만
세계신학을 소개하거나 논단하는 대화에서는 그냥 아찔해서 숨을 죽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노선이 어리다며 더 발전된 길을 가르친다 할 때는 그냥 숨이 멎습니다.
김목사님이 귀한 것은
아무도 가지 못한 곳을 다니면서 이 노선과 이 교훈 자료를 소개하기 때문이지
그 분의 교리 발전 노력과 노선에 대한 설명이 귀해서 귀하게 상대한 것은 아닙니다.
:
>중국공회는 예수님의 인성과 신인양성일위 교리를 반대하고 있으나 이 홈은 일체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인정에 사로 잡혀 말하지 않는지 아니면 그 주장이 설교록 시대를 앞서 가는 성경적 주장이라고 동의를 하는 것인지?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김목사님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첫째, 공회 노선의 선교 분야가 부족한데 이 분야를 주력하기 때문이고
둘째, 일반 선교가 아니라 이 노선의 교훈 전달에 주력하는 선교이며
셋째, 김목사님의 인내심과 노선 충성심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이 홈 초기의 중국선교공회는
이 노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선교 그 자체만 주력하겠다고 초교파 입장을 밝혔고
공회로부터 오랫동안 떠나 있어 그러한지 공회 노선을 이웃집처럼 대했고
공회 관련 발언에서 이 노선의 집중과 애착이 별로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김목사님이 자신을 선교사라고 또박또박 밝혔기 때문에 그냥 조심해서 대했을 뿐입니다.
다만 과거 이 노선에 속했으므로 더 반가웠고 또 돌아설 날을 내심 기대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이 홈을 통해 노선과 교훈에 대한 파악이 빨랐고 복원력이 놀라왔습니다.
그대로 계속 진행하면 이 홈을 지도할 수 있는 좋은 분이 되겠다고 기대했습니다.
이 노선과 교훈에 대한 가치를 크게 깨달아 과거 초교파적 자세를 청산하고
이 노선과 교훈에 대한 소개를 주 내용으로 하는 방향으로 선교의 내용을 바꾸었고
그때부터 이 홈은 외부인이 아니고 공회 내부인이며 이 홈의 동지로 대했습니다.
성급함 지나침 생각없는 질주
단 시간 내에 노선과 교훈을 배워가며 남달리 실력을 가속하던 김목사님은
비록 발전은 빨랐지만 이 노선과 교훈의 세계를 좀더 배워야 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노선과 교훈 파악이 다 끝난 듯 이 노선과 교훈을 벗어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설교록에 없는 말을 하고 설교록에 틀린 말만 하면 다 발전이며 새 영감인가?
설교록의 가치와 차원이 예사가 아니므로 설교록을 좀더 신중히 존중하고 참고할 시기인데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새교리로 새진리로 새노선으로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서부교회의 과거 한 시기 주일학생 장내 질서 유지 요령을 교리라고 발표한다든지
세례와 침례라는 한글 단어의 한계를 무시하고 마치 원어나 되듯 뜻 풀이에 나서고
정경론 사도관 삼위일체와 신인양성일위처럼 세계교회와 이 노선의 출발 뿌리되는 교리를
그 기초 사실조차 알지 못하면서 통째로 뒤흔들어
만일 발언만 가지고 비판한다면 여지없이 이단이 될 발언을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김목사님의 많은 장점을 알고 있지만
퍼뜩 생각이 나면 바로 입에서 뱉어놓고 보는 성급함을 보며 간곡히 절제를 요청했고
여러 면을 잘 연구하며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이 시대 우리들의 신앙현황을 무시하고
그냥 입에서 줄줄 내놓으면 그 말마디가 전부 교리가 된다고 취한 정도여서
따로 제재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할 힘도 없지만 그렇게 한다고 들을 분도 아니며
현 상태로는 마치 감아놓은 태엽이 다 풀리도록 힘있는 대로는 발언을 해놓고 보실 분이므로
이 홈에서 더 이상 상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소고'라 '연구'라는 말을 붙였으니
자기가 발언한 것은 수정 보완이 있을지 모르는 글이라면서
초기처럼 무조건 강하게 발언하지 않고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고라고 했던 대고찰로 글을 붙였던 연구라고 했던 단정이라고 했던
그동안 발언한 내용을 보면 교리로 단정한 것이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런 면도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발언한 것이 아닌 글들에 대하여서는 이렇게 한 마디로 슬쩍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실수를 할까 해서 사전에 어떤 면으로 조심을 하는지?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돌아서는지에 따라 우리 보통 신앙인들의 걸음은
계속 자라갈 것인지 아니면 심각하게 이탈 될 것인지 중대 기로에 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