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의 첫 신앙 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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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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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00:00
1. '경제 실패 = 신앙 실패'
공회의 변증법적 표현 중에 '쌀 가마니라는 말을 듣고 가마니 전체를 뒤집어 조사한 뒤에 돌 하나를 찾아 낸 사람이 이 가마니에서 돌 한 개가 나왔는데 어떻게 쌀 가마니라고 따지는 사람과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 실패는 신앙 실패를 말하는가? 거의 전부가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100 %가 그런가?' 이렇게 물으면 '왜 시비조로 나오느냐?' 이렇게 반문을 합니다. 공회의 평소 설교 전부가 신약은 신령한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물질이나 육체적 흥망성쇠가 신앙의 흥망성쇠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고 너무 많이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공회 외부인이 반문을 하면 시간을 갖고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하겠지만 공회 내부인이 그렇게 반문을 하면 그 사람은 그냥 내 버려 둬야 합니다. 스스로 살아 가면서 배우고 고쳐야 되지 한 자리에 앉아서 말로 가르치려면 끝이 없고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2. 신앙의 초기 경험은
우리가 어리기 때문에 어릴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서 가르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 가기 시작하면 물질이 아니라 신령한 것으로 자꾸 그 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신령계를 중심으로 엄하게 선을 긋고 세상을 초월하지 않으면 사실 초보 신앙이나 중급 신앙이나 고급 신앙이나 물질을 완전히 초월하지 못했다면 건설구원의 기능이 지옥에 버려 지는 것은 매 한 가지입니다. 우리 건설구원 교리는 0 점이나 50 점이나 99 점이나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선을 긋습니다. 그런데 왜 0 점보다 50 점을 칭찬하고 집사님으로 임명 하는 등 위선적 조처를 하는가? 왜 99 점은 장로님으로 세워 놓는가? 50 점은 50 점만 더하면 되고, 99 점은 1 점만 더하면 100 점이 되기 때문에 이 면 때문에 0 > 50 > 99 점 대우를 하는 것이지 만일 99 점에서 그친다면 0 점이나 99 점이나 영생의 기능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꼭 같기 때문에 공회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이분법으로만 만사를 보는 극단주의를 분명히 합니다.
다시 돌아 와서 왜 경제 실패 > 신앙 실패라고 하는가? 대부분은 그렇기 때문입니다. 왜 대부분 그렇다는 것인가? 부지런하면 신앙의 성공까지는 가기 어려울지 몰라도 성공 비슷한 가능성이나 성공 주변에라도 머물게 되고, 게으르면 어떻게 해서라도 꼭 경제 실패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자연과 세상의 기본 흐름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외모를 보고도 어느 정도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세상도 하나님께서 만들 때 공평과 공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훔쳤니 안하무인이니 사술을 썼니 남의 눈에 눈물을 뺐니 라고 별별 모함을 하지만 경제 성공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경제 성공을 위해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면으로 그래도 남들보다 낫고 세상의 근본 운영 이치에 근접 되어 있는 총점 우수가 있는 법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어떠한가? 보수 정통을 주장하는 교회들일수록 세상은 적고 신앙은 좋은 법인데 이런 현상은 하나의 통계로 참고하고 말아야 하지, 보수 정통의 교회 교인들이 자기들 입으로 우리는 신앙이 좋으니까 세상을 덜 가졌다고 한다면, 공회는 그들에게 '그런데 너희들 신앙이 정말 좋기는 한 것인가?' 이렇게 되 물어 봅니다. 공회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합니다. 공회가 신앙이 좋아서 세상이 적다고들 하는데 과연 그럴까? 세상을 가지고 싶어도 경제를 갖고 싶어도 큰 고장이 있어서 갖지를 못하는 것은 아닐까? 가지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돈을 가질 실력이 없어 돈이 우리를 보고 도망을 간 것은 아닐까? 공연히 게으르고 못 나고 뭔가 정당하게 돈을 가질 기회가 있는데도 가지지를 못해 놓고 경제 가난을 신앙이 좋아서 생기는 현상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정평정가일까, 아니면 실패한 도둑의 비겁하고 못난 자기 변호일까?
공부는 비교적 쉽게 표시 나는 항목입니다. 신앙이 있으면 공부를 잘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도록 한 분들은 공부를 해도 안 됩니다. 이들의 고장은 어디에 있는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공부를 해서 성공하거나 유용할 상황이 아니면 학교를 가지를 말아야 하는데, 가지 말아야 할 학교를 가서 공부가 필요 없는 자신의 성적을 1등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거나 그런 생각으로 남들과 비교를 하니까 문제인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공부로 출세할 사람은 그 곳에서 신앙 생활을 잘하면 머리를 좋게 해서 1등을 하게 하거나 아니면 답변자처럼 공부를 못하는데 나중에 성적표를 받아 보니까 왜 이런 성적이 나왔는지 본인 스스로 이해 못할 성적을 줘 버리시든 어쨌든 자기 수준과 실력을 가지고 비교해 봤을 때 공부가 필요하면 자기로서는 공부가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애당초부터 공부할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고 인도를 하지도 않는데 학교를 가고, 학교에 가서 다른 학생들과 성적을 가지고 비교해서 신앙이 있는 내가 왜 성적이 나오지 않는가 하고 열등감에 빠지거나 하나님께 시비를 한다면 이런 분들은 자기에게 주신 위치를 잘못 잡은 문제가 원인입니다.
경제도 그렇습니다. 세상 기준의 경제력 순서대로 신앙이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월급 50만 원 받기도 어려운 사람이 100만 원 받는 사람이 되었다면 100억 원을 벌 수 있는 사람이 10억 원을 번 사람보다 20 배나 더 경제 면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10억 원을 번 사람으로서는 100만 원 벌었다고 교회에서 감사 연보를 하거나 감격해서 떨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웃을 일이겠지만 100만 원 벌고 감사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 경제 성공을 했다며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상대적 개념이지 절대적 개념은 아닙니다.
3. 결론을 잠깐 도출해 보겠습니다.
경제가 좋은 사람치고 잘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제 성공한 사람이 신앙 성공한다면 답변자로서는 역사에 이름을 올릴 성자라고 존경할 정도일 것입니다. 답변자 아는 대로 세상 누가 봐도 경제로 성공했다 할 만큼 되면 그 신앙은 틀림 없이 겉돌고 엉망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경제 성공을 크게 했다 하는데 남들이 볼 때는 별 것 없는 사람들은, 신앙 성공까지 한 사람도 있고 우물 안의 개구리 수준이 되어 교만으로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제를 실패한 사람이 신앙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최종적으로 봐서 확실하게 경제 실패를 한 사람이라면 신앙 성공자일 가능성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신앙 실패자입니다. 왜 그런가? 그 어떤 사람이라도, 아무리 경제를 초월했다고 큰 소리 쳐도 경제 초월을 실제 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너무 희귀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를 아주 초월할 정도가 아닌 사람은 신앙의 출발선에 있는 어린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어린 신앙을 너무 지나 치게 높게 잡고 가혹한 훈련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회가 목회를 소원하는 사람에게 노동과 막 장사를 강도 높게 시키는 이유는, 세상에 살면서 경제 초월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 경제 면으로 어린 신앙이나 배우는 신앙 단계에서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인도하며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시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겪어 보지 않으면, 그 어떤 신앙가라도 마지막에는 경제가 신앙을 포로로 잡아 끝을 낼 것이기 때문에 목회자 정도의 소원을 가졌다면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 경제 문제를 겪어 보라는 뜻입니다. 잠실동교회의 실패는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짚을 수 있지만 너무 어릴 때 너무 가난했고, 실력과 신앙이 좋은 우수한 분이 어릴 때 가졌던 빈곤에 대한 잘못 된 인식이 신앙 출발 때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회 전체적으로 항상 최고의 신앙가처럼 모두에게 비춰 졌으나 그 분의 내막을 아는 분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분을 신앙가로 보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분의 탈선을 1990년대 말의 후임자 선정 때 시작 됐다 하시고, 어떤 분들은 1994년부터라 하시는 등 그 시점을 놓고도 공회 내에 학설들이 많으나 그 분은 1984년 1월 교역자 회 때는 공석에서 백 목사님께 맞선 분이고, 1982년에는 백 목사님이 물러 가시면 자기가 알아서 잘하겠다며 퇴임을 언급하고 추진한 분이며 1970년대 초반에도 경제 면으로 일반 진영 식이어서 목사님은 세월 속에 좀 고쳐 지기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경제에게 신앙을 뺏기지 않는다는 것은 얼핏 보면 쉬울 것 같아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하신 말씀에서 하나님과 맞상대를 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물질 문제입니다.
목회적으로 강단에서 어린 교인들에게 간단 명료하게 방향을 제시하다 보니까 나오는 표현을 가지고 전자현미경을 대고 세밀히 살피면 사실 어떤 대화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문을 닫고 들어 와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첫째, 문을 닫으라 했다.' '둘째, 그 후에 들어 오라 했다.' 따라서 바깥에서 문을 먼저 닫은 다음 안으로 들어 오라 했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 오라는 것이라 이런 식으로 해 버리면 대화 자체가 어렵다고 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시되
경제에 대해 피해의식을 조금 줄이면 본인과 전체를 위해 좋을 듯합니다.
믿어 주실지 몰라도 답변자는 받은 은혜 때문에 이 노선의 확신을 가진 다음부터는 힘껏 달려 왔으나 체질적으로 반골적 반항적이어서 백 목사님 설교 곳곳에 강하게 반발이 나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서 물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을 봤고 그 후에 그 것을 다 버려 두고 따랐다는 말씀이 참으로 많이 나오는데 이런 성구 등 때문에 늘 볼 멘 사람처럼 그러했습니다. 설교록을 많이 오래 동안 새겨 보고, 백 목사님 목회의 안팎과 현장을 많이 겪어 보고 세월 속에 어느 날 철이 들고 이해가 되었을 때 지난 날 목사님 교훈에 대해 일단 저항해 보고 보냈던 세월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마 적지 않은 분들이 가지고 있을 의문일 듯하여 제목만 보고도 글을 적어 봤습니다.
>> 새마을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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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감사 드립니다 잘 주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