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있는 것은 서로 주고, 줄 수 없는 것은 서로 이해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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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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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4 00:00
원래
통일찬송가를 사용한 공회는
통일찬송가가 옳고 좋아서가 아니라
한국교계에 따돌림을 당하면 교회 부흥에 방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소문을 내어 교인도 뺏기고 오해도 받게 되니까
외부 교단과 사이좋게 살기 위해 문제가 있는 찬송가인 줄 알면서 사용한 것입니다.
현재
통일찬송가를 사용하고 있는 공회는
교계가 찬송가 통일이 완전히 이루어져 이제 가끔 별도 찬송가를 사용해도 그럴 수 있다는 정도이고
대구공회 내부 교인들 역시 20여 년 역사를 통해 통일찬송가 사용에 오해나 흔들림이 없을 것이니
만일
총공회 내부 집회에서만
대구공회가 부산공회를 배려하여 공회찬송가를 함께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교계나 대구공회 내에서 오해가 되거나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우려가 제기 된다 해도
대구공회가 원래 통일찬송가를 채택했을 때
교리나 양심에 좀 어긋나도 다른 교회와 외부 교인을 배려하자는 뜻이었으므로
하물며 과거 사용하던 공회찬송가를 가지고 공회 내부 교회끼리 예배보는 과정에
1년에 2번 사용했다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될 리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지금
공회찬송가를 사용하는 부산공회1과 3의 경우는
교리나 신앙 노선 문제를 차원에서 공회찬송가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총공회 전체 교회가 한 자리에서 집회를 하게 될 때
공회찬송가를 사용하게 된다면 앞에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모든 공회가 다 찬성할 수 있으나
만일
양쪽이 타협을 해서 두 가지 찬송가를 혼용하게 되는 조건이라면
대구공회로서는 보다 나은 조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부산공회에서는 대화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꿀 수도 있다는 쪽과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양쪽을 타협시킬 때에는
바꿀 수 있다는 쪽이 바꿀 수 없다는 쪽을 배려하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입닏.
그대신 찬송가를 바꿀 수 없다는 부산공회에게 대구공회는 부산공회가 바꿀 수 있는 다른 문제들
예를 들면 비용분담 숙소위치 등 수많은 다른 요소들을 양보하도록 안내하면 좋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불교와 기독교가
종교 간 평화와 이해 증진을 위해 정말 타협다운 타협을 하고
객관적으로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공평하고 공정한 흥정을 하려 한다면
무신론 정치가들 입장에서는
불교와 기독교가 각각 한번씩 절과 교회를 교차 방문하여 종교행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불교 예불과 교회 예배 시간에 양쪽 성직자가 순서를 서로 나눠맡으면 좋겠다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교인이 참 불교인이고 기독교인이 참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불교인은 원래 다신론에 범신론이므로 기독교에도 신이 있다고 인정을 하지만
기독교인은 유일신이므로 불교의 모든 신들을 가짜배기요 우상이라고 여기므로
양쪽을 정말 타협시키려면
양측이 반반씩 오가거나 순서를 나눠맡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양측이 교회로 가서 목사는 예배만 인도하고 불교측은 참석만 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그렇게 해도 죄가 되지 않고 그렇게 해도 신을 섬기는 것이 되며
교회는 불교인들이 예배당에 그득 앉아 있어도 원래대로 예배를 인도하면 죄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절에 가서
기독교인이 순서를 나눠맡거나 예불에 참석을 하게 된다면
불교인은 더 좋아하겠지만 기독교인은 양보할 정도가 아니라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범신론 다신론 불교와 유일신의 기독교의 대화나 타협이나 협동이 필요하다면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은 기독교식으로만 하고
다만 예배보러 오는 차량제공이나 식사 편의 등은 교회가 힘껏 양보하고 불교인들을 배려하므로 서로 주는 것도 있고 받는 것도 있어 보기좋은 타협과 협조를 이루고 종교 통일을 한다면 양측이 다 좋을 것입니다. 즉 신앙은 기독교 유일주의로 통일하고 기타 세상에 속한 경제나 육체의 땀 흘리는 수고는 기독교가 다 맡아 희생한다면 불교인들은 그들의 교리와 종교상 그것을 반대할 리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