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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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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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1 00:00
1.총공회 '주류'인가?
소개한 자료는 '부산공회2' 교회 자료입니다.
소속 교회의 크기와 숫자 그리고 인물에 대하여 외부적으로 평한다면
'주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총공회라는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서부교회'가 들어있고
동문 청량리 사직동 남천 번동 등 공회 대부분 큰 교회들이 들어있으며
목사님 생전 기준의 상위 서열 목사님들과 양성원 교수진이 거의 다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회의 신앙 노선을 기준으로 본다면
총공회 '주류'라는 말은 부공2와 소속 교회 그리고 목회자들 스스로
공회 노선을 지키는 것보다 교권과 처신의 이해득실로 걸어왔으며
지난 20여 년 스스로 남긴 기록만 가지고도 그것이 증명될 것이므로
첨부 서류의 교회들은 공회 교회들의 일반적 현상을 나타내는 자료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2.우선 부공1 교회 통계가 빠졌습니다.
부공1과 부공2는
공회의 조직 교역자회 인사 경제 등 어느 면으로도 함께 하는 경우가 없고
집회만 부공1이 개최하고 부공2는 방청으로 참석하는 정도입니다.
부공1 교회 통계가 빠졌지만 부공1 교회는 학장교회 한 곳만을 빼고는
교인 수가 거의 없는 교회들이므로 전체 규모에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부공1 교역자와 교인들은 집회 행사 진행 요원 차원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부공1은 전체 교세도 적지만 김삼암목사님 측의 분리로 이런 현상은 심할 것입니다.
3.부공2의 '설교집회'
①설교집회 참석 교회
부공2는 백목사님 설교를 재독하는 부공1의 도평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부공2 현 목회자들이 직접 설교하는 집회를 별도 장소에서 개최하는데
설교집회로 따로 모이는 이 집회가 부공2의 핵심이며 부공2의 사실상 전체입니다.
설교집회를 참석하지 않는 교회들은 부공2 내에서도 외곽그룹이든지 아니면 서부교회처럼 교회 내 교인들의 특수상황 때문에 전략상 그냥 참석하는 경우도 몇 있을 것입니다.
현재 보고서 상에서 본다면
창천교회 동부교회 동암교회 산본교회 동안양교회 태평동교회 의정부교회 등 총 7개 교회인데
양쪽 집회에 함께 참석하는 교회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설교집회가 그 출발 초기보다 현저하게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②추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것
명분으로 본다면 부공2는 도평집회가 불법집회이므로 참석해서는 안 되는데
교인들이 도평에 대한 향수가 크고 또 공회 재산을 그냥 포기하기 아까워서
초기에 설교집회로 따로 모이자는 선명한 투쟁 운동이 힘을 얻고 출발했으나
설교집회 강사를 맡은 교회는 신이 나고 힘있게 참석하지만
강사가 아닌 교회는 집회 은혜로 보나 교인 앞에 위신문제로 보나 참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공1의 집회 불법 주도에 대하여
부공2가 공회를 형성한 후 초기에 도평집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설교집회로 분리를 한 후
급격하게 참석교회가 줄어들고 현재는 집회 강사를 맡는 교회 위주로 모인다고 보여집니다.
③이런 현상은
부공2 교회와 교역자들의 문제라고 보는 것보다는
백목사님의 설교 은혜가 너무 깊고 크기 때문에 재독집회임에도 불구하고
도평집회 은혜는 갈수록 커지고 실감이 있고 설교집회는 너무 아득하게 수준이 떨어지는데
한편으로
일반 교단처럼 설교 은혜를 보통 설교자들의 설교 정도로만 겪어 본 교회들은
교단의 조직질서체계에 익어 있는 습관과 설교는 대동소이하다는 경험 때문에
강사가 번갈아 가며 바뀌어도 집회 모임은 천편일률적이 되는 수가 많지만
공회는 설교 듣는 귀는 너무 높고 조직에서 상대방 배려의 사회성은 근본 무시되어 있으므로
부공2 스스로 투쟁해 온 신앙노선을 역류하면서까지 도평 재독집회 참석이 일단 대세입니다.
참고로
총공회 전체 입장에서 본다면 부공2는 재독집회를 할 바에는 부공1의 도평집회 참석이 낫지만
부공2 자신들의 신앙노선에서 본다면 부공2가 재독집회를 하려면 자체 집회를 해야 맞습니다.
④참고로
1982년 8월집회가 백목사님 병환 때문에 개최 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백태영목사님은 전국최고규모의 거창집회를 자신이 대신 맡겠다고 했으나
목사님은 차라리 그 해 집회 개최를 포기하고 백태영목사님께 맡기지 않았습니다.
백태영목사님으로서는 대형집회화된 거창집회에 세워만 주면 감당하겠다고 자신이 있었으나
목사님으로서는 집회를 맡겨놓으면 참석 교인의 은혜면을 비롯 집회 맥이 끊어질 것을 염려했습니다.
어린 사람이 본다면 백목사님의 강단권 애착 때문에 거절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백태영목사님은 당시 전국 공회 교회의 최고 집회 강사로 그 권위가 대단했기 때문에
일반 교역자나 교인들의 생각에는 백목사님만큼은 안 되지만 만일 세워주면 유지가 된다고 봤습니다.
백태영목사님을 세울 바에는 차라리 세우지 않는 것이 좋으냐
백목사님이 서지 못한다면 백태영목사님이 대신 맡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느냐
그 논란은 1983년 이후에 곧 바로 증명이 됩니다.
백목사님은 백태영목사님의 신앙방향이나 내심이나 실력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공회 전체 집회에 바로 나서기 보다 우선 서울지역에서 마음껏 집회를 해보도록 했습니다.
거창이나 대구집회는 지방이므로 모든 면에서 불리하지만
한국교회의 규모나 교인수 등 모든 면에서 중심지인 서울 한복판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
백태영목사님의 실력이나 실체가 거창 집회를 감당할 정도라고 가정한다면
서울 한복판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폭발적일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지방 교회 전체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서울삼각산기도원에서
백태영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서울로 옮겨진 총공회 전국규모 집회를 열었는데
연례집회가 시작되자 곧이어 서울지방 교역자들이 '나도 한번 해보자'는 식이 되어
집회강사를 돌아가면서 하게 되고 이어 자기 교역자 설교 때만 교인들이 집중 참석하는 현상이 보이자
얼마 후에 흐지부지되어 집회 자체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현상은
총공회가 총공회의 본질과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늘 동일한 현상이 반복될 지표였습니다.
백목사님 설교에 은혜 받은 교인의 설교 듣는 귀 수준을 교역자들이 가볍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일반교회와 비교할 때 주체성이 강하여 빈틈이 있으면 바로 분리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조직에 대한 기초적인 훈련과 연습조차 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0년 3월 대구공회가 총공회 정통노선에서 벗어나는 분리를 할 때
이 홈은 대구공회 집회는 몇 년을 가지 못하고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통 총공회 집회는 강사가 한 시간씩 또는 하루씩 맡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미 백목사님 생전조차 서울지방에서 그분들 중심으로 해봤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양측 공회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경쟁심과 교인 유치 등의 힘이 작용하여
대구공회의 집회는 몇 년을 더 진행하게 되었으나
결국 몇 년을 가지 못하고 대구공회 집회는 교계의 연합강사식 집회로 바뀌었고
오늘까지 그 힘으로 나아오고 있습니다.
대구공회가 총공회성에서 멀어졌을 때는 일반 교회 집회식으로 유지했고
최근에 총공회성을 되찾아가는 말씀 내용을 듣고 있어 기쁜 마음입니다만
근본적으로 한 집회에 여러 강사가 여러 본문으로 나눠 진행한다는 것은
총공회집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부공2의 설교집회의 경우
전형적으로 과거 백목사님 생전에 백태영목사님 중심의 서울집회와 같고
지금으로 말하면 대구공회 집회와 아무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집회 내용으로 말한다면 부공2 집회와 대구공회 집회는 합하는 것이 양심이며 교계의 최소한 사회성을 아는 일일 것이며 특별히 대구공회나 부공2가 가장 강조하는 '화합'과 '단합'과 '질서'의 근본 정신에도 맞을 것입니다.
4.집회 참석 교회 현황에서
①전체 참석 교회와 교인 수에서
강사를 맡았을 때 자기 교인 참석수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참석수가 달라진다는 것은
강사든 교인이든 그 집회 주체든 집회의 근본 성격이 공회 집회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인간 동원의 집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면을 우려해야 합니다.
매사 하나라도 제 중심에 맞지 않으면 바로 깨버리고 튀쳐 나가는 것도 탈이고
매현실에 이룰 구원의 시급성 단번성은 무시하고 기회를 노리는 뱀처럼 세월만 기다리는 것도 큰 탈입니다. 총공회 근본 신앙노선의 상식과 기본만 안다 해도 이런 양극단은 단번에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②가장 주목하고 살피는 것 중 하나는
주일학생의 집회 참석율입니다.
시골교회의 경우 동네에 학생 자체가 없어지므로 그렇다고 계산할 수 있으나
장년반 결혼을 통해 교회 내부 출산 자녀들 숫자라도 있어야 할 것이며
도시교회의 경우 장년반 숫자와 집회 참석 숫자 그리고 거기 대비한 주일학생 숫자 등을 볼 때
일반진영은 장년반 예배에 주일학생의 참석을 아예 예외적으로 생각하지만
공회는 주일학생의 장년반 예배 참석을 지극히 당연하게 지도해왔는데
이는 단순히 출석의 분포도 정도에서 나타나는 차이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면 과거 습관에 젖은 타성으로 가는지를 구별하는 핵심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
전체 통계면에서 주일학생과 중간반학생의 참석률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다만 집회를 참석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단순히 집회장소에 함께 가는 정도인지 예배를 실제 예전처럼 보고 있는지는
현재 참석 교회들이 더 잘 알 것이고 이 홈은 알지를 못합니다.
너무 중요한 요소이므로 안내해봤습니다.
③전체 참석수
부공2의 도평집회 참석수가 2000명 정도라면
만일 부공2 모든 교회들이 마음 먹고 힘을 합한다면 5천명이 될 듯 합니다.
부공1의 경우는 30개 교회 5-600명 정도일 것이고
서부교회 4층중간반의 독립 예배가 3-400명일지?
부공3 역시 비슷한 400명 수준 집회이고
대구공회가 현재 1200명? 마음먹고 참석한다면 2000명 정도가 되는 것은 쉬울 것이니
서울공회를 제외하고도 여전히 8월집회가 8천에서 1만명 정도가 될 잠재력이 있습니다.
④소망을 담아 본다면
총공회 신앙노선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교회라면
평소의 자기 교회 신앙생활은 개교회자유로 나가되
1년 한번씩 이 노선의 고전(古典)공부 차원에서라도 함게 재독할 기회를 가진다면
총공회의 외부 발전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각 교회가 내심으로 전도 발전 부흥이라는 현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교회 부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데, 모두들 보는 눈이 너무 짧아 안타깝습니다.
부공1이나 부공3 교회는 현재로는 재독집회 외에 대안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부공2나 대구공회는 재독을 '고전공부'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한여름 한 주간을 시골에서 멋있게 고급 휴가 휴양 차원에서라도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찬송가 문제도 부공1이나 3은 타협가능성이 없지만
대구공회나 부공2의 경우는 죽어도 통일찬송가만 옳다는 것이 아니고 교계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따라가겠다는 것이니 공회 식구들끼리 모였을 때는 고전 차원의 찬송가 사용을 해 보는 것이 어린 신앙식구들에게 공회의 역사교육이나 정체성 체험 차원에서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집회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이는 명분상 한번 치르고 지나가는 집회에서 그치지 않게 됩니다.
즉, 현재 전국의 2백여 개가 넘는 공회 교회 분포도는
공회 교회 교인들이 타처로 거주지를 옮길 때 서로 공회 교회로 최대한 옮기게 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외부 교인은 안으로 전도하고 내부 교인은 안에서 움직이게 되는 효과가 있는데
이렇게 될 때 공회는 공회라는 이름이나 공회 신앙노선에 관련되어 손해 본 모든 전도의 불리함을 만회하고 오히려 타 교단보다 더 부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 홈은
이 노선과 전혀 상관없는 분들이 이 노선 교회를 찾거나
이 홈 직원들이 속한 공회 교회 교인 중에서 이사를 하는 경우 동일 공회 교회가 없으면 일반 교단 대신에 최대한 공회 교회들을 다니도록 안내하였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그 수가 적지 않음을 해당 교회들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홈에서 또는 노선 토론을 해야 하는 곳에서는 서슴치 않고 해야 하지만
교인을 전도하거나 인도하는 일은 어린 신앙에서 장성한 신앙으로 자라가는 과정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각 교인과 교회 형편을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로 받아 현실처리할 수 있습니다. 즉, 술 먹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죄라고 서슴치 않고 답변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만일 토론을 요구한다면 가차없이 술이 죄라고 주장을 하며 반대 주장자를 몰아세워야겠지만, 만일 오늘 맥주병을 들고 교회를 오는 교인이 있다면 그의 신앙 내력을 봐서 장로님이 맥주병을 들었다면 옆에 술을 허용하는 교회로 가시라고 안내할 것이고 만일 술도가 주인이 신앙 출발을 하기로 했다며 찾아왔다면 다음에는 집에서 마시고 오늘은 일단 예배를 보자 하면서 다른 교인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각 공회 교회들이 자기 교회의 신앙노선을 따라 진행하되
집회를 통해 과거 함께 자랑스럽게 가졌던 공통 신앙 출발 상황을 한번 살피고
이왕이면 공회 노선에 가까운 교회로 교인의 이동을 안내하게 된다면
공회 교회의 성장은 가장 바람직한 방향의 내부 재생산을 먼저 확보한 다음
외부로 복음을 전하는 방향이 될 터인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말할 자리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자리를 구별하는 기본이 없어
오히려 다른 공회 교회에 우리 교인을 소개하면 본 교회까지 피해를 입는다는
내심이 있어 이왕 교회 밖으로 이동하는 교인이 있으면 공회 교회를 피하게 하고
이런 현상은 목회자 자녀들이 앞서고 있는 정도이므로
내 자녀를 그렇게 하고 교인이나 교인 자녀의 외부 이동에 공회 교회를 굳이 안내한다면 그런 모순이 없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