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성경 | 48갈라디아서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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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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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1:35
갈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가나안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주신다는 약속을 따라 창12:1에서 출발했으나 히11:9, 13에서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을 받지 못했으나 16절에서 약속을 어기지 않으실 하나님이 주신다 하고도 주지 않게 되자 땅에 있는 가나안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원래 본향, 정말 영원히 안식할 가나안을 주시는데 이 땅의 가나안에서 그 하늘 그 위에 있는 가나안을 마련하는 것을 알아 차리게 됩니다. 19절에서 이삭을 죽이라 할 때 이삭을 통해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죽이면 부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이 땅에 있는, 하늘 아래의 생각과 세계에서만 알아 듣고 살아 오다가 저 세상, 이 땅 위에 있는, 영원 영생의 신령한 것을 이렇게 하나씩 깨달아 가게 되었습니다.
* 가나안의 중심인 예루살렘
가나안을 두고도 땅에 있는 가나안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가나안을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이라는 것은 가나안을 다스리는 가나안의 중심입니다. 땅에 있는 가나안은 우리가 아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 천국의 가나안은 이 땅 위에 가나안을 포크레인으로 파다가 우리처럼 부활을 시켜서 하늘에 갖다 놓는 것일까? 땅에 가나안이 있고 하늘의 신령한 가나안이 있습니다. 이 땅에 가나안에는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있고, 하늘에 있는 신령한 가나안에는 신령한 예루살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가나안은 천국 그 전부를 말합니다.하늘의 예루살렘은 천국의 중심이며 천국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서울이 이 나라의 중심인데 서울이 서울인 것은 왕이 있어 서울이고 지금은 대통령이 있어서 서울입니다. 고려 때는 개성, 신라 때는 경주가 서울입니다. 조선과 지금은 서울이 서울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이 다스리는 곳, 주님은 머리 되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어 엡1:23 말씀에 따라 영원한 천국의 예루살렘이 됩니다. 우리 내면에 말씀과 다르고 주님과 다른 부분은 예루살렘이 아니니 지옥에 모두 쓰레기로 내버릴 것이고 주님을 머리로 삼은 우리의 신앙이 영원한 천국의 예루살렘이 되고, 영계 전체는 영원한 가나안이 될 것이며, 이 땅 위에 가나안 밖의 이방처럼 영원한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는 바깥은 전부 영원히 지옥입니다.
따라서 갈4:26에서 자유자는 주님의 대속으로 구원 받은 우리 전부이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 땅에서는 우리의 생활과 심심에 옛사람의 별별 죄와 악습이 섞여 있지만 이 것을 죽을 때는 다 벗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부활할 때는 구원 받은 우리의 영과 우리의 심신에 성화된 부분만 남을 것이니 이 상태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며, 우리는 다시 죄가 없는 자유자이며,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주님을 머리로 삼고 주님에게 순종한 신앙의 사람은 자기가 전도하고 지도하는 새로운 교인, 후배 교인, 후세대 교인을 만들고 품고 길러 가니 신앙으로 앞서 간 세계를 우리 어머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신앙의 아버지라 했고 디모데는 신앙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버지라 할 때는 신앙을 만들고 보호하고 이끌었다는 뜻이고, 어머니라는 말은 신앙으로 신앙으로 해산하는 고생을 하고 품에 안고 다독였다는 면을 말합니다. 남녀의 남성과 여성을 나누어 분리한 것은 구약이고, 신약은 신령한 시대입니다.
출처: pkist/발언14812 '갈4:26에 대한 공회의 해석 (1)' 회원 2024.09.20
계21:2 새 예루살렘을 주님의 신부라 했고 계19:8에서 이 신부의 옷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성도 1명이 아니라 성도들이며, 주님의 몸도 성도 전부가 한 몸입니다.
성구를 다 동원하려면 위에 표현 하나하나에 표시할 수 있으나, 이 정도만 적습니다.
* 가나안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주신다는 약속을 따라 창12:1에서 출발했으나 히11:9, 13에서 죽을 때까지 그 약속을 받지 못했으나 16절에서 약속을 어기지 않으실 하나님이 주신다 하고도 주지 않게 되자 땅에 있는 가나안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원래 본향, 정말 영원히 안식할 가나안을 주시는데 이 땅의 가나안에서 그 하늘 그 위에 있는 가나안을 마련하는 것을 알아 차리게 됩니다. 19절에서 이삭을 죽이라 할 때 이삭을 통해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죽이면 부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이 땅에 있는, 하늘 아래의 생각과 세계에서만 알아 듣고 살아 오다가 저 세상, 이 땅 위에 있는, 영원 영생의 신령한 것을 이렇게 하나씩 깨달아 가게 되었습니다.
* 가나안의 중심인 예루살렘
가나안을 두고도 땅에 있는 가나안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가나안을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이라는 것은 가나안을 다스리는 가나안의 중심입니다. 땅에 있는 가나안은 우리가 아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 천국의 가나안은 이 땅 위에 가나안을 포크레인으로 파다가 우리처럼 부활을 시켜서 하늘에 갖다 놓는 것일까? 땅에 가나안이 있고 하늘의 신령한 가나안이 있습니다. 이 땅에 가나안에는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있고, 하늘에 있는 신령한 가나안에는 신령한 예루살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가나안은 천국 그 전부를 말합니다.하늘의 예루살렘은 천국의 중심이며 천국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서울이 이 나라의 중심인데 서울이 서울인 것은 왕이 있어 서울이고 지금은 대통령이 있어서 서울입니다. 고려 때는 개성, 신라 때는 경주가 서울입니다. 조선과 지금은 서울이 서울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 주님이 다스리는 곳, 주님은 머리 되고, 우리는 그의 몸이 되어 엡1:23 말씀에 따라 영원한 천국의 예루살렘이 됩니다. 우리 내면에 말씀과 다르고 주님과 다른 부분은 예루살렘이 아니니 지옥에 모두 쓰레기로 내버릴 것이고 주님을 머리로 삼은 우리의 신앙이 영원한 천국의 예루살렘이 되고, 영계 전체는 영원한 가나안이 될 것이며, 이 땅 위에 가나안 밖의 이방처럼 영원한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는 바깥은 전부 영원히 지옥입니다.
따라서 갈4:26에서 자유자는 주님의 대속으로 구원 받은 우리 전부이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이 땅에서는 우리의 생활과 심심에 옛사람의 별별 죄와 악습이 섞여 있지만 이 것을 죽을 때는 다 벗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부활할 때는 구원 받은 우리의 영과 우리의 심신에 성화된 부분만 남을 것이니 이 상태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며, 우리는 다시 죄가 없는 자유자이며, 이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주님을 머리로 삼고 주님에게 순종한 신앙의 사람은 자기가 전도하고 지도하는 새로운 교인, 후배 교인, 후세대 교인을 만들고 품고 길러 가니 신앙으로 앞서 간 세계를 우리 어머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신앙의 아버지라 했고 디모데는 신앙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버지라 할 때는 신앙을 만들고 보호하고 이끌었다는 뜻이고, 어머니라는 말은 신앙으로 신앙으로 해산하는 고생을 하고 품에 안고 다독였다는 면을 말합니다. 남녀의 남성과 여성을 나누어 분리한 것은 구약이고, 신약은 신령한 시대입니다.
출처: pkist/발언14812 '갈4:26에 대한 공회의 해석 (1)' 회원 2024.09.20
계21:2 새 예루살렘을 주님의 신부라 했고 계19:8에서 이 신부의 옷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성도 1명이 아니라 성도들이며, 주님의 몸도 성도 전부가 한 몸입니다.
성구를 다 동원하려면 위에 표현 하나하나에 표시할 수 있으나, 이 정도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