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 성경 | 26에스겔04: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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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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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19:29
에스겔 4장 5절과 6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5절의 390일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담당하는 날 수이고, 6절의 40일은 유다의 죄악을 담당하는 날 수입니다. 40일을 말씀하시면서 1일이 1년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에 앞서 정탐했던 날 수가 40일이고, 가나안을 악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하다가 그들이 다 죽기까지 광야에서 지내리라고 하신 햇수가 40일의 1일을 1년으로 환산한 40년이었습니다.
40년은 인생의 실질적인 평생 전부입니다. 태어나서 자라는 어릴 때와 배워 가야 하는 때, 늙어서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 때를 빼고 나면 실제 한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바르게 내려오고 바르게 살아야 할 정통 교파나 잘 믿어야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가지고 세상으로 헛되게 산 그 세월 전부를 40일로 표시했습니다. 남조 유다의 죄에 해당합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감정 문제로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계통인 다윗의 집을 배반하고 탈선의 길로 나가버렸습니다. 믿기는 하지만 세상에 아주 버려둔 성전 밖마당 같은 신앙이며, 하나님께서 세상에 다 맡겨버려서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한의 기간, 1년 = 12개월, 360일에다 다시 30일을 추가시켜서 390일이 되게 했습니다. 더 많은 기회를 주셨으나 그 기회조차 죄만 짓고 회개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 속한 것은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훗날 회복조차 허락되지 않고 세상으로 완전히 흩어져버렸고, 지난날 믿은 적이 있다는 기억만 애매하게 남아 있게 했습니다.
2. 오늘에 응용하면
공회를 기준으로, 잘 믿든지 잘 못 믿든지 그래도 이 노선을 지켜내려고 한 이들에게는 남조 유다와 같은 계통이니 40일의 고난이 되겠고, 공회 자체를 버리고 일반 교계로 나가 버린 이들은 북조 이스라엘과 같은 탈선이니 390일의 고난이 지금도 가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위를 좀 넓혀서 일반 교계로 말하면, 그래도 WCC만은 거부하는 교회가 그나마 40일의 고난이 되겠고, WCC가 좋은 것이라고 그 운동에 주력이 된 교회에 대한 고난의 기간이 390일이 될 수 있겠습니다.
계통은 노선입니다. 신앙의 노선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인데, 구원의 계통 옳고 바른 노선에 서 있어도 실제로 주신 기회에 구원에 전력하지 않고 세상으로 허비하면 남조 유다와 같이 됩니다. 옳은 길에 서도 그렇게 되거든 하물며 북조 이스라엘과 같은 탈선의 길에 서면 아예 평생을 허비하고 더 기회를 줘도 그것조차 세상을 향하고 말게 됩니다.
3. 참고로
성경의 ‘숫자’를 두고, 정확하게 ‘이런 뜻’이라거나 ‘이런 것’이라고 확정하지 않은 것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서 ‘정확하게’ 맞추면 성경 해석이 이상하게 되어버립니다. 숫자뿐 아니고 어떤 형태와 지리도 그러합니다. 성경은 우리 구원의 도리로 주신 말씀이지 수학이나 역사 교과서나 지리서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 않고 확정하지 않은 숫자는 우리 구원의 도리로 ‘해석’할 수밖에 없고 대략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하신 성구가 숫자에 관한 것이어서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출애굽기 25장 성막에서, 1규빗, 2규빗으로 딱 자를 수 있는데 굳이 반 규빗을 더해서 1규빗 반, 2규빗 반으로 정한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신약의 누가복음 10장에 강도 만난 사람을 사마리아인이 치료하고 보살펴주고도 데나리온 둘을 더 주었고, 그러고도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390일의 설명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40년은 인생의 실질적인 평생 전부입니다. 태어나서 자라는 어릴 때와 배워 가야 하는 때, 늙어서 마음은 있어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 때를 빼고 나면 실제 한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바르게 내려오고 바르게 살아야 할 정통 교파나 잘 믿어야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가지고 세상으로 헛되게 산 그 세월 전부를 40일로 표시했습니다. 남조 유다의 죄에 해당합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감정 문제로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계통인 다윗의 집을 배반하고 탈선의 길로 나가버렸습니다. 믿기는 하지만 세상에 아주 버려둔 성전 밖마당 같은 신앙이며, 하나님께서 세상에 다 맡겨버려서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한의 기간, 1년 = 12개월, 360일에다 다시 30일을 추가시켜서 390일이 되게 했습니다. 더 많은 기회를 주셨으나 그 기회조차 죄만 짓고 회개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 속한 것은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훗날 회복조차 허락되지 않고 세상으로 완전히 흩어져버렸고, 지난날 믿은 적이 있다는 기억만 애매하게 남아 있게 했습니다.
2. 오늘에 응용하면
공회를 기준으로, 잘 믿든지 잘 못 믿든지 그래도 이 노선을 지켜내려고 한 이들에게는 남조 유다와 같은 계통이니 40일의 고난이 되겠고, 공회 자체를 버리고 일반 교계로 나가 버린 이들은 북조 이스라엘과 같은 탈선이니 390일의 고난이 지금도 가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위를 좀 넓혀서 일반 교계로 말하면, 그래도 WCC만은 거부하는 교회가 그나마 40일의 고난이 되겠고, WCC가 좋은 것이라고 그 운동에 주력이 된 교회에 대한 고난의 기간이 390일이 될 수 있겠습니다.
계통은 노선입니다. 신앙의 노선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인데, 구원의 계통 옳고 바른 노선에 서 있어도 실제로 주신 기회에 구원에 전력하지 않고 세상으로 허비하면 남조 유다와 같이 됩니다. 옳은 길에 서도 그렇게 되거든 하물며 북조 이스라엘과 같은 탈선의 길에 서면 아예 평생을 허비하고 더 기회를 줘도 그것조차 세상을 향하고 말게 됩니다.
3. 참고로
성경의 ‘숫자’를 두고, 정확하게 ‘이런 뜻’이라거나 ‘이런 것’이라고 확정하지 않은 것은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서 ‘정확하게’ 맞추면 성경 해석이 이상하게 되어버립니다. 숫자뿐 아니고 어떤 형태와 지리도 그러합니다. 성경은 우리 구원의 도리로 주신 말씀이지 수학이나 역사 교과서나 지리서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 않고 확정하지 않은 숫자는 우리 구원의 도리로 ‘해석’할 수밖에 없고 대략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하신 성구가 숫자에 관한 것이어서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출애굽기 25장 성막에서, 1규빗, 2규빗으로 딱 자를 수 있는데 굳이 반 규빗을 더해서 1규빗 반, 2규빗 반으로 정한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신약의 누가복음 10장에 강도 만난 사람을 사마리아인이 치료하고 보살펴주고도 데나리온 둘을 더 주었고, 그러고도 부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390일의 설명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