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 성경 | 16느헤미야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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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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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05:42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나님이 맡긴 가정의 왕이 부모, 직장에 왕으로 보낸 이는 사장이며 상관이다. 사회적으로는 그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 임명한 우리의 왕이다. 왕과 왕의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신앙의 세계다. 부모가 불교를 믿는다면, 그 불교를 찬성할 수는 없으나 그 부모의 건강을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래야 회개하고 돌아 설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이전에 우리에게 맡긴 위치가 그렇다.
참으로 오해 받기 좋은 점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원수의 나라 로마와 황제 그리고 각 시대에 이스라엘을 점령한 원수들 중에는 바벨론 메대 바사국들이 있었다. 포로로 잡혀 왔다면 하나님이 뜻이 있어 맡긴 줄 알고 충성해야 한다. 진심을 다해 평안을 빌어야 한다. 그렇다면 식민지가 된 조선의 교인은 총독부와 일본 천왕의 건강을 비는 것이 신앙이다. 선교사들은 이 말씀을 알기 때문에 그러했다. 그러나 표시를 내면 조선 교회에 전도를 위해 오해가 있어서 조심을 해야 했다.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느헤미야의 오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 오는 신앙의 열조들이 뿌리가 되고 둥치가 되고 가지가 된 끝에 이어 가고 있다. 그래서 신앙의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가 이어지는.. 이 것이 '열조'이다. 묘실이란 인생의 결산을 말한다. 구약이니 육체의 이스라엘이 육체의 죽은 묘실을 성심성의껏 관리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 도리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신령한 묘실, 오늘을 살고 나면 오늘은 묘실로 보내야 한다. 늙은 사람은 아직도 살아 있지만 자기 젊음을 묘실로 이미 보낸 셈이다. 더 자세히 보면 우리의 매일은 지나 가는 순간 그 매일의 그 현실에서 행동한 것이 전부 묘실을 통해 천국이든 지옥으로 분류가 된다. 우리 자체는 택자이니 천국을 가지만 우리의 행위 생각 생애 중에 죄를 짓고 하나님 없이 산 부분은 전부 분리 되어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 진다.
그 묘실이 있는 성읍은 예루살렘을 말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 현실이 예루살렘이다. 바르게 살면 천국으로 향하는 묘실로 들어 가고, 잘못 살았다면 영원히 지옥에 버려야 할 자기 언행이 된다. 세상 의무 책임 충성은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에서 잘 하고 있으나 느헤미야가 가야 할 천국 준비, 오늘의 자기 신앙 자기 예배 자기 성화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제까지 황무하고'
세상면으로는 완벽한데, 그렇게 되다 보니 그 사람의 교회 생활과 신앙 형편은 어떠한가? 느헤미야 자신은 좋았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맡아서 이끌어야 할 자녀와 주변과 사람들의 신앙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와 공회의 신앙 형편은 현재 어떠한가?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신앙의 사람이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이 신앙의 세계로 들어 올 때는 막아야 할 것이 있고, 검토하고 용처를 살펴 잘 관리해야 하는 역할이 성문이다. 성문이 불에 타 버렸으니 교회에 세상 음악이 들어 오고 노래방이 따라 오고 온갖 것이 드나 들고 있으면 이름만 예루살렘이지 이 것은 죽음을 뜻하는 여우의 소굴이다. 귀신의 처소가 된다. 예배당이 아니라 굿당에 마귀당이 된다. 가정 교회도 소속 공회도 두루 살펴 봐야 한다.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느헤미야에게는 세상 문제가 있다 해도, 그 것은 다 맡겨 버려 그 것이 마음에 진정 근심이 될 수 없으나 영생을 두고는, 자기 식구들의 신앙까지를 생각할 때 수색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맡긴 가정의 왕이 부모, 직장에 왕으로 보낸 이는 사장이며 상관이다. 사회적으로는 그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 임명한 우리의 왕이다. 왕과 왕의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신앙의 세계다. 부모가 불교를 믿는다면, 그 불교를 찬성할 수는 없으나 그 부모의 건강을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그래야 회개하고 돌아 설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이전에 우리에게 맡긴 위치가 그렇다.
참으로 오해 받기 좋은 점은, 이스라엘을 점령한 원수의 나라 로마와 황제 그리고 각 시대에 이스라엘을 점령한 원수들 중에는 바벨론 메대 바사국들이 있었다. 포로로 잡혀 왔다면 하나님이 뜻이 있어 맡긴 줄 알고 충성해야 한다. 진심을 다해 평안을 빌어야 한다. 그렇다면 식민지가 된 조선의 교인은 총독부와 일본 천왕의 건강을 비는 것이 신앙이다. 선교사들은 이 말씀을 알기 때문에 그러했다. 그러나 표시를 내면 조선 교회에 전도를 위해 오해가 있어서 조심을 해야 했다.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느헤미야의 오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내려 오는 신앙의 열조들이 뿌리가 되고 둥치가 되고 가지가 된 끝에 이어 가고 있다. 그래서 신앙의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가 이어지는.. 이 것이 '열조'이다. 묘실이란 인생의 결산을 말한다. 구약이니 육체의 이스라엘이 육체의 죽은 묘실을 성심성의껏 관리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 도리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신령한 묘실, 오늘을 살고 나면 오늘은 묘실로 보내야 한다. 늙은 사람은 아직도 살아 있지만 자기 젊음을 묘실로 이미 보낸 셈이다. 더 자세히 보면 우리의 매일은 지나 가는 순간 그 매일의 그 현실에서 행동한 것이 전부 묘실을 통해 천국이든 지옥으로 분류가 된다. 우리 자체는 택자이니 천국을 가지만 우리의 행위 생각 생애 중에 죄를 짓고 하나님 없이 산 부분은 전부 분리 되어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 진다.
그 묘실이 있는 성읍은 예루살렘을 말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 현실이 예루살렘이다. 바르게 살면 천국으로 향하는 묘실로 들어 가고, 잘못 살았다면 영원히 지옥에 버려야 할 자기 언행이 된다. 세상 의무 책임 충성은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에서 잘 하고 있으나 느헤미야가 가야 할 천국 준비, 오늘의 자기 신앙 자기 예배 자기 성화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제까지 황무하고'
세상면으로는 완벽한데, 그렇게 되다 보니 그 사람의 교회 생활과 신앙 형편은 어떠한가? 느헤미야 자신은 좋았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맡아서 이끌어야 할 자녀와 주변과 사람들의 신앙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와 공회의 신앙 형편은 현재 어떠한가?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신앙의 사람이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이 신앙의 세계로 들어 올 때는 막아야 할 것이 있고, 검토하고 용처를 살펴 잘 관리해야 하는 역할이 성문이다. 성문이 불에 타 버렸으니 교회에 세상 음악이 들어 오고 노래방이 따라 오고 온갖 것이 드나 들고 있으면 이름만 예루살렘이지 이 것은 죽음을 뜻하는 여우의 소굴이다. 귀신의 처소가 된다. 예배당이 아니라 굿당에 마귀당이 된다. 가정 교회도 소속 공회도 두루 살펴 봐야 한다.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느헤미야에게는 세상 문제가 있다 해도, 그 것은 다 맡겨 버려 그 것이 마음에 진정 근심이 될 수 없으나 영생을 두고는, 자기 식구들의 신앙까지를 생각할 때 수색이 없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