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 성경 | 16느헤미야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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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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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7 10:04
'어문은'
물고기 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생선 문이다. 근처의 요단강에서 잡은 고기, 저 북쪽 멀리 갈릴리에서도 잡아 올 수 있다. 또 서쪽 끝의 대해라 하신 지중해에서 잡아서 올 수도 있다. 왜 하필 어문일까? 우연일까, 그냥 그렇게 사용했으니 그렇게 사실을 적었을 뿐인가? 그렇게 적을 때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물고기를 잠깐 묵상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레위기 11:10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만 먹게 하셨다. 선악과를 먹은 세상은 죄악의 바다이다. 어느 한 곳도 어느 한 시도 피할 도리는 없다. 순식간에 어디로 데려 갈지 모른다. 늘 진리의 노선에서 신앙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공부하고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하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어느 대목에서 방향 하나 잘못 잡아 아주 멀리 가버린다. 만사 생각하고 노선과 방향을 잡아야 한다. 비늘이란 물 속의 별별 죄악이 공격하지 못하게 막아 내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말한다. 그냥 죄악의 세상을 살면서 대충 먹고 살다 보면 베드로처럼 살게 된다.
주님이 오셔서 처음 전도한 기록이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불러 냈다. 죄악의 세상을 살며 그 속에서 건져 먹는 것으로 살지 말고 이제는 죄악의 바다 속에서 건져 먹는 그 죄인들을 하늘 나라로 건져 주는 인간 구원의 길로 살라고 했다. 예루살렘 성에 아무 물고기든 맛만 있으면 가져 오고 영양가만 있으면 가져 올 수가 있을까? 레11장에서 금지한 부정한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숨겨 올 수 있으니 조사도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오병이어를 통해 자신이 몸 바쳐 구원할 백성들을 위해 떡을 나누셨다. 주님의 인성의 대속의 희생을 각자 자기 것으로 삼아 그렇게 살라는 것이다. 이 때 물고기 두 마리를 보태 주셨다. 밥을 먹으니 반찬을 더했겠지? 그렇다. 그 것이 전부일까. 도시락의 내용물을 사실적으로 적어 주시고 그 것이 역사가 되며 그 것으로 전부일까. 죄악의 세상을 살며 그 속에서 하루 살이에 필요한 재료 자료 요소를 챙기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하늘 나라로 너의 보물을 쌓아 두고 죄인의 죄를 털어 버리고 의인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라, 그런 소망을 가지라고 신앙의 양식 신앙의 힘을 주셨다.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2절에서는 삭굴 혼자 건축했고, 3절에서는 맡은 부분이 많아서인지 가족 단위로 맡았다. 복음 운동을 하다 보면 찬송 반주는 혼자 할 수 있고 찬양대는 여럿이 할 수도 있다. 또 교회의 이 구역이 저 일을 하고 저 일은 이 사람 혼자 할 수도 있다.
'그 들보를 얹고'
무조건 막아 내면 성벽이다. 조사해서 드나 들게 하면 문이다. 그 문제 들보는 문을 받쳐 주는 지탱이다. 짐을 지는 것이다.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호주로서의 감당도 있고 목회자의 무게도 있다. 어머니의 역할도 있다. 하나님께 메어 주는 짐을 버티고 감당하는 책임감을 말한다.
'문짝을 달고'
열어서 통로가 되기도 하고, 막아야 할 것에게는 성벽이 되기도 해야 한다.
'자물쇠와'
비밀의 세계다. 알면 열린 문이 되고 모르면 닫힌 문이니 성벽의 문짝이 닫히면 성벽이 되어야 한다.
'빗장을 갖추었고'
성문도 성벽처럼 막아 서기는 하지만 문짝만 가지고는 막기가 어렵다. 그 방어에 덧댄 것이 빗장이다. 뒤에서 더 돕는 역할을 말한다.
물고기 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생선 문이다. 근처의 요단강에서 잡은 고기, 저 북쪽 멀리 갈릴리에서도 잡아 올 수 있다. 또 서쪽 끝의 대해라 하신 지중해에서 잡아서 올 수도 있다. 왜 하필 어문일까? 우연일까, 그냥 그렇게 사용했으니 그렇게 사실을 적었을 뿐인가? 그렇게 적을 때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물고기를 잠깐 묵상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레위기 11:10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만 먹게 하셨다. 선악과를 먹은 세상은 죄악의 바다이다. 어느 한 곳도 어느 한 시도 피할 도리는 없다. 순식간에 어디로 데려 갈지 모른다. 늘 진리의 노선에서 신앙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공부하고 진학하고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하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어느 대목에서 방향 하나 잘못 잡아 아주 멀리 가버린다. 만사 생각하고 노선과 방향을 잡아야 한다. 비늘이란 물 속의 별별 죄악이 공격하지 못하게 막아 내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말한다. 그냥 죄악의 세상을 살면서 대충 먹고 살다 보면 베드로처럼 살게 된다.
주님이 오셔서 처음 전도한 기록이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불러 냈다. 죄악의 세상을 살며 그 속에서 건져 먹는 것으로 살지 말고 이제는 죄악의 바다 속에서 건져 먹는 그 죄인들을 하늘 나라로 건져 주는 인간 구원의 길로 살라고 했다. 예루살렘 성에 아무 물고기든 맛만 있으면 가져 오고 영양가만 있으면 가져 올 수가 있을까? 레11장에서 금지한 부정한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숨겨 올 수 있으니 조사도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오병이어를 통해 자신이 몸 바쳐 구원할 백성들을 위해 떡을 나누셨다. 주님의 인성의 대속의 희생을 각자 자기 것으로 삼아 그렇게 살라는 것이다. 이 때 물고기 두 마리를 보태 주셨다. 밥을 먹으니 반찬을 더했겠지? 그렇다. 그 것이 전부일까. 도시락의 내용물을 사실적으로 적어 주시고 그 것이 역사가 되며 그 것으로 전부일까. 죄악의 세상을 살며 그 속에서 하루 살이에 필요한 재료 자료 요소를 챙기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하늘 나라로 너의 보물을 쌓아 두고 죄인의 죄를 털어 버리고 의인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라, 그런 소망을 가지라고 신앙의 양식 신앙의 힘을 주셨다.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2절에서는 삭굴 혼자 건축했고, 3절에서는 맡은 부분이 많아서인지 가족 단위로 맡았다. 복음 운동을 하다 보면 찬송 반주는 혼자 할 수 있고 찬양대는 여럿이 할 수도 있다. 또 교회의 이 구역이 저 일을 하고 저 일은 이 사람 혼자 할 수도 있다.
'그 들보를 얹고'
무조건 막아 내면 성벽이다. 조사해서 드나 들게 하면 문이다. 그 문제 들보는 문을 받쳐 주는 지탱이다. 짐을 지는 것이다.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호주로서의 감당도 있고 목회자의 무게도 있다. 어머니의 역할도 있다. 하나님께 메어 주는 짐을 버티고 감당하는 책임감을 말한다.
'문짝을 달고'
열어서 통로가 되기도 하고, 막아야 할 것에게는 성벽이 되기도 해야 한다.
'자물쇠와'
비밀의 세계다. 알면 열린 문이 되고 모르면 닫힌 문이니 성벽의 문짝이 닫히면 성벽이 되어야 한다.
'빗장을 갖추었고'
성문도 성벽처럼 막아 서기는 하지만 문짝만 가지고는 막기가 어렵다. 그 방어에 덧댄 것이 빗장이다. 뒤에서 더 돕는 역할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