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 성경 | 40마태복음01: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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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12:43
1) 마태복음 1장에 예수의 세계에서 아브라함을 비롯해 마리아의 남편 요셉까지 자손이 줄줄이 나와 있고요. 그리고 누가복음 3장23절부터 예수의 세계라고 해가지고 쭉 올라가서 아담과 하와까지 나옵니다. 거기서도 똑 같이 예수의 이상 요셉이라고 해서 나오는데 여기서는 분명히 요셉은 같은 신약시대의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요셉의 자손이 헤스론에서부터 틀린지?
03누가복음03:23-38, 마태복음01:01-16
(답변) 마태복음은 믿음의 족보, 누가복음은 육체의 족보로 보셨으면
마태복음 1장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믿음의 족보이고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육체의 족보로 보고 있습니다. 육체의 조상이어서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믿음으로는 예수님의 조상 반열에 들지 못하는 경우는 마태목음에서 빠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손의 대수도 차이가 나고 사람 이름도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 사람이 가진 이름을 달리 표시할 때도 있습니다.
(/pkist.net/쉬운문답/34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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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예수님 족보, 유다의 장자됨(마1장, 눅3장)
첫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가장 큰 의문은 다윗왕의 아들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의 아들로 솔로몬을 적었고 누가복음에서는 나단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5장 1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다윗왕) 난 자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나옵니다. 또한 역대상 3장 5절과 14장 4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엄마는 모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인 것 같구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요?
둘째 역대상 5장 2절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느니라.'
성경은 분명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다고 하는데 여러 서적에서는 유다에게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예수님의 관계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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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 마태복음 1장은 믿음의 계통으로, 누가복음 3장은 혈통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1.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를 적고 있으며, 누가복음 3장은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75대이고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만을 두고 말한다면 55대입니다. 두 곳의 족보는 사람의 이름도 문제지만 그 숫자도 뚜렷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이 정확할 수 없고 엉망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늘 예로 드는 문제입니다.
2. 성경은 그 기록이 우리나라 족보책과 같은 차원에서 기록된 족보전문서가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은 너무나도 차이가 많습니다. 일부러 틀리게 하려고 하지 않고는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날 수 없고 또 술에 한껏 취해서 적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틀릴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그 기록의 목적이 우리나라 족보책과 같은 차원에서 기록된 족보전문서가 아님을 먼저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족보책은 그 집안 조상 한 명으로부터 내려온 자녀 전부를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족보책에 이름이 올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집안에 출생한 적이 없다는 증명이 가능하게 되는 정도입니다. 가문을 중심으로 인생사 전부를 엮어오던 시대가 만들어낸 특이한 서적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도 인류조상인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 또 이스라엘의 직계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 때까지의 정확한 족보기록에 목적을 두고 기록이 되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경은 예수님의 족보 2가지 기록만을 가지고도 아주 몹쓸 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조상의 숫자가 전부 기록되고 출생의 연결이 100% 이어지는 족보책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구원의 이치를 위해 기록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족보적 정확성에 있지 않고 구원에 필요한 말씀으로 기록해 주셨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42대로 기록하여 적게 되는 이유가 있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75대를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이유를 살피고 그래서 그 조상의 이름들 중에 빠지고 들어간 사람들을 세밀히 살펴 연구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를 찾아가는 자세가 됩니다.
3. 마태복음의 족보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기록이며, 누가복음은 육체적 조상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은 비록 하나님이시라도 육체를 입고 오셨고 그 육체는 아무 혈통을 그냥 사용한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알리시고 가르쳐야 할 필요에 따라 필요한 혈통을 만들어 내려오셨고 일부러 아브라함의 계통에서 출생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으로 나타난 예수님 육체의 계통은 단순히 누구가 조상이라는 정도에서 그칠 수 없고 왜 12아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유다같은 부도덕한 아들을 통해 계통을 이었으며 왜 이런저런 조상을 그 계통에 이름을 올려놓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마태복음은 믿음의 조상으로 내려온 계통이기 때문에 육체의 출생 대수와 계통은 필요가 없는 경우 생략을 했습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바울을 낳고 바울이 디모데를 낳았다고 한다면 육체적 혈통으로는 성립될 수 없으나 믿음 계통으로는 정확한 기록이 되어집니다. 구약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육체 범위에서 신앙계통을 이어왔기 때문에 대개 육체의 혈통과 믿음의 계통이 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계통과 육체의 계통이 완전히 분리되어 내려오지 않고 가다가 한쪽에서는 몇 명이 빠지기도 하고 또 중도에 다시 한 사람으로 합해지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이삭이나 야곱은 그 아버지에게 육체로도 또 신앙으로도 대를 이어가고 있는 자녀가 되고 있으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꼭같이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경우 다윗의 육체 혈통이며 또한 신앙의 계통이지만 육체 혈통은 나단으로 기록되고 마태복음에서 신앙계통으로만 다윗을 잇고 있음을 기록해 주신 것은,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를 구약에서 해석할 수 없는 점까지 신약에서 보충하고 또 필요한 대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답변2) 유다와 요셉이 야곱의 계통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1. 유다와 요셉의 관계는 보다 넓게 보셔야 합니다.
① 장자의 명분이란 하나님 나라의 계통을 점령하고 복 받는 이름입니다.
야곱의 혈통적 장남은 르우벤입니다. 대상5:1에서도 이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출생 순서로만 본다면 르우벤은 장남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첫 출생이었으나 장자의 명분에 따라오는 복을 받지 못했고 에서도 장자였기 때문에 통째로 굴러오는 장자의 명분에 따라오는 복을 일없이 받을 줄 알았다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뺏기는 생각 못 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장자의 명분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복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장자로 내려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삭과 같이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시고 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에게 변경시켜 주실 수도 있으며, 에서와 같이 장자의 명분을 망령되게 여기는 경우 다른 아들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② 요셉의 경우, 그의 신앙행적은 과연 열두 아들 중 실질적으로 장남이었습니다.
요셉의 경우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높이 들어쓰려고 꿈으로 두번이나 계시해 주셨으니 이미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가도록 되어 있었고 또한 그 예언대로 요셉이 17세 이후 아버지를 떠나 애굽으로 들어갔고 이후 애굽을 구한 다음 야곱의 집 전체를 구하는 순서로 걸어가게 됩니다. 두말 할 것 없이 요셉은 야곱시대에 야곱의 12아들 중에 '그 역할과 기능'으로 본다면 뚜렷히 장자를 감당했으며 이 공로를 그대로 인정하신 것이 바로 12지파 중에서 요셉은 분깃도 2배를 주어 요셉의 두 아들이 그 삼촌들과 같은 서열에서 12지파 중 2지파를 차지하였고 야곱의 원래 12아들 전체 중에서도 장자의 명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③ 유다는, 요셉과 달리 이스라엘의 앞날을 두고는 영원한 구원의 지파가 될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당대만으로 비교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장차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을 두고는 요셉과 비교할 수 없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야곱 시대만으로 볼 때 유다는 요셉과 비교될 수 없었습니다. 다른 형제와 약간 표가 날 몇몇 장점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12아들 중에 하나였고 요셉은 12아들 중에 단연 하나밖에 없는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당대에 외부적으로 표시가 나는 면으로는 그러했지만 유다에게는 장차 예수님의 구원계통이 되고 이스라엘의 왕정국가 전체를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장자가 될 수 있는 움싹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야곱 당대만 본다면 비교할 수 없는 신앙의 사람이었으나 요셉의 신앙은 '자손으로 이어지며 자라가는' 신앙의 성질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자기 당대에 신앙의 사람으로는 성경역사 전체를 통해 어느 인물보다도 성자의 모든 요소를 다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았는데 그 중에 제일 대표적인 것이 후손으로 이어지며 점점 자라가는 신앙의 면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⑤ 따라서, 신앙은 오늘 나타난 것과 함께 그 나타날 앞날의 움싹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오늘로 예를 든다면, 손양원목사님이나 김현봉목사님과 같은 분은 그분들 자신의 단독 성화와 경건면을 본다면 참으로 기독교 역사상 한 세대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자신들이 할 일을 다 하고 끝이났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복음역사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칼빈과 같은 사람은 아주 대표적으로 자기 자신의 신앙도 신앙이지만 그의 신앙은 믿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계통적 은혜가 있어 그의 신앙 후손으로 세계교회를 옳고 바르게 잡고 나올 수 있었던 역사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유다가 어떤 면에서 역사로 이어지면서 가면 갈수록 그 신앙의 실상이 크게 나타나게 되고 다윗과 그 자손 예수 그리스도까지 구원의 유다지파라는 이름으로 늘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다른 기회에 크게 연구해 볼 제목일 것입니다.
( /pkist.net/문의답변/88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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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까지 42대라 하였는데 한 사람이 모자라요. 암만 계산해도 41대예요 어디에 문제가 있냐 하면,
11절에 요시아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았다고 했고 또 12절에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라고 했는데 여고냐를 두번 넣으면 42대고, 한번만 넣으면41대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설명부탁 드립니다.
(답변) 마1:17의 14대 X 3 번을 42대로 성급하게 더하면, 성경이 아니고 산수책이 됩니다.
1. 마태복음 1장에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대수
① 논란이 많은 부분을 질문하셨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성경신학에서 신약을 배우게 되면 가장 초두에 거론되는 논란입니다. 참고로, 구약의 경우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 6일의 시간 간격 등을 두고 논란이 한도 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대로 1절로부터 16절에는 41명만 기록했는데 17절에서는 14대씩 3번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42대라는 모순이 나오고 있습니다. 41명의 조상을 왜 42대로 표현했느냐는 문제를 두고 주석가들과 성경신학자들의 의견이 어지럽습니다.
우선 본문을 잠깐 살펴보면, 마1:1-16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41명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고, 17절에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마1:17을 ‘14대 X 3번 = 42'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란입니다.
② 성경은 42대로 더해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14대씩 3번 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를 3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시기를 14대씩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해석의 여지가 없는 부분을 먼저 확정하게 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17절의 첫 시기인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14명입니다. 이 첫째 시기는 처음과 마지막의 사람 이름이 명시되었기 때문에 논란이 없습니다.
둘째로, 17절의 둘째 시기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라고 했는데 다윗부터라고 명시를 했으니 다윗이 들어가야 하고 그때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라고 했으니, 이름이 명시된 14대의 앞부분에 다윗을 넣고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뒷부분은 14대를 맞추면 여고냐 앞에 있었던 요시야까지가 두번째 시기의 14대입니다.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왕으로 있다가 바벨론으로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넣어도 문제는 없습니다만, '다윗부터'라는 명시가 있었고 14대라는 명시가 있으므로 여고냐는 뒤로 빠지게 됩니다.
셋째로, 17절의 셋째 시기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뒤에서부터 14명을 헤아리면 자연히 여고냐가 포함이 됩니다. 또한 세번째 시기의 시작을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라고 했는데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이거하기 전에도 있었지만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 바벨론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넣을 수 있습니다.
③ 17절에서, 41명의 사람을 14대씩 3번으로 나누었고, 한 사람은 두번 반복했습니다.
이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 기록은 조상의 숫자와 그 대수를 더해보면 총합이 맞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한 산수 응용문제집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확실히 해 두셨으면 합니다.
다윗의 이름을 뚜렷하게 첫째 시기와 둘째시기에 각각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조상의 숫자와 3번의 시기의 총합을 맞추는 것은 애당초부터 이 기록에서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3번의시기로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어 3번의시기로 나누고 우리에게 알린 것입니다. 그리고 각 시기의 14명의 인물은 그 시기에 그 인물들이 있었던 의미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족보를 3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마다 14명씩 이름을 거론하며 그 기록을 통해 예수님의 계통을 가르치는 이유만을 찾으면 되는데, 우리의 산수 계산이 세상생활에서 너무 습관화가 되어 숫자만 보면 일단 더해보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모순으로 생각하는 선입관 때문에 마태복음 1장의 인물 숫자가 신학에서 논란이 된 것입니다. 즉, 논란이 될 필요조차 없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2. 여기서 한 가지 참고하실 일은, 성경 해석은 그 근본 방향부터 잘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한없이 살피고 살펴서 찾아내는 것이 깊은 해석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상관없이 성경의 기록을 세상 산수나 토목이나 생물이나 경제나 윤리의 계산법을 가지고 일단 들이대 보는 습관은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질문자를 향해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신학자를 향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많은 지식이 머리 속에 들어있으면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집중하기도 전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넣어둔 세상 잡다한 지식들과 선입관념 또는 세상 상식들이 먼저 튀어나와 성경을 해석해버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3. 이번 답변은 평소 백목사님 설교록을 대하며 답변자가 성경 해석법에 대하여 느끼던 생각입니다.
이번 질문에 해당된 성구에 대하여 그 정확한 분류법에 대하여는 설교록에서 보거나 개인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따라서 위 답변은, 답변자가 파악하고 있는 백영희신앙노선의 성경해석에 대한 자세와 방향을 참고로 하여 답변자가 현재 깨닫고 있는 바이므로 일반인들에게 마1:1-16에 대한 분류법을 확정적으로 소개하지는 못하겠고, 다만 성경해석의 방향과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 싶습니다.
( /pkist.net/문의답변/3128번)
03누가복음03:23-38, 마태복음01:01-16
(답변) 마태복음은 믿음의 족보, 누가복음은 육체의 족보로 보셨으면
마태복음 1장에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믿음의 족보이고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육체의 족보로 보고 있습니다. 육체의 조상이어서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믿음으로는 예수님의 조상 반열에 들지 못하는 경우는 마태목음에서 빠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손의 대수도 차이가 나고 사람 이름도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 사람이 가진 이름을 달리 표시할 때도 있습니다.
(/pkist.net/쉬운문답/34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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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예수님 족보, 유다의 장자됨(마1장, 눅3장)
첫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가장 큰 의문은 다윗왕의 아들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의 아들로 솔로몬을 적었고 누가복음에서는 나단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5장 1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다윗왕) 난 자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나옵니다. 또한 역대상 3장 5절과 14장 4절에도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엄마는 모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인 것 같구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요?
둘째 역대상 5장 2절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느니라.'
성경은 분명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다고 하는데 여러 서적에서는 유다에게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예수님의 관계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또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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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 마태복음 1장은 믿음의 계통으로, 누가복음 3장은 혈통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1.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42대를 적고 있으며, 누가복음 3장은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75대이고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만을 두고 말한다면 55대입니다. 두 곳의 족보는 사람의 이름도 문제지만 그 숫자도 뚜렷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이 정확할 수 없고 엉망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늘 예로 드는 문제입니다.
2. 성경은 그 기록이 우리나라 족보책과 같은 차원에서 기록된 족보전문서가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은 너무나도 차이가 많습니다. 일부러 틀리게 하려고 하지 않고는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날 수 없고 또 술에 한껏 취해서 적었다 해도 이렇게까지 틀릴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그 기록의 목적이 우리나라 족보책과 같은 차원에서 기록된 족보전문서가 아님을 먼저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족보책은 그 집안 조상 한 명으로부터 내려온 자녀 전부를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족보책에 이름이 올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집안에 출생한 적이 없다는 증명이 가능하게 되는 정도입니다. 가문을 중심으로 인생사 전부를 엮어오던 시대가 만들어낸 특이한 서적 형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도 인류조상인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 또 이스라엘의 직계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 때까지의 정확한 족보기록에 목적을 두고 기록이 되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성경은 예수님의 족보 2가지 기록만을 가지고도 아주 몹쓸 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조상의 숫자가 전부 기록되고 출생의 연결이 100% 이어지는 족보책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구원의 이치를 위해 기록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족보적 정확성에 있지 않고 구원에 필요한 말씀으로 기록해 주셨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42대로 기록하여 적게 되는 이유가 있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75대를 기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이유를 살피고 그래서 그 조상의 이름들 중에 빠지고 들어간 사람들을 세밀히 살펴 연구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를 찾아가는 자세가 됩니다.
3. 마태복음의 족보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기록이며, 누가복음은 육체적 조상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은 비록 하나님이시라도 육체를 입고 오셨고 그 육체는 아무 혈통을 그냥 사용한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알리시고 가르쳐야 할 필요에 따라 필요한 혈통을 만들어 내려오셨고 일부러 아브라함의 계통에서 출생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으로 나타난 예수님 육체의 계통은 단순히 누구가 조상이라는 정도에서 그칠 수 없고 왜 12아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유다같은 부도덕한 아들을 통해 계통을 이었으며 왜 이런저런 조상을 그 계통에 이름을 올려놓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마태복음은 믿음의 조상으로 내려온 계통이기 때문에 육체의 출생 대수와 계통은 필요가 없는 경우 생략을 했습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바울을 낳고 바울이 디모데를 낳았다고 한다면 육체적 혈통으로는 성립될 수 없으나 믿음 계통으로는 정확한 기록이 되어집니다. 구약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육체 범위에서 신앙계통을 이어왔기 때문에 대개 육체의 혈통과 믿음의 계통이 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계통과 육체의 계통이 완전히 분리되어 내려오지 않고 가다가 한쪽에서는 몇 명이 빠지기도 하고 또 중도에 다시 한 사람으로 합해지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이삭이나 야곱은 그 아버지에게 육체로도 또 신앙으로도 대를 이어가고 있는 자녀가 되고 있으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꼭같이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경우 다윗의 육체 혈통이며 또한 신앙의 계통이지만 육체 혈통은 나단으로 기록되고 마태복음에서 신앙계통으로만 다윗을 잇고 있음을 기록해 주신 것은, 다윗과 솔로몬의 관계를 구약에서 해석할 수 없는 점까지 신약에서 보충하고 또 필요한 대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답변2) 유다와 요셉이 야곱의 계통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1. 유다와 요셉의 관계는 보다 넓게 보셔야 합니다.
① 장자의 명분이란 하나님 나라의 계통을 점령하고 복 받는 이름입니다.
야곱의 혈통적 장남은 르우벤입니다. 대상5:1에서도 이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출생 순서로만 본다면 르우벤은 장남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첫 출생이었으나 장자의 명분에 따라오는 복을 받지 못했고 에서도 장자였기 때문에 통째로 굴러오는 장자의 명분에 따라오는 복을 일없이 받을 줄 알았다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뺏기는 생각 못 할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장자의 명분이 어떠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복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장자로 내려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삭과 같이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시고 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에게 변경시켜 주실 수도 있으며, 에서와 같이 장자의 명분을 망령되게 여기는 경우 다른 아들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② 요셉의 경우, 그의 신앙행적은 과연 열두 아들 중 실질적으로 장남이었습니다.
요셉의 경우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제일 높이 들어쓰려고 꿈으로 두번이나 계시해 주셨으니 이미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가도록 되어 있었고 또한 그 예언대로 요셉이 17세 이후 아버지를 떠나 애굽으로 들어갔고 이후 애굽을 구한 다음 야곱의 집 전체를 구하는 순서로 걸어가게 됩니다. 두말 할 것 없이 요셉은 야곱시대에 야곱의 12아들 중에 '그 역할과 기능'으로 본다면 뚜렷히 장자를 감당했으며 이 공로를 그대로 인정하신 것이 바로 12지파 중에서 요셉은 분깃도 2배를 주어 요셉의 두 아들이 그 삼촌들과 같은 서열에서 12지파 중 2지파를 차지하였고 야곱의 원래 12아들 전체 중에서도 장자의 명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③ 유다는, 요셉과 달리 이스라엘의 앞날을 두고는 영원한 구원의 지파가 될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당대만으로 비교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장차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을 두고는 요셉과 비교할 수 없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야곱 시대만으로 볼 때 유다는 요셉과 비교될 수 없었습니다. 다른 형제와 약간 표가 날 몇몇 장점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12아들 중에 하나였고 요셉은 12아들 중에 단연 하나밖에 없는 대표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당대에 외부적으로 표시가 나는 면으로는 그러했지만 유다에게는 장차 예수님의 구원계통이 되고 이스라엘의 왕정국가 전체를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장자가 될 수 있는 움싹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야곱 당대만 본다면 비교할 수 없는 신앙의 사람이었으나 요셉의 신앙은 '자손으로 이어지며 자라가는' 신앙의 성질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자기 당대에 신앙의 사람으로는 성경역사 전체를 통해 어느 인물보다도 성자의 모든 요소를 다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았는데 그 중에 제일 대표적인 것이 후손으로 이어지며 점점 자라가는 신앙의 면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⑤ 따라서, 신앙은 오늘 나타난 것과 함께 그 나타날 앞날의 움싹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오늘로 예를 든다면, 손양원목사님이나 김현봉목사님과 같은 분은 그분들 자신의 단독 성화와 경건면을 본다면 참으로 기독교 역사상 한 세대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자신들이 할 일을 다 하고 끝이났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복음역사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칼빈과 같은 사람은 아주 대표적으로 자기 자신의 신앙도 신앙이지만 그의 신앙은 믿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계통적 은혜가 있어 그의 신앙 후손으로 세계교회를 옳고 바르게 잡고 나올 수 있었던 역사는 기독교 2천년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유다가 어떤 면에서 역사로 이어지면서 가면 갈수록 그 신앙의 실상이 크게 나타나게 되고 다윗과 그 자손 예수 그리스도까지 구원의 유다지파라는 이름으로 늘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다른 기회에 크게 연구해 볼 제목일 것입니다.
( /pkist.net/문의답변/88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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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예수님의 족보에 대해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 예수의 탄생까지 42대라 하였는데 한 사람이 모자라요. 암만 계산해도 41대예요 어디에 문제가 있냐 하면,
11절에 요시아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았다고 했고 또 12절에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라고 했는데 여고냐를 두번 넣으면 42대고, 한번만 넣으면41대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설명부탁 드립니다.
(답변) 마1:17의 14대 X 3 번을 42대로 성급하게 더하면, 성경이 아니고 산수책이 됩니다.
1. 마태복음 1장에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대수
① 논란이 많은 부분을 질문하셨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성경신학에서 신약을 배우게 되면 가장 초두에 거론되는 논란입니다. 참고로, 구약의 경우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 6일의 시간 간격 등을 두고 논란이 한도 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대로 1절로부터 16절에는 41명만 기록했는데 17절에서는 14대씩 3번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기 때문에 42대라는 모순이 나오고 있습니다. 41명의 조상을 왜 42대로 표현했느냐는 문제를 두고 주석가들과 성경신학자들의 의견이 어지럽습니다.
우선 본문을 잠깐 살펴보면, 마1:1-16에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41명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고, 17절에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마1:17을 ‘14대 X 3번 = 42'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란입니다.
② 성경은 42대로 더해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14대씩 3번 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를 3 시기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시기를 14대씩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해석의 여지가 없는 부분을 먼저 확정하게 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17절의 첫 시기인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14명입니다. 이 첫째 시기는 처음과 마지막의 사람 이름이 명시되었기 때문에 논란이 없습니다.
둘째로, 17절의 둘째 시기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라고 했는데 다윗부터라고 명시를 했으니 다윗이 들어가야 하고 그때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라고 했으니, 이름이 명시된 14대의 앞부분에 다윗을 넣고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뒷부분은 14대를 맞추면 여고냐 앞에 있었던 요시야까지가 두번째 시기의 14대입니다.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왕으로 있다가 바벨론으로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넣어도 문제는 없습니다만, '다윗부터'라는 명시가 있었고 14대라는 명시가 있으므로 여고냐는 뒤로 빠지게 됩니다.
셋째로, 17절의 셋째 시기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뒤에서부터 14명을 헤아리면 자연히 여고냐가 포함이 됩니다. 또한 세번째 시기의 시작을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라고 했는데 여고냐는 바벨론으로 이거하기 전에도 있었지만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 바벨론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넣을 수 있습니다.
③ 17절에서, 41명의 사람을 14대씩 3번으로 나누었고, 한 사람은 두번 반복했습니다.
이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 기록은 조상의 숫자와 그 대수를 더해보면 총합이 맞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한 산수 응용문제집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확실히 해 두셨으면 합니다.
다윗의 이름을 뚜렷하게 첫째 시기와 둘째시기에 각각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조상의 숫자와 3번의 시기의 총합을 맞추는 것은 애당초부터 이 기록에서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3번의시기로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어 3번의시기로 나누고 우리에게 알린 것입니다. 그리고 각 시기의 14명의 인물은 그 시기에 그 인물들이 있었던 의미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족보를 3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마다 14명씩 이름을 거론하며 그 기록을 통해 예수님의 계통을 가르치는 이유만을 찾으면 되는데, 우리의 산수 계산이 세상생활에서 너무 습관화가 되어 숫자만 보면 일단 더해보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모순으로 생각하는 선입관 때문에 마태복음 1장의 인물 숫자가 신학에서 논란이 된 것입니다. 즉, 논란이 될 필요조차 없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2. 여기서 한 가지 참고하실 일은, 성경 해석은 그 근본 방향부터 잘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한없이 살피고 살펴서 찾아내는 것이 깊은 해석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상관없이 성경의 기록을 세상 산수나 토목이나 생물이나 경제나 윤리의 계산법을 가지고 일단 들이대 보는 습관은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질문자를 향해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신학자를 향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많은 지식이 머리 속에 들어있으면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집중하기도 전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넣어둔 세상 잡다한 지식들과 선입관념 또는 세상 상식들이 먼저 튀어나와 성경을 해석해버리는 일들이 많습니다.
3. 이번 답변은 평소 백목사님 설교록을 대하며 답변자가 성경 해석법에 대하여 느끼던 생각입니다.
이번 질문에 해당된 성구에 대하여 그 정확한 분류법에 대하여는 설교록에서 보거나 개인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따라서 위 답변은, 답변자가 파악하고 있는 백영희신앙노선의 성경해석에 대한 자세와 방향을 참고로 하여 답변자가 현재 깨닫고 있는 바이므로 일반인들에게 마1:1-16에 대한 분류법을 확정적으로 소개하지는 못하겠고, 다만 성경해석의 방향과 자세는 이러해야 한다는 점만 강조하고 싶습니다.
( /pkist.net/문의답변/3128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