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성경 | 01창세기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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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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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14:00
죄의 결과를 다 본 후의 인간들의 관찰기
1. 앞에 있었던 일
1장에 천지창조, 2장에 에덴동산, 3장에 아담의 타락이 있었고 4장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
15절까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저주를 받으며, 24절까지는 자자손손 저주 속에 사는 모습이 나오고, 25절에서 죽은 아벨 대신에 구원의 계통으로 셋을 주셨고 26절에는 셋에게 에노스라는 아들을 주셨는데 바로 이 시기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다.
2. 여호와라는 이름
여호와는 구약에만 나타 나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이 이름을 차분히 살펴 보면 계약을 선포하시고 그 계약대로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다. 계약의 내용은 우리가 말씀대로 지켜 살면 복을 주시고, 우리가 말씀을 어기면 화를 받게 됨을 담고 있다. 이미 창세기 2장에서 생명나무를 주셨고 만물을 맡기셨으며 동시에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의무와 금지 그리고 그 결과를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때까지는 이 명령이 지식이었다. 선악과를 먹었고 그 결과 타락을 했고, 그 이후에 아벨의 순교와 가인과 그 후손의 저주와 순교한 아벨 대신 믿음의 계통 셋을 주시며 셋의 자손까지 주신 '이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계약의 앞과 뒤, 그 이어 지는 결과까지를 직접 목도하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식하고 무조건 따르는 초기가 아니라, 어떤 죄인과 악인이라도 드러 나고 나타 난 두 가지 열매를 다 봤을 때다.
3.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사람들이 비로소 불렀고, 불렀기 때문에 비로소 그런 이름이 생겨 진 것이 아니다. 만세 전에 이미 작정 되고 진행 되어 온 진리며 당연한 일인데, 무지막지한 인간들이 소경이 되어 에덴동산과 이후 사건을 일일이 보고서도 알지 못하다가 죄인과 그 자자손손의 뒤를 먼저 보고, 그리고 의인의 죽음과 그 죽음 뒤에 하나님께서 계통으로 이어 주시는 셋 그리고 그 셋의 아들까지를 보면서 비로소 하나님은 계약에 철저하고 신실하시되 말이나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세계를 통해 여실히 그렇게 운영해 가심을 죄인들까지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4:26에 이르러 죄인들이요 소경들인 인간들까지도 '하나님, 그 분은 계약에 철저하시구나!'라고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자기들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 중에 구원이 되는 지식도 있으나 약2:19에서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멸망의 지식도 있으니 꼭 같은 사실 하나를 보면서도 복 없는 사람,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필요한 지식을 듣고 알고도 자기 구원에 사용하지는 못한다.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운 줄 알았으나 이 지식으로 다윗 밑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고 다윗을 잡아 없애려고 총력을 기울인 것과 같다.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 지식과 실감과 경험이 복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의롭게 사는 데 힘이 되고, 죄인들에게는 그렇게 봐 놓고도 더 큰 죄와 악으로 나가게 된다.
4. 질문하신 창4:26과 아벨의 제사와 관계
말씀 드린 것처럼 창4:26과의 관계로만 말씀을 드린다면 크게 봐서 아벨의 제사는 의인의 의로운 길이며 그 길을 걷다 보면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계약만 바라 보고 그대로 걸어 갔고 그대로 죽었다. 그래서 땅 위에 인간의 눈에서는 계약을 지켜도 죽이면 죽는 것이고 죽음으로 끝이 난 줄 알았다. 그런데 창4:26에서 보니까 아벨은 죽었으나 히12:24에서 아벨의 의의 죽음의 그 희생은 우리의 죄인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지 이 역사 세계에서 역사하고 있었다. 그 첫 표시가 셋을 주시고 그 셋에게 이어 지는 구원의 계통을 주시는 일로 시작하고 있었다.
이 아벨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약 중에서 말씀대로 살 때 일어 나는 면만 말씀한 것이다.
(pkist.net / 문의답변 / 10614번)
1. 앞에 있었던 일
1장에 천지창조, 2장에 에덴동산, 3장에 아담의 타락이 있었고 4장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
15절까지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저주를 받으며, 24절까지는 자자손손 저주 속에 사는 모습이 나오고, 25절에서 죽은 아벨 대신에 구원의 계통으로 셋을 주셨고 26절에는 셋에게 에노스라는 아들을 주셨는데 바로 이 시기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다.
2. 여호와라는 이름
여호와는 구약에만 나타 나는 하나님의 이름이며 이 이름을 차분히 살펴 보면 계약을 선포하시고 그 계약대로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다. 계약의 내용은 우리가 말씀대로 지켜 살면 복을 주시고, 우리가 말씀을 어기면 화를 받게 됨을 담고 있다. 이미 창세기 2장에서 생명나무를 주셨고 만물을 맡기셨으며 동시에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의무와 금지 그리고 그 결과를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때까지는 이 명령이 지식이었다. 선악과를 먹었고 그 결과 타락을 했고, 그 이후에 아벨의 순교와 가인과 그 후손의 저주와 순교한 아벨 대신 믿음의 계통 셋을 주시며 셋의 자손까지 주신 '이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계약의 앞과 뒤, 그 이어 지는 결과까지를 직접 목도하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식하고 무조건 따르는 초기가 아니라, 어떤 죄인과 악인이라도 드러 나고 나타 난 두 가지 열매를 다 봤을 때다.
3.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사람들이 비로소 불렀고, 불렀기 때문에 비로소 그런 이름이 생겨 진 것이 아니다. 만세 전에 이미 작정 되고 진행 되어 온 진리며 당연한 일인데, 무지막지한 인간들이 소경이 되어 에덴동산과 이후 사건을 일일이 보고서도 알지 못하다가 죄인과 그 자자손손의 뒤를 먼저 보고, 그리고 의인의 죽음과 그 죽음 뒤에 하나님께서 계통으로 이어 주시는 셋 그리고 그 셋의 아들까지를 보면서 비로소 하나님은 계약에 철저하고 신실하시되 말이나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세계를 통해 여실히 그렇게 운영해 가심을 죄인들까지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4:26에 이르러 죄인들이요 소경들인 인간들까지도 '하나님, 그 분은 계약에 철저하시구나!'라고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자기들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 중에 구원이 되는 지식도 있으나 약2:19에서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멸망의 지식도 있으니 꼭 같은 사실 하나를 보면서도 복 없는 사람,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필요한 지식을 듣고 알고도 자기 구원에 사용하지는 못한다.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운 줄 알았으나 이 지식으로 다윗 밑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고 다윗을 잡아 없애려고 총력을 기울인 것과 같다.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 지식과 실감과 경험이 복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의롭게 사는 데 힘이 되고, 죄인들에게는 그렇게 봐 놓고도 더 큰 죄와 악으로 나가게 된다.
4. 질문하신 창4:26과 아벨의 제사와 관계
말씀 드린 것처럼 창4:26과의 관계로만 말씀을 드린다면 크게 봐서 아벨의 제사는 의인의 의로운 길이며 그 길을 걷다 보면 죽을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계약만 바라 보고 그대로 걸어 갔고 그대로 죽었다. 그래서 땅 위에 인간의 눈에서는 계약을 지켜도 죽이면 죽는 것이고 죽음으로 끝이 난 줄 알았다. 그런데 창4:26에서 보니까 아벨은 죽었으나 히12:24에서 아벨의 의의 죽음의 그 희생은 우리의 죄인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지 이 역사 세계에서 역사하고 있었다. 그 첫 표시가 셋을 주시고 그 셋에게 이어 지는 구원의 계통을 주시는 일로 시작하고 있었다.
이 아벨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약 중에서 말씀대로 살 때 일어 나는 면만 말씀한 것이다.
(pkist.net / 문의답변 / 10614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