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 성경 | 07사사기1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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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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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14:05
(질문 ) 성경에 보면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딸을 그들 신에게 드리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고 나왔는데. 사사기 11장에 나오는 입다에 관한 이야기에서 입다가 하나님께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고 서원은 하였지만 인간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겠다. 물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삭을 드리려고도 했지만. 다른 동물도 많은데 왜 입다가 이렇게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였는지?
(답변 ) 입당의 서원은 성급한 것이었다. 그러나 입다와 딸은 생사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섬겼다.
1. 히11:32에서 입다에 대한 말씀이 있다. 그는 믿음으로 살다간 선진이었다.
입다에 대한 기록은 사사기 11장과 12장에 기록하고 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이며 기생의 아들이었다. 사사시대 때 암몬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 때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암몬을 이겨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입다가 암몬을 치러갈 때 암몬을 이긴 후 돌아오는 길에 자기 집 문에서 나와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한다. 전쟁에 이긴 후 무남독녀 딸이 영접을 하였고 입다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번제로 된다.
2. 입다가 딸을 서원으로 드린 문제를 살펴보겠다.
① 서원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옳다.
그렇다면 여호와 앞에 서원을 할 때는 어떤 경우라도 꼭 그 서원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입다가 삿11:29에서 '여호와의 신'에 감동하여 그날 구원의 역사를 했다. 따라서 무남독녀 딸이라도 그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계산하고 각오를 해야 했다. 딸이 나온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볼 때 그의 서원은 섣불렀다.
입다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서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목회를 서원하는 사람, 누구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 등이 있다. 은혜 받고 감사하고 좋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순간 살짝 들뜨게 되는데 이때 귀신이 슬쩍 실수하도록 한 마디를 뱉게 하는 것이다.
② 비록 그렇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당황했지만, 입다와 딸의 신앙은 순교의 신앙이었다.
중간에 방심했다가 실수한 것은 분명했으나, 입다의 정상적인 신앙은 사선을 넘어서 살고 있었다. 암몬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도 그렇지만 무남독녀 딸에 대하여도 아버지로서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드린 서원 때문에 자기 생명으로 대신해야 할 아까운 딸을 아낌없이 드렸다. 또 딸도 그런 아버지와 하나님 사이의 일을 알고 자기 목숨을 바치되 조금도 지체하거나 고통을 받지 않았다. 생사를 초월하고 살던 분들이다.
딸이 처녀로 죽는 것을 애곡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여인들에게는 약속의 자녀를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은혜를 놓치게 된 것을 슬퍼했지 자신의 생명은 이미 초월했던 신앙이었다.
3. 딸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바칠 수 있는가
① 구약 시대는 남자에게 처자식을 마치 재산처럼 소속시켜 맡겼다.
구약 시대는 형제나 사촌의 결혼이 가능했고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가질 수 있었으며 아내를 버릴 수도 있고 남에게 줄 수도 있었다. 오늘 신약의 윤리와는 달랐다. 또는 아버지는 자녀를 죽일 수도 있었고 모든 처분을 다 할 수 있었으니 처자식은 하나의 재산 개념이라고 볼 정도였다.
물론 구약에도 일남일녀가 원칙이었고 한번 맺은 사람은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래 법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완악함으로 모세를 통해 이혼도 허락하고 또 다윗 같은 성자도 여러 아내를 가졌다.
즉, 구약시대에는 원래 하나님의 법이 있으나 어린 시대며 미개한 때였기 때문에 신약과는 달리 강퍅한 사람들의 수준에서 상대하셨고 그후 점점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 점점 더 원칙적인 법으로 높은 것을 요구한다. 처자식이 재산처럼 취급될 수가 없지만 구약은 그 시대 자체가 전체적으로 완악하던 율법시대였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면 세밀하게 간섭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어떤 분들은 이방인들이 자녀를 자기 신에게 바치는 것은 이방의 가증한 행위라고 하지만 아내를 버리는 잘못된 행위도 하나님이 구약교회는 허락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 이삭을 바치도록 명령한 것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②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오늘 우리 시각에서는 딸을 번제로 죽인 것만 부각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딸을 살인하게 된 성급한 서원보다, 비록 실수로 서원을 했을지라도 자기 생명과 같은 무남독녀 딸이라도 하나님과 약속에 의하여 바쳐 드리는 그 충성을 더 귀하게 보셨다. 또한 이것이 이 본문에서 우리가 더 소중하게 보아야 할 문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신약에서 입다를 믿음의 선진으로 살다 간 사람으로 기드온 바락 삼손 다윗 사무엘과 같은 반열에서 평가하며 그의 평생 전체를 성자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구약시대이므로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행한 서원이라고 하여 생사를 초월하고 생명을 바친 충성이다. 구약의 행동을 세밀하게 분석하게 되면 입다와 같은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인물이 거의 없다.
(/pkist.net/문의답변/1536번)
(답변 ) 입당의 서원은 성급한 것이었다. 그러나 입다와 딸은 생사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섬겼다.
1. 히11:32에서 입다에 대한 말씀이 있다. 그는 믿음으로 살다간 선진이었다.
입다에 대한 기록은 사사기 11장과 12장에 기록하고 있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이며 기생의 아들이었다. 사사시대 때 암몬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 때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암몬을 이겨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입다가 암몬을 치러갈 때 암몬을 이긴 후 돌아오는 길에 자기 집 문에서 나와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한다. 전쟁에 이긴 후 무남독녀 딸이 영접을 하였고 입다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번제로 된다.
2. 입다가 딸을 서원으로 드린 문제를 살펴보겠다.
① 서원은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옳다.
그렇다면 여호와 앞에 서원을 할 때는 어떤 경우라도 꼭 그 서원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입다가 삿11:29에서 '여호와의 신'에 감동하여 그날 구원의 역사를 했다. 따라서 무남독녀 딸이라도 그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계산하고 각오를 해야 했다. 딸이 나온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볼 때 그의 서원은 섣불렀다.
입다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서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목회를 서원하는 사람, 누구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사람 등이 있다. 은혜 받고 감사하고 좋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순간 살짝 들뜨게 되는데 이때 귀신이 슬쩍 실수하도록 한 마디를 뱉게 하는 것이다.
② 비록 그렇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당황했지만, 입다와 딸의 신앙은 순교의 신앙이었다.
중간에 방심했다가 실수한 것은 분명했으나, 입다의 정상적인 신앙은 사선을 넘어서 살고 있었다. 암몬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도 그렇지만 무남독녀 딸에 대하여도 아버지로서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드린 서원 때문에 자기 생명으로 대신해야 할 아까운 딸을 아낌없이 드렸다. 또 딸도 그런 아버지와 하나님 사이의 일을 알고 자기 목숨을 바치되 조금도 지체하거나 고통을 받지 않았다. 생사를 초월하고 살던 분들이다.
딸이 처녀로 죽는 것을 애곡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여인들에게는 약속의 자녀를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을 은혜를 놓치게 된 것을 슬퍼했지 자신의 생명은 이미 초월했던 신앙이었다.
3. 딸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바칠 수 있는가
① 구약 시대는 남자에게 처자식을 마치 재산처럼 소속시켜 맡겼다.
구약 시대는 형제나 사촌의 결혼이 가능했고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가질 수 있었으며 아내를 버릴 수도 있고 남에게 줄 수도 있었다. 오늘 신약의 윤리와는 달랐다. 또는 아버지는 자녀를 죽일 수도 있었고 모든 처분을 다 할 수 있었으니 처자식은 하나의 재산 개념이라고 볼 정도였다.
물론 구약에도 일남일녀가 원칙이었고 한번 맺은 사람은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원래 법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완악함으로 모세를 통해 이혼도 허락하고 또 다윗 같은 성자도 여러 아내를 가졌다.
즉, 구약시대에는 원래 하나님의 법이 있으나 어린 시대며 미개한 때였기 때문에 신약과는 달리 강퍅한 사람들의 수준에서 상대하셨고 그후 점점 신앙이 자라감에 따라 점점 더 원칙적인 법으로 높은 것을 요구한다. 처자식이 재산처럼 취급될 수가 없지만 구약은 그 시대 자체가 전체적으로 완악하던 율법시대였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면 세밀하게 간섭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어떤 분들은 이방인들이 자녀를 자기 신에게 바치는 것은 이방의 가증한 행위라고 하지만 아내를 버리는 잘못된 행위도 하나님이 구약교회는 허락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 이삭을 바치도록 명령한 것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②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오늘 우리 시각에서는 딸을 번제로 죽인 것만 부각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딸을 살인하게 된 성급한 서원보다, 비록 실수로 서원을 했을지라도 자기 생명과 같은 무남독녀 딸이라도 하나님과 약속에 의하여 바쳐 드리는 그 충성을 더 귀하게 보셨다. 또한 이것이 이 본문에서 우리가 더 소중하게 보아야 할 문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신약에서 입다를 믿음의 선진으로 살다 간 사람으로 기드온 바락 삼손 다윗 사무엘과 같은 반열에서 평가하며 그의 평생 전체를 성자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구약시대이므로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행한 서원이라고 하여 생사를 초월하고 생명을 바친 충성이다. 구약의 행동을 세밀하게 분석하게 되면 입다와 같은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인물이 거의 없다.
(/pkist.net/문의답변/153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