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 성경 | 05신명기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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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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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12:55
(질문) 신명기 22장 25절에 강간한 자는 죽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야곱(여하튼 믿음이 좋은 사람)의 딸이 어떤 부족(?)을 지배하는 자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래서 야곱은 해결하기를 자신의 딸과 결혼하면 용서해주되 할례를 하라고 해서 그 부족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를 한다고 그 부족을 죽였다.그래서 야곱은 복수를 한 아들들에게 저주를 했다. 이런 글을 성경 어디선가 읽었는데 야곱은 왜 강간한 자를 죽이지 않았을까? 또 왜 자신의 딸에게는 어떻게 할꺼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성경에서 법에 대한 것들을 보면 음행한 것에 대해서여자가 음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적어놓고 남자가 음행한 것에서는 별로 적어 놓지를 않았을까?
또 여자에게는 순결의 표식(처녀막)이 있으면서 남자에게는 없을까? 마지막으로 여자 목사님은 제가 본적이 없는데 새벽예배도 그렇고 여성도들이 많이 나오던데 왜 여자 목사님은 없을까?
이것들로 인해서 여자보다 남자가 더 위에 있는가? 라는 생각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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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구약법에 대한 상식 몇 가지
1. 강간한 자를 죽이라 한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야곱의 일은 4백여년 전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던 기간은 약 4백년이다. 야곱의 일은 창세기 34장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애굽에 들어가기 전이다. 그리고 간음에 대한 신명기 기록은 출애굽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성경 기록은 그 기록 이후에 해당된 명령이라는 점을 일차 기억하셨으면.
물론 성경기록은 기록하기 이전 사람들에게도 비록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명령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방법으로든지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 성경 기록 이전이라 해도 정상대로 바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후에 기록될 말씀의 방향으로 살았어야 했다.
2. 이 사건을 두고 딸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당시 자녀나 여자는 인간이 아니고 남자의 소유물이었다. 그냥 줘도 되고 받아도 되는 하나의 물건이었다. 교회가 어릴 때였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독립적으로 자기 신앙 책임을 맡기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오늘 여성 인권주의자들 시각에서 본다면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당시는 교회가 어렸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했고, 오늘은 교회가 장성한 때이므로 자기 신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맡기고 있다.
인간은 그 태어나는 순간 무조건 절대 존엄권을 가진다는 발상에서 보면 오늘날 상황은 정상이며 좋은 현상이라 하겠지만, 이는 책임에 따르는 심판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남편이 다 지고 여자는 순종하는 면만 집중하면 되던 그때가 좋은 때였다. 오늘 여성이 바로 믿으려면 여성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면까지 갖추어야 한다.
3. 여자의 음행과 처벌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그 관리가 엄격하게 통제 되어야 한다. 남자는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이 허락되었다. 아브라함부터 야곱까지 그리고 다윗까지도 그러했다. 따라서 남자들에게는 특별히 조심할 몇 가지만 조심하면 되고 여자는 그 정조를 생명으로 알아야 하는 '남자용품' 차원의 신분이었다. 따라서 당시 여자의 신앙은 그렇게 낮추어 주신 자기 처지에서 하나님 뜻을 찾고 구원을 이루었다.
4. 남자에게 순결의 표시가 없는 것은
모든 생수 용기는 새 제품이라는 표시로 뚜껑에 봉인이 되어 있다. 한번 손을 대면 그때부터는 표시가 된다. 여자는 그 순간 하나를 보고 조심하고 살라는 뜻이고 함부로 접촉을 하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표시가 나도록 했다. 이 때 '여자'란 오늘 우리 성도를 말한다. 성도는 그 중심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깨끗이 준비하고 바치는 신앙 정조에 모든 생명성이 걸려 있다.
5. 여자 목사님이 없는 이유는
교회의 정식 직책으로 장로교의 경우 집사 장로 목사 3가지가 있다. 사도행전에서 집사를 남자들로 세웠고 장로 목사도 전부 남자들이었으며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배우라 했고 또 딤전3:12 등에서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와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등 성구를 들어 여자가 교회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정통 장로교의 입장인데 오늘은 자유주의에 물든 쪽부터 완화가 되어 여자분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은 여자 안수나 성직을 금한다고 볼 명문이 없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과거 결정을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장로교의 그 입장을 따르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백영희신앙노선은 성직의 이름과 직책보다 실질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인격과 신앙과 실력이 있는지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굳이 여자들이 신앙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그런 직책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목사직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와 마찰을 고려해서라도 과거부터 해내려온 것을 당장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서부교회 같은 곳에서는 여자분으로 교회를 지도하는 분이 현재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나 그 소속 공회 어떤 지도자 목사님보다 월등히 탁월하다. 그렇지만 그냥 일반 '선생님'이라는 직책으로 능히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pkist.net/문의답변/1340번)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를 한다고 그 부족을 죽였다.그래서 야곱은 복수를 한 아들들에게 저주를 했다. 이런 글을 성경 어디선가 읽었는데 야곱은 왜 강간한 자를 죽이지 않았을까? 또 왜 자신의 딸에게는 어떻게 할꺼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성경에서 법에 대한 것들을 보면 음행한 것에 대해서여자가 음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적어놓고 남자가 음행한 것에서는 별로 적어 놓지를 않았을까?
또 여자에게는 순결의 표식(처녀막)이 있으면서 남자에게는 없을까? 마지막으로 여자 목사님은 제가 본적이 없는데 새벽예배도 그렇고 여성도들이 많이 나오던데 왜 여자 목사님은 없을까?
이것들로 인해서 여자보다 남자가 더 위에 있는가? 라는 생각까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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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구약법에 대한 상식 몇 가지
1. 강간한 자를 죽이라 한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야곱의 일은 4백여년 전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던 기간은 약 4백년이다. 야곱의 일은 창세기 34장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애굽에 들어가기 전이다. 그리고 간음에 대한 신명기 기록은 출애굽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성경 기록은 그 기록 이후에 해당된 명령이라는 점을 일차 기억하셨으면.
물론 성경기록은 기록하기 이전 사람들에게도 비록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명령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방법으로든지 알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그 성경 기록 이전이라 해도 정상대로 바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후에 기록될 말씀의 방향으로 살았어야 했다.
2. 이 사건을 두고 딸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당시 자녀나 여자는 인간이 아니고 남자의 소유물이었다. 그냥 줘도 되고 받아도 되는 하나의 물건이었다. 교회가 어릴 때였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독립적으로 자기 신앙 책임을 맡기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오늘 여성 인권주의자들 시각에서 본다면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라고 하겠지만, 당시는 교회가 어렸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했고, 오늘은 교회가 장성한 때이므로 자기 신앙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맡기고 있다.
인간은 그 태어나는 순간 무조건 절대 존엄권을 가진다는 발상에서 보면 오늘날 상황은 정상이며 좋은 현상이라 하겠지만, 이는 책임에 따르는 심판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남편이 다 지고 여자는 순종하는 면만 집중하면 되던 그때가 좋은 때였다. 오늘 여성이 바로 믿으려면 여성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면까지 갖추어야 한다.
3. 여자의 음행과 처벌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그 관리가 엄격하게 통제 되어야 한다. 남자는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이 허락되었다. 아브라함부터 야곱까지 그리고 다윗까지도 그러했다. 따라서 남자들에게는 특별히 조심할 몇 가지만 조심하면 되고 여자는 그 정조를 생명으로 알아야 하는 '남자용품' 차원의 신분이었다. 따라서 당시 여자의 신앙은 그렇게 낮추어 주신 자기 처지에서 하나님 뜻을 찾고 구원을 이루었다.
4. 남자에게 순결의 표시가 없는 것은
모든 생수 용기는 새 제품이라는 표시로 뚜껑에 봉인이 되어 있다. 한번 손을 대면 그때부터는 표시가 된다. 여자는 그 순간 하나를 보고 조심하고 살라는 뜻이고 함부로 접촉을 하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표시가 나도록 했다. 이 때 '여자'란 오늘 우리 성도를 말한다. 성도는 그 중심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깨끗이 준비하고 바치는 신앙 정조에 모든 생명성이 걸려 있다.
5. 여자 목사님이 없는 이유는
교회의 정식 직책으로 장로교의 경우 집사 장로 목사 3가지가 있다. 사도행전에서 집사를 남자들로 세웠고 장로 목사도 전부 남자들이었으며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배우라 했고 또 딤전3:12 등에서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와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등 성구를 들어 여자가 교회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정통 장로교의 입장인데 오늘은 자유주의에 물든 쪽부터 완화가 되어 여자분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은 여자 안수나 성직을 금한다고 볼 명문이 없다.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과거 결정을 변경하지 않기 때문에 장로교의 그 입장을 따르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백영희신앙노선은 성직의 이름과 직책보다 실질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인격과 신앙과 실력이 있는지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굳이 여자들이 신앙이 있고 실력이 있으면 그런 직책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목사직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와 마찰을 고려해서라도 과거부터 해내려온 것을 당장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서부교회 같은 곳에서는 여자분으로 교회를 지도하는 분이 현재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나 그 소속 공회 어떤 지도자 목사님보다 월등히 탁월하다. 그렇지만 그냥 일반 '선생님'이라는 직책으로 능히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pkist.net/문의답변/134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