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고하되 내가 일곱 단을 베풀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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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고하되 내가 일곱 단을 베풀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 성경 04민수기23:04
서기 0 10
(질문) 민수기 22장에서 24장에 나오는 발람에 대해서 보충 설명 부탁. 베드로 후서 유다서에 직접 또는 비유로 나오는 부분과 연결해서 부탁한다.


(답변) 믿는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두고 최종 선택을 해야하는 길을 가르친다.

1. 발람
① 신학자들과 원어학자들은 대개 이방 점쟁이로 보고 있다.
신23:4에서 발람은 ‘메소보다미아의 브돌'이라는 곳에 살던 이방인이다. 대개 신학자들은 발람을 이방 점쟁이로 보고 있다. 발람의 고향 ’브돌'은 이스라엘과 좀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또 수13:22에서 발람을 '술사'라고 했으며, ‘브올의 아들 발람'이라는 이름의 원어 뜻이 파멸과 탐욕이므로 이방인들을 마법으로 꾀어 망하게 하던 사람이라는 것이 주 이유다.

세상 역사학자들이 자료들과 단어의 의미를 가지고 옛날 역사를 재구성하듯이, 성경도 세상 학자들이 연구하는 방법으로 찾아 들어가면 기독교는 미개인들이 만든 여러 형태의 미신 중에 하나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혹 이후로 성경의 인물을 살필 때는 이런 점을 참고하셨으면.

② 발람은 이방인으로 선지자다.
베드로후서 2: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발락이 사신들을 보내왔을 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고 했는데 이어 그날 밤에 발람은 하나님과 여러 대화가 오고간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대화는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세상 물질 사이에서 늘 겪고 있는 대화다. 따라서 원어나 기타 고고학적 자료에 관심 둘 것 없이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여 단정하면 된다. 발람은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였다.

2. 발람의 길
① 평소 하나님의 뜻만을 찾아 전하던 선지자
발람은 당시 주변 여러 나라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특별하게 유명했다. 그가 저주하면 이스라엘민족이라도 저주를 받겠다고 모압왕이 생각할 정도였으니, 평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바로 전하던 선지자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발람이 저주를 한다고 저주가 건너가지 않는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볼 때 누구든지 저주하면 저주를 받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우리가 볼 때에는 하나님의 뜻만 찾아 그대로 전하는 선지자다.

평소 발람은 하나님 뜻만 찾아 살았지 자기 생각을 내세우거나 자기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였고, 또 선지자 중에서도 그 예언과 저주가 실제 이루어지게 되는 능력 있는 종이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서 평소 자기를 꺾고 주님 뜻만 찾아 사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더러 만나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히 신앙 있는 목회자거나 교인이다. 이런 분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체험도 많고 또 그 주변에서 기적과 축복을 많이 받고 사는 분이라고 인정을 받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평소 작은 일에서는 주님 뜻을 앞세우고 자기를 꺾고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번쯤 그 사람의 지난 과거 전체를 두고 총 평가를 하게 된다. 그 본인이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발람과 같은 사람, 또 평소 우리 주변에서 제법 신앙 있게 사는 분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체험한 것을 통해서 자신들은 아주 신앙의 사람인 줄 아는데, 대개 이런 분들은 자신의 신앙이 거의 100점이라고 아는 경우가 많다.

② 하나님과 재물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최종 갈림길
평소 작은 돈은 물리쳤고 또 작은 고통은 전부 이겼기 때문에 선지자노릇을 잘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저히 물리칠래야 칠 수 없는 조건이 들이닥쳤다. 평생에 두번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정도의 조건이 제시되었다. 발람은 처음에 온 사신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물리쳐야 했지만, 너무 조건이 컸기 때문에 하루 밤을 재우고 밤새도록 고민했다. 이것이 민22:8-12다.

그동안 양심껏 살았기 때문에 그동안 쌓아둔 신앙의 힘이 겨우 첫번 제의는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발락은 나름대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첫번째 갔다온 이야기를 전해 듣자 발락은 즉시 자신이 만만했다. 그리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 발람이 말했던 '하나님'을 꺾었다.

발람은 두번째 제의를 이길 수 없었다. 벌써 첫 시험에서 비록 이기기는 했지만 화살에 맞은 범이었다. 두번째 화살은 급소를 바로 향했다. 발람은 그동안 작은 일상사에서는 하나님을 앞세우고 자기를 꺾고 살았으나, 자기의 뿌리를 다 파헤치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 깊은 속에 숨어있던 자기가 드디어 밖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을 팽개치고 그 대신 재산을 취하게 되었다.

여기 발람의 경우는 하나님과 재물을 두고 어느 것을 취하느냐는 문제가 닥쳤다.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와 하나님,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하나님... 등으로 다가온다.

③ 최종 선택에서, 하나님을 버렸으면
그 이후 걸어가는 걸음은 자기 멸망을 통해 최종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뒤에 이스라엘이 발람 선지를 잡아 죽였다. 그의 몸이 이 땅에서 일찍 죽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루 빨리 죽고 하루 늦게 죽는다. 그러나 그의 영원이 절단나느냐 영광스러워지느냐는 문제가 정작 큰 문제다. 이스라엘이 발람을 잡아 죽였다는 것은, 발람의 구원은 빵점이었다는 채점 결과다.


3. 여기 ‘발람'은 누구냐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문제다.
벧후2:15, 유1:11, 계2:14 등에서 발람에 대한 기록들이 나온다. 신약에서 이 발람에 대한 기록은 얼른 읽으면 마치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선지자나 이단들을 말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교회 안에는 지옥에 갈 불택자들이 믿는 사람처럼 또 주의 종인 것처럼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데 그들만 발람이고 천국 갈 우리도 발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발람'
은 교회 안에 숨어 들어와 있는 이단이나 거짓선지자들 뿐 아니라, 바로 믿는 우리 속에 ’발람적인 요소'를 동시에 말씀하고 있다. 교회 전체를 해치는 이단과 거짓선지자도 막아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 속에 발람과 같은 면을 찾아 대적해야 한다.

오늘 교회가 이렇게 자기 속의 원수를 찾아 싸우는 대내전을 모르기 때문에 이단을 공동대처하는 큰 사업만 벌이다가 속으로 썩고 있다.


(/pkist.net/문의답변/240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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