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주해사전 (5600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성경 19시편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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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편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좀 막연한 질문이겠지만, 시편에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통한 기본 구원, 건설 구원을 찾기가 힘든다.

누가복음 24장 27에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모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 하신다고 말씀한다.
시편도 예외가 아니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시편을 통해 개인 묵상이라든가, 현실에서 주시는 말씀은 찾을 수 있겠으나, 구원의 깊은 의미를 찾기는 참 힘든다. 좀 막연한 질문이겠으나 관리자님의 생각나시는 대로 답변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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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 구체적으로 직접 해당되는 경우와 2.좀 넓은 범위에서 해당되는 경우로 설명함

1. 우선 구체적으로 시편이 예수님을 바로 향하고 있는 경우를 예로 들겠다.

(1) 3가지 성구(시2:1-2, 눅23:1-23, 행4:25-28)를 가지고 예를 들겠다.

① 구약 기록: 시2:1-2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② 예수님 당시: 눅23:1-13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12절)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13절)'

③ 훗날 해석: 행4:25-28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①번은 시편의 기록으로 예언된 성구이고 ②번은 예수님이 우리 위해 잡히시던 당시에 이루어진 기록이며 ③번은 구약의 예언과 신약에서 이루어진 것을 비교하고 해석하면서 성경을 살피는 법을 가르치는 성구다. 우선 시편 2장과 누가복음 23장의 기록은 그 표현과 자세한 설명이 서로 다르다. 이렇게 다른 내용 때문에 시편 2장의 말씀이 누가복음 23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정확하게 단정하기에는 우리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일점일획도 가감 없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양쪽 성구가 분명히 틀린 점이 있는데도 그 예언이 이 성취를 말한다고 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4장에서 예언과 성취된 양쪽 기록을 비교하며 설명까지 하고 있다. 이 사도행전 4장의 경우는 그 기록 자체가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을 해석하고 사용하는 하나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3가지 성구를 가지고 예언과 성취된 것 그리고 그 해석까지를 살펴볼 수 있다면, 우리는 시편을 포함해서 구약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구들이 예수님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2) 위의 예와 같은 경우로 예를 들 수 있는 성구들

① 친구에게 팔림 - 시41:9 / 요13:18
② 옷을 나눈 일 - 시22:18/ 마27:35

2. 시편이 예수님과 우리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되고 관련이 있는지 넓게 살펴보겠다.

시편을 다 예로 들 수 없겠으니 시편 1장과 시편 150장의 일부만 대표적으로 예를 들겠다. 시편을 포함하여 모든 구약성경, 모든 성경은 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며,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는 말은 우리 구원에 관련된 말씀이라는 말이며, 우리 구원에 관련된 말씀이라는 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다 해당이 되는 말씀이다.

참고로, 어떤 성경 어떤 설교라도 예수님의 구원에 관련이 없다면 복음이 아니다. 백목사님의 설교 중 시편을 본문으로 하는 성구가 상당히 많이 있으며 그 설교들을 쭉 읽어보시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경우는 없으며, 설교 전부는 다 구원에 관련된 교훈의 시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다음 설명은 목회를 위한 강단의 설교가 아니라 개별적인 질문에 대답을 드리며 예를 든 것이어서 하나의 '신학 강좌'와 같은 것이므로 전체적인 예로만 보셨으면 한다.

① 시1:1
'복'
복은 인간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이 있다. 자연 은총 전부를 우리는 복이라고 한다. 두번째는 '죄의 복'이 있다. 죄를 짓고도 더 잘되는 사람들이다. 일본이 완전 우상 미신 국가인데도 기독교 국가 부럽지 않게 잘 나가고 있다. 불신자들 중에서 죄와 악이 심한데도 마음먹은 이상으로 잘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믿는 사람 중에서도 뚜렷하게 타락하고 죄를 마구 짓는데도 잘 살고 복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참 복'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잘 믿으면서 오는 것은 전부가 참 복이다. 여기 '복'있는 사람이라고 한 첫 말씀은 일반 복이나 죄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참 복을 말씀하는 것이니 곧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만 해당되고 또 우리만 가질 수 있는 복을 말씀하고 계신다.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악은 자기중심을 악이라고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리 예수를 잘 믿으도 자기중심으로 믿게 되면 비록 그 믿는 열심이 남보다 뛰어날찌라도 전부 자기를 건설하는 운동이 될 뿐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중심이다. 곧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이다. 주님 위해 나를 희생하고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나를 투자하여 주님은 좋아지고 나는 없어져 가는 것이 바로 믿는 일이며 주님 중심으로 믿는 일이다. 이렇게 주님 중심으로 나를 희생하고 없애가며 믿는 것은 복 있는 사람, 즉 참 복 영원한 복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목회자가 평생 목회를 하고도 자기 이름 자기 성취 자기 경제 자기 사회적 자리를 확보하는 직업으로 할 수도 있다. 그 중심은 사람이 알기 어렵지만 본인은 조용히 스스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물며 일반 교인들이겠는가?

또한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해야 하나 예수님 없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서 떠나래야 떠날 수가 없다. 우리는 사죄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 건설구원적으로 자기가 노력하고 힘쓰면 죄를 떠날 수 있고,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돌이켜 예수 믿기 이전과 같이 죄를 짓고 살면 복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오만한 자의 자리는 자기가 믿어 온 길이 자기에게 만족하여 더 이상 주님으로 힘쓸 것이 없고 자기 할 일을 다 한 사람이다. 주님 흘린 피의 값을 생각하면 죽는 날까지 힘쓰고 마지막 죽어버려도 주님 앞에 부족감을 느끼고 무익한 점G 심정이 되어야 하는데, 주님 위해 1만원 연보를 했다 하여 주님 앞에 떳떳한 사람, 그는 할 일을 했고 이제 더 수고할 것이 없으며 오히려 지난날 해놓은 것이 많아서 서 있는 자리에 서서 대접도 칭찬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결론으로, 예수 믿는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참 복, 주님이 주실 영원한 복과 이 땅위에 구원을 이루어 가는 참 복은 자기 중심을 버리고 주님 중심으로 모든 일에 동기와 출발을 삼아야 하고, 참 구원의 건설을 이루는 이 복을 받을 사람은 말씀이 정한 길에서 삐뚤어지지 않고 대속하여 주신 피공로 안에서 말씀대로 살아야 하며, 어디까지 믿음의 수고와 인내를 했다 해도 다함이 없는 무익한 점G 자세로 끝까지 진행해 나가야 한다.


② 시150:
'할렐루야'
승리의 찬송이다. 주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과 악령에게서 구원하신 것이 첫 승리며 첫 찬양이다. 모든 믿는 사람이 평생에 어떤 경우에서도 찬송할 제목이며, 이 기본구원의 은혜 위에 모든 신앙의 건설은 이루어가게 된다. 따라서 모든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승리는 항상 기본구원을 주신 주님을 기본으로 이 주님의 대속 은혜에서 시작된 것이고 뻗어 나온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은 평생 해야 할 일이고 그 대속에 희생된 것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위치 어느 현실에서도 희생치 못할 것이 없고 복음으로 살 수 있는 힘이 되는 각오와 결심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성소에서'
'성소'는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는 성전 내부를 말한다.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어두움을 이기는 빛을 등대로 상징했으니 이는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서 가질 진리의 위치이며 직책이며 존재 목적이다. 상과 진설병은 항상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 이것을 포함하고 있는 곳이 성소다. 이 성소는 하나님 앞에 참된 일꾼과 거짓 일꾼을 구별하는 경계이다.

우리의 모든 승리와 그 승리로 인한 찬송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현실에서 빛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 현실이 있었고 그 악령의 세상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으로 진리대로 영감대로 피동 되어 움직였다면 그것이 바로 빛으로 행동한 것이며 빛의 생활이 되었다. 이렇게 진리로 사는 빛의 생활은 놀고먹고 쉬고 자고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투와 투쟁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자기 현실에서 빛 생활을 했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많은 승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의 찬송과 찬양은 받는 자 밖에는 알 수 없는 찬송일 것이다.

또한 주님 앞에 바칠 떡도 주님 뜻을 온전히 이룰 때 이것이 주님 앞에 바치는 진설병이 되는 것이니 항상 우리의 생애는 주님 뜻을 이루는 데 다 바칠 것이다. 주님의 뜻은 이것이니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 만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 사랑은 주님 대속으로 인해 받은 복음을 안 믿는 사람에게는 전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더 잘 믿도록 전하는 것이다.

3. 앞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예를 들었다.
우선 예수님과 직접 관련이 있는 성구를 몇 개 예로 들었지만, 혹시 시편은 그 내용이 많기 때문에 예수님과 직접 관련이 있는 성구보다 관련성이 전혀 없는 성구가 더 많을 수 있다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의 각 성구는 기계의 부속과 같이 단절되어 따로 움직여지고 또 교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같아서 한 인체에 속한 한 세포와 기관은 전 인체에 연결된 모든 세포와 모든 장기 모든 기관과 전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고 어떤 요소도 전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몇 개의 성구만이 연관성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성구들은 바다 위에 섬과 같이 밖에서 보면 가끔 돌출되어 있으나 수면 하에서는 전부 하나다.

따라서 예를 든 몇몇 성구는 바로 그 성구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그 부분에다 확실한 위치 표시를 해두고 그곳에서 조금씩 넓혀가며 앞 뒤 성구를 연결지어가다 보면 결국 전체 성경과 연결이 되고 또 예수님과 우리 구원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두번째 예로 든 성구해석과 같이 해석을 통해 예수님의 구원에 연관이 있는 성구를 찾으려면, 모든 말씀은 전부가 직접 이렇게 우리 구원과 바로 관련이 있는 성구들임을 알 수 있다. 실은 관련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 성구를 기록해 주신 목적이 우리 구원임을 딤후3:16 말씀같이 모든 성경은 우리 구원을 바로 건설해 나가도록 기록해 주셨음을 알 것이다.

덧붙여, 만일 직접 관련 있는 성구를 찾되 많이 찾을 수 있다면 성경학자가 될 것이고, 만일 직접 관련 없는 성구들을 예수님의 구원과 우리가 이룰 오늘 내 현실에 필요한 건설구원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연관지을 수 있다면 그는 백목사님의 설교 세계를 알기 시작한 사람일 것이라고 결론짓고 싶다.

백영희목회연구회는 많은 분들이 성경학자에서 그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으며 백영희목회연구회를 찾는 분들에게 백목사님의 설교세계를 소개하는 것은 성경 전부를 예수님, 대속하신 기본구원, 그리고 모든 성경이 오늘 나의 현실에 해당되는 건설구원의 말씀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pkist.net/문의답변/58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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