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 성경 | 10사무엘하2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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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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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15:05
"Go and take a census of Israel and Judah."
요즘은 차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성경을 계속 듣는 중, 삼하 24 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참 의아한 생각을 다시 많이 한다. 분명히 1절의 말씀만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셨다. 인구 조사하라. 근데 그 후 내용을 보면 다윗의 자책, 하나님의 재앙, 24장을 제가 다시 쓰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에게 벌을 내리시기 위해 다윗에게 인구 조사하라고 명하시고 다윗이 조사하고 나서 자책하니까 올커니 됐다라고 생각하면서 벌 3가지 중에 택일 하라 다윗의 어정쩡한 선택 온역을 내리시다가 후회하시고 천사에게 '족하다 그만' 천사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음(삼하24:16)
23장 이전의 내용들에 비해서 24장의 내용이 너무 성격이 틀린거 같다. 요즘은 성경을 읽으면서(아니, 들으면서) 이 권의 저자가 누군가를 생각하곤 합니다만 심지어는 24장은 딴사람이 쓴거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할 정도다.
질문은 이렇다.
1. 하나님께서 어찌 그러실 수 있나?
'감동시키사(개역)'라는 단어가
moved(KJV,WEB)
incited(NIV)
원어('쑤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던데요
의미: 본래 의미는 '찌르다', 즉 상징적으로 자극하다. 함축적으로'속이다'
{KJV} 유혹하다, 움직이다, 유발시키다, 설득하다, 공격하다, 고무시키다, 제거하다
1) to incite, allure, instigate, entice
1a) (Hiphil)
1a1) to incite (to a request)
1a2) to allure, lure
1a3) to instigate (bad sense)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시험(test) 하셨다기 보다는 속이고,꼬드기는, 즉 다윗을 부정적으로 움직이셨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그럴 수가 있나?
2. 그래서 24 장이 원 저자가 아니고 누군가 붙여 쓴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3.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어진 성경이라는 뜻이 궁금하다. 창세기를 모세가 썼다고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 신건지 삼하24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하신 내용이 있는데, 이것도 저자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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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질문 내용은, 구원론의 깊은 문제부터 이해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몇 가지를 참고하셨으면
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좁은 면과 넓은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죄를 지어 지옥 갈 우리를 십자가 대속으로 해결하여 천국가게 한 것이 좁은 면의 '구원'이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넓은 의미의 '구원'이다.
② 우리를 천국에서 살게 하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세상이라는 과정은 필요치 않았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이 구원의 전부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창조할 때부터 천국만 만들었을 것이다. 천국과 세상을 비교해 보면 모든 면으로 비교 대상이 되지를 않는다. 비록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에덴동산이 있었던 이 물질계보다는 영계의 하늘나라가 무한히 더 좋은 곳인데 굳이 세상을 만들고 또 그다음에 천국으로 가게끔 할 필요가 없었다.
지옥 갈 사람이 천국 가게 되었으니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은 그 자체가 실수였다. 위험물 방치의 책임을 물어 하나님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야 할 판이다. 세상을 공연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이것이 우리의 목표 전부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구원의 최점L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고 바로 천국을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셨어야 했다.
③ 세상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닮는 넓은 의미의 구원 때문이었다.
기계는 단번에 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들 수 있고, 제품이 완성되면 그 즉시부터 주인이 마음껏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주인이 사용하면 사용만 당할 뿐이지 그 자체의 생각과 뜻이 없으므로 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실력은 탁월한데 재미가 없다. 고급 승용자의 가격과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든 이유는 승용차의 편리함과 기능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빼다 닮은 젖먹이 아이를 원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려면 젖먹이 아이는 귀찮기만 하지만 승용차의 편리함은 이루 말을 못한다. 그러나 그 승용차는 방 안에 데려다 놓고 쳐다보고 재롱을 부리는 재미를 느낄 수는 없다. 물론 고양이나 개를 방 안에 데려다 놓고 재롱을 보고 있으면 재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재롱과 자기에게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의 재롱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용차처럼 편리한 기계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면 처음부터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분은 완전자, 전능자이므로 도구가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은, 하나님을 꼭 빼다 닮은 존재를 만들어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개념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세상에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를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를 보면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바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천국만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 바로 살게 하지 않고,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에서 갖가지 죄, 타락, 어려움, 사랑, 시기, 미움 등을 겪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을 닮은 인격 존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입력시키고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아담을 일부러 타락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고통을 겪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속에서 건져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계와 다르고 만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어져 가는 것이다.
④ 그렇다면, 구원이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한 것이 구원의 시작이며 그 끝은 영원무궁이다.
구원이란, 지옥 갈 우리를 천국가게 대속하신 것도 구원이지만, 대속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게 만드는 전체 구원 역사 중에서 한 과정이다. 진정한 구원의 개념은 하나님 혼자 계시다가 하나님을 닮은 존재를 하나 만들기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이 구원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 구원의 일부다. 목적을 정한 다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간표를 작성했으니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예정도 구원의 일부다. 이 예정도 우리를 하나님 닮게 만드는 역사 중에 한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 예정대로 실제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을 움직이고 계시니 그것을 섭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만든 모든 창조도 그 창조된 존재들의 엉망진창으로 움직이고 얽히고 섥힌 이 모든 역사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를 하나님 닮도록 하시는 구원의 일부다. 우리는 그 구원의 한 가운데 그 구원의 목적이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처음으로 하나를 만들기로 했던 바로 그 대상이며,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는 이 일에 필요하여 나머지는 전부 들러리로 또는 이런 저런 필수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를 하나님 닮도록 만드는 일은, 예를 들면 왕이 자기를 이을 왕자를 자기처럼 훌륭한 왕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훈련 공부 경험을 통과하게 하는 것과 같다.
⑤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 가는 일에는 오늘 이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필요하다.
배부름과 배고픔, 평안과 고통, 버림받는 설움과 사랑받는 포근함,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던 때와 하나님이 믿어지는 때, 죄 짓는 재미에 빠졌을 때와 이제는 죄를 없애려고 팔을 걷어붙이는 때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싫어서 버린 것처럼 하실 때도 있고, 분이 넘치도록 우리를 안아 주시는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우리를 미워해서 마치 원수를 대하는 그런 실감으로 우리와 전쟁을 벌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젖먹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몰라도 단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처럼 만드는 일에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하는 일이다.
2. 삼하24장의 말씀을 질문자께서 간단하게 요약하셨는데, 맞다. 그렇게 요약하시면 된다.
만일 다윗 당시 질문자께서 계셨더라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처리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다면, 질문 내용 중에서 요약하신 대로 그렇게 현장 보고서를 적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질문자께서 요약하신 내용은, 답변자든 질문자든 당시 어느 누가 그 현장을 보았든 인간의 눈에 외부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은 그랬다. 그러나 인간의 망원경 관찰로 볼 수 없는 이면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세부일정과 활약이 있다.
성경 기록은, 어떤 때는 중계방송 하는 아나운서처럼 보이는 상황만 전달하듯 기록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 중계방송석을 반대편으로 옮겨서 적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구원의 최종적인 범위를 보면서 표현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어느 작은 한 범위만을 기준으로 하여 표현할 때도 있다.
질문자께서 제기하신 몇 가지 내용처럼 성경은 마치 여러 사람이 짜깁기를 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도 있고 후시대에 내려오면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자들이 자기 조상들을 미화하기 위해 성경을 가감했다고 볼 수도 있을 내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이런 내용들을 미리 상식적으로 알지 않고 성경 내용을 그냥 적어져 있는 문자대로만 보되 그 내용을 읽는 사람이 자기 수준에서 자기 선입관대로 읽으면 질문자께서 제기한 질문은 질문이 아니고 성경의 모순점으로 정리되는 경우까지 있다.
질문자께서는 성경을 부인하는 한신대 계통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논리를 읽지 않으셨는지 몰라도, 그들은 성경을 무조건 부인하고 의심하는 일만 전문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성경을 부인할 때 나오는 논리가 바로 질문자와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가졌다가, 그것이 풀리지 않으니까 자기들의 주관 짐작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성경에 여러가지 모순점으로 보이는 것은, 질문자뿐 아니라 답변자와 모든 성경학자들이 한번씩 그렇게 느끼고 의심했던 적이 있었던 내용이며 시각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이제 설명 드린 방향으로 배우고 깨달은 사람들은 성경 제일주의 절대주의 신앙으로 향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부인하는 노선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3. 질문하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답변 드린다.
① 역대상 21장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역대상 21장에서도 꼭 같은 기록이 있다. 거기서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삼상24:1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했다고 했고, 대상21:1에서는 사단이 그렇게 했다고 했으니, 이것도 성경 기록하는 사람마다 자기 주관으로 자기 시각에서 달리 기록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성경에는 많은 착오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죄를 통해 또 매를 가지고 우리를 다스릴 때는 악령을 동원하고 있다. 욥기에서 욥의 시험을 봐도 알 수 있다. 좁은 면으로는 악령과 성령의 투쟁이지만, 좀 더 넓은 면으로 본다면 악령도 악한 날에 악하게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리는 영으로 사용하고 있다.
②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라는 질문이 계셨다.
질문하신 성경 기록의 사건은, 다윗 시대의 성도들을 길러가는 오묘하고 광대한 훈련 계획의 일부요 일환이었다. 또 그런 사건이 실제 전개되었던 그 당시 일을 성경에 굳이 기록을 하시면서 그렇게 표현을 하신 것은 오늘 우리를 위해 필요해서 그렇게 했다. 왜 그 사건을 그렇게 했을까, 또 그 사건이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뜻은 오늘 나에게 어떤 면으로 알리려고 하시는가, 이런 시각에서 다시 한번 연구해 보셨으면 한다. 이 답변 초두의 내용과 바로 위에서 과거 있었던 문답 내용을 보시면서 참고하셨으면 한다.
② '감동시키사'라고 되어 있는 본문의 표현은, 앞뒤 사건 전개를 통해 그 뜻을 알 수 있다.
성경의 한 단어 단어의 뜻을 살피는 방법은, 원어로 된 원문을 살펴서 아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단순히 참고에서 그치는 것이 좋고,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건 전체와 앞뒤 전개 내용을 살펴서 그 단어의 표현을 정의하는 것이 좋다.
여호와께서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였다. 그것을 한자로는 '감동'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감동'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으로 느낌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본문의 앞뒤 사건 전개는 '감동'이라는 그 단어가 비록 지워져서 오늘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 곳에 어떤 단어가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윗을 잡으려고 미끼를 던지고 덪을 놓았다가 걸려 들어오니까 칠 수 있느냐는 것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을 하기 위해 배를 월맹쪽에다 들이대어 공격을 유도해놓고, 적이 마지못해서 치니까 그다음부터는 수백대의 폭격기를 동원해서 거의 매일 월맹을 초토화시키던 것과 꼭 같은 외형을 가졌다.
미국은 월맹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기고 싶어 그렇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윗에 대하여 조처한 것은 그 목적이 구원이다. 하나님을 알고 닮도록 만드는 큰 구원 역사 중의 한 단계일 뿐이다. 백목사님의 자녀 교육 중에 그런 전언이 있다. 제일 착해서 도무지 꾸지람 한 번도 할 기회가 없었던 아들이 있었다. 한번씩 매를 맞아야 사람이 되는데 매를 때릴 기회가 없으니까 일부러 건수를 만들어가지고 때리더라는 이야기다. 맞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만일 그런 배경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도저히 그 아이로서는 알 수 없는 더 깊은 아버지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
③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할 사람을 감동시켜 한 자도 틀리지 않도록 기록한 것이 성경의 영감 기록이다. 기록한 사람은 성령에게 완전히 붙들리고, 그다음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가 기록할 내용을 통고받고 또 이해하고 또 옳다고 인정하여 기록하게 된다. 정확성으로만 말한다면 연필처럼 붙들려서 기록했기 때문에 일점 일획도 가감이나 착오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정확하게 기록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면, 사람이 연필을 붙들고 적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자유성이 있는 인격 존재로 대우하고 그 성경기록자를 감동시켜 그를 통해서 기록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격 존재로 상대하여 대화하고 감동시켜 기록했다는 면을 설명할 때 '유기적 영감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그 기록된 결과는 마치 연필을 잡고 적은 것처럼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뜻을 설명할 때는 '축자 영감기록'이라고 한다. '축자'라는 말은 한 글자씩 좇아가며 적었다는 뜻이다.
(/pkist.net/문의답변/1931번)
요즘은 차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성경을 계속 듣는 중, 삼하 24 장의 내용을 읽으면서 참 의아한 생각을 다시 많이 한다. 분명히 1절의 말씀만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셨다. 인구 조사하라. 근데 그 후 내용을 보면 다윗의 자책, 하나님의 재앙, 24장을 제가 다시 쓰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에게 벌을 내리시기 위해 다윗에게 인구 조사하라고 명하시고 다윗이 조사하고 나서 자책하니까 올커니 됐다라고 생각하면서 벌 3가지 중에 택일 하라 다윗의 어정쩡한 선택 온역을 내리시다가 후회하시고 천사에게 '족하다 그만' 천사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음(삼하24:16)
23장 이전의 내용들에 비해서 24장의 내용이 너무 성격이 틀린거 같다. 요즘은 성경을 읽으면서(아니, 들으면서) 이 권의 저자가 누군가를 생각하곤 합니다만 심지어는 24장은 딴사람이 쓴거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할 정도다.
질문은 이렇다.
1. 하나님께서 어찌 그러실 수 있나?
'감동시키사(개역)'라는 단어가
moved(KJV,WEB)
incited(NIV)
원어('쑤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던데요
의미: 본래 의미는 '찌르다', 즉 상징적으로 자극하다. 함축적으로'속이다'
{KJV} 유혹하다, 움직이다, 유발시키다, 설득하다, 공격하다, 고무시키다, 제거하다
1) to incite, allure, instigate, entice
1a) (Hiphil)
1a1) to incite (to a request)
1a2) to allure, lure
1a3) to instigate (bad sense)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시험(test) 하셨다기 보다는 속이고,꼬드기는, 즉 다윗을 부정적으로 움직이셨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그럴 수가 있나?
2. 그래서 24 장이 원 저자가 아니고 누군가 붙여 쓴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지만
3.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어진 성경이라는 뜻이 궁금하다. 창세기를 모세가 썼다고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 신건지 삼하24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하신 내용이 있는데, 이것도 저자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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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질문 내용은, 구원론의 깊은 문제부터 이해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몇 가지를 참고하셨으면
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좁은 면과 넓은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죄를 지어 지옥 갈 우리를 십자가 대속으로 해결하여 천국가게 한 것이 좁은 면의 '구원'이다.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이 넓은 의미의 '구원'이다.
② 우리를 천국에서 살게 하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세상이라는 과정은 필요치 않았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이 구원의 전부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창조할 때부터 천국만 만들었을 것이다. 천국과 세상을 비교해 보면 모든 면으로 비교 대상이 되지를 않는다. 비록 우리가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에덴동산이 있었던 이 물질계보다는 영계의 하늘나라가 무한히 더 좋은 곳인데 굳이 세상을 만들고 또 그다음에 천국으로 가게끔 할 필요가 없었다.
지옥 갈 사람이 천국 가게 되었으니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은 그 자체가 실수였다. 위험물 방치의 책임을 물어 하나님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야 할 판이다. 세상을 공연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이것이 우리의 목표 전부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구원의 최점L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처음부터 만들지 말고 바로 천국을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셨어야 했다.
③ 세상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닮는 넓은 의미의 구원 때문이었다.
기계는 단번에 조립하여 완성품으로 만들 수 있고, 제품이 완성되면 그 즉시부터 주인이 마음껏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주인이 사용하면 사용만 당할 뿐이지 그 자체의 생각과 뜻이 없으므로 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 쉽게 말하면 실력은 탁월한데 재미가 없다. 고급 승용자의 가격과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든 이유는 승용차의 편리함과 기능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빼다 닮은 젖먹이 아이를 원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려면 젖먹이 아이는 귀찮기만 하지만 승용차의 편리함은 이루 말을 못한다. 그러나 그 승용차는 방 안에 데려다 놓고 쳐다보고 재롱을 부리는 재미를 느낄 수는 없다. 물론 고양이나 개를 방 안에 데려다 놓고 재롱을 보고 있으면 재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재롱과 자기에게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의 재롱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용차처럼 편리한 기계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면 처음부터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분은 완전자, 전능자이므로 도구가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은, 하나님을 꼭 빼다 닮은 존재를 만들어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개념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세상에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를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를 보면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바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천국만 만들어 우리를 천국에 바로 살게 하지 않고,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이 세상에서 갖가지 죄, 타락, 어려움, 사랑, 시기, 미움 등을 겪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을 닮은 인격 존재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입력시키고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아담을 일부러 타락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고통을 겪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속에서 건져낸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계와 다르고 만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되어져 가는 것이다.
④ 그렇다면, 구원이란 하나님이 목적을 정한 것이 구원의 시작이며 그 끝은 영원무궁이다.
구원이란, 지옥 갈 우리를 천국가게 대속하신 것도 구원이지만, 대속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게 만드는 전체 구원 역사 중에서 한 과정이다. 진정한 구원의 개념은 하나님 혼자 계시다가 하나님을 닮은 존재를 하나 만들기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이 구원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목적이 구원의 일부다. 목적을 정한 다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간표를 작성했으니 예정이라고 한다. 이 예정도 구원의 일부다. 이 예정도 우리를 하나님 닮게 만드는 역사 중에 한 과정이라는 말이다. 그 예정대로 실제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을 움직이고 계시니 그것을 섭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을 만든 모든 창조도 그 창조된 존재들의 엉망진창으로 움직이고 얽히고 섥힌 이 모든 역사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를 하나님 닮도록 하시는 구원의 일부다. 우리는 그 구원의 한 가운데 그 구원의 목적이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처음으로 하나를 만들기로 했던 바로 그 대상이며, 우리를 하나님 닮은 존재로 만드는 이 일에 필요하여 나머지는 전부 들러리로 또는 이런 저런 필수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를 하나님 닮도록 만드는 일은, 예를 들면 왕이 자기를 이을 왕자를 자기처럼 훌륭한 왕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훈련 공부 경험을 통과하게 하는 것과 같다.
⑤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 가는 일에는 오늘 이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필요하다.
배부름과 배고픔, 평안과 고통, 버림받는 설움과 사랑받는 포근함,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던 때와 하나님이 믿어지는 때, 죄 짓는 재미에 빠졌을 때와 이제는 죄를 없애려고 팔을 걷어붙이는 때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싫어서 버린 것처럼 하실 때도 있고, 분이 넘치도록 우리를 안아 주시는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우리를 미워해서 마치 원수를 대하는 그런 실감으로 우리와 전쟁을 벌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젖먹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대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몰라도 단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처럼 만드는 일에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하는 일이다.
2. 삼하24장의 말씀을 질문자께서 간단하게 요약하셨는데, 맞다. 그렇게 요약하시면 된다.
만일 다윗 당시 질문자께서 계셨더라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처리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다면, 질문 내용 중에서 요약하신 대로 그렇게 현장 보고서를 적어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질문자께서 요약하신 내용은, 답변자든 질문자든 당시 어느 누가 그 현장을 보았든 인간의 눈에 외부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은 그랬다. 그러나 인간의 망원경 관찰로 볼 수 없는 이면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세부일정과 활약이 있다.
성경 기록은, 어떤 때는 중계방송 하는 아나운서처럼 보이는 상황만 전달하듯 기록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 중계방송석을 반대편으로 옮겨서 적을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구원의 최종적인 범위를 보면서 표현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어느 작은 한 범위만을 기준으로 하여 표현할 때도 있다.
질문자께서 제기하신 몇 가지 내용처럼 성경은 마치 여러 사람이 짜깁기를 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도 있고 후시대에 내려오면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자들이 자기 조상들을 미화하기 위해 성경을 가감했다고 볼 수도 있을 내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이런 내용들을 미리 상식적으로 알지 않고 성경 내용을 그냥 적어져 있는 문자대로만 보되 그 내용을 읽는 사람이 자기 수준에서 자기 선입관대로 읽으면 질문자께서 제기한 질문은 질문이 아니고 성경의 모순점으로 정리되는 경우까지 있다.
질문자께서는 성경을 부인하는 한신대 계통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논리를 읽지 않으셨는지 몰라도, 그들은 성경을 무조건 부인하고 의심하는 일만 전문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성경을 부인할 때 나오는 논리가 바로 질문자와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가졌다가, 그것이 풀리지 않으니까 자기들의 주관 짐작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성경에 여러가지 모순점으로 보이는 것은, 질문자뿐 아니라 답변자와 모든 성경학자들이 한번씩 그렇게 느끼고 의심했던 적이 있었던 내용이며 시각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이제 설명 드린 방향으로 배우고 깨달은 사람들은 성경 제일주의 절대주의 신앙으로 향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부인하는 노선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3. 질문하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답변 드린다.
① 역대상 21장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역대상 21장에서도 꼭 같은 기록이 있다. 거기서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삼상24:1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했다고 했고, 대상21:1에서는 사단이 그렇게 했다고 했으니, 이것도 성경 기록하는 사람마다 자기 주관으로 자기 시각에서 달리 기록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성경에는 많은 착오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죄를 통해 또 매를 가지고 우리를 다스릴 때는 악령을 동원하고 있다. 욥기에서 욥의 시험을 봐도 알 수 있다. 좁은 면으로는 악령과 성령의 투쟁이지만, 좀 더 넓은 면으로 본다면 악령도 악한 날에 악하게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리는 영으로 사용하고 있다.
②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라는 질문이 계셨다.
질문하신 성경 기록의 사건은, 다윗 시대의 성도들을 길러가는 오묘하고 광대한 훈련 계획의 일부요 일환이었다. 또 그런 사건이 실제 전개되었던 그 당시 일을 성경에 굳이 기록을 하시면서 그렇게 표현을 하신 것은 오늘 우리를 위해 필요해서 그렇게 했다. 왜 그 사건을 그렇게 했을까, 또 그 사건이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뜻은 오늘 나에게 어떤 면으로 알리려고 하시는가, 이런 시각에서 다시 한번 연구해 보셨으면 한다. 이 답변 초두의 내용과 바로 위에서 과거 있었던 문답 내용을 보시면서 참고하셨으면 한다.
② '감동시키사'라고 되어 있는 본문의 표현은, 앞뒤 사건 전개를 통해 그 뜻을 알 수 있다.
성경의 한 단어 단어의 뜻을 살피는 방법은, 원어로 된 원문을 살펴서 아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단순히 참고에서 그치는 것이 좋고,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건 전체와 앞뒤 전개 내용을 살펴서 그 단어의 표현을 정의하는 것이 좋다.
여호와께서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였다. 그것을 한자로는 '감동'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감동'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으로 느낌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본문의 앞뒤 사건 전개는 '감동'이라는 그 단어가 비록 지워져서 오늘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 곳에 어떤 단어가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윗을 잡으려고 미끼를 던지고 덪을 놓았다가 걸려 들어오니까 칠 수 있느냐는 것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을 하기 위해 배를 월맹쪽에다 들이대어 공격을 유도해놓고, 적이 마지못해서 치니까 그다음부터는 수백대의 폭격기를 동원해서 거의 매일 월맹을 초토화시키던 것과 꼭 같은 외형을 가졌다.
미국은 월맹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기고 싶어 그렇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윗에 대하여 조처한 것은 그 목적이 구원이다. 하나님을 알고 닮도록 만드는 큰 구원 역사 중의 한 단계일 뿐이다. 백목사님의 자녀 교육 중에 그런 전언이 있다. 제일 착해서 도무지 꾸지람 한 번도 할 기회가 없었던 아들이 있었다. 한번씩 매를 맞아야 사람이 되는데 매를 때릴 기회가 없으니까 일부러 건수를 만들어가지고 때리더라는 이야기다. 맞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만일 그런 배경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도저히 그 아이로서는 알 수 없는 더 깊은 아버지의 목적이 있을 수 있다.
③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할 사람을 감동시켜 한 자도 틀리지 않도록 기록한 것이 성경의 영감 기록이다. 기록한 사람은 성령에게 완전히 붙들리고, 그다음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가 기록할 내용을 통고받고 또 이해하고 또 옳다고 인정하여 기록하게 된다. 정확성으로만 말한다면 연필처럼 붙들려서 기록했기 때문에 일점 일획도 가감이나 착오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정확하게 기록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면, 사람이 연필을 붙들고 적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자유성이 있는 인격 존재로 대우하고 그 성경기록자를 감동시켜 그를 통해서 기록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격 존재로 상대하여 대화하고 감동시켜 기록했다는 면을 설명할 때 '유기적 영감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그 기록된 결과는 마치 연필을 잡고 적은 것처럼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뜻을 설명할 때는 '축자 영감기록'이라고 한다. '축자'라는 말은 한 글자씩 좇아가며 적었다는 뜻이다.
(/pkist.net/문의답변/193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