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주해사전 (5600개)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 성경 23이사야14:12
서기 0 10
‘계명성'은 영어로‘루시퍼(빛)’다. 타락하기 전 천사는 빛의 존재였다.


참고로,
선교사들이 선교 초기에 한글을 배워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설교하고 가르쳤는데 이 사14:12 본문만은 번역해 놓은 한글 본문인 '
계명성'이라는 단어 대신에 '루시퍼'라는 영어성경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온 신학교수들이 '계명성'이라고 하면 될 것을 괜히 영어 단어로 한 마디 척 사용하면 무슨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처럼 돋보이게 되는데 그 재미로 자꾸 사용하다 보니까, 사14:12의 '계명성'은 영어성경이 단어인 '루시퍼'라는 단어가 일반 단어처럼 되어졌다.


계명성은 아침 해 뜨기 전에 동쪽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
샛별'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샛별 = 새벽별 = 금성 = 계명성'이 다 같은 뜻이다. 계명성이라는 한자의 단어 뜻도 '밤이 지나고 밝은 아침을 연다'는 뜻으로 '열 계(啓), 밝은 명(明)'이다. 영어 단어로는 'morning star = day star = lucifer'가 다 같은 뜻이다.

사14:12 '
계명성(=루시퍼)'이 사탄을 의미하는 이유는 천사가 원래 빛을 가진 하늘의 존재였는데 사14:12-20에서 그 타락한 과정을 잠깐 설명하고 있다. 13-14절에서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를 스스로 높히다가, 15절에서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고 하셨다.

유다서 6절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셨다고 하신 말씀에서도 이 사14:12의 '
계명성'은 원래 천사였다가 사탄으로 타락한 것을 말씀하고 있다. 계12:7-12에서도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 이 땅으로 내려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사14:12 본문은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라는 표현에서 '아침의 아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혹시 성도인 우리를 가르치는 본문으로 알기 쉬우나 이는 사탄이 타락하기 전 '빛의 존재'였다는 점을 말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말씀 이후에 이어지는 사13-14장의 바벨론은 바로 계명성의 외부 모습이다.
이사야 1-12장은, 이스라엘의 타락, 하나님의 징계, 회개와 구원을 차례로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13-23장은, 바벨론 모압 다메섹 구스 애굽 등 이스라엘의 주변 세상에 대한 예언이다.

이사야1-12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타락하고 매를 맞으면 잠깐 돌이켰다가, 또 숨을 쉴 만하면 다시 타락하고 또 매를 맞으며, 그 역사를 반복하고 있던 마지막 때였다.

1장에서, 이스라엘이 거의 황무하게 된 형편과 원인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을 버려서 매를 맞았고 그들의 예배 생활도 형식 뿐이어서 하나님이 진노했음을 말씀했다. 그래도 18절에서 회개만 하면 된다고 외치고 있다.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만국을 통일하고 다스릴 말세가 있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촉구가 있다. 그날에는 현재 이스라엘이 교만하고 우상으로 나간 행동을 심판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3-4장 중, 3장에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여러가지를 의지한 것을 두고 책망하고, 4장에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징책하고 그런 속에서도 깨끗하게 자기를 지킨 자를 위로하실 말씀이 있다.

5장에서는, 이스라엘을 귀하게 기르시려 했으나 이스라엘이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갔으니, 그들의 세상을 하나님께서 험하게 만드시겠고 결국은 먼 나라를 불러 다 삼키도록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6장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점; 보내어 이스라엘을 향해 외칠 것이나 듣고 고칠 사람이 없어 다 망할 것이나, 훗날을 위해 거룩한 씨를 그루터기로 남겨 두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7-8장에서는, 아람왕이 북쪽 이스라엘과 함께 예루살렘을 치러 왔는데 이사야를 통해 그들은 물러갈 것이나 그보다 더 강한 앗수르가 와서 이스라엘을 칠 것을 말씀한다.

9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의 노가 계속 될 것을 말씀했다.

1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완악함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치셨으나, 이스라엘을 친 후에는 몽동이로 사용한 앗수르를 멸할 것을 말씀했다.

11-12장에서는, 이스라엘을 친 앗수르를 멸망시킨 후에 이스라엘에는 구원자가 나와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동산으로 바뀔 것을 말씀하고 이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찬송할 것을 말씀했다.

13-14장에서 말씀하는 이방 나라들의 의미는,

12장까지는 이스라엘의 범죄, 하나님의 징계, 이스라엘의 회개와 구원을 두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13장에서 23장까지는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국가들에 대하여 조목조목 말씀하고 있다. 이를 두고 '
성경신학'에서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국가들에 대한 예언이라는 점으로만 연구하고 있다. 이사야서 내용이 역사적으로 당시 실제 존재했는지, 또 그후 그 예언대로 그렇게 되었는지를 고고학을 동원하여 샅샅이 훑어보는데 전력을 하고 있다.

구약의 이방 나라들이란, 오늘 신약 우리에게는 우리 현실 속에 있는 여러가지 세상이다.

이방국가들에 대하여 성경이 기록한 것은 그 당시 그 국가들에 대하여 염려함이나 그 국가들에게 어떤 존재 의미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다. 구약 교회를 오늘 신약 우리로 비교를 한다면, 그 이방나라들은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 있는 여러 세상들을 말하고 있다. 구약 이스라엘은 그들 주변에 있는 이방국가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그 이방국가들이 그들의 현실이다. 이스라엘이 내부에 모신 하나님과 주변에 둘러싸고 있는 이방국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이스라엘의 당시 구원은 흥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즉, 예루살렘 성전에 모신 하나님께 말씀을 따라 제사를 정확하게 드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 주변 이방국가라는 환경은 이스라엘의 밥이 되고 그들의 기업이 되었다. 반대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국가가 두렵거나 또는 그들이 부러워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에게 기울어지면 하나님은 매를 들었던 것이다.

그중에 첫째로 예를 든 것이 바벨론이다. 바벨론은 세상 중의 세상이라는 뜻이다. 세상 중에서도 바벨론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과 정면으로 맞설 만큼 힘과 돈과 문화와 인생의 낙을 전부 다 갖추었다는 뜻이다. 계18장에서 아주 자세하게 요약했고, 구약에서는 바벨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장황하게 적고 있다. 이런 구약의 기록을 구약 당시의 역사기록이라는 점에만 관심을 두고 성경신학이 그 사실 여부에만 세상 사학자들과 같은 방법과 시각으로 연구를 하기 때문에 교회에게 구약성경은 성경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해 준 내용만을 가지고 바벨론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오늘 신약 우리에게 구약 바벨론을 기록해 주신 이유가 뚜렷하게 눈에 보일 것이다. 성경신학자들의 말처럼 그 거대한 국가가 이스라엘을 쳤다라든지, 그 거대한 국가에서 다니엘이 정권을 잡았다든지 하는 총론적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그 바벨론을 완전 분해하게 되면 오늘 우리 현실이 완전 해부가 되어 우리 눈에 그 모습이 보일 것이다. 성경의 바벨론을 성경으로만 해석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그 후 시대에 전개되었던 현실들과 교회 역사에 있었던 현실들, 그리고 오늘 우리 현실에서 그 미확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바벨론은, 우리 성도가 세상이라는 현실 속에서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 바로 그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현실 속에서 특히 죄악 세상이 하나님 없이 자기들로서는 더 이상이 없다 할 만큼 모든 면으로 발전을 시킨 바로 그 세상을 말한다. 학생으로 말하면 학교 교무실이 바벨론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직장인으로 말하면 회사라는 존재가 아마 그 사람에게 오늘 자기 현실 속에서 구약 이스라엘로 말하면 바벨론에 해당이 될 것이다. 애굽은 애굽대로 구스는 구스대로 각각 우리 현실에서 우리와 접촉하고 있는 세상의 이런 면 저런 면을 말씀하는 것이다.

사14장의 바벨론에 대한 말씀과 그 중에서 사단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바벨론의 교만과 타락과 그 결과는 바로 계명성과 꼭 같다는 점을 보셨으면 한다.

이제 14장을 살펴보기 위해 우선 이사야 1-12장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타락과 징계와 구원으로 계속된다는 것을 간추려 살펴보았고, 그다음 13-23장에서는 구약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여러가지 이방국가들을 당시 현실로 준비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이번 질문에 해당되는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는 가장 어려운 현실이었고 그 바벨론은 바로 타락한 세상이다.

바벨론을 기록한 13장과 14장 도중에 사탄에 대한 기록이 나온 것은 바벨론은 세상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세상이고 사탄은 그 세상의 배후 세력인데, 바벨론을 보면 사탄을 볼 수 있고, 사탄의 타락 경위를 보면 바벨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13장의 1-5절에서 바벨론을 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 군대를 불러 모았는데, 11절에서 바벨론의 죄는 '
교만'이며 '오만'이며 '거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거만을 낮출 것이며'라고 했다. 자기 자리 이상으로 올라간 것을 말씀했다. 19절에서 바벨론은 열국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 높아진 것을 낮추시되 19절에서 '소돔과 고모라같이' 만들 것이다.

다음 14장의 1-2절에서 바벨론에 잡혔던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잠깐 말씀했으나 5절에서 바벨론이 가진 세상의 '
패권'을 꺽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바벨론은 9절에서 '음부로 쫓겨가고, 11절에서는 그 음부에서 구더기와 지렁이로 뒤덮일 것을 말씀했다.

그리고, 사14:12에서 사탄이 하늘의 천사로 빛을 가진 계명성이었는데, 그가 교만하여 그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기 보좌를 높이리라고 했다가, 하나님께 내어쫓겨 15절에서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이 사탄이 천사였는데, 먼저 자기중심으로 하나님과 맞섰고 쫓겨나게 되자, 에덴동산 아담에게 자기가 타락했던 순서대로 아담을 자기중심으로 하나님과 맞서게 하여 또 아담이 사탄처럼 원래 지위에서 쫓겨나서 만물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 없이 살며 자기들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제 멋대로 살게 되는데 그 후손들의 죄도 역시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났던 그 죄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그 죄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날 때부터 누구에게는 공통적으로 내려오는 자기중심이라는 죄가 있으니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

그리고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붙들려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이후로는 주님 한 분만을 모시고 건설구원으로 자라가야 하는데, 이 일을 가로막는 것이 세상이고 이사야 당시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바벨론이라는 세상이 가장 힘 있게 이스라엘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바벨론이 바로 하나님 없는 세상이니 곧 그 바벨론 속에는 사탄이 있었다. 에덴동산에서는 뱀이요, 출애굽 때는 바로왕이었다. 시대마다 이름만 다를 뿐, 그 속에 있는 죄의 성격, 그로 인해 타락하고, 결국 음부로 내려갈 것인데, 그들이 땅 위에서 하는 역할은 전부가 성도의 구원을 막아서는 것이다.

바벨론 속에 바벨론으로 하여금 바벨론 노릇을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사탄이다. 겉보기는 바벨론인데 그 바벨론 속을 들여다보니 사탄이다. 이 면을 보이시기 위해, 이사야 13장과 14장에서 바벨론은 그 속이 하나님을 향해 스스로 높아지는 교만이 있고 그것이 결국 그 자리에서 떨어질 것이고 마침내 음부로 내려가서 심판을 받게 될 존재라는 것을 보이시면서 그 바벨론 속에 들어앉아 있는 사탄을 함께 잠깐 보여주고 계신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 우리 구원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우리 주변 세상도 그 것의 모습은 가정 부부 직장 학교 사회 문화 과학..... 이라고 하는 이런 저런 세상을 쓰고 나오지만 그 속에는 바벨론처럼 오늘 우리 성도를 노리고 있으며, 하나님 없는 그런 세상 것들 속에는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제일 중심 속에 들어앉아 그의 타락과 같은 성질로 오늘 우리를 노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백목사님은 구약에 대한 주해가 적고 특히 역사서와 예언서의 주해가 적다.

① 백목사님 설교록에서 성경 전부를 살필 수 있는 분들이 되셨으면
백목사님의 1만 수천개의 백목사님 설교 자료들을 다 살펴보면, 그 설교가 신약에 거의 집중되어 있고, 구약의 경우는 역사서와 예언서에 대한 주해가 거의 없다. 혹 있다 해도 몇몇 성구에만 거의 집중되어 있다.

성경주해를 몇 곳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 몇 곳을 깊이 바로 알게 되면 나머지 성경 해석은 본인들이 알아서 저절로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각방마다 보물이 있고 그 문 앞에는 자물통이 있어 열수가 없다면 백목사님은 방문마다 다른 형태의 자물통으로 잠겨있는 것을 열어주는 것을 평생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문만 열어놓으면 그 안에 있는 보물은 시간되는 대로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을 얼마든지 스스로 꺼내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일반 설교나 주석과 백목사님의 설교세계를 비교한다면
백목사님은 혹시 한번씩 그 방들 중 한 두 곳은 문을 열고 난 후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그 속에 있는 보물들을 전부 꺼내어 사용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한번 보았다면 그다음부터는 자물통을 열어놓은 방문마다 들어가서 누구든지 앞에서 본 것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다른 주석이나 다른 분들의 설교는 어느 방문 하나를 열기 위해 몇번 시도하고 또 그다음 방문 앞에서 그 방문 안에 있는 보물을 설명만 해놓고 자물통을 여는 것은 중간쯤 시도하다 또 그 다음으로 넘어가버린다고 비교를 할 수 있다. 수십권 주석 전부를 다 살펴봐도 자물통이 어느 제품이고 재질이 무엇이라는 것만 설명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어느 방문이든 한번이라도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의 도가 얼마나 깊고 오묘한지, 그 말씀대로 살아본 세계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예를 보는 경우는 참으로 희귀하다. 혹 있다 해도 어느 한 부분에 대한 것이지, 백목사님처럼 이렇게 성경만으로 성경 전반을 살필 수 있도록 모든 면을 다 가르친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이번 문답처럼 성경의 성구를 살피려 한다면 질문하시는 분들은 평생 질문하셔야 하고 답변자는 평생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하나의 예를 보시면서, 백영희목회연구회를 찾는 모든 분들이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 제공하는 설교록을 그냥 보지 마시고 성경 전부를 해석할 수 있도록 방마다 걸려있는 자물통을 다 열 수 있는 내용들을 발견하시고 본인들의 것이 되도록 했으면 한다. 백영희목회연구회에서 제공하는 설교 전부를 다 살펴야 아는 것이 아니고 몇 달치, 혹 1-2년치에 해당하는 몇 백개만 집중적으로 살펴보시면 윤곽이 나올 것이다.


(/pkist.net/문의답변/1345번)
0 Comments

성경 성구(click용)
State
  • 현재 접속자 946 명
  • 오늘 방문자 1,337 명
  • 어제 방문자 81 명
  • 최대 방문자 1,337 명
  • 전체 방문자 2,546,151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