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 성경 | 20전도서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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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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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6 08:33
단독으로 할 일도 있고, 힘을 합해 노력할 구원도 있다. 성구의 큰 면을 본다면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기독교 사회성을 가르친다. '사회성'이란 신앙의 고차원에서 살피는 것이다.
신앙 방향을 크게 나눌 때, 개인문제에 힘을 쓰는 것과 사회문제에 힘을 쓰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자기 개인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첫째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된 자기를 만든 후에 비로소 되어지는 일이다.
본문은 자기 혼자 하나님을 상대하는 면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상대해야 하는 '사회성'을 말씀하신 성구다. 아담과 하와를 각각 남녀로 만들어 혼자가 아니라 둘로 살아가도록 한 것,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예배와 신앙생활을 하도록 교회를 중심으로 해 주신 것도 그렇다.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실 때도 혼자가 아니라 둘씩 묶어서 보냈으며 바울도 전도 여행에 한 사람을 꼭 데리고 다닌 것을 알 수 있다. 한 몸에서도 눈이 하나 있지 않고 둘이 있으며 팔과 다리도 그렇습니다. 자연을 통해 알려 주시는 것이다.
부부가 '정상적으로' 하나 되어 산다면 혼자 살 때 각자가 할 수 있던 일을 두 배로 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생각도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거나 아니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두 사람이 떨어져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할 만큼 큰 일을 할 수 있다.
또 교회로 예를 든다면, 한 사람씩 따로 가정에서 예배 보는 100명이 각각 신앙생활 할 때와 그 각각의 100명이 한 교회로 모여 함께 신앙생활 할 때를 비교해 본다면, 100명이 각자로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하는 복음사업을 하게 된다. 다니시는 교회를 지금 각자 흩어놓았을 때를 잠깐 명상으로 추론해 보시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시험에 든 이를 옆에서 붙들어 살려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고, 외롭고 고달픈 이들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새 힘을 얻어 영육 간에 큰 힘을 얻으며, 앞선 이가 끌어 주어 뒤선 이가 앞을 향하고, 또 새로운 지역에 개척교회를 하거나 선교를 하는 일 등을 손꼽으면 적지 않다.
공회는 극단적인 개인신앙주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신앙의 본질적인 면들이 있다. 인간이 합한 단체가 중심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지 하나님을 모신 개인이 그다음 다른 사람과 하나되어 할 일은 질문하신 본문에서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로 잘 말씀하고 있다. 아주 쉬운 자연이치로 말씀했으나 하늘의 영원한 상급이 걸려있고 영원한 수치를 이 땅 위에서 함께 믿는 형제로 인하여 해결되는 점을 말씀한 성구다.
(/pkist.net/쉬운문답/ 741번)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기독교 사회성을 가르친다. '사회성'이란 신앙의 고차원에서 살피는 것이다.
신앙 방향을 크게 나눌 때, 개인문제에 힘을 쓰는 것과 사회문제에 힘을 쓰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자기 개인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첫째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된 자기를 만든 후에 비로소 되어지는 일이다.
본문은 자기 혼자 하나님을 상대하는 면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상대해야 하는 '사회성'을 말씀하신 성구다. 아담과 하와를 각각 남녀로 만들어 혼자가 아니라 둘로 살아가도록 한 것, 또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예배와 신앙생활을 하도록 교회를 중심으로 해 주신 것도 그렇다.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실 때도 혼자가 아니라 둘씩 묶어서 보냈으며 바울도 전도 여행에 한 사람을 꼭 데리고 다닌 것을 알 수 있다. 한 몸에서도 눈이 하나 있지 않고 둘이 있으며 팔과 다리도 그렇습니다. 자연을 통해 알려 주시는 것이다.
부부가 '정상적으로' 하나 되어 산다면 혼자 살 때 각자가 할 수 있던 일을 두 배로 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생각도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거나 아니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두 사람이 떨어져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할 만큼 큰 일을 할 수 있다.
또 교회로 예를 든다면, 한 사람씩 따로 가정에서 예배 보는 100명이 각각 신앙생활 할 때와 그 각각의 100명이 한 교회로 모여 함께 신앙생활 할 때를 비교해 본다면, 100명이 각자로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하는 복음사업을 하게 된다. 다니시는 교회를 지금 각자 흩어놓았을 때를 잠깐 명상으로 추론해 보시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시험에 든 이를 옆에서 붙들어 살려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고, 외롭고 고달픈 이들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새 힘을 얻어 영육 간에 큰 힘을 얻으며, 앞선 이가 끌어 주어 뒤선 이가 앞을 향하고, 또 새로운 지역에 개척교회를 하거나 선교를 하는 일 등을 손꼽으면 적지 않다.
공회는 극단적인 개인신앙주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신앙의 본질적인 면들이 있다. 인간이 합한 단체가 중심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지 하나님을 모신 개인이 그다음 다른 사람과 하나되어 할 일은 질문하신 본문에서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로 잘 말씀하고 있다. 아주 쉬운 자연이치로 말씀했으나 하늘의 영원한 상급이 걸려있고 영원한 수치를 이 땅 위에서 함께 믿는 형제로 인하여 해결되는 점을 말씀한 성구다.
(/pkist.net/쉬운문답/ 74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