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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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 성경 01창세기05:01-32
서기 0 17
1. 창세기 5장에서 나이 계산을 해 보면

① 창세 초기 2000년 연대
관련 성구는, 창5:1-32, 창6:3, 7:6, 9:28-29 등
첫출산 출산 별세
0000년 아담 출생 130 800 930
0130년 셋의 출생 105 807 912
0235년 에노스 출생 90 815 905
0325년 게난 출생 70 840 910
0395년 마할랄렐 출생 65 830 895
0460년 야렛 출생 162 800 962
0622년 에녹 출생 65 300 365
0687년 므두셀라 출생 184 782 969
0874년 라멕 출생 182 595 777
0930년 *아담의 사망
1056년 노아 출생 500 350 950
1556년 *3명아들 출생
1656년 노아홍수
*므두셀라사망
2006년 노아사망


2. 창세기에서 기록해 준 연대를 계산해 보면

① 노아 아버지 라멕은 홍수 5년 전인 1651년에 사망
② 므두셀라는 아담과 243년간 같은 시대를 살았고, 노아와 600년을 함께 살다 홍수 1651년에 사망
③ 그렇다면 '아담의 에덴동산''노아홍수'는 불과 3대만에 일어난 일
④ 므두셀라는 에덴동산 타락 현장의 당사자와 노아홍수 당사자와 함께 수백년을 살았고

3. 창세기 연대표를 연구하다보면 그 속에서 성경 전체가 연결되어 드러나는데
창세기 연대표는 대개 고대사회의 대략적인 짐작과 추상과 희망사항을 섞어 단군신화처럼 적은 것으로 취급하나, 당시를 알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어느 한 면씩을 뽑아 오늘날 성경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할 기록으로 남겨두신 것.

그 연대표까지도 신약의 로마서처럼 계시록처럼 하나씩 따져 여러 면으로 살펴보면 성경전체는 꽉 짜여진 그물망처럼 물샐틈없는 진리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잠깐 살펴본 연대비교에서 우리는 에덴동산의 타락이 그렇게 허망하고 안타깝게 이루어진 것을 탄식할 수 없는 면을 발견. 아담이 므두셀라와 243년 동시대를 살고 있었다.

4. 아담이라는 인물의 의미는?
아담만은 에덴동산 타락 이전을 직접 살았던 당사자. 그리고 타락의 순간을 겪었고 그 후 가인 아벨과 모든 죄악세상사와 하나님의 긍휼역사를 직접 겪고 왔던 인물. 그렇다면 그 아담이라는 인물은? 그 입으로 따로 증언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만 보고 그의 존재 소식만 들어도 그들의 자손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걸어 다니는 성경.

하나님의 명령, 범죄, 징계, 저주, 회개, 긍휼 등등을 아담이라는 인물에게서 모두 다 실물적으로 가시적으로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인물과 243년을 함께 살았던 므두셀라가 노아 120년 홍수 심판의 예언 속에 살았고 그 홍수 시대에 죽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노아홍수 물에 쓸려죽었다고 기록되지 않아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노아홍수에 죽은 인물 중에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가 없을 것. 더구나 더 확실한 것은, 므두셀라의 자손들 다른 자식들 다른 아들들은? 아담으로부터 불과 몇 세대에 인류가 지상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 수효는 많아도 족보로 따지면 불과 8촌 안에 들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 복음이 너무 멀리 있고 복음을 가진 이들이 타민족이거나 이질적인 종족들이어서 가져오기가 불편해서 듣지 못할 형편이 아니었다.

복음을 들을 귀는 막혀 있고 죽음을 향한 달음질에는 브레이크 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아서 그 시대 전부가 죽자고 죽을 길을 향해 미친 듯이 몰려가고 있었고, 노아 한 사람이 자기 직계 식구만 건져낼 수 있었던 것이 당시 시대상황. 두려운 것은, 바로 오늘이 그때라고 말씀한 마24:37 내용.

5. 충분히 배우지 못해서 일어났을 일 같은데, 사실은 아니라는 것.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파악하는데 시간이 촉급하거나 본인확인에 필요한 인감증명서 발부에 시간이 걸려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처형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잘 알고 또 잘 알 수밖에 없으며, 그런데도 확인사살을 해야 할 그들 속에 세상 욕심이 있었고 교권 장악의 필요성이 있었으며 돌이키기에는 너무 창피해서 그들이 보존해야 할 그들의 명예보존권이 있었다.

나에게 맞지 않으면 예수님을 처형해 버릴 수 있는 유대인 지도부의 단안과 그 흉칙한 사탄의 모습이 노아 당시에도 있었고 그런 역사를 성경에 기록해 두시고 오늘 우리에게 변치 않는 진리로 변치 않는 하나님 뜻으로 읽도록 명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들의 그 입장에 서 있기 때문.

조금만 양심을 기우려 주님 뜻을 찾으면 노아가 될 수 있고 조금만 양심을 눌러버리고 내 입장을 찾으면 바로 노아 때 멸망한 므두셀라처럼 아담을 보고도, 아담과 동시대를 살고도, 남에게 전해 들은 말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목도하면서도 홍수 심판 속으로 쏠려들어갈 수 있는 멸망의 무저갱이 질문자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답변자 속에도 꽉 들어차 있다. 이곳을 이용하시고 이 글을 대하는 우리 전부에게 있다. 우리의 강퍅을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는 핑계를 말아야겠다. 우리는 그때 그들이 갖지 못했던 문서로 적어주신 66권 성경까지 쥐고 있는 시대다.

우리는 과거 신약 2천년사에서 꿈도 꾸지 못했던 인터넷의 검색을 통해 원하는 부분을 바로 눈앞에 올려놓고 직시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죄를 지으려면 인류역사에 비할 수 없는 죄를 지을 수 있고, 회개하여 돌이키려면 얼마든지 복된 길을 마련할 수 있다.



6. 질문 내용을 중심으로 잠깐 살피면
① 므두셀라는 택자로 보는 것이 옳을 듯.
구약시대 예수님의 조상의 반열에 올려진 이들은 택자라고 보고 있다. 구약의 계통은 믿음의 계통을 내면에 두면서 동시에 외부적으로도 혈통이라는 외부 모습까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


(/pkist.net/문의답변/394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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