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성경 | 62요한1서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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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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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4 17:12
'죄를'
기본구원의 죄는 하나님 앞에 어떤 것이든 하나 삐뚤어 지면 죄가 되고, 죄의 값은 무조건 사망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죄'이니 사죄란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지옥 형벌까지 모두 해결해야 천국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 천국 문제 해결을 '칭의'라 한다. 중생 된 사람은 자기 마음과 행동을 하나씩 배우고 고치고 자라 가는 '성화'가 평생 노력할 일인데 이 일을 두고
말씀을 어기면 '죄' > 죄를 해결하는 것은 '사죄'
말씀은 지키지만 그 속에 자기가 마음대로 말씀을 선택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니 '불의' > 말씀 속에 주님 뜻으로 살면 '칭의'
말씀 속에 주님의 뜻까지를 다 살펴 순종했다 해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원수' > 이 해결은 주님과 하나 된 '화친'이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 말씀과 그 뜻을 따라 산다 해도 그 모든 것이 세상에 그치면 '절망' > 영생으로 이어 지면 '소망'이다.
'자백하면'
4 차원으로 죄를 돌아 보되, 만 가지 죄 전부를 백과사전 식으로 나열하고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내 신앙 양심에 가장 급한 것 중요한 것 내가 마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 하나를 지목하고 이 것을 마치 죄의 전부인 것처럼 두고 자백하고 이 죄를 회개하겠다고 나서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나머지 죄는 알고 모르고를 떠나 우선 지목한 그 죄 하나를 고치려고 느끼고 은혜를 구하며 자백하는 순간 모두가 대기가 된다.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그 처벌이 미루어 진다. 자백은, 그냥 이런 죄를 지었다는 자수에 그치지 않고 이 죄가 어떤 문제인지 이로 인해 어떤 해가 있었는지 느껴야 자백이 된다. 추수하는 사람이 이삭을 베듯 사람의 목을 날리면서 숫자 보고하듯 하는 것은 통고지 자백이 아니다. 죄라는 것, 죄의 값이라는 것, 이로 인해 주님이 대신 죽었다는 것, 그런데 인간은 이런 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 주님의 대속의 은혜가 도우면 해결이 된다는 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을 때 '자백'이다.
'저는 미쁘시고'
믿지 못할 주님이 아니라 어떤 죄도 해결하실 주님이다. 주님의 틀림 없는 약속을 말한다.
'의로우사'
나를 고치려고 작정하신 주님이 주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시고 주님의 뜻에 나를 고치시고 주님과 하나 되고 영생을 만들어 가고야 만다.
'우리 죄를 사하시며'
자백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백이 자백다우면 자백으로 해결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해야 자백으로 보신다. 아프리카 선교를 다 하지 못한 자백? 북한을 복음화 하지 못한 자백? 나와 거리 먼 것을 우선 미루어 두고 내가 돈을 손해 보면 주일을 지킬 수 있다면 주일을 지키기 위해 그 정도의 돈을 손해 볼 수 있다면 그 돈을 손해 본다면 그 행위까지가 '자백'이다. 다윗이 밧세바로 지은 죄로 아이가 죽을 병이 걸렸을 때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눈물로 침상을 띄울 정도의 '통회 자복'이 전부다. 그 것이 자백이다. 발람의 자백은 나귀가 입을 열 때 돌아 서는 것이 자백이다.
우리가 우리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표면이고 우리가 하는 그 순종 그 노력 그 실행 안에서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실제 해결을 해 버린다. 이 것이 건설구원에 역사하는 절대성의 주권 역사다.
24.1.14.
기본구원의 죄는 하나님 앞에 어떤 것이든 하나 삐뚤어 지면 죄가 되고, 죄의 값은 무조건 사망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죄'이니 사죄란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지옥 형벌까지 모두 해결해야 천국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 천국 문제 해결을 '칭의'라 한다. 중생 된 사람은 자기 마음과 행동을 하나씩 배우고 고치고 자라 가는 '성화'가 평생 노력할 일인데 이 일을 두고
말씀을 어기면 '죄' > 죄를 해결하는 것은 '사죄'
말씀은 지키지만 그 속에 자기가 마음대로 말씀을 선택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니 '불의' > 말씀 속에 주님 뜻으로 살면 '칭의'
말씀 속에 주님의 뜻까지를 다 살펴 순종했다 해도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원수' > 이 해결은 주님과 하나 된 '화친'이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 말씀과 그 뜻을 따라 산다 해도 그 모든 것이 세상에 그치면 '절망' > 영생으로 이어 지면 '소망'이다.
'자백하면'
4 차원으로 죄를 돌아 보되, 만 가지 죄 전부를 백과사전 식으로 나열하고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내 신앙 양심에 가장 급한 것 중요한 것 내가 마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 하나를 지목하고 이 것을 마치 죄의 전부인 것처럼 두고 자백하고 이 죄를 회개하겠다고 나서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 나머지 죄는 알고 모르고를 떠나 우선 지목한 그 죄 하나를 고치려고 느끼고 은혜를 구하며 자백하는 순간 모두가 대기가 된다.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그 처벌이 미루어 진다. 자백은, 그냥 이런 죄를 지었다는 자수에 그치지 않고 이 죄가 어떤 문제인지 이로 인해 어떤 해가 있었는지 느껴야 자백이 된다. 추수하는 사람이 이삭을 베듯 사람의 목을 날리면서 숫자 보고하듯 하는 것은 통고지 자백이 아니다. 죄라는 것, 죄의 값이라는 것, 이로 인해 주님이 대신 죽었다는 것, 그런데 인간은 이런 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 주님의 대속의 은혜가 도우면 해결이 된다는 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을 때 '자백'이다.
'저는 미쁘시고'
믿지 못할 주님이 아니라 어떤 죄도 해결하실 주님이다. 주님의 틀림 없는 약속을 말한다.
'의로우사'
나를 고치려고 작정하신 주님이 주님의 말씀에 나를 맞추시고 주님의 뜻에 나를 고치시고 주님과 하나 되고 영생을 만들어 가고야 만다.
'우리 죄를 사하시며'
자백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백이 자백다우면 자백으로 해결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해야 자백으로 보신다. 아프리카 선교를 다 하지 못한 자백? 북한을 복음화 하지 못한 자백? 나와 거리 먼 것을 우선 미루어 두고 내가 돈을 손해 보면 주일을 지킬 수 있다면 주일을 지키기 위해 그 정도의 돈을 손해 볼 수 있다면 그 돈을 손해 본다면 그 행위까지가 '자백'이다. 다윗이 밧세바로 지은 죄로 아이가 죽을 병이 걸렸을 때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눈물로 침상을 띄울 정도의 '통회 자복'이 전부다. 그 것이 자백이다. 발람의 자백은 나귀가 입을 열 때 돌아 서는 것이 자백이다.
우리가 우리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표면이고 우리가 하는 그 순종 그 노력 그 실행 안에서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실제 해결을 해 버린다. 이 것이 건설구원에 역사하는 절대성의 주권 역사다.
2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