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주해사전 (5600개)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 성경 07사사기16:02
서기 0 6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믿는 사람은, 믿음에 강하게 붙들려 있는 그 순간 또 그렇게 함께 하지 않는 모든 환경은 알게 모르게 나에게 신앙의 원수이거나 원수를 돕는다. 신앙으로 걸어 가는 나의 좁은 길, 내가 긴장하고 있는 그 내면 외의 모든 것은 모두가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에게 연결이 되고 연락이 되며 협조가 되고 나를 삼키려 한다.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세상은 신앙의 참 용사, 신앙에는 타협이 없고 중단 없는 걸음을 향해 싸우려 드는 법이다.


'곧 그를 에워싸고'
세상이 우리의 신앙 걸음을 막고 나설 때는 겉으로는 여유를 주는 때도 있는 듯이 보이나 속으로는 시간을 따로 띄어 놓고 방심하지 않는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종류별로도 물샐틈이 없다. 세상도 교회를 그냥 두지 않고, 한 사람의 신앙도 그를 둘러싼 환경 전부가 지켜 본다. 또 방법을 다 동원한다. 마10:16에서 신앙의 사람이란 이리 가운데 보내졌다. 그들 기준으로 보면 그들이 둘러싸고 있으나, 주님은 그렇게 하라고 그런 환경을 만들고 그런 역경 가운데서 우리를 기르신다.


'밤새도록'
진리가 없는 세상을 어둡다고 한다. 말씀이 없는 상황 또는 말씀을 지키기 어려운 마25장 열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나갔으나 말씀으로 계속 지켜 내는 상황이 어려워 질 때를 밤이라고 한다. 신앙의 사람이 깨어 있을 때는 박해와 협박을 하지만 악령은 한 편으로 우리 스스로 어두워 지기를 기다린다. 우리의 심령이 어두워 지든 아니면 박해가 심해 지면서 말씀을 지켜 내기가 어려워 지는 상황을 기다리고 있다.


'성문에'
외부의 적을 막고 내부를 보호하는 구원의 성, 세상이든 신앙이든 안정을 위해 방어막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방어막에는 외부로 오가는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교회가 예배 후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면서 빛이 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법이고, 또 세상에 살다가 주님 앞으로 말씀을 배우고 은혜를 받으러 들어 오기도 해야 한다. 주일이 성 안이라면 월요일은 다시 성문을 열고 바깥 세상 현실을 맞아야 한다. 살아 가다 보면 길목이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하며, 모든 것을 지켜 주는 성 안에서 진출입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 곳을 노린다.

아무 곳이나 그냥 치겠는가? 맹수가 사냥을 할 때 닥치는 대로 물고 보지 않는다. 목덜미를 노린다. 모든 면에서 치명적이며 가장 약한 부분이다. 머리와 몸이 만나는 곳, 여기에 신경도 혈관도 모든 생존에 필요한 것이 지나 간다. 이 곳을 물면 치명적이 되면서 또한 움직일 수도 없다. 발을 물면 머리에 뿔로 들이 받을 수는 있지만 목을 물면 그냥 끝이 난다. 신앙의 세계로 말하면 신앙의 원수가 노리는 길목이 있다. 그 곳이 성문이다.


'매복하고'
원수가 성문에 버티면 문을 열지 않는다. 조심을 한다. 평안히 드나 들 수 있도록, 공격의 의도를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교회를 협조하고, 지지하고, 종교 자유를 약속해 주면서 교회를 반대할 조짐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매복해 있다는 뜻이다. 원수의 모습을 했다면 그 모습을 감추고, 속으로 원수 노릇을 한다면 겉으로 표시를 내지 않는 상황을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라고 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헌법에 적는다. 또 국가는 겉으로 신앙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도 하고 분위기도 그렇게 몰아 간다. 다만 코로나19라는 전염병 때문에 누구에게나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할 뿐이라, 이렇게 시작을 한다. 신앙 탄압의 표시를 내지 않는 것이 '종용'이다. 일반적인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 탄압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천국이 되었을까? 흔히 기독교 선진국이나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들의 경우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 것이 착각이다. 매복해 있을 뿐이다. 종용히 하고 있을 뿐이다. 교회가 말씀의 빛을 더 잃어 가고 성도가 마음 속에 말씀에 대한 사모와 기억과 의지를 더욱 흐려 가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밤은 밤이지만 그래도 어두워 지는 초저녁과 아주 어두워져 깜깜하게 된 밤중이 좀 다르다. 그리고 새벽은 곧 날이 새기 때문에 원수가 우리를 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한 편으로는 진리를 사수하고자 하는 성도에게는 밤새도록 긴장했고 조심했고 이제는 한계에 다달을 때다. 느슨해 지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들 때다. 당연히 원수가 공격하기에는 좋은 때다. 모두가 새벽이 가장 취약할 때라고 알면서도 당하는 때다.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구약은 육체를 죽여야 죽는 것이고 적은 이기는 것이다. 신약은 육체를 그냥 두고 죄만 짓게 해서 현실마다 계속해서 죄를 지어야 원수의 성과가 더 많아 진다. 사울이 오래 살아 있는 것이 죄를 더 많이 짓겠는가, 일찍 죽은 것이 죄를 많이 지었겠는가? 그래서 신약에서는 육체의 생명을 뺏을 수 있다 해도 두고두고 죄를 짓게 하려면 신앙을 죽이는 것이다. 신앙만 죽여 놓으면 알아서 죄를 짓게 다니게 된다.


2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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