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요약 *
■ 성경 | 18욥기01: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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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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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10:07
(욥기 전체의 욥의 첫 생활)
욥의 십 남매가 몰살을 당하고 재산도 전멸을 당한 것 때문에 욥의 인내를 말하면서 견디라고 말은 해도 실제 욥의 신앙을 원하는 사람은 잘 없다. 욥은 가정에 희로애락의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번제를 드렸다. 번제는 4번째 제사이고 번제를 드리려면 하나님 앞에 속죄제 속건제 이 화목제를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자녀의 수대로 낱낱이 번제를 드렸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했으니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다. 욥의 십 남매 모두가 깨끗한 순교자다. 욥의 재물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전부 하늘에 쌓였다. 욥이 평생 소원한 것이 다 이루어졌다.
욥이 일생 하나님 앞에 조심해서 살고 자기 주장의 악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 위주로 깨끗한 그 행사를 후대하신 것을 욥도 깨닫지를 못했다.
그래서 불만 불평을 품었다가 마지막에는 회개를 했다. 잘못 된 것은 속죄제 속건제로 해결했고, 그리고 화목제로 하나가 된 다음에는 남은 것을 번제로 다 드렸다. 잘못 된 것은 세 가지 제사로 해결하고 나서 깨끗해진 것을 번제로 하나님에게 다 바쳐서 받으시게 했다.
구약에는 번제를 드렸으나, 이 것이 실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받는 것이다. 사람의 눈과 지식에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나 실은 하나님 앞에 받는 것이다. 욥의 자녀는 모두가 순교로, 그 재물은 헌물이 됐다. 그리고 이 것이 성경에 기록됨으로 천추만대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게 했으니 복음을 위한 제물이 되었다. 욥의 인내를 말은 해도 실제 그렇게 될까 모두가 두려워한다. 깨끗하게 살다간 백영희 손양원 등의 가정 안에 찢어지고 망가진 자녀가 바로 욥의 자녀처럼 된 경우다. 십자가 우편에서 죽은 강도가 순교였다.
(욥기 전체의 욥의 둘째 시험)
욥이 3장에서부터 원망과 불만과 낙심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세 친구는 욥을 훈계하고 옳은 말로 회개를 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32장에서 엘리후가 37장까지 보충을 하고 38장에서 41장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다음 42:7에서 욥의 말은 정당하고 3 친구의 말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엘리후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이 없었으니 기록한 대로 읽으면 된다.
* 세 친구의 문제
우선 3 친구의 말은 전부가 옳고 바르게 표시가 되어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지만 환란 당한 형제의 내면에서 진행 되는 하나님과 관계를 모르고 겉만 보고 이야기했다.
* 욥의 문제
욥의 원래 신앙은 옳았다. 욥이 3장에서 31장까지 말하면서 억울하다는 것과 자기가 옳게 살았다는 것은 욥의 1차 신앙을 기준으로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1차 신앙에 두지 않고 2차 신앙으로 올려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욥이 알지 못한 것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은 욥을 지금 치료하고 수술하고 가르치고 계신다. 욥은 자기가 옳은 줄 알았으나 하나님이 1차에 이어 2차 수술을 하게 되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욥의 말은 모두가 원망이며 불만이다. 그 것은 잘못 된 것이나 이전에는 이 것을 모두 자기 인격 속에 묻어 두고 자기는 옳은 줄만 알았다. 배를 째고 속을 들여다 보니 오물이 있고 썩은 부분이 있다. 이 것을 도려 내고 끊어 내고 세척을 하는 과정에 비명이 나오고 몸을 비틀고 있다. 없던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이다. 1차 시험까지는 잘 통과를 했으나 2차 수술이 진행 되면서 없던 것이 나온 것이 아니라 1차 수술에서도 드러 나지 않던 더 깊은 곳에 있던 것이 드디어 드러나는 순간이다. 평소에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었고, 1차 시험도 바로 되었다. 그리고 2차 시험을 통해 고쳐 지고 있는 과정이었다. 2차 수술 전에 모든 것이 옳았기 때문에 2차 수술의 과정은 더욱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 욥의 전체를 하나로 두고 보면 '자라는 과정'이며 이는 '정당'한 순서며 그 과정에 베어 버리고 잘라 내 버리고 깨어 지는 소리들이었으니 전부가 회개를 향한 필연이었다.
* 엘리후의 경우
하나님의 인도를 찾으라는 것이고
* 38장부터
하나님은 '목적'을 두시고 '예정'하시며 그 예정에 따라 천지를 창조하며 만사를 운영해 온 태초부터 만사를 표시한다. 넓은 세계, 광대한 세계, 인간이 당장만 가지고 따지는 좁은 눈으로는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없다.
* 욥기의 결론
욥의 10 남매, 열 자녀라는 욥의 1차 시험 이전까지의 신앙의 열매와 결과와 파생은 모두 깨끗이 통과했고 전 재산은 욥의 소유물이니 가진 전부도 성공했다. 그런데 욥의 속에 들어 있는, 욥의 앞 날에 다시 돋아 날 욥의 더 높은 차원의 생애와 위치와 사명에는 미흡한 부분들을 하나님은 미리 고치고 계셨다. 1차 시험 이전이 바르게 되었고 기초가 옳기 때문에 2차는 정당한 것이다.
3 친구는 이런 전체 흐름은 보지 못하고 욥의 입에서 나오는 비명만을 야단 치고 있었다. 하나님이 욥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그 과정을 따라 가며 순종으로 고쳐 가는 구원의 내면을 알지 못하였으니 수송아지 7과 수양 7을 가지고 번제를 드리게 했다. 욥이 나아갈 복음의 사명과 순종의 온전한 세계를 보여 주셨다.
욥기를 읽을 때 3장부터 31장까지 이어 지는 욥의 말에서는 1차 시험으로 전부가 아니라 욥이라는 자기 자신을 드려야 하는 과정에 욥이 넘어 가야 할 세계를 보면 모두 잘 연결이 된다. 또 3친구의 말에서는 욥이 1차를 넘고 2차 시험 중인데 그런 욥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그 인도 때문에 겪는 욥에 대하여 체휼은 없는 것이 잘못이며 3친구의 말을 통해 이론만 가진 우리의 신앙을 돌아 봐야 한다. 3 친구의 표현은, 다른 사람이 환란을 겪을 때 우리가 옆에서 지켜 보면서 환란 겪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되지 않게 하고 그 말을 자기에게 하면 되는 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을 때 이 말씀으로 주변에 말을 하면 율법이 되어 사람을 정죄만 하게 된다. 그 말씀을 가지고 내가 그렇게 했는지 나를 살펴 보면 구원이 된다. 욥의 모든 말을 가지고는 우리가 각자 자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에 만족하고 끝을 내지 않고 다시 더 나아 가도록 이끌어 가시는 인도를 보면서 전향적으로 읽으면 된다. 나의 오늘 환란을 나의 지난 날에 복 된 순종에게 갖다 붙이면 책망 받을 말이 되고, 오늘의 환란은 나의 지난 날에서 다시 더 나아 가기 위해 현재 내 속을 고칠 말씀이다.
24.3.21.
욥의 십 남매가 몰살을 당하고 재산도 전멸을 당한 것 때문에 욥의 인내를 말하면서 견디라고 말은 해도 실제 욥의 신앙을 원하는 사람은 잘 없다. 욥은 가정에 희로애락의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번제를 드렸다. 번제는 4번째 제사이고 번제를 드리려면 하나님 앞에 속죄제 속건제 이 화목제를 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자녀의 수대로 낱낱이 번제를 드렸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했으니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다. 욥의 십 남매 모두가 깨끗한 순교자다. 욥의 재물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전부 하늘에 쌓였다. 욥이 평생 소원한 것이 다 이루어졌다.
욥이 일생 하나님 앞에 조심해서 살고 자기 주장의 악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 위주로 깨끗한 그 행사를 후대하신 것을 욥도 깨닫지를 못했다.
그래서 불만 불평을 품었다가 마지막에는 회개를 했다. 잘못 된 것은 속죄제 속건제로 해결했고, 그리고 화목제로 하나가 된 다음에는 남은 것을 번제로 다 드렸다. 잘못 된 것은 세 가지 제사로 해결하고 나서 깨끗해진 것을 번제로 하나님에게 다 바쳐서 받으시게 했다.
구약에는 번제를 드렸으나, 이 것이 실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받는 것이다. 사람의 눈과 지식에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나 실은 하나님 앞에 받는 것이다. 욥의 자녀는 모두가 순교로, 그 재물은 헌물이 됐다. 그리고 이 것이 성경에 기록됨으로 천추만대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게 했으니 복음을 위한 제물이 되었다. 욥의 인내를 말은 해도 실제 그렇게 될까 모두가 두려워한다. 깨끗하게 살다간 백영희 손양원 등의 가정 안에 찢어지고 망가진 자녀가 바로 욥의 자녀처럼 된 경우다. 십자가 우편에서 죽은 강도가 순교였다.
(욥기 전체의 욥의 둘째 시험)
욥이 3장에서부터 원망과 불만과 낙심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세 친구는 욥을 훈계하고 옳은 말로 회개를 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32장에서 엘리후가 37장까지 보충을 하고 38장에서 41장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다음 42:7에서 욥의 말은 정당하고 3 친구의 말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엘리후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이 없었으니 기록한 대로 읽으면 된다.
* 세 친구의 문제
우선 3 친구의 말은 전부가 옳고 바르게 표시가 되어 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지만 환란 당한 형제의 내면에서 진행 되는 하나님과 관계를 모르고 겉만 보고 이야기했다.
* 욥의 문제
욥의 원래 신앙은 옳았다. 욥이 3장에서 31장까지 말하면서 억울하다는 것과 자기가 옳게 살았다는 것은 욥의 1차 신앙을 기준으로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을 1차 신앙에 두지 않고 2차 신앙으로 올려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욥이 알지 못한 것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은 욥을 지금 치료하고 수술하고 가르치고 계신다. 욥은 자기가 옳은 줄 알았으나 하나님이 1차에 이어 2차 수술을 하게 되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욥의 말은 모두가 원망이며 불만이다. 그 것은 잘못 된 것이나 이전에는 이 것을 모두 자기 인격 속에 묻어 두고 자기는 옳은 줄만 알았다. 배를 째고 속을 들여다 보니 오물이 있고 썩은 부분이 있다. 이 것을 도려 내고 끊어 내고 세척을 하는 과정에 비명이 나오고 몸을 비틀고 있다. 없던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이다. 1차 시험까지는 잘 통과를 했으나 2차 수술이 진행 되면서 없던 것이 나온 것이 아니라 1차 수술에서도 드러 나지 않던 더 깊은 곳에 있던 것이 드디어 드러나는 순간이다. 평소에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었고, 1차 시험도 바로 되었다. 그리고 2차 시험을 통해 고쳐 지고 있는 과정이었다. 2차 수술 전에 모든 것이 옳았기 때문에 2차 수술의 과정은 더욱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 욥의 전체를 하나로 두고 보면 '자라는 과정'이며 이는 '정당'한 순서며 그 과정에 베어 버리고 잘라 내 버리고 깨어 지는 소리들이었으니 전부가 회개를 향한 필연이었다.
* 엘리후의 경우
하나님의 인도를 찾으라는 것이고
* 38장부터
하나님은 '목적'을 두시고 '예정'하시며 그 예정에 따라 천지를 창조하며 만사를 운영해 온 태초부터 만사를 표시한다. 넓은 세계, 광대한 세계, 인간이 당장만 가지고 따지는 좁은 눈으로는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없다.
* 욥기의 결론
욥의 10 남매, 열 자녀라는 욥의 1차 시험 이전까지의 신앙의 열매와 결과와 파생은 모두 깨끗이 통과했고 전 재산은 욥의 소유물이니 가진 전부도 성공했다. 그런데 욥의 속에 들어 있는, 욥의 앞 날에 다시 돋아 날 욥의 더 높은 차원의 생애와 위치와 사명에는 미흡한 부분들을 하나님은 미리 고치고 계셨다. 1차 시험 이전이 바르게 되었고 기초가 옳기 때문에 2차는 정당한 것이다.
3 친구는 이런 전체 흐름은 보지 못하고 욥의 입에서 나오는 비명만을 야단 치고 있었다. 하나님이 욥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그 과정을 따라 가며 순종으로 고쳐 가는 구원의 내면을 알지 못하였으니 수송아지 7과 수양 7을 가지고 번제를 드리게 했다. 욥이 나아갈 복음의 사명과 순종의 온전한 세계를 보여 주셨다.
욥기를 읽을 때 3장부터 31장까지 이어 지는 욥의 말에서는 1차 시험으로 전부가 아니라 욥이라는 자기 자신을 드려야 하는 과정에 욥이 넘어 가야 할 세계를 보면 모두 잘 연결이 된다. 또 3친구의 말에서는 욥이 1차를 넘고 2차 시험 중인데 그런 욥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그 인도 때문에 겪는 욥에 대하여 체휼은 없는 것이 잘못이며 3친구의 말을 통해 이론만 가진 우리의 신앙을 돌아 봐야 한다. 3 친구의 표현은, 다른 사람이 환란을 겪을 때 우리가 옆에서 지켜 보면서 환란 겪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되지 않게 하고 그 말을 자기에게 하면 되는 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을 때 이 말씀으로 주변에 말을 하면 율법이 되어 사람을 정죄만 하게 된다. 그 말씀을 가지고 내가 그렇게 했는지 나를 살펴 보면 구원이 된다. 욥의 모든 말을 가지고는 우리가 각자 자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에 만족하고 끝을 내지 않고 다시 더 나아 가도록 이끌어 가시는 인도를 보면서 전향적으로 읽으면 된다. 나의 오늘 환란을 나의 지난 날에 복 된 순종에게 갖다 붙이면 책망 받을 말이 되고, 오늘의 환란은 나의 지난 날에서 다시 더 나아 가기 위해 현재 내 속을 고칠 말씀이다.
24.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