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 성경 | 65유다서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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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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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4 14:58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다시 한 번 새겨 보거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낼 때 자기 지위, 자기 처소를 떠나 타락한 천사가 되고, 또 소돔 고모라 꼴이 되도록 안 믿는 사람을 구원할 때 그 목적이었던가, 그 속에 있는 걸 끄집어냈을 때는 두 번 다시 애굽을 돌아보지 말고 이제는 빛의 세계에 살도록 어떤 손해 어떤 위험이 있어도 걸어가야지 그 사람 되라고 끄집어 냈더만은 다시 불속에 들어가 버렸더라, 이게 5절에서 7절까지의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231128 화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모르는 것이 없다 할 때 범사라고 그럽니다. 모든 걸 다 알면서 모든 걸 뻔히 알면서, 처음 믿는 사람도 알고 오래 믿은 사람도 알고 잘 믿는 사람도 알고 믿는 사람들은 알 만한 걸 다 알면서. 넓게 말하면 불신자한테도 해당이 됩니다. 몰라서 그랬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뻔히 알면서 그러고 세상을 사셔야 바보 되지 않습니다.
(231129 수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애굽의 종 되었던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내셨고, 광야 40년 동안에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아니하고 불순종한 자들은 전부 광야에 다 멸망을 시켜버렸다. 출애굽기 12장 이하에 보면 전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서까지 늘 반복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고 오늘도 믿고 나서 안 믿을 때가 세상에 종 된 우리입니다. 믿는 순간 세상에 종 되면 안 됩니다. 근데 지금도 다 세상에 종 돼 있지 않나요? 이건 신앙이 꼭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정에 이것이 저것에 붙들려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게 애굽의 바로 왕 밑에 생활입니다. 그러지 말라고 구원 해놨더니만, 광야 40년에도 맨날 하는 일이 애굽에서 바로 왕 밑에 노예 생활하듯이, 광야 40년 풀어줬는데도 알아서 또 그 일을 반복한 겁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 노예 할 때와 광야 40년에 말씀 순종하지 않을 때와 같은 겁니다.
(231129 수밤)
'너희가 본래의 범사를 알았으나'
5절 알고 보면 다 아는 일입니다. 어려서 모른다고 말은 그리 하지만은 어려서 모르다니요? 제 좋은 것 제 할 거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압니다. 이 생명의 본능이 그렇습니다. 하나 두 개가 아니라 다 알 거 다 알지 않느냐, 처음부터. “본래 범사를 앓았으나” 불신자도 밤하늘에 별들을 보면 이건 뭐 우연이 아니겠고, 뭔가 있겠구나,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꼬물꼬물 개미들이고 말 못할 세계가 있겠구나, 이 정도까지는 알게 만들어 놨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인간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이 영원불변은 아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아무리 잘 나가 봐야 마지막에는 후회한다. 죽은 다음은 뭘까? 배고픈 때도 무식한 때도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게 다 있었습니다.
(231129 수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다 압니다. 태어난 아이가 본능적으로 모르는 것은 알 필요가 없어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겁니다. 태어난 아이가 알파벳을 압니까? 뭐 편지를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지. 태어난 아이는 그런 거 알 필요 없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잘 자고 잘 먹고 뭐 그냥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 외에는 알 것이 없습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양심을 기울여 딱 생각해 보면' 모르는 것은 없는 겁니다. 아무리 양심을 기울여 봐도 정말 모르겠으면 몰라도 되니 안심하라는 뜻입니다. 괜히 더 알고 싶은 마음 이 호기심이 들어가지고 인간을 헛된 꿈을 꾸고 엉뚱한 짓만 하게 되는 겁니다.
(231206 수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눈 감고 조금 생각해 보면 우리 가정은 경제가 왜 이런지, 내 인생은 왜 저런지, 나는 왜 이런 약점이 있는지, 나는 왜 이런 장점이 있는지. 뭐든지 조금 생각해보면 뻔히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답안지를 늘 펼쳐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펼쳐 눈에 보여주시는 것을 두 글자로 다 같이 뭐라고 그러지요? '계시'라 그럽니다. 믿는 사람은 계시를 잘 읽고 잘 받아야 정상이지, 아무도 계시를 못 보는데 나는 계시를 봤다고 자랑을 하면 그 정상이 아닙니다.
(231215 금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반복'입니다. 성경을 차분히 유심히 읽었다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반복, 반복, 반복이 얼마나 많은지 반복되는 내용을 확 줄여버리면 성경 아주 간단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읽는 인간이 그렇게 강퍅하다는 말입니다. 교과서를 좀 살펴봐서 아시는지요? 교과서는 한 번 배운 것은 두 번 반복 안 하고 그대로 지나갑니다. 참고서는 반복이 나오는데, 교과서는 수학의 예시 문제 몇 개만 적어도 그거 하나하나가 전부 이유가 있어 발전하는 과정이지 모든 교과서는 똑같은 소리 두 번 반복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반복'이 많습니다. 몰라서 적은 것이 아니라 아는데 '강퍅하여 한 번 더 말씀'하시는 겁니다.
(231129 수새)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네 마음속에 있고 지식 속에 있는 것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이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인간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 한 인간도 없습니다. 한 명 지도자 모세는 날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들 애굽에서 다 나왔는데 홍해까지 건너왔는데 맨 날 하는 짓이 이 짓이니 이거 뭐 하려고 이러고 계시느냐고, 한 명 모세는 데려가 달라고 한도 없이 기도했고, 나머지는 매일 하는 짓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애굽에 있는 애굽에 사는 사람들 일을 했습니다.
(231129 수새)
다시 한 번 새겨 보거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낼 때 자기 지위, 자기 처소를 떠나 타락한 천사가 되고, 또 소돔 고모라 꼴이 되도록 안 믿는 사람을 구원할 때 그 목적이었던가, 그 속에 있는 걸 끄집어냈을 때는 두 번 다시 애굽을 돌아보지 말고 이제는 빛의 세계에 살도록 어떤 손해 어떤 위험이 있어도 걸어가야지 그 사람 되라고 끄집어 냈더만은 다시 불속에 들어가 버렸더라, 이게 5절에서 7절까지의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231128 화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모르는 것이 없다 할 때 범사라고 그럽니다. 모든 걸 다 알면서 모든 걸 뻔히 알면서, 처음 믿는 사람도 알고 오래 믿은 사람도 알고 잘 믿는 사람도 알고 믿는 사람들은 알 만한 걸 다 알면서. 넓게 말하면 불신자한테도 해당이 됩니다. 몰라서 그랬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뻔히 알면서 그러고 세상을 사셔야 바보 되지 않습니다.
(231129 수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애굽의 종 되었던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내셨고, 광야 40년 동안에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아니하고 불순종한 자들은 전부 광야에 다 멸망을 시켜버렸다. 출애굽기 12장 이하에 보면 전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서까지 늘 반복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고 오늘도 믿고 나서 안 믿을 때가 세상에 종 된 우리입니다. 믿는 순간 세상에 종 되면 안 됩니다. 근데 지금도 다 세상에 종 돼 있지 않나요? 이건 신앙이 꼭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정에 이것이 저것에 붙들려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게 애굽의 바로 왕 밑에 생활입니다. 그러지 말라고 구원 해놨더니만, 광야 40년에도 맨날 하는 일이 애굽에서 바로 왕 밑에 노예 생활하듯이, 광야 40년 풀어줬는데도 알아서 또 그 일을 반복한 겁니다. 애굽에서 바로 왕 노예 할 때와 광야 40년에 말씀 순종하지 않을 때와 같은 겁니다.
(231129 수밤)
'너희가 본래의 범사를 알았으나'
5절 알고 보면 다 아는 일입니다. 어려서 모른다고 말은 그리 하지만은 어려서 모르다니요? 제 좋은 것 제 할 거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압니다. 이 생명의 본능이 그렇습니다. 하나 두 개가 아니라 다 알 거 다 알지 않느냐, 처음부터. “본래 범사를 앓았으나” 불신자도 밤하늘에 별들을 보면 이건 뭐 우연이 아니겠고, 뭔가 있겠구나,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꼬물꼬물 개미들이고 말 못할 세계가 있겠구나, 이 정도까지는 알게 만들어 놨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인간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이 영원불변은 아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아무리 잘 나가 봐야 마지막에는 후회한다. 죽은 다음은 뭘까? 배고픈 때도 무식한 때도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게 다 있었습니다.
(231129 수새)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다 압니다. 태어난 아이가 본능적으로 모르는 것은 알 필요가 없어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겁니다. 태어난 아이가 알파벳을 압니까? 뭐 편지를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지. 태어난 아이는 그런 거 알 필요 없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잘 자고 잘 먹고 뭐 그냥 그러면 되는 겁니다. 그 외에는 알 것이 없습니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양심을 기울여 딱 생각해 보면' 모르는 것은 없는 겁니다. 아무리 양심을 기울여 봐도 정말 모르겠으면 몰라도 되니 안심하라는 뜻입니다. 괜히 더 알고 싶은 마음 이 호기심이 들어가지고 인간을 헛된 꿈을 꾸고 엉뚱한 짓만 하게 되는 겁니다.
(231206 수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눈 감고 조금 생각해 보면 우리 가정은 경제가 왜 이런지, 내 인생은 왜 저런지, 나는 왜 이런 약점이 있는지, 나는 왜 이런 장점이 있는지. 뭐든지 조금 생각해보면 뻔히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답안지를 늘 펼쳐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펼쳐 눈에 보여주시는 것을 두 글자로 다 같이 뭐라고 그러지요? '계시'라 그럽니다. 믿는 사람은 계시를 잘 읽고 잘 받아야 정상이지, 아무도 계시를 못 보는데 나는 계시를 봤다고 자랑을 하면 그 정상이 아닙니다.
(231215 금밤)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반복'입니다. 성경을 차분히 유심히 읽었다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반복, 반복, 반복이 얼마나 많은지 반복되는 내용을 확 줄여버리면 성경 아주 간단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읽는 인간이 그렇게 강퍅하다는 말입니다. 교과서를 좀 살펴봐서 아시는지요? 교과서는 한 번 배운 것은 두 번 반복 안 하고 그대로 지나갑니다. 참고서는 반복이 나오는데, 교과서는 수학의 예시 문제 몇 개만 적어도 그거 하나하나가 전부 이유가 있어 발전하는 과정이지 모든 교과서는 똑같은 소리 두 번 반복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반복'이 많습니다. 몰라서 적은 것이 아니라 아는데 '강퍅하여 한 번 더 말씀'하시는 겁니다.
(231129 수새)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네 마음속에 있고 지식 속에 있는 것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이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인간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안 한 인간도 없습니다. 한 명 지도자 모세는 날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들 애굽에서 다 나왔는데 홍해까지 건너왔는데 맨 날 하는 짓이 이 짓이니 이거 뭐 하려고 이러고 계시느냐고, 한 명 모세는 데려가 달라고 한도 없이 기도했고, 나머지는 매일 하는 짓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애굽에 있는 애굽에 사는 사람들 일을 했습니다.
(231129 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