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 성경 | 65유다서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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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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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13:16
'사랑하는 자들아'
신앙을 위해 내 것을 줄 때 사랑이라 그럽니다. 정말로 신앙을 위해 받으면 받는 것도 사랑이라 그럽니다. 두고 갈 세상 사랑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기본적으로 신앙의 이야기입니다.
(231215 금밤)
'사랑하는 자들아'
있는 힘 다하여 또 있는 것을 다 기울여 신앙에 유익된 것 하늘의 것을 줄 때만 사랑이라 그럽니다. 죽을 때 세상에 두고 가야 되는 것, 그걸 주고받은 사랑은 이 땅 위에 불신자의 것입니다. 하늘에 가져갈 것, 하나님에 속한 것으로만 줘야 되고 받아야 되는 사이
(231215 금새)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믿음 위에, 하나님은 앞에서 인도하시고 너희는 그 뒤를 따라가는 이것만 믿음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그리고 주님에게 따라가는, 이걸 믿음이라 그럽니다.
(231215 금새)
'믿는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받았으니'
내가 이걸 믿는다. 저걸 믿는다. 그런 믿음 말고 주님이 피 흘려 구원함으로 내 속에 밀어 넣어준 믿음, 내 노력으로 내 마음으로 내가 가진 믿음 말고, 내가 만든 믿음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믿어야 되겠다. 내가 움직인 그 믿음 말고 믿고 싶지 않았는데 믿지 않으려 했는데 버텨도 하나님이 밀어 넣어줘 버린 믿음 이런 게 우리 속에 있습니다.
(231215 금밤)
'지극히 거룩한 믿음'
내가 생각도 안 했는데 노력도 안 했는데 내 마음속에 믿어져버린 것, 믿어져버린 것은 여기에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 그럽니다. 이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위해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 죽고 부활하여 내게 날 위해서 만들어준 대속, 이걸 성령이 붙들고 때가 되면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어버립니다. 마음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영을 이걸로 살려버립니다. 그러면 사활의 대속을 성령이 붙들고 살리면 우리 영이 살아나고 살아난 영을 중생된 영이라 그러는데 중생된 영 안에는, 예수님이 우리 죄 문제 다 해결하시고 우리의 영원한 과제 전부를 다 해결하신 자본, 근본, 자격, 원한 모든 것을 우리 영 안에 전부 집어넣어버립니다. 내 마음은 나쁜 사람이라도 내 마음속에 영은 중생되는 순간 이건 그냥 하나님이 내 영속에 채워버렸습니다. 이건 하나밖에 없고 이건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231215 금밤)
'거룩한 믿음'
국가에 대한 믿음 빼고, 부모, 형제를 의지하는 거 빼고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세상 소망 제거하고 모든 거 제거하고 “거룩한 믿음”이라 하나밖에 없는 믿음 참 믿음 여기도 거룩이 있고, 저기도 거룩이 있고, 거룩도 여러 가지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비교하고 따지다 보면 하나님이 한 분이고 하나님이 내신 길이 한 길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진리로 맞춰보면 성전이 하나라 거룩한 성전이고, 제사가 하나라 거룩한 제사고, 신약의 신앙도 주님의 대속 하나만 거룩한 믿음이고, 전부 하나로 구별되는 걸 거룩이라 그럽니다. 하나밖에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이게 진짜인가 저게 진짜인가? 하나밖에 없는 참을 찾아나가는 길이 거룩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이게 거룩합니다.
(231215 금새)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둘이 없는 하나밖에 없는,'믿음 위'에
주님은 앞서 가시고 우리는 뒤따라가고, 주님은 말씀으로 인도하고,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가는 여기에 건축만 건축입니다.
자기를 건축하며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그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주님만 바라보다가 나아진 자기 그 나아진 자기입니다. 주님만 의지하다가 좋아진 자기, 그것만 건설된 건축된 자기입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다 '거룩한 믿음'이 다 있습니다. 그 믿음 위에 자기 건축.
초중고 대학의 학문 건축도 필요하고 수학의 초중고 성적도 필요하고 이것도 저것도 건축할 것이 참 많은데, '믿음 위에 자기 건설'
믿음 위에 자기 건설. 신앙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들어올 때 이거 따라 한 번 두 번 한 번 두 번 따라하다 보면, 이게 기초 위에 벽돌 하나 둘 쌓다가 집이 되는 것처럼 이렇게 건축이 되어 집니다. 자기를 건축하라.
(231215 금밤)
'성령으로 기도하라'
내가 기도하는 것은 미신의 주문과 같습니다. 이래 주시고 저래 주시고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내 마음이 이러니까 이걸 고쳐주셔야 되고, 내가 주문하면 하나님이 뒤따라오면서 다 해줄게 다 해줄게. 이런 신앙을 '미신'이라 그럽니다. 이 미신이 시대 시대를 내려가며 이 지역 저 지역을 다 휩쓸어버리면 '종교'라고 그럽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내게 뭘 원할까 이걸 연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원하실까. 이걸 찾는 것이 기도의 1번입니다.
깨닫고 나면 깨닫고 보니 이래야 되겠구나. 이게 '각오 기도'입니다. 근데 하려고 하니까 힘이 없으면 깨닫게 해 주셨는데 이걸 각오를 해야 되겠는데 힘이 없나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나이다. 이럴 때는 주여 도와주옵소서. 이걸 '간구 기도'라고 그럽니다.
(231215 금밤)
'성령으로 기도하며'
나의 기도는 중 염불 미신 믿는 사람 '주문'하고 같은 겁니다. 왜 이런 현실을 주셨을까. 이런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내 욕심이 아니라 내 목표가 아니라 내 의지가 아니라, '나의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왜 주님이 이런 현실을 주셨을까.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배운 말씀'으로 가지고 검토를 하고 연구를 하다 보면, '말씀 속에 성령'이 그렇지 바로 이게 문제지 저게 문제지 이렇게 알려주는데 말씀 가지고 깨달아질 때, 말씀 가지고 깨닫는데 그때 감화 감동이 딱 올 때 이때가 바로 '성령기도'가 되어지는 겁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먼저 깨달아보고 그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깨달을까 알게 돼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몰라도 되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는 겁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알려고 하니 뻔히 아는 거 이것만 붙들면 나중에 다 의인 되고 다 성자됩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그리고 배운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살펴보면 알아진다. 그 알아지는 게 '성령의 감동'입니다. 성령이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게 '성령기도'
이게 맞기는 맞으니 이제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해야 되는데 내가 게을러 하기 싫어합니다. 하기 싫어하면 이게 원수입니다. 해야지 성령이 인도하시니 따라야지 성령이 인도하시니 따라야지. 근데 내가 이렇게 강퍅해서 내가 이렇게 게을러서 알긴 아는데 실행을 못하겠구나. 이때 주여 게을러 그렇고 강퍅해 그렇고 하기는 해야 되는데 알면서도 못하니 도와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이럴 때에 그러면 네가 조금이라도 하면 내가 도와주마. 네가 이만큼 하면 내가 이만큼 도와주마. 그러면서 성령이 우리 마음을 달래가며 대화하며 유기적으로 대화적으로 감화 감동적으로 점점 점 점 나아지는 겁니다.
'성령이라 말은 감화와 감동의 하나님으로 기도'하라.
(231215 금밤)
'성령으로 기도'
기도를 하면 눈 감고 나 이거 좋습니다. 나 이거 해야 됩니다, 이러시고 저러시고, 전부 하나님을 가르치려 듭니다. 주님은 뭘 원하실까?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 인간의 마음이 너무 수준이 낮아 하늘의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데 깨닫게 해 주옵소서, 열어주옵소서, 깨닫게 해 주옵소서, 좀 차분하게 주님이 뭘 원하는가, 들어봐야 뭘 알 건데 '성령은 우리 양심에 대고 말씀'하십니다. 양심에 대고 양심이라는 것은 욕심을 붙들어 매놓아야 움직입니다. 감정을 주저 앉혀야 비로소 이제 양심이라는 것이 살아납니다.
(231215 금새)
신앙을 위해 내 것을 줄 때 사랑이라 그럽니다. 정말로 신앙을 위해 받으면 받는 것도 사랑이라 그럽니다. 두고 갈 세상 사랑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기본적으로 신앙의 이야기입니다.
(231215 금밤)
'사랑하는 자들아'
있는 힘 다하여 또 있는 것을 다 기울여 신앙에 유익된 것 하늘의 것을 줄 때만 사랑이라 그럽니다. 죽을 때 세상에 두고 가야 되는 것, 그걸 주고받은 사랑은 이 땅 위에 불신자의 것입니다. 하늘에 가져갈 것, 하나님에 속한 것으로만 줘야 되고 받아야 되는 사이
(231215 금새)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믿음 위에, 하나님은 앞에서 인도하시고 너희는 그 뒤를 따라가는 이것만 믿음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그리고 주님에게 따라가는, 이걸 믿음이라 그럽니다.
(231215 금새)
'믿는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받았으니'
내가 이걸 믿는다. 저걸 믿는다. 그런 믿음 말고 주님이 피 흘려 구원함으로 내 속에 밀어 넣어준 믿음, 내 노력으로 내 마음으로 내가 가진 믿음 말고, 내가 만든 믿음 내가 생각하고 내가 믿어야 되겠다. 내가 움직인 그 믿음 말고 믿고 싶지 않았는데 믿지 않으려 했는데 버텨도 하나님이 밀어 넣어줘 버린 믿음 이런 게 우리 속에 있습니다.
(231215 금밤)
'지극히 거룩한 믿음'
내가 생각도 안 했는데 노력도 안 했는데 내 마음속에 믿어져버린 것, 믿어져버린 것은 여기에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 그럽니다. 이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위해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 죽고 부활하여 내게 날 위해서 만들어준 대속, 이걸 성령이 붙들고 때가 되면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어버립니다. 마음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영을 이걸로 살려버립니다. 그러면 사활의 대속을 성령이 붙들고 살리면 우리 영이 살아나고 살아난 영을 중생된 영이라 그러는데 중생된 영 안에는, 예수님이 우리 죄 문제 다 해결하시고 우리의 영원한 과제 전부를 다 해결하신 자본, 근본, 자격, 원한 모든 것을 우리 영 안에 전부 집어넣어버립니다. 내 마음은 나쁜 사람이라도 내 마음속에 영은 중생되는 순간 이건 그냥 하나님이 내 영속에 채워버렸습니다. 이건 하나밖에 없고 이건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231215 금밤)
'거룩한 믿음'
국가에 대한 믿음 빼고, 부모, 형제를 의지하는 거 빼고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세상 소망 제거하고 모든 거 제거하고 “거룩한 믿음”이라 하나밖에 없는 믿음 참 믿음 여기도 거룩이 있고, 저기도 거룩이 있고, 거룩도 여러 가지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비교하고 따지다 보면 하나님이 한 분이고 하나님이 내신 길이 한 길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진리로 맞춰보면 성전이 하나라 거룩한 성전이고, 제사가 하나라 거룩한 제사고, 신약의 신앙도 주님의 대속 하나만 거룩한 믿음이고, 전부 하나로 구별되는 걸 거룩이라 그럽니다. 하나밖에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이게 진짜인가 저게 진짜인가? 하나밖에 없는 참을 찾아나가는 길이 거룩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이게 거룩합니다.
(231215 금새)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둘이 없는 하나밖에 없는,'믿음 위'에
주님은 앞서 가시고 우리는 뒤따라가고, 주님은 말씀으로 인도하고,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가는 여기에 건축만 건축입니다.
자기를 건축하며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그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 주님만 바라보다가 나아진 자기 그 나아진 자기입니다. 주님만 의지하다가 좋아진 자기, 그것만 건설된 건축된 자기입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다 '거룩한 믿음'이 다 있습니다. 그 믿음 위에 자기 건축.
초중고 대학의 학문 건축도 필요하고 수학의 초중고 성적도 필요하고 이것도 저것도 건축할 것이 참 많은데, '믿음 위에 자기 건설'
믿음 위에 자기 건설. 신앙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들어올 때 이거 따라 한 번 두 번 한 번 두 번 따라하다 보면, 이게 기초 위에 벽돌 하나 둘 쌓다가 집이 되는 것처럼 이렇게 건축이 되어 집니다. 자기를 건축하라.
(231215 금밤)
'성령으로 기도하라'
내가 기도하는 것은 미신의 주문과 같습니다. 이래 주시고 저래 주시고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내 마음이 이러니까 이걸 고쳐주셔야 되고, 내가 주문하면 하나님이 뒤따라오면서 다 해줄게 다 해줄게. 이런 신앙을 '미신'이라 그럽니다. 이 미신이 시대 시대를 내려가며 이 지역 저 지역을 다 휩쓸어버리면 '종교'라고 그럽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내게 뭘 원할까 이걸 연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원하실까. 이걸 찾는 것이 기도의 1번입니다.
깨닫고 나면 깨닫고 보니 이래야 되겠구나. 이게 '각오 기도'입니다. 근데 하려고 하니까 힘이 없으면 깨닫게 해 주셨는데 이걸 각오를 해야 되겠는데 힘이 없나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나이다. 이럴 때는 주여 도와주옵소서. 이걸 '간구 기도'라고 그럽니다.
(231215 금밤)
'성령으로 기도하며'
나의 기도는 중 염불 미신 믿는 사람 '주문'하고 같은 겁니다. 왜 이런 현실을 주셨을까. 이런 일을 만났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내 욕심이 아니라 내 목표가 아니라 내 의지가 아니라, '나의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왜 주님이 이런 현실을 주셨을까.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배운 말씀'으로 가지고 검토를 하고 연구를 하다 보면, '말씀 속에 성령'이 그렇지 바로 이게 문제지 저게 문제지 이렇게 알려주는데 말씀 가지고 깨달아질 때, 말씀 가지고 깨닫는데 그때 감화 감동이 딱 올 때 이때가 바로 '성령기도'가 되어지는 겁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먼저 깨달아보고 그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깨달을까 알게 돼 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몰라도 되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는 겁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알려고 하니 뻔히 아는 거 이것만 붙들면 나중에 다 의인 되고 다 성자됩니다. 신앙의 양심으로 그리고 배운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살펴보면 알아진다. 그 알아지는 게 '성령의 감동'입니다. 성령이 가르쳐주는 겁니다. 이게 '성령기도'
이게 맞기는 맞으니 이제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해야 되는데 내가 게을러 하기 싫어합니다. 하기 싫어하면 이게 원수입니다. 해야지 성령이 인도하시니 따라야지 성령이 인도하시니 따라야지. 근데 내가 이렇게 강퍅해서 내가 이렇게 게을러서 알긴 아는데 실행을 못하겠구나. 이때 주여 게을러 그렇고 강퍅해 그렇고 하기는 해야 되는데 알면서도 못하니 도와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도와주옵소서. 이럴 때에 그러면 네가 조금이라도 하면 내가 도와주마. 네가 이만큼 하면 내가 이만큼 도와주마. 그러면서 성령이 우리 마음을 달래가며 대화하며 유기적으로 대화적으로 감화 감동적으로 점점 점 점 나아지는 겁니다.
'성령이라 말은 감화와 감동의 하나님으로 기도'하라.
(231215 금밤)
'성령으로 기도'
기도를 하면 눈 감고 나 이거 좋습니다. 나 이거 해야 됩니다, 이러시고 저러시고, 전부 하나님을 가르치려 듭니다. 주님은 뭘 원하실까?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 인간의 마음이 너무 수준이 낮아 하늘의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데 깨닫게 해 주옵소서, 열어주옵소서, 깨닫게 해 주옵소서, 좀 차분하게 주님이 뭘 원하는가, 들어봐야 뭘 알 건데 '성령은 우리 양심에 대고 말씀'하십니다. 양심에 대고 양심이라는 것은 욕심을 붙들어 매놓아야 움직입니다. 감정을 주저 앉혀야 비로소 이제 양심이라는 것이 살아납니다.
(231215 금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