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 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 성경 | 26에스겔4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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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2 05:35
'그가 나를 데리고'
주님을 따라 동문을 통과하고 나니, 주님이 문이니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대속으로 나를 돌아 보며 6척의 6걸음을 조심하며 살피고 나니
'바깥 뜰에 들어가니'
하나님의 은혜 세계. 백성의 뜰이니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일반적으로 기본적으로 1단계에서 받는 은혜가 펼쳐 지더라. 이 뜰은 바벨론 세상의 담 밖에서 성전 문으로 들어 오면 첫째 뜰이니 외부와 접한 바깥 쪽이라 하여 바깥 뜰이다. 이 바깥 뜰에서 다시 안문, 2차 문을 통과하면 더 높은 안뜰이 있다. 이 곳은 대속의 주님을 따라 나를 잡아야 들어 가는 특별 은혜, 생사를 넘어 서는 신앙의 단계이다. 그러나 바깥 뜰은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 일반에서 받는 가정적 은혜, 건강 은혜, 경제 은혜, 생활의 은혜를 말한다.
'뜰 삼면에'
들어 오던 방향은 동쪽이니 문이었고, 문의 좌측은 남이고 우측은 북이며 앞은 서쪽인데 성전의 본당이 있는 방향이다. 14절에서 현관 사방에 뜰이 있더라 한 '사방'은 동서남북이 아니라 '주변' '둘레'를 말한다.
'박석 깔린 땅이 있고'
땅에 직접 발이 닿지 않도록 얇은 돌로 포장을 한 상태가 '박석 깔린 땅'이다. 이 곳은 18절에서 보면 50척이고, 19절에서는 이 박석 깔린 땅 앞에 박석조차 없는 곳이 100척이다. 바깥 뜰의 전체 길이는 500척이고 넓이는 150척이다. 이 바깥 뜰의 일반 은혜가 우리 신앙 생활에서도 대부분이다. 주님 날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주를 위해 죽겠다는 그런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분량으로도 적다. 일반적으로는 기본 신앙 생활만 잘 해도 만사 복이 넘친다. 이 것이 신앙의 1단계에서 받는 일반 은혜의 세계다. 그런데 그 일반 은혜를 150으로 잡을 때 50척이라는 첫 3분의 1은 박석이니 이 세계는 주님을 따라 문을 들어 오며 나를 살피고 조심한 그 순간과 같다.
남이 보면 땅을 밟았는데 내게는 땅에서 떨어 져 있다. 세상을 살다 말씀으로 나를 돌아 보며 조심조심 걷다 보면 가정적 경제적 건강적 사업적인 모든 면에서 남이 보면 그만큼 애를 썼으니 당연하게 보이는데 내가 내면을 살펴 보면 세상이 모르는 초월의 은혜다. 그런 다음에 100척의 정말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 진다. 이 단계는 방심하라는 단계가 아니라 다음을 향해 나가는 신앙의 완전 자유가 주어 진 상태다. 흙을 밟는데도 흙을 초월한 신앙의 세계에서 이제는 원하고 원함으로 나를 잡고 주님 앞으로 직접 나가는 단계가 온다. 그런 단계 이전에 일반 신앙만 철저해도 일반 은혜는 만 가지로 넘친다. 그런 은혜가 깔리고 기본이되고 그런 은혜를 넘어 서서 그런 은혜의 자유의 세계를 가진 다음에라야 이제 원하고 원함으로 주를 위해 그런 자유, 일반 은혜, 그 동안 걸어 온 자유와 평안을 주님 앞에 반납하고 목숨을 내던지며 고난의 길을 즐겨 가는 2차 뜰을 위한 2차 문이 나온다.
내가 나를 주님의 대속에 감격하여 잡아 버리고 주님과 동행 주님과 하나 되는 성소 안으로 들어 가야 그 곳에서 나온 은혜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나오는 겔47장의 발원이 된다. 지극히 은밀한 곳에서 시작한 세계가 일반 은혜의 바깥 마당으로 흘러 오고 그 것이 밖으로 흘러 나가며 갈수록 창일하여 천하를 생명으로 넘치게 한다.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일반 은혜를 위해 이 곳에는 신앙의 양식을 먹는 곳이다.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앞에서 설명했다.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 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척이며'
앞에서 설명했다.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
들어 올 때는 동문으로 들어 왔는데 바깥 뜰을 척량하며 박석 깔린 땅과 방을 헤아린 위치는 남쪽이다. 그래서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라고 설명을 생략했다.
주님을 따라 동문을 통과하고 나니, 주님이 문이니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 소망의 대속으로 나를 돌아 보며 6척의 6걸음을 조심하며 살피고 나니
'바깥 뜰에 들어가니'
하나님의 은혜 세계. 백성의 뜰이니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일반적으로 기본적으로 1단계에서 받는 은혜가 펼쳐 지더라. 이 뜰은 바벨론 세상의 담 밖에서 성전 문으로 들어 오면 첫째 뜰이니 외부와 접한 바깥 쪽이라 하여 바깥 뜰이다. 이 바깥 뜰에서 다시 안문, 2차 문을 통과하면 더 높은 안뜰이 있다. 이 곳은 대속의 주님을 따라 나를 잡아야 들어 가는 특별 은혜, 생사를 넘어 서는 신앙의 단계이다. 그러나 바깥 뜰은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 일반에서 받는 가정적 은혜, 건강 은혜, 경제 은혜, 생활의 은혜를 말한다.
'뜰 삼면에'
들어 오던 방향은 동쪽이니 문이었고, 문의 좌측은 남이고 우측은 북이며 앞은 서쪽인데 성전의 본당이 있는 방향이다. 14절에서 현관 사방에 뜰이 있더라 한 '사방'은 동서남북이 아니라 '주변' '둘레'를 말한다.
'박석 깔린 땅이 있고'
땅에 직접 발이 닿지 않도록 얇은 돌로 포장을 한 상태가 '박석 깔린 땅'이다. 이 곳은 18절에서 보면 50척이고, 19절에서는 이 박석 깔린 땅 앞에 박석조차 없는 곳이 100척이다. 바깥 뜰의 전체 길이는 500척이고 넓이는 150척이다. 이 바깥 뜰의 일반 은혜가 우리 신앙 생활에서도 대부분이다. 주님 날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주를 위해 죽겠다는 그런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분량으로도 적다. 일반적으로는 기본 신앙 생활만 잘 해도 만사 복이 넘친다. 이 것이 신앙의 1단계에서 받는 일반 은혜의 세계다. 그런데 그 일반 은혜를 150으로 잡을 때 50척이라는 첫 3분의 1은 박석이니 이 세계는 주님을 따라 문을 들어 오며 나를 살피고 조심한 그 순간과 같다.
남이 보면 땅을 밟았는데 내게는 땅에서 떨어 져 있다. 세상을 살다 말씀으로 나를 돌아 보며 조심조심 걷다 보면 가정적 경제적 건강적 사업적인 모든 면에서 남이 보면 그만큼 애를 썼으니 당연하게 보이는데 내가 내면을 살펴 보면 세상이 모르는 초월의 은혜다. 그런 다음에 100척의 정말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 진다. 이 단계는 방심하라는 단계가 아니라 다음을 향해 나가는 신앙의 완전 자유가 주어 진 상태다. 흙을 밟는데도 흙을 초월한 신앙의 세계에서 이제는 원하고 원함으로 나를 잡고 주님 앞으로 직접 나가는 단계가 온다. 그런 단계 이전에 일반 신앙만 철저해도 일반 은혜는 만 가지로 넘친다. 그런 은혜가 깔리고 기본이되고 그런 은혜를 넘어 서서 그런 은혜의 자유의 세계를 가진 다음에라야 이제 원하고 원함으로 주를 위해 그런 자유, 일반 은혜, 그 동안 걸어 온 자유와 평안을 주님 앞에 반납하고 목숨을 내던지며 고난의 길을 즐겨 가는 2차 뜰을 위한 2차 문이 나온다.
내가 나를 주님의 대속에 감격하여 잡아 버리고 주님과 동행 주님과 하나 되는 성소 안으로 들어 가야 그 곳에서 나온 은혜가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나오는 겔47장의 발원이 된다. 지극히 은밀한 곳에서 시작한 세계가 일반 은혜의 바깥 마당으로 흘러 오고 그 것이 밖으로 흘러 나가며 갈수록 창일하여 천하를 생명으로 넘치게 한다.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일반 은혜를 위해 이 곳에는 신앙의 양식을 먹는 곳이다.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앞에서 설명했다.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 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척이며'
앞에서 설명했다.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
들어 올 때는 동문으로 들어 왔는데 바깥 뜰을 척량하며 박석 깔린 땅과 방을 헤아린 위치는 남쪽이다. 그래서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라고 설명을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