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귀한 세월 보내고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장 16절 말씀이다. 세월은 멈추지 않고 멈출 수도 없다. 흘러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이 다 아는 상식이다. 흘러간 물이 다시 거슬러 올라오는 법은 없다. 세월이 그렇다.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는 빠르기가 살과 같다. 시위에서 떠난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와 같다는 뜻이니 요즘 시대로 응용하면 세월의 속도는 총알의 속도와 같다는 뜻이 된다. 알기는 아는데 실감은 참 어렵다.
뭔가를 가지고 있을 때는 귀한 줄을 모른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렇다. 이 또한 상식이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다. 건강은 인생의 전부와 같은 것인데도 젊고 건강할 때는 대개 그 가치를 모른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그래봐야 실제 실감은 쉽지 않다. 건강을 잃어봐야 비로소 건강의 가치를 실감한다. 이가 아파 봐야 치아의 소중함을 알듯이, 몸의 모든 지체가 다 그렇다. 있으면 모르고 잃어봐야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를 아는 것이 무지하고 미련한 인간이다.
젊다는 말은 세월을 많이 가졌다는 뜻이다. 많이 가졌으니까 소중함을 모른다. 젊은 사람은 젊음의 귀함을 모른다. 20대 청년이 그 청년 때의 소중함을 느끼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전도서 11장 9절에는 청년의 때를 경고하고 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청년의 때를 귀한 줄 모르고 세월을 아끼지 않고 마음에 원하고 눈이 좋은 대로 허비하면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인과응보는 세상 속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심판이다. 자연 계시라고 한다.
세월이란, 흘러가면서 그 세월을 사는 사람의 생애를 만든다. 생애란 흔적이며, 이력이며, 이름이 된다. 누구나 세월을 살면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은 그의 이력이 되며, 그 이력이 그의 이름으로 남는다. 유명하든 무명이든 인간이라면 이 원리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된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 돌아오지 않는 세월, 돌이킬 수 없는 세월, 그 흘러가는 세월에 사람의 지능이 만들어지고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인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지식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고, 가치관에 따라 세월을 사는 인생은 달라진다. 학문에 가치를 두고 학문 연구에 세월을 보내면 학자가 된다. 과학 기술에 가치를 두고 세월을 살면 과학자가 된다. 물질에 가치를 두고 돈을 벌면 실력만큼 부자가 된다.
요셉은 믿음에 가치를 두고 현실을 말씀 순종에 전력했다. 집에서도, 종으로 팔려 가서도, 누명 쓰고 감옥에 가서도 오직 말씀 순종에만 전력했다. 하나님의 뜻만 찾고 그 뜻 순종에만 전 가치를 두고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13년 후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실세 총리였다. 애굽 왕 바로는 요셉에게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라 했고,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칠 때 왕은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13년 세월을 살면서 만들어진 지능의 실력과 인품이었고, 하나님의 함께하신 결과였다. 세월을 살며 세월에서 만든 결실이다. 세월은 요셉도 만들었고, 다윗도 만들었고, 나아만의 여종도 만들었다. 세월은 사울도 만들고 아합도 만든다. 이세벨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세월이다.
세월을 어떻게 보냈고 무엇을 만들었나? 장탄식이다. 낙심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바닷가로 심방을 가셨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다. 고기 잡는 전문가 어부였던 베드로는 속으로 웃었으나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다. 베드로가 꼬꾸라지면서 두려워 떨었다. 주님을 따라다닌 세월에 바로 배우지 못했고 그 세월을 바로 살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통탄이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가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배운 대로 살지 못한 세월, 주님 떠나서 허송한 세월, 그 세월을 되돌려 생각하여, 주님 따라다닌 그 세월에 제대로 배웠다면, 배운 대로 실행했다면 그 세월에 어떤 자기가 되었을 것인데 그 세월을 허비한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고 통탄스러웠고 주님 앞에 한없이 죄송했고, 받을 심판이 두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시간은 금이라고 한다. 세월이 시간이다. 세월을 금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세월은 자기 지능의 실력을 만들고, 세월은 자체의 인격을 만들고, 세월은 자기 신앙을 만든다. 세월은 천국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세월은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다. 천하에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이제라도 오니까 다행인데, 그 귀한 세월 허송한 것이 너무 아깝다. 억울하고 분하다. 남은 세월이 얼마일지, 모세는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늦었다고 하는 그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던가?
노령 사회가 되어 이제 고령이 많고 청장년도 급속히 나이를 더해 가며 유소년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사회의 연령이 노령에 가까와 지다 보니 이런 말씀을 실감하는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 집니다. 이제 모두가 절실하게 느끼며 읽을 때입니다.